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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지혜안 Aug 07. 2023

남기기와 버리기

어떻게 해야 잘 버렸다고 소문이 날까?

미니멀에 꽂히자 자잘한 물건따위는 하루에도 몇십 개씩 갖다 버렸다. 주로 아이들이 어렸을 때 놀았던 장난감과 싱크대에 가득 들어있던 플라스틱 용기와 쟁반들이 나갔다. 진작에 버려져야 했을 갖가지 추억의 물건들이 재활용 함을 가득 채웠다. 시기가 지난 물건은 버리기 쉽다. 작고 가벼운 물건들, 싸게 샀거나 누가 줘서 썼던 물건들은 생각할 것도 없다.


'언젠가 쓰지 않을까?' 주춤한다. 버렸다가 생각날 거 같은 유혹이 마음을 잡는다. 주로 비싼 것, 깨끗한 것, 한 때 잘 썼던 것이 그 주범이다. 유혹을 뿌리치며 되뇐다. '난 미니멀리스트야!' 아직 미니멀리스트는 아니고 미니멀리스트 꿈나무를 꿈꾸는 꿈나무 씨앗 정도이지만. 결국 집 밖으로 내보내며 미련을 떨친다. "미니멀리스트 꿈나무다운 과감함이었어" 라며 나 자신을 칭찬한다.



미련없이 버리기 쉬운 물건들




  좁은 집일수록 미니멀이 답이라고 생각했다. 작은 집 거실에 책장이 한쪽 벽면을 다 차지하고 반대편은 소파를 두었는데 물건을 버리면서 공간이 트이자 더 넓은 공간이 있었으면 하는 마음으로 소파에 눈이 갔다. 소파가 버리고 싶어졌다. 식탁도 버리고 싶었다. 다 버리고 좌식생활을 하겠다는 건 아니고 리빙다이닝을 꾸미고 싶었다. 거실에 식탁을 놓는 구조이면서 거실생활과 식사생활을 한 공간에서 하는 것. 좁은 우리 집에 제격이라는데 남편도 이견이 없을 거라 생각해 리빙다이닝에 꽂혀 2박 3일은 검색을 했던 거 같다. 리빙다이닝이란 키워드에 꽂혀서 거실에 놓을 새 소파와 식탁을 검색했다. 줄자를 동원하고 동선을 걸어 다녀보았다.



그러다 아차 하는 생각이 들었다. 들여다보니 난 그리 낡지도 않은 소파와 아직 더 쓸 수 있는 식탁을 버리고 새로운 것을 소비하여 유행을 따라 새로운 것을 사고 싶은 것이었다. 더 합리적으로, 명분 있게 소비를 하려는 마음이었다. 물론 가구를 바꿀 때가 되었다면 그때에 맞춰 두 가지 역할을 할 수 있는 실용적인 가구를 들일 수는 있을 것이다. 하지만 지금의 나는 기존의 것을 버리고 싶은 마음이 더 컸다. 미니멀의 맛을 좀 보니 더 깨끗하고 넓은 공간이 갖고 싶었다. 변화를 주고 싶었다. 나 큰 소파를 버리고 작은 소파를, 작은 식탁을 버리고 큰 식탁을 사는 변화는 그저 변화를 위한 변화일 뿐이다. 미니멀의 함정에 빠지지 말자. 낡은 물건을 버리고 새로운 것을 들이고 싶은 마음, 또 다른 소비를 위한 전단계라면 버리기를 멈춰야 한다.


(샀다면) 충동구매였음을 증명이라도 하듯 머릿속으로 시뮬레이션 몇 번 하니 지금의 소파와 식탁은 우리 집에 꼭 필요한 물건들이고 우리 집에 리빙다이닝은 맞지 않는다는 결론이 나 버리고 싶은 마음이 사그라들었다.


 




미니멀을 하면서 살림을 줄일 뿐 아니라 더 잘살기 위해 연구한다. 심플한 생활을 위해 버리지만 필요한 것은 남겨두는 정확한 판단이 필요하다. 단순히 버리는 게 목적이 아니다. 나와 가족을 위해 생활 주변을 잘 정리하는 것.  오늘도 잘 버리기 위해 생각하고 판단한다. 앞뒤를 따진다. 버릴 것은 가차 없이 버리되 남길 것엔 애착을 주고 더 아껴주자.



신혼집에 꼭 맞는 짙은 고동색의 따뜻한 느낌의 식탁이 들어왔던 날을 떠올린다. 둘째가 여섯 살 때 장난치다 유리가 깨졌는데 나무를 직접 만지는 느낌이 좋다며 다시 유리를 맞추지 않고 이 집을 떠날 때까진 잘 관리해서 쓰겠노라 하고 손으로 만졌던 나무 느낌을 기억하며 잠시 식탁과 소파를 다 바꿔버리려고 했던 실수를 되짚는다. 안 버리길 잘했다.  



어떻게 버려야 잘 버렸다고 소문이 날까? 생각하며 집을 또 둘러본다.





사진출처 - 픽사베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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