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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여행의 이유: 몰타의 바울 난파 축제

by 보리차

“우리 이번에 몰타 갈 거면 2월 10일에 맞춰 가자.”

“왜??”

엄마가 이번 여행에서 가장 가보고 싶었던 곳은 몰타였던 거 같다. 몰타를 가는 김에 지중해를 건너 튀니지와 시칠리아도 함께 다녀오자고 하셨던 거였다. 그런데 2월 10일에 몰타에 있어야 하는 이유는 뭘까? 바로 그날이 ‘바울 난파 축제’일이란다. 성경의 사도 바울이 난파를 당해서 몰타섬에 3개월을 머물렀고, 몰타인들의 바울에 대한 존경과 사랑으로 지금껏 난파일을 기념하고 있다고 한다. 과연 난파 축제는 어떤 것일까? 엄마의 호기심이 난파 축제에 맞춰 우리를 몰타로 향하게 하고 있었다.


2월 9일 아침 호텔 창을 열어 지난밤 아쉬움 가득하던 빅토리아 광장을 내려다본다. 사람들은 보이지를 않고 비둘기떼가 광장을 차지하고 있다. 그로부터 얼마 지나지 않아 70분간의 몰타행 비행기에서 튀니스는 잊히고 있었다. 비행기 창문 아래로 푸른 지중해 위 몰타 본섬과 고조섬이 선명히 모습을 드러냈기 때문이다. 엄마가 아니었으면 세 덩어리의 섬으로 이루어진 몰타라는 나라가 어디에 있는지도, 바울 난파 축제라는 것도 전혀 알 리가 없었을 텐데 지금 나는 바울 난파 축제가 열릴 몰타를 향해 가고 있다. 제주도 1/6 크기의, 주민 대부분이 가톨릭 신도인 남유럽의 섬나라 몰타. 몰타어와 함께 영어가 공용어라니 마음 편하다.

20200209_113951.jpg 비행기에서 내려다 본 몰타 본섬과 고조섬


몰타의 수도 발레타에 위치한 숙소에 들르자마자 밖으로 나간다. 그리고 또다시 깨닫는다. 숙소 한번 기막히게 잘 정했다는 것을. 숙소에서 몇 걸음을 슬슬 걸어 내려가자 ‘바울 난파 성당’이 나온다. 축제의 메카인 곳이다. 성당에 들어가 확인해 보니 오늘 오후부터 내일까지가 축제란다. 정확히 맞추어 도착했다. 발레타는 곳곳이 언덕길이다. 그 언덕길 어디를 봐도 축제란 걸 알 수 있다. 크리스마스를 연상시키는 녹색의 가랜드와 붉은색 리스가 휘황찬란한 금장의 장식물과 함께 곳곳을 밝히고 있다. 성당 입구에는 천사들로 장식을 하여 화려하기 그지없다.


언제 어디에서 축제가 진행되는지를 확인해 두고 다시 몇 걸음 걸어 숙소로 돌아와 휴식을 취한다. 얼마나 시간이 흘렀을까. 브라스 밴드의 연주가 들리기 시작한다. 후다닥 창밖을 내다본다. 이 골목 저 골목에서 브라스 밴드들이 모여들기 시작한다. 각각 입고 있는 제복이 다르다. 그들은 바울 난파 성당으로 속속 모여든다. 숙소에 더 이상 머무를 수가 없다. 나가본다. 어느덧 하늘이 어두워지기 시작하며 성당이 불을 밝힌다. 낮에 본 모습보다 더욱 아름답고 화려하다. 사람들도 꾸역꾸역 성당으로 모여든다. 그리고 밴드들은 성당 앞에서 연주를 계속한다. 처음 듣는 곡이지만 왠지 기분 좋아지는 훈훈한 멜로디가 계속 흘러나온다. 어깨와 엉덩이를 움찔거리게 하는 밴드 연주를 들으며 나도 무리 속에 섞여 본다. 성당 맞은편 골목 언덕에는 계단에 테이블을 놓고 운영하는 레스토랑이 즐비하다. 지나다니는 사람들이 테이블을 스쳐 지나가도 행복해 보이기만 한 사람들. 그리고 그 골목길 끝은 바다다. 인파와 밴드와 불 밝힌 성당 아래에서 먹고 마시고 서빙하는 사람들이 아름다운 발레타의 밤을 완성한다.


물론 이것이 끝은 아니다. 축제에 빠질 수 없는 불꽃놀이. 아까 낮에 ‘시에주 벨 워 메모리얼(Siege Bell War Memorial)’ 근처를 지날 때 젊은이들이 불꽃놀이를 준비하고 있었다. 캄캄해진 밤거리를 걸어 ‘메디터레니언 스트리트(Triq Il-Mediterran)’에 도달한다. 다시 눈앞에 보이는 바다. 그리고 잠시 후 첫 축포가 터진다. 소박하지만 아름답게 발레타 바다 위로 치솟았다가 사라지는 불꽃을 보며 순간을 음미한다. 그리고 몸을 돌려 앞의 건물을 본 순간, 예상치 못한 그림자의 향연이 펼쳐진다. 바닷가 난간에 올라앉거나 기대어 불꽃놀이를 즐기던 사람들의 모습이 맞은편 건물 벽에 선명한 그림자로 나타난다. 마치 스크린 속의 주인공이 된 양 엄마와 나는 각자의 그림자를 보며 즐거워한다. 불꽃놀이 보러왔다가 그림자놀이를 하고 간다.



다음날 드디어 엄마의 D-Day 이다. 바울 난파 축제일이다. 오전부터 몰타 전역에서 사람들이 모여든다. 국민 대부분이 가톨릭 신자이니 그럴만할 것이다. 낮부터 발레타의 거리에는 브라스 밴드들이 음악을 연주하며 다니기 시작한다. 그리고 집집마다 어린아이들이 부모와 함께 흰색의 종이를 오려 만든 눈송이를 뿌린다. 창문마다 눈가루를 날리는 어린이들과 부모들의 표정에 행복이 가득하다. 발레타의 모든 가정에서 눈을 날려서일까. 금세 곳곳의 도로가 눈에 푹 파묻힌다. 멀리서 보면 새하얀 눈으로 덮인 거리 거리다. 아이들은 눈을 한 움큼 안아 다시 흩뿌리고 눈을 이불 삼아 덮어 누워 있기도 하며 그야말로 행복한 눈의 나라를 만끽하고 있다.


오후가 깊어가며 바울 난파 성당 일대는 사람들로 넘쳐난다. 경사진 언덕길을 따라 꾸역꾸역 밀물처럼 흘러내리는 인파. 축제를 기념하기 위해 모여드는 사람들과 연주하며 이동하는 브라스 밴드들이 한 점의 공간도 보이지 않으리만큼 거리를 꽉 채우고 있는데도 너무도 평화롭고 질서 있게 천천히 움직이고 있다. 그뿐만 아니라 시민들과 브라스 밴드 대원들이 서로 인사를 나누고 가벼운 대화를 나누기도 한다. 자연스레 섞이면서도 질서 있게 움직이는 거대한 인간의 물결 속에서 선진국다운 시민의식을 느낀다. 넘치지도 모자라지도 않는 몰타 국민의 품격을 느낀다. 눈 덮인 거리에서 몰타인들과 함께 섞인 엄마는 즐겁기만 하다. 엄마는 몰타의 어린이들과 함께 쌓인 눈을 한 아름 들어 올렸다가 공중으로 흩뿌리며 즐거워한다. 분명 엄마는 발레타 이곳 바울 난파 축제의 일원이다.


20200210_160925.jpg 종이눈밭에서 즐거운 발레타 어린이들
20200210_165729.jpg 브라스 밴드와 발레타 시민들


밤이 깊어가니 발레타 세인트 존 대성당에서 오늘 축제의 주인공인 사도 바울이 등장한다. 왼손에는 성경을 들고 사람들을 향해 오른손을 들어 올린 대형 사도 바울 모형을 10여 명의 흰옷을 입은 사제들이 어깨에 메고 퍼레이드를 시작한다. 그리고 검은 하늘에서 다시 하얀 눈송이가 내려온다. 브라스밴드의 연주가 축제의 피날레를 완성한다. 그들을 따라 걷다 보니 다시 숙소 앞 바울 난파 성당이다. 얼마나 시간이 흘렀을까. 화려했던 축제의 행렬들은 뿔뿔이 사라지고 종이 눈 쌓인 언덕길이 가로등에 어른거린다. 마치 얼어붙은 눈길을 걷는 모양으로 종종걸음치며 언덕길을 내려가는 사람들 모습이 재미있다. 그리고 이 축제의 대미는 바로 눈길을 쓸기 위해 나타난 청소부들 담당인 듯하다. 이 밤 이들은 얼마나 많은 눈을 쓸어야 할까. 그들에게 이 눈이 작은 축복일 수 있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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