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버리고 나서 후회하기 없기, 어떻게하면 잘 버릴 수 있을까?' 란 물음으로 글을 시작해본다.
1. 여름 물건은 여름에, 겨울 물건은 겨울에 버리기
여름에 겨울 물건을 버리긴 쉽다. 당장 쓰지 않고 공간을 많이 차지하는 두꺼운 물건이 많아서 버리고 나면 여백이 많이 확보되고 당장 필요하지 않으므로 미련이 남지도 않는다. 하지만 한 때는 적시적소에 필요한 물건들이었기에 들였던 만큼 다시 겨울이 되었을 때 그 물건들을 다시 집에 들여야 하나 싶은 순간이 온다면 안될 말이다.
10년 된 전기담요가 있다. 보일러 고장 나면 쓰라고 엄마가 신혼 때 주신 건데 10년간 보일러는 단 한 번도 고장 나지 않았다. 그럼에도 전기담요는 당장 버리지 않기로 한다. 집에 손님이 왔을 때 두세 번 요긴하게 썼다. 자리 차지 대비 실용성은 떨어지나 버릴 수 없는 물건, 전기담요가 나갈 문턱은 아직 높다.
대신 이 여름에, 분명 여름 물건임에도, 쓴다면 지금이 적기인데도 여전히 덮지 않는 여름이불이 장 안에 둘둘 말려있다. 얇고 시원하지만 손이 안 가는 이불, 여름이불을 버리고 유행지난여름 옷가지들을 버렸다. 입을 시기에 입지 않으니 앞으로도 옷장만 차지하고 있을 게 뻔하다. 쉽게 버릴 수 있었다. 수영타월, 튜브, 작아진 아쿠아슈즈도 버렸다.
과감하지 못한 미니멀리스트 꿈나무는 이렇게 천천히 버리기에 접근한다. 버려놓고 다시 사지 않을 만큼만 버린다.
2. 잘 수납해서 살고 있다는 착각, 찾아 꺼내서 버리기
"우리가 버릴 건 눈앞에 늘어져있는 게 아니에요. 꼭꼭 숨겨놓고 잘 수납해 뒀다고 생각하지만 정작 꺼내 쓰지 않는 그 물건이에요." - 정리 전문가 정희숙 님 유튜브 중-
맞다. 눈앞에 늘어져 있는 건 정리가 안 될 뿐이지 매일 쓰기 때문에 늘어져 있는 것이다. 눈앞에 정리 안된 물건들, 다 갖다 버리고 싶지만 버릴 물건이 아니라 자리를 찾아가야 할 물건들이라는 것이다.
잘 수납하고 살고 있다는 착각. 내가 버려야 할 건 구석구석 수납해 놓고 한 번을 들여다보지 않은 그 물건들이다.
어질러진 화장품들 속에도 질서가 있고 나만 알아볼 수 있는 규칙(?)이 있다는 이상한 논리로 정리 안 된 화장대를 흐린 눈을 하고 본다. 화장대 위에 있는 화장품들은 버릴 것이 아니다. 화장대 서랍을 연다. 코로나 이전에 사놓은 색색깔 립제품들, 달콤한 포도냄새가 한도를 초과해서 인간 마이쮸 만드는 포도향 바디크림, 아이들이 할아버지 할머니께 받아 나중에 통장 만들어 넣어주겠노라 약속한 오만 원, 만원 뭉치들이 있었다. 뒤집었다. 유통기한 지난 화장품은 다 모아 버리고 포도향 바디크림도 과감히 버렸다. 돈뭉치는 모아 파우치에 넣어 이번 주 안에 은행에 가야지 다짐했다. 늘어놓은 화장품들을 서랍에 정리했다. 화장품들이 제자리를 찾았다. 잘 수납했다고 착각한 물건들은 아무리 가지런한들 소용없었다. 끄집어내어 버려야 한다. 잘 집어넣은 줄 알지만 안 쓰는 물건들을 안고 있었을 뿐이었다. 수납함을 뒤집으니 진짜 내 물건들이 자리를 잡아갔다.
해 아래 같은 컬러는 없다는 립스틱들은 보기만 해도 배부르다며 자기만족 운운했다. 하지만 서랍을 가득 채웠던 화장품들은 결국 쓰레기통으로 갔고 쉽게 버릴 수 있을 것 같았던 오래된 전기담요는 버릴 수가 없었다. 버리면서 깨닫는다. 앞으로 어떻게 돈을 써야 할지. 어떤 물건을 들일지 신중해진다. 물론 가끔 화장품도 사겠지만 이전처럼 진열해 놓을 일은 없을 것 같다.
3. 보이지 않는 곳 가꾸기, 버릴 땐 미련 없이.
안 쓰는 물건들은 여기다 꽁꽁 숨겨두면 되겠지, 필요할 때 꺼내 쓰면 되겠지, 하고 침대 밑에 박스를 여러 개 두었다. 남편이 결혼할 때 가져온 침낭, 부엌 발매트, 극세사 이불매트 따위였다. 침대 아래 꾸역꾸역 물건을 쑤셔 넣으며 히든공간을 살리는 살림꾼이라도 된 줄 알았다. 어느 날 들어가지 않는 청소기를 박스 닿는 데까지만 돌리다 이렇게 살다 기어코 이사 갈 때 꺼내서는 또 다른 집에 이고 가겠구나 생각을 하니 정신이 번쩍 들었다. 버리자. 하, 고장난지 8년 된 컴퓨터 모니터가 침대밑에 있었다. 8년 전엔 산 지얼마 안되어 고장이 났는데 겉이 지나치게 멀쩡하니 '고쳐 써야지'하는 마음으로 이때껏 지고 다닌 것이다. 이 집에 온 지 4년, 이사 올 때 꽁꽁 싸서 모셔온 고장 난 모니터. 모니터를 싼 헝겊가방에 먼지가 뽀얗게 앉았는데도 모른 척 4년을 버텼다. 퀸 사이즈 침대아래 매트리스를 붙여 써 방이 가득 차니 굳이 옆을 들춰 침대 아래를 쳐다보지 않으면 그만이었다.
앞으로도 꺼낼 일이 없는 이불은 시청 홈페이지에 들어가 패브릭류를 내놓을 때 붙이는 폐기물 표시를 다운로드하여 맘 바뀌기 전에 얼른 내버렸다. 모니터는 집 앞 주민센터에 있는 가전제품 무료수거함에 갖다놓았다. 아래쪽 매트리스를 밀고 마스크를 하고 걸레를 갖고 침대아래 기어들어가 방바닥을 다 닦았다. 까만때와 먼지가 나왔다. 걸레를 뒤집어 또 닦았다. 침대를 들추고 닦고 물건을 내다 놓기까지 한 시간 안에 다 해치웠다. 8년 된 고장 난 모니터, 4년을 들여다보지 않던 침대 밑. 한 시간이면 끝날 일을 왜 그렇게 껴안고 있었을까. 답답하고 미련한 시간을 청산하니 정말 속이 시원했다.
깨끗해진 침대 밑, 진작 이렇게 살 걸.
어떻게 하면 눈에 보이는 곳을 더 깨끗하게, 쾌적하게 만들 수 있을까 싶어 시작한 미니멀리즘이었다. 너저분한 거실 선반에서 버릴 것들을 골라내고 매일 쓰는 싱크대에서 버릴 것을 골라내면 될 줄 알았다. 하지만 버리기는 결국 내가 외면하고 싶었고 들추고 싶지 않았던 케케묵은 먼지들을 없애는 과정으로 나를 이끌었고 보이지 않는 곳을 깨끗하게 하는 일은 보이는 곳을 깨끗하게 하는 것 이상으로 큰 보람과 만족을 주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