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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바람소리 Jul 14. 2023

여긴 시칠리아니까

[시칠리아 여행 17] 카타니아 가는 날

라구사를 떠나 카타니아로 가는 날이다. 아침 일찍부터 부지런을 떨어 준비한 덕분에 비교적 일찍 숙소를 나섰다. 숙소 바로 앞 버스 정류장에 터미널행 버스가 온다고 해서 충분히 여유를 두고 나가서 기다렸다. 버스는 대략 한 시간에 한 대꼴로 다닌다고 한다. 그런데 도착 예정 시간이 한참 지나고 아무리 기다려도 버스는 감감무소식이다. 마침 정류장 건너편에 사는 주민과 마주쳐 붙잡고 물어보니 올 시간이 지났다며 40분 더 기다리라 한다. 이번엔 몇 구간 떨어진 정류소로 자리를 옮겨 다른 버스를 기다렸는데, 거기서도 오기로 한 버스는 부지 하세월이다. 나보다 먼저 나와서 기다리던 할머니 한 분은 그냥 포기한 듯 전화로 어디엔가 연락하더니 자리를 뜬다.      

숙소 앞 버스 정류장. 인도에 서면 라구사 이블라 전체가 한눈에 들어온다.

시칠리아에 발은 디딘 후로 이런 일이 한두 번이 아니니 한국에서처럼 성질을 부릴 일도 아니고 그래봤자 아무 소용이 없다는 것도 이미 체득했다. 오기가 생겨 이번에는 시외버스 터미널까지 걸어가기로 했다. 산비탈의 라구사 구도심을 지나 신도시로 들어가는 높다란 다리를 건넜다. 10월의 오전 시간이라 해도 한여름에 가까운 땡볕 아래 땀을 뻘뻘 흘려가며 한참을 더 가니 마침내 목적지가 보인다. 헤매는 시간까지 해서 대략 30분이 걸렸다.      

버스 터미널로 걸어가는 동안 만난 광장. 도시 어딜 가든 성당과 광장은 있다.

터미널로 들어서 티켓 발권 창구에다 '카타니아'를 힘차게 외쳤다. 창구 직원 아저씨는 쳐다보지도 않고 건물 바깥으로 나간다. 마침 버스 한 대가 막 출발하려던 참이었는데, 아저씨는 기사에게 뭐라고 하더니 차를 세운다. 직원은 다시 느긋하게 창구로 돌아와 티켓을 내준다. 감사의 표시로 엄지 척 자세를 취한 후 나는 떠나는 버스에 올랐다.      


시칠리아에서는 도시를 이동할 때마다 늘 조바심을 내야만 했다. 요 며칠 동안만 해도 뭐든 계획대로 된 적이 별로 없다. 기차든 버스든 예정대로 출발하고 도착해야 한다는 상식은 적어도 시칠리아에서는 통하지 않는다. 꽉 짜인 일정이 틀어지고 지연될 때마다 일희일비하는 사람은 정신 건강을 감안하면 시칠리아를 다니기 참 어려울 거 같다. 시칠리아에서는 뭐든 일처리 하는 것을 보면 허술하고 엉망진창이다. 그래도 사람들은 아직도 순박하고 인간다움도 잃지 않는 듯하다. 참, 예상과 달리 카타니아행 버스는 무사히 제시간에 도착했다. 버스 정류장에서 내려 숙소를 찾아가는 동안 차와 행인으로 혼잡한 거리, 낡은 건물 벽을 뒤덮은 낙서, 광장에서 넘쳐나는 인파를 보면서, 목가적인 시칠리아 시골 마을에서 벗어나 다시 번잡하고 크고 지저분한 곳, 대도시로 돌아왔다는 사실을 절감했다.

카타니아에서 만난  벨리니 극장. 카타나이 대학 건물. 두오모인 성 아가사 성당. 아메나도 분수대. 그 뒤로는 수산시장이 이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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