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디 부 사이드에서 TGM이라는 전철을 타고 돌아오며 튀니스 마린역에 내린다. 내 인생에 딱 한 번 지나치게 될 역이라서 그럴까. 숙소를 향해 발걸음을 내디디며 역사를 보고 또 뒤돌아 본다. 역사 근처의 꽃가게. 그 간판에는 최소 4개의 언어가 나란히 병기되어 있다. 아라비아 숫자 6 + 영어 Africa + 프랑스어 Fleurs + 그리고 읽을 수 없는 아랍어까지. 그리고 곧 시계탑이 나타난다. 5:40p.m. 아직은 푸르름이 남아 있는 하늘을 배경으로 시계탑 뒤에 보름달이 보인다. 그리고 그 시계탑 앞에 이 거리의 주인공인 하비브 부르기바 동상이 있다. 하비브 부르기바 거리가 텔 아비브의 벤 구리온 거리를 떠올리게 한다. 거리 이름의 주인공인 하비브 부르기바도 벤 구리온도 모두 정치가이자 독립운동가였다. 거리의 중앙에 가로수와 가로등이 들어서 있고 그 양옆에 인도가 있어 사람들이 지나다닌다. 그리고 그 인도의 양옆에 차도가 있어 차들이 지나다닌다. 두 거리가 똑같은 모양새를 하고 있다. 벤 구리온 거리를 걷던 때도 그리고 지금도 서서히 어둠이 깔리기 시작하는 초저녁 무렵이다. 가로수는 파리의 룩상부르크 공원의 나무들처럼 직육면체 형태로 잘 다듬어져 있다.
하늘빛이 청색으로 바뀌며 하늘로 둥실 떠오르는 보름달이 선명하게 빛나는 그 시각, 중학생쯤 되어 보이는 7명의 소년들이 우리 곁으로 다가온다. 만면에 웃음기를 머금고 우리를 슬금슬금 바라보는 게 뭔가 우리에게 말을 걸어보고 싶어 하는 듯하다. 그중 용감한 한 녀석이 먼저 말을 꺼낸다.
“어느 나라에서 왔어요?”
“한국.”
“한국은 코로나 아닌가요?”
“응. 한국은 아니야. 코로나는 중국에 있지.”
“아 맞다, 맞어. 중국이지”
귀여운 학생들이 우리를 향해 환한 미소를 지으며 만나자마자 작별 인사를 하고 사라진다.
숙소를 향해 걸으며 하늘을 올려다본다. 어느덧 맑은 검정색 하늘이 되어 있다. 그리고 높이 올라간 보름달이 환하게 빛난다. 그런데 엄마가 어디 있지? 360도 고개를 돌려 엄마를 찾으니 엄마는 저만치서 웬 여학생과 대화하고 있다. 어디서나 누구하고나 금방 친해지는 탁월한 능력을 지닌 엄마는 튀니지 학생과도 금방 사귀었구나 싶다. 젊은 시절 미국계 회사에 근무한 적이 있는 엄마는 영어와는 담쌓은 지 50년이 지났지만 나 못지않게 영어로 소통이 가능하다. 영어 실력에 친화력이 더해져서이다. 내가 엄마 옆에 붙어 다니지 않는다면 엄마는 세상 곳곳에서 영어 사용에 도전하는 즐거움을 누릴텐데 내가 그 기회를 앗아가는게 안타깝다. 그 학생과 엄마와 나는 하비브 부르기바 거리가 끝나는 지점, 밝은 보름달 아래서 잠시 동안의 만남을 행복해하며 사진을 찍는다. 그 학생도 역시 코로나에 관심을 가지고 있다. 아침에 만난 택시 기사도 계속 코로나 걱정을 하고 있었다. 우리가 중국인과 구분이 잘되지 않으니 우리를 보면 코로나가 떠오르고 조심스러울 거다. 그래도 다들 우리를 멀리하지 않고 우리에게 오히려 다정하다. 미안하고 고맙다.
숙소로 돌아와 튀니스에서의 네 번째 밤이자 튀니지에서의 마지막 밤을 보낸다. 창문으로 다가가 고개를 내밀고 아래를 내려다본다. 빅토리 광장에 사람들이 드문드문 눈에 띌 뿐 고요하다. 가로등과 '밥 알 바흐르(Bab el Bahr)'를 비추는 조명만이 어두움을 밝히고 있을 뿐이다. ‘Fast Food’라는 간판을 걸고 우리에게 신선한 생과일 오렌지 주스의 공급처가 되어 주던 순박한 아랍 청년들이 운영하던 가게도 문을 닫고 고요 속에 묻혀있다. 북아프리카의 한 도시로 스며들어 며칠을 보내는 것은 내 인생 계획표에는 없었다. 생소한 아랍인들의 도시에게 작별을 고하는 것이 이렇게 아쉽다는 것을 조금 전까지도 몰랐었다. 짧게 머무른 이 도시에 이렇게 정이 든 것은 무엇 때문이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