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껏 여행한 곳 중에 가장 좋았던 곳이 어디냐는 질문을 가끔 받는다. 그냥 관심의 표현으로 물어본 질문이겠지만 자못 진지하게 이 질문을 받아들이면 어떤 대답을 해야 하나 머뭇거리게 된다. 내가 좋았던 곳이 상대방에게도 좋을 리는 없기 때문이다. 같은 곳이라 하더라도 어느 계절에, 어떤 날씨에, 하루 중 언제, 그리고 어떤 상태에서 방문했느냐에 따라 좋고 덜 좋고는 달라지기 때문이다. 나의 심장을 일렁이게 만든 베스트 3는 엄마와 다녀온 여행 중에는 없으므로 차치하고, 갔던 곳이 너무 좋아 다시 찾아가게 된 곳이 이번 여행 중에 나왔다.
튀니스, 몰타보다는 조금 더 귀에 익숙한 ‘시칠리아’. 영화를 본 적은 없지만 여기저기 주워 들은 가닥으로 ‘대부’라는 영화와 함께 마피아를 떠올리게 된다. 이탈리아의 자치주이자 지중해 최대의 섬 시칠리아. 첫 번째 도착지는 시칠리아에서 두 번째로 큰 도시인 카타니아다. 이곳에 숙소를 정하고 타오르미나를 다녀오기로 한다. 인터버스를 타고 1시간 10분 걸려 타오르미나에 도착한다. 버스가 타오르미나를 향해 언덕길을 서서히 오를 때 양쪽으로 펼쳐지는 광경은 가슴을 뛰게 만든다. 왼편으로는 타오르미나가, 그리고 더 멀리 위쪽에는 에트나 화산이 펼쳐지고 오른편으로는 지중해의 바다 이오니아해가 낭떠러지를 타고 펼쳐져 내린다.
그리고 우리가 찾아간 곳은 그리스인들이 건설해 놓은 타오르미나 고대 극장. 입장권을 구입하여 극장 안으로 들어선다. 이렇게 보존이 잘 된 유적이 드물다고 하는데 과연 그렇다. 무대를 보며 관람석인 계단을 한 계단씩 올라간다. 제일 꼭대기까지 올라간다. 아!! 한눈에 타오르미나 극장이 펼쳐지는데 뭐라 말할 수 없이 황홀한 광경이다. 기원전 3세기 그리스인들이 왜 이곳에 극장을 지었는지를 대번에 이해할 수 있다. 무대 위로는 에트나 화산이 발아래 흰 구름 카펫을 깔며 햇빛을 받아 농염한 자태를 드러내고 있다. 그리고 무대 뒤로는 푸른 이오니아해가 햇빛을 받아 은빛으로 반짝인다. 그리고 내가 서 있는 이 객석에는 보이지 않는 그리스인들이 함께 있는 것만 같다.
그곳에서 3시간 남짓을 머무르며 눈에 담고 또 담았건만 우리 가슴은 다 채워지지 않았나 보다. 결국 바로 다음날 똑같은 시간에 다시 한번 타오르미나 극장을 찾아 다시 한번 감동을 느낀다. 그리고 타오르미나 극장에서 내려오며 작은 섬 이솔라벨라를 내려다본다. 확실히 같은 곳도 언제 보느냐에 따라 굉장히 다른 느낌이 된다. 전날은 늦은 오후였기에 살짝 어둑어둑한 이솔라벨라의 모습이 사진기에 담겨있다. 지금 찍은 사진에는 짙푸른 투명한 바다에 떠 있는 이솔라벨라의 신비한 자태가 그대로 드러나 있다. '역시 다시 오기를 잘한 거였어. 확실히 한 번만으로는 채워지지 않는 그 무언가가 있었어.' 이후에 알게 되었다. 많은 사람들에게 인상 깊게 각인된 영화 포스터 ‘그랑블루’의 바다가 바로 여기 이곳 이솔라벨라의 바다였다는 것을. 엄마와 내가 오죽하면 연일 이곳을 방문했겠는가. 범접하기 힘든 고고한 매력을 지닌 타오르미나를 알게 되었다는 것은 축복일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