처음 엄마와의 여행을 시작한 2016년 1월, 엄마는 한국 나이로 74세가 되었다. 내가 아직 그만큼 나이를 먹어보지 못했기에 나는 70대의 체력을 가늠하기가 어려웠다. 70이 넘으면 무릎이 안 좋아서 많이 걷는 게 힘들다는 얘기를 들어본 정도다. 60대에는 여기저기 활발하게 돌아다니시던 엄마가 70대에 접어들며 동네 외에는 별로 나다니지를 않으시는 게 느껴졌다. 엄마 또래들이 해외여행을 더 이상 하지 않는다는 것도 감지할 수 있었다. 나는 생각했다. 다들 처음 되어 본 70대라 무엇을 할 수 있을지 없을지를 스스로 잘 모르고 있다고. 70대는 완전한 노인으로 접어든 나이라고 생각하고 스스로 행동반경을 줄이고 자중하는 삶의 모드를 견지하고 있다고.
그러나 무엇을 할 수 있을지 없을지는 해 보아야 알 수 있다. 내가 보기에는 엄마는 얼마든지 여행을 할 수 있고 즐길 수 있을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2015년 5월 엄마와 제주도 올레길 걷기에 도전하였다. 4박 5일간 제주에 머물면서 올레길 6코스, 7코스, 10코스, 10-1코스를 완주하였다. 제지기 오름을 가볍게 올라갔다 내려오며 엄마는 오히려 꾸물꾸물 벌벌거리는 나를 한심하게 보고 있었다. 11km에 달하는 6코스를 걸으며 점점 뒤처지는 나를 보고 짜증을 내던 엄마였다. 평소 걷기 운동을 꾸준히 해 왔던 엄마이기에 장소가 국내이건 해외이건 별 차이가 없을 것이라고 판단하고 엄마와의 해외여행을 시작하였다.
미얀마 바간에서는 마차에 올라탈 때 힘들어하는 엄마를 살짝 밀어드리고 끌어 당겨드렸다. 라트비아 시굴다의 투라이다 성은 나 혼자 올라갔고 엄마는 아래에서 전경만 감상을 했다. 이스라엘 예루살렘에서는 다마스게이트 입구의 계단을 내려갈 때 엄마를 붙잡아 드렸다. 엄마는 무릎이 안 좋다. 평지를 걷는 데에는 아무런 문제가 없지만 언덕이나 계단을 내려가는 것을 힘들어하신다. 언젠가부터 나는 계단을 내려가야 하는 순간에는 엄마 곁에 붙어서는 습관이 생겼다.
수도 발레타가 있는 몰타섬을 떠나 북쪽의 고조섬을 찾아간다. 숙소 근처의 발레타 버스 터미널에 가면 몰타의 어디든 쉽게 찾아갈 수 있다. 시스템이 현대화되어 있어 편리하고 쾌적한 야외 버스 터미널이다. 1시간 15분 걸려 치케와(Cirkewwa)항구에 도착, 여기서 페리를 타고 25분 걸려 고조섬에 도착한다. 그리고 바로 ‘합온합오프 고조섬 관광버스(hop-on-hop-off Gozo sightseeing bus)’에 오른다. 고조섬을 제대로 즐기려면 최소 몇 박을 해야 할 터. 그러나 발레타에 머물며 당일로 다녀오기로 하였기에 고조섬 안내 지도를 보며 딱 세 군데에서 합온합오프를 하기로 한다.
두 번째로 내린 곳이 빅토리아 버스 정류장이다. 해적의 침입을 막기 위해 건설되었다는 요새 시타델라(Cittadella)를 향해 걷기 시작하는데 계속 오르막길이다. 시타델라의 정문에 도착하는데 벌써 숨이 차다. 정문을 통과하자 거대하고 웅장한 시타델라의 앞으로 쏟아질 것 같은 느낌에 압도당한다. 또다시 보이는 계단. 꼭대기까지 도달하려면 한참을 올라가야 할 거 같다. 그냥 여기서 멈추면 어떨까. 불과 몇 달 전까지 몰타라는 나라가 어디에 있는지도 몰랐고, 불과 얼마 전까지만 해도 몰타의 두 번째로 큰 섬이 고조섬이라는 것도 몰랐는데 말이다.
느려지는 걸음과 빨라지는 호흡을 느끼며 두리번거리는데 엄마가 안 보인다. ‘어, 엄마는 어디에 있지?’ 그때 저 위에서 엄마가 나를 향해 손짓하고 있는 게 보인다. ‘어머나! 언제 엄마가 저기까지 올라간 거야?’ 부랴부랴 엄마 있는 데까지 쫓아 올라간다.
“빨리 안 오고 뭐해? 여기까지 왔는데 저 위까지 다 보고 가야 될 거 아니야! 버스 시간 생각하면 부지런히 움직여야 돼.”
정말 놀랍다. 계단을 보면 내려올 걱정에 올라갈 엄두를 못 내던 최근 몇 년 동안의 엄마가 아니다. 아주 재바르고 호기심 넘치는 내가 알던 원래의 우리 엄마다. 나는 느낀다. 햇수로 5년이 된 자유여행이 엄마를 더욱 젊게 만들고 있구나. 숫자인 나이는 많아지고 육체는 늙어져도 정신과 마음은 젊어질 수 있구나. 그리고 젊어진 정신과 마음이 에너지를 만들고 열정을 일으켜 불가능해 보이던 것을 가능하게 만드는구나. 엄마를 따라 시타델의 꼭대기에 올라선다. 성벽 너머로 빅토리아 시가지와 고조섬의 푸른 바다가 한눈에 내려다보이는 가슴 뻥 뚫리는 뷰를 선물받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