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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지혜안 Nov 30. 2023

독감이 가져다 준 위로



점심시간이 끝난 직후, 소아과.


대기 12명, 이 정도면 선방했다. 좁은 소아과 의자에 빽빽하게 앉은 아이들과 엄마들의 얼굴이 지쳐 보인다. 모자를 푹 눌러쓰고 잠시 눈을 감고 있고 싶어 결국 아이손에 핸드폰을 쥐어주었다.


간호사가 아이들의 이름을 차례로 호명한다. 이름이 불러짐과 동시에 안 들어가겠다고 뒷걸음질 치는 우리 집 열 살. '미안하지만 너를 달래줄 여력이 없구나.'


"얼른 들어가자, 진료만 보고 나올 거야." 아이를 재촉한다.


"주사는 안 맞아?"  힘없는 목소리로 묻는 딸.

"응 안 맞아. 열나서 안 놔줘." 나 역시 힘없는 목소리로 아이를 안심시킨다.




"오, 사, 삼, 이, 일."

주사는 안맞지만 검사는 한다고 내가 얘기 했던가. 미안한 마음도 잠시, 아이를 무릎에 앉히고 움직이지 못하게 붙든다.

능숙한 간호사는 행여 아이의 발에 차이지 않으려 다리와 엉덩이를 뒤로 빼고 한 손으로는 아이의 턱을 붙잡고 콧속 깊이 검사도구를 집어넣는다. 건조한 목소리로 친절히 카운트해 준다. 부들부들  온몸으로 참고 있는 아이의 떨림이 전해졌다. 끝나기가 무섭게  검사실이 떠나가라 울어재낀다.


"으아아 앙!!"

소아과에서 초3의 울음소리는 흔치 않다. 금세 아장아장 걷던 아가들의 이목을 집중시킨다. 유모차에서 아이를 재우던 엄마는 유모차를 반대 방향으로 돌린다. 업무에 능숙한 간호사는 비타민 두 개를 아이의 손에 쥐어준다. 그제야 눈물을 그치는 아이.


대기실에서 15분을 기다렸다 의사 선생님을 만났다. 결과는 a형 독감. 2주 전에 독감을 앓았던 아이라 검사결과가 의아하다는 내 말에 의사 선생님은 익숙하다는 듯이 흔히 있는 일이라 말씀하신다.

의사 선생님이 바이러스에 대해 설명하시는데 선생님은 안 보이고 순간 작은 진료실만 눈에 들어왔다.


워낙 환자가 많아 대기실이 크고 진료실은 작게 만들었나. 진료실 두 칸으론 부족해서 하나를 억지로 만드느라 이곳엔 창문이 없나. 선생님 말에 집중은 못하고 이런 생각을 하는 엄마가 있을까.


꽉 막힌 진료실, 창문하나 없는 진료실에 공장형(죄송)으로 아이들을 진료하고 내보내는 의사 선생님이 처음으로 측은하게 여겨졌다. 물론 알아서 워라밸 조절하며 살아가고 일도 하실 텐데 그 소아과 분위기에 한시도 더 있고 싶지 않았던 나는 잠깐 의사 선생님을 불쌍하다 느끼기까지 했다.


마스크를 벗을 수 없는 그 공간에서 몽롱함이 몰려왔다. 아이스 아메리카노가 정말 마시고 싶었던 기억이 난다.





 몸과 마음이 지쳤다. 한숨이 나왔다. 집에 먼저 독감 걸린 둘째가 있다. 비실거리는 아이와 차에 몸을 싣고 급 추워진 겨울 도로를 운전했다. 차가운 겨울바람이 잠시 숨통을 틔워준다.


때론 당연한 모성애를 특별히 끄집어내야 하는 날이 있다.  아이가 독감에 걸렸다고, 오늘의 육아가 힘들다고, 자꾸만 지치고 마음대로 안 되는 일들 투성이라고 동굴 속으로 들어가고 싶은 나를 그냥 둬서는 안 될 거 같았다. 우울하다고 움직임을 멈출 수 없다. 엄마답게 오늘을 살아내자. 언제까지 지쳐있을 수도, 남 탓을 할 수도 없는 오롯이 내가 살아내야 할 하루였다.


움직여야 했기에 마음을 고쳐먹었다. 감사하기로. 아픈 이유도 알고 먹으면 나아질 약도 있다. 동네 병원, 의원, 약국도 우리 아이들을 회복시키기 위해 일한다.


"많이 아프지? 뭐 먹고 싶어?" 학습된 멘트라도 괜찮다.  엄마의 사랑을 확인시켜 주었다. 유튜버 강의를 들어놓길 잘했다. 잘 있냐는 남편의 카톡에 눈물이 터져버릴 거 같던 소아과에서의 마음까지 나눌 여유는 없었다. 그저 아이들이 회복되어 가는 모습을 이야기한다.






아이들이 아프니 모든 일정이 멈췄다. 학교도, 학원도, 나들이도, 놀이터도.


분주하게 몸을 움직여 아이들이 먹을 식사와 간식을 만든다. 시간에 맞춰 식사를 하고 타미플루를 꼬박꼬박 먹인다. 아이들을 안고 기도해 준다. 입술로 볼을 앙하고 무는 시늉을 하며 볼고기 맛있다며 장난을 친다. 어차피 두 녀석 다 독감앓이 중이니 나머지 한 명을 위해 행동을 자제해야 할 이유가 없다. 오히려 좋아.


아이를 더 꽉 안아주고 뜨끈한 목에 입도 맞춘다. 엄마의 사랑을 더 가득 느낄 수 있도록. 양팔을 내어주고 같이 잠든다. 몸통이 난로가 된 아이들을 끼고 눕자 반팔 반바지 입은 내 몸도 후끈 달아오른다.  애들을 끼고 한숨 자버린다.


개운하게 자고 일어난 아이들의 얼굴이 밝게 빛난다. 나아지는 아이들을 보니 엄마미소가 지어진다.







엄마는 항상 그렇다. 나 아니면 안 되는 아이들인 줄 알았는데 아이들 아니면 안 되는 사람은 오히려 엄마다. 내가 아이를 키우고 있다는 착각. 실은 아이가 나를 키우고 아이가 나를 일으켜 세운다. 내가 아이들을 돌보는 줄 알았는데 아이들이 나를 돌보았다.



세상 어떤 행복도 두 아이 볼을 비비는 이 순간을 넘는 것은 없을 거 같다.

독감을 앓았지만 감사를 얻었다. 뜨겁게 안아주고 힘을 얻는다. 아픔을 나누고 위로를 건넨다.  

그렇게 아이들도, 나도, 우리의 몸과 마음이 회복된다.





사진출처, 픽사베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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