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음날 아침, 10분이면 도착한다는 메시지를 보내고 길을 나섰다. 아이가 보고 싶었던 책 한 질이 당근마켓 나눔으로 올라와 운전대를 잡았다. 보고 싶었던 책, 컨디션도 좋다고 하니 얼른 받아와야지~ 룰루하고 콧노래가 나왔다.
"저 도착했어요."
...
"왜 연락이 안 되실까요?"
...
...
...
당근마켓 통화기능을 이용해 전화를 걸어본다.
세 통.
...
바퀴 달린 구루마를 끌고 약속장소에 도착해 연신 연락을 시도했으나 묵묵부답이었다. 늦가을 비에 한 손엔 우산, 한 손엔 휴대폰을 든 손이 차가워져 시리기 시작했다.
'나와의 약속을 완전히 잊었구나'
"기다리다 갑니다..."
우산을 차에 넣으며 매너평가에 '비매너'버튼은 누를 뻔했다. 허나 그렇게 하지도 못한 건 그분의 나눔 이력 때문이었다. 질 좋고 깨끗한 책들을 많이 나눔 한 기록들, 좋은 나눔을 응원하고 감사하다는 인사말도 볼 수 있었다.
분명 좋은 분 같은데 나는 왜 여기서 덜덜 떨고 있어야 하지? 끙..
아무튼 처음중고거래바람맞고 몸도 마음도 기운이 쭉 빠졌다.
근처 카페로 가서 커피 한잔으로 손을 녹이고 친구와 통화하면서 투덜거렸다. 비 오는데 당근 바람맞았다고.
커피도 마시고 친구와 수다도 떨어 기분이 좀 나아질 즈음,
딩동! "제가 오늘 아이 학교 안 간다고 자버렸네요."
딩동! "너무너무 죄송해요."
딩동! "지금 어디세요? 댁이 어디세요?"
딩동! "어떡하죠? 깜빡했어요ㅠㅠ
연신 울리는 알람에 그분이구나 싶었고 채팅창의 메시지를 보며 마음이 누그러들었다.
"괜찮아요.근처인데 지금 다시 갈게요."
다시 간다는 말에 두 번 걸음 하게 해서 미안하다는 말에진심이 느껴졌다. 얼른 가서 책을 받아왔다. 아이가 좋아할 모습을 생각하니 추위에 얼었던 마음도 사르르 녹았다. 나눔 받고 스타벅스커피 쿠폰도 선물로 드렸다. 아이가 잘 볼 책을 받는 입장에서 책 값의 아주 일부라도 그 수고에 감사하며 표현해야 한다고 생각했기에.
나이 듦의 자연스러운 현상이겠지만 기억력 감퇴가 이런 거구나 몸이 느끼는 경우가 왕왕 있다. 나의 경우 둘째 출산 이후 그 전후가 확실히 달라진 게 느껴질 정도로 건망증이 있었다. 예전에 가르쳤던 아이들 얼굴은 선명하게 기억나는데 이름이 전혀 떠오르지 않거나 방금 뭘 검색하려고 했더라 이런 것들.
이런 건망증은 나 혼자만의 고민이 아닌 거 같긴 하다. 검색창에 '뭐'라고 치면 '뭐 하려고 했더라'가 자동으로 뜨는 걸 보면. 짧은순간 얼굴모를 검색사이트 이용자들과 동병상련을 느끼기도 하니까.
계획적이고 치밀한 성격과는 거리가 먼 나이지만, 그렇기에 의식적으로 휴대전화 캘린더를 쓰려고 한다. 아직 어린 두 아이의 스케줄을 함께 소화하려면 캘린더 메모와 알람은 필수다. 특히 초등 저학년 때에는 하교 시간은 빠르고 두 아이 다니는 기관이 다르고 가끔 화상 수업도 있으니 요일별로 잊지 않도록 알려주어야 한다. 계획적인 것을 잘 못하는데 계획된 것을 따르려고 캘린더를 쓴다. 일명 생존형 캘린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