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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바람소리 Jul 16. 2023

<그랑블루>의 그 바다는 어디에?

[시칠리아 여행 19] 바다조차 신비로운 타오르미나

  시칠리아에는 영화 배경으로 등장한 곳이 많다. 워낙 날씨가 좋아 원색의 색감을 내기도 좋고 오래되고 강렬한 이미지의 장소가 많아서 그런가 보다. 타오르미나도 <그랑블루>나 <대부> 등의 일부 장면을 촬영하는 장소가 되는 바람에 유명세를 탔다. 굳이 영화광이 아니라도 타오르미나는 아름다운 자연과 그리스 유적이 어우러져 만들어내는 풍광 때문에 관광객이 찍은 인스타그램용 사진만으로도 매력적인 곳이다.     


어쨌든 타오르미나에 가보기로 하고, 카타니아 중앙역 부근 터미널에서 시외버스를 탔다(사실 여긴 시내, 시외 구분이 없는 듯하다). 타오르미나는 인기 방문지이기에 카타니아에서 기차와 버스 등이 수시로 다닌다. 버스는 아름다운 지중해 바다를 한쪽에 끼고 북쪽으로 달렸다. 타오르미나가 가까워지자 구불구불한 언덕길을 버스는 곡예하듯 능숙하게 달린다. 1시간 10분이 지나자 드디어 타오르미나 버스 터미널에 도착했다.      

움베르토 거리의 인기 사진 촬영지. 자그마하지만 모두 유서깊은 장소다.

괴테, 니체 등 유럽의 유명 지식인 겸 한량들이 지상의 천국 어쩌고 하며 온갖 허튼소리를 다해놨지만, 이 시즌의 타오르미나는 그냥 코딱지 만한 마을에 관광객만 바글거리는 영락없는 휴양지다. 호텔이든 음식이든 물가는 믿을 수 없을 정도로 비싸지만, 어차피 뜨내기손님을 대상으로 영업하는지라 업소들도 그렇게 친절한 것 같지 않다. 해변을 끼고 언덕에 들어선 마을이라 전망은 당연히 아름답다. 시가지가 모두 언덕배기에 자리 잡고 있어 찻길은 비탈을 뱀처럼 휘감고 올라가 차 안에서 보기만 해도 정신이 아찔하다. 그런데도 저 길을 한치 오차도 없이 휙휙 회전하는 기사 운전 솜씨가 경탄스러울 뿐이다.      


나는 휴양이 아니라 구경을 온 사람이다. 그러니 볼거리는 해변 언덕 위 시가지의 움베르토 거리와 그리스 극장 정도로 줄어든다. 움베르토 거리는 동쪽의 메시나 문에서 서쪽의 카타니아 문 사이의 한 800미터쯤 되는 좁은 길에 대단히 관광지스런 가게와 식당, 구경거리가 몰려 있다. 자그마한 옛 시골 성당과 분수대, 전망대는 모두 사진 찍기에야 좋아 보이지만, 그게 다 인스타그램에 올렸을 때에만 환상적으로 보이는 이미지일 뿐이라는 사실은 언급할 필요도 없다. 한마디로 타오르미나는 유난히 여행 사진빨이 잘 받는 곳이다.     

타오르미나의 그리스 극장. 극장에서 보는 바다 전망이 일품이다.

일찍이 그리스 인들은 이곳을 지상의 낙원처럼 여겨 아름다운 도시를 건설했다. 원래 그리스인들이 바닷가 쪽의 공격을 방어하기 위해 요새처럼 건설한 도시이었기에, 타오르미나에서는 모든 게 비탈을 끼고 있게 됐다. 그 시절의 흔적은 대부분 세월이 지나면서, 혹은 지진으로 무너지고 사라졌지만, 바다를 굽어보는 언덕 위에는 아직도 거대한 그리스식 극장이 남아 있다. 움베르로 거리에서 나와 그리스 극장 쪽 골목길로 접어들자 그 좁은 길이 온통 뜨내기 관광객과 기념품 가게로 넘쳐났다. 긴 줄을 서서 티켓을 겨우 받아 설렌 맘으로 극장 안으로 들어섰다. 이 극장은 시칠리아에서 두 번째로 오래되었지만 보존 상태가 좋아 지금도 공연에 사용된다고 한다. 하지만 막상 들어가 보니 보수를 너무 많이 해 고대의 유적으로서 신비감을 기대하기는 어려운 상태였다. 솔직히 이 점에서 시라쿠사에 남은 그리스 극장과는 비교 대상이 될 수가 없다. 다만 극장 객석에서 무대 너머로 보이는 바다 경치만은 그 시절이나 지금이나 최고로 멋졌다.      


마지막으로 이곳의 명물 이솔라 벨라(이탈리아어로 아름다운 섬이란 뜻이다)를 보기 위해 케이블카를 타고 해변으로 내려갔다. 영화 <그랑블루>도 이 해변을 배경으로 촬영했기에, 상당한 기대를 품고 있었다. 근데 막상 마주하고 보니 딱 부산 근교 동해 쪽의 이름 없는 해수욕장 보다도 더 작은 반원형의 자갈 해변에 불과했다. 좁은 해변은 그나마 휴양객으로 거의 틈새조차 없이 가득 차 있었다. 두 개의 작은 해변 사이로 아주 작은 섬이 하나 있는데 이게 이솔라 벨라란다. 섬에는 별장과 정원이 조성되어 있는데, 밀물 탓인지 모르나 종아리까지 올라오는 바닷물을 헤치고 자갈밭을 걸어서 건너야 섬에 도달할 수 있다. 그냥 포기하고 뒤돌아서 나오는데, 문득 부산 근교의 멋진 해변과 섬, 비탈길 생각이 났다. 지중해의 바닷물은 바닥이 다 들여다 보일 정도로 맑고 투명했다. 관광객으로 특식대는 휴가철이라도 타오르미나의 바다는 여전히 아름다웠다. 그렇지만 영화와 같은 신비로운 장면을 기대했다간 실망하기 십상이다.      

언덕 위의 전망과 이솔라 벨라에서 보는 바다

카타니아로 돌아오는 버스를 탔더니 타오르미나 기차역에서 잠시 정차한다. 여기서도 영화 <대부>의 한 장면을 촬영했다고 한다. 영화 장면에서는 배경이 팔레르모 인근의 시골 마을 바게리아역으로 설정되어 있다. 팔레르모에서 기차를 탈 때마다 바게리아역에서 잠시 정차하곤 했는데, 영화 속의 역과는 상당히 거리가 있었다. 영화는 상당 부분 시칠리아를 배경으로 삼지만 특정한 마을이 아니라 시칠리아 여기저기서 장면 하나씩 찍어 합성한 이미지에 불과했다. 영화와 상관없이 시칠리아는 아름다운 곳이다. 그러나 영화 속의 아름다운 시칠리아는 카메라 촬영 기법이 만들어낸 환상일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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