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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라미 Apr 11. 2023

벚꽃이 뭐길래(2)

서울대공원 여행기

일요일 오전 10시가 되어 앱을 켜고 김밥을 주문했다. 서울대공원에 갈 때마다 노점상 할머니들이 파는 김밥과 꽈배기, 가래떡을 사 먹었었다. 아이들은 맛있다고 좋아했지만, 내 입맛에는 맞지 않아서 이번에는 김밥을 사갈 생각이다. 계획대로 김밥 집에서 김밥을 픽업하고 여유롭게 도로를 달리는데, 길가에 벚꽃이 우리를 반겨준다.


들뜬 마음으로 이야기꽃을 피우려는 찰나 갑자기 차가 밀린다. 가다 서다 하기를 반복, 40분 거리를 1 시간 넘게 걸려서 도착을 했다. 아무래도 벚꽃이 만개했다는 소식에 다들 벚꽃나들이를 나온 모양이다. 아차 싶었다. 평소 일요일 오전에는 차가 많이 밀리지 않아 생각조차 못했다. 봄나들이 시기였는데 이걸 깜박하다니. 나 자신이 원망스러웠다. 이럴지 알았다면 가지 말았어야 하나 후회도 됐다.


이미 도로에서 길이 막혔는데, 주차장도 꽉 들어찼다. 지금껏 세웠던 주차 장소보다 가장 멀리 차를 주차해 놓고 한참을 걸어 나왔다. 주차장을 빠져나오자마자 우리를 반기는 것은 꽉 들어차있는 사람들이다. 순간 괜히 왔나 싶었지만 그래도 왔으니까 벚꽃 보고 사진 찍고 가자며 마음을 다잡았다. 사람들 없는 틈을 찾아 이리저리 걸으며 사진을 몇 장 찍었다. 뒷배경은 벚꽃보다 사람들이 더 많아 보인다. 이것도 추억이라며 힘든 마음을 추스른다.


이미 점심시간이 다 되었으므로 빨리 자리를 잡고 김밥을 먹어야 했다. 올라가는 길목 편의점 앞에 분식을 판다. 아이들은 자신이 제일 좋아하는 떡볶이와 소떡소떡을 사달라고 조른다. 기분 좋게 원하는 것을 하나씩 사줬다. 남편은 편의점 뒤편에 테이블을 하나 사수하고 우리를 기다렸다. 서로 말을 하진 않았지만 이젠 이 정도는 알아서 하는 사이가 됐다. 부모가 각자의 역할을 하여 고생하지 않고 편하게 점심을 먹었다. 김밥도 나눠먹고 떡볶이도 나눠먹었다. 아이들은 복작복작한 분위기에도 참 맛있게 먹는다.


배를 든든히 채우고 동물원까지 올라가며 사진을 몇 장 찍었다. 아이가 크니 사진 찍는 것도 힘들다. 귀찮은 건지 부끄러운 건지 무조건 싫다고 하는 아이가 조금은 섭섭하다. 사진만이 우리의 추억을 남길 수 있는 유일한 수단인데 말이다. 이미 아이에게 사춘기가 찾아오고 있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아빠와 아들이 손을 잡고 앞서 걷고 있는 모습이 뿌듯하다. 나는 뒤에서 딸과 함께 셀카를 찍었다. 다들 마스크를 벗고 편하게 벚꽃을 감상했지만 우리는 마스크를 벗지 않았다. 아이들에게 마스크를 벗고 사진을 찍자고 해도 아이들은 완강히 거부했다. 사진 속 마스크를 쓰고 있는 모습이 조금 안타깝기만 하다.




키오스크에 줄지어 서있는 사람들을 뒤로하고 입구로 향했다. 미리 예매해 둔 덕분에 바로 QR코드를 찍고 동물원에 입장할 수 있었다. 아이들은 지도 한 장씩 들고 와서 코스를 정한다. 아이들이 어릴 때는 제일 가까운 곳으로만 한 바퀴 휙 돌고 왔었는데, 이제는 아이들이 스스로 가고 싶은 곳을 정해 우리를 안내해 준다. 주변에는 어린아이들이 많았고, 특히 유모차에 타고 있는 갓난쟁이들이 참 많이 보인다. ‘우리 아이들도 저런 시절이 있었는데, 저때가 정말 예쁠 때지.’ 혼자 오래전 그날을 생각하며 잠시 추억에 잠겼다.


언제 저렇게 컸을까. 이제는 동물원이 시시해질 나이가 됐다. 가는 곳마다 다 갔던 곳이고, 특별한 감흥이 없다. 날은 덥고 힘들다. 1시간쯤 지났을까. 아이들은 힘들다고 징징대더니 음료수가 먹고 싶다고 한다. 때마침 앞에 보이는 편의점에 들렀지만 사람이 너무 많아 그냥 나왔다. 어쩔 수 없으니 가져온 물을 먹으라고 했다. 아이들은 군말 없이 물을 벌컥벌컥 마신다. 아쉬워하는 아이들에게 아이스크림을 사주겠다고 제안하며, 좀 더 힘을 내서 걸어보자고 했다.


더운 날씨라 그런지 소프트아이스크림이 먹고 싶었다. 좀 더 걷다 보니, 저 멀리 아이스크림가게가 보다. 아이스크림 먹을 생각에 바삐 걸음을 재촉했다. 아이들이 원하는 초코맛과 바닐라맛을 구입하여 서로 한입씩 나눠먹었다. 날이 더워서 그런 걸까, 간만의 외출에 신이 난 걸까. 올해 처음 먹는 아이스크림은 정말 달고 맛있었다. 찬 걸 먹으면 바로 감기 걸리는 탓에 한여름이 아니고서는 아이스크림을 잘 사주지 않는다. 그래서인지 아이들은 누가 뺏어먹을세라 급하게 입에 넣는다. 이럴 줄 알았으면 한 개 더 살걸 그랬다. 돈이 아까워서가 아니라 감기 걸릴까 봐 잘 사주지 않는 건데. 아이스크림 하나에 저리 좋아하다니 괜스레 미안해진다. 한입 베어 물면 스르르 녹는 달콤 시원한 아이스크림은 오늘 먹은 음식 중에 단연 최고였으리라.


돌아오는 길에 곤충박물관이 보여 들어갔다. 더운 날씨에 실내로 들어간 건 한 수 위였다. 길안내 표지판을 따라 대충 휘 둘러보는데도 20여분을 걸었다. 다행히도 아이들은 다른 동물 본 것보다 곤충박물관 들어간 게 훨씬 좋았다고 한다. 동물원에 입장한 지 2시간이 채 되지 않아 출구로 향했다. 더운 날씨에 2시간을 걸은 건 4시간을 걸은 것과 같은 느낌이었다. 코끼리열차를 타고 내려가려는데 이미 줄이 한참이나 길게 늘어서 있었다. 너무 힘들어서 조금 기다렸다가 코끼리열차를 타고 가기로 했다. 이번에도 나는 티켓을 끊고, 남편은 줄을 섰다. 이럴 때 보면 참 완벽한 한 팀이다.    

 

코끼리 열차를 타고 출구로 가는 길은 소프트아이스크림 다음으로 시원했다. 5분도 안 되는 너무 짧은 시간이 못내 아쉬웠다. 터벅터벅 걸으며 주차장으로 향하는 길은 너무나도 멀게만 느껴진다. 차를 너무 멀리 세워 보이지 않는 차를 찾느라 한참을 헤맸다. 뜨거운 열기로 후끈해진 차를 보고 잠시 망설이다 바로 올라탔다. 그 정도로 힘들었다. 뜨거워진 시트에 앉은 엉덩이보다 다리가 더 후끈거렸다.


잠시 목을 축이고, 출발하려는데 출구로 나가려는 차들이 줄 서있었다. 차는 한참 동안 움직이지 않았다. 아이들은 왜 가지 않느냐고 재촉하고, 차가 끼어들면 양심 없다고 비난했다. 순간 머리에 돌을 맞은 기분이었다. 그동안 기다리는 것이 시간낭비라고 생각하여 항상 비켜가기만 했더, 이것이 아이들에게 ‘기다림’이란 것을 가르치지 못한 원인이 되었다. 내가 원치 않는 경우에 서로 배려하고 양보하며, 기다릴 줄도 알아야 한다고 훈계를 했다.


1시간이 지나서야 겨우 주차장을 빠져나올 수 있었다. 집에 오는 길은 그래도 차가 많이 막히지 않았다. 아이들은 이미 곯아떨어졌다. 외출한 지 6시간 만에 집에 돌아왔다. 체력이 그리 좋지 못한 우리 가족은 보통 4시간이면 외출을 끝내는데, 도로와 주차장에서 2시간을 허비하고 왔더니 피곤이 몰려온다. 너무 힘든 하루다. 그래도 벚꽃을 봤으니 다행이라 생각해야 하나. 잘 모르겠다. 그냥 지금은 아무 생각도 없이 그저 힘들기만 하다.




월요일 낮부터 둘째 아이가 기침을 한다. 아이는 오빠때문이라며 화를 냈다. 지나고 생각해 보니, 놀러 가서 점심을 같이 나눠먹은 게 화근이었다. 괜히 나들이를 간 것인가 후회스러웠다. 그래도 어쩔 수 없다. 이미 엎질러진 물이다. 둘째 아이에게 남은 상비약 시럽 2 봉지를 먹였다. 다행히 열은 안 나서 학교에 갔다. 학교에서도 기침은 하지 않았다고 한다. 저녁만 되면 기침을 하는 아이를 보며 병원을 가야 하나 고민이 된다. 하지만 열이 나지 않고 기침도 심하지 않으니, 우선 상비약으로 버텨봐야겠다.


그날 저녁 내 몸도 이상함을 감지했다. 목이 살짝 따끔거린다. 아플 것 같다. 순간 나도 모르게 첫째 아이를 원망했다. ‘감기 다 나았다고 해서 외출했더니 이게 뭐야.’ 밤새 목이 아프고 코가 막혀서 잠을 못 잤다. 다음날 아침부터 몸이 욱신거린다. 몸살이 오려나보다. 집에 있는 쌍화탕을 마시고 해열진통제를 먹었다. 그래도 좋지 않다. 외출할 힘이 없어 첫째 아이에게 기침감기약을 사 오라고 심부름을 시켰다. 아이가 사 온 약을 먹고 해열진통제를 먹으며 하루를 버텼다. 약을 먹으니 조금 괜찮아진다. 이튿날은 남편에게 감기몸살약을 사 오도록 부탁했다. 열이 38.5도까지 올라간 몸살은 이틀이 지나자 조금 괜찮아졌다. 남편도 목이 따끔거린다며 괜히 놀러 갔다고 원망 아닌 원망을 한다.


이번 벚꽃나들이는 누굴 위한 여행이었나. 힘들게 갔다 와서 다들 아프기만 했으니 당황스럽다. 그저 2023년에 활짝 핀 벚꽃을 좀 보려고 했던 것뿐인데, 뭔가 억울하다. 아이가 갑자기 감기에 걸릴 줄 누가 알았냐고, 내가 벚꽃나들이 가려고 한 날에 다른 사람들도 나와 같은 생각을 하고 있을 줄 누가 알았겠느냐고 따지고 싶다. 하지만 이런 게 인생이겠지. 원망하고 탓한들 이제와 얻을 건 없다. 보상을 받을 수도 없는 노릇이다. 후회한들 속상하기만 하고 기분만 나쁘다.


계획한 대로 되진 않았지만, 내가 그토록 원하던 벚꽃을 봤다. 엊그제 내린 비로 이미 벚꽃은 다 떨어져 버렸다. 차도 밀리고, 사람도 너무 많아 불편했지만 올해의 벚꽃을 봤으니 됐다. 아이에게 감기가 옮아 온 가족이 고생을 했지만 그래도 괜찮다. 외출하지 않았어도 감기에 걸리려면 충분히 걸리고도 남았을 것이다. 인생은 참 내 맘 같지가 않다. 계획대로 된다면 얼마나 좋을까. 늘 원하는 대로 행복한 일만 일어나면 참 좋을 텐데.


벚꽃이 뭐라고 우리 가족이 이토록 고생을 하며 보러 갔을까. 일 년에 한 번뿐인 벚꽃 나들이는 우리에게 충분히 아름다움을 선사했다. 고생하고 힘들었지만 나름의 추억이 되었다. 그래서 다들, 교통체증이 생기고 사람들이 몰려들 것을 알면서도 그 멋진 풍경을 보기 위해 움직이는 것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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