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시 40분쯤 아이들을 서둘러 학교에 보내고 50분에 비장한 마음으로 수영장에 들어섰다. 실수다. 전 타임 회원들이 50분에 끝나서 무조건 50분 이전엔 들어가서 샤워기를 선점해야 해야 하는데. 왁자지껄 북적대는 샤워실에서 애써 자리를 찾아 머리부터 발끝까지 깨끗이 씻는다. 어디다 섞어놔도 무난한 검정수영복을 익숙한 척 끌어올려 입고 매무새를 정리한다. 수영복 상의를 벌려 실리콘 가슴캡을 장착한다. 자신감도 장착되는 순간이다.
거울을 보며 수영모에 머리 반을 겨우 욱여넣었다. 미러수경을 이마에 대고 쭉 당겨 머리에 끼우고 다시 한번 거울을 보며 외모 췍!! 앗. 오래 보지 않으련다. 아주 친한 친구랑 만나서 스스로 외모를 셀프디스하는 대화를 상상을 하니 콧구멍이 벌름거렸다. 외계인과 오징어 그 사이 어딘가의 주꾸미 같은 모습이라고 얘기하며 웃고 싶은 순간이다. 머리카락 한올 내리지 못하는 수모에 똥배가 적나라하게 드러나는 수영복이라니. 익숙지 않은 내 모습에 현실자각타임이 살짝 올 뻔했지만 이내 평정을 찾았다. 이곳은 실내 수영장이지 않은가!
11살때 방학특강으로 수영을 처음 접했다. 그 후에 30년 만에레일이 있는 실내수영장이다. 어릴 적 다니던 그곳과 매우 닮아서일까. 익숙한 물냄새,강사님의 절도 있는 구령 소리, 차례를 기다리는 회원들의 웃음소리, 모든 소리가 뒤엉켜 왕왕 울리는 탓일까. 난 열한 살이었는데 언제 마흔하나가 된 거지 싶은 묘한 기분이 들었다. 마치 실내수영장 시간여행이 시작된 듯한 공상을 잠시 해보며 혼자 아무도 모르게 피식.
한쪽엔 수영하는 아이를 바라보던 창이 있다. 나를 올려다보던 아이 모습이 스쳐간다. 우리 딸 열매가 보던 시선은 이랬겠구나.생각하며 안내데스크에서 알려준 초급레일 향해 발끝으로 종종 걸어가 강사님과 간단한 인사를 나눈다.
"오늘 처음 왔어요."
-"수영 배운 적 있어요?"
"초등학교 때 해봤어요."
-"오케이. 발장구 치는 거 한 번 볼게요."
강사님과 첫 대화를 나누고 초등학교 때 배운 기억을 되살려 있는 힘껏 물장구를 쳤다. 친구들과 나란히 유아풀에 걸터앉아 무릎을 굽히지 않고 있는 죽자 사자 위, 아래로 다리를 흔들던 어렸던 내가 생각났다. 순진하고 열심이었던 아이, 선생님이 보던 안 보던 물장구에 진심이었던 아이.
첫 강습날,팔돌려기, 오른팔 돌릴 때 숨쉬기까지 배웠으니 첫 날치고 수월한 출발이었다.
어릴 적 게으름 없이 배워놓은 발차기가 아줌마가 되어다시 들어와 본 초급레일에서자신감을 가져다주었다.
'11살 나야, 그 해 여름 방학에 물장구 잘 치고 수영 열심히 잘했어.'라고 생각하며 어릴 적 나를 보듬으며 뿌듯해해 본다.그때의 나를 떠올리며 열한 살 딸아이 얼굴이 교차되는 걸 보니 시간 여행자가 이제 돌아갈 시간이 된 걸 알리는 신호인가 보다. 라며 또 뜬구름 잡는 생각이 잠시 스친다.
첫 강습날, 수영 어땠냐고 남편이 물어서 히죽거리며 대답했다. 거울 속의 진짜 나, 오징어를 마주했다고.
그리고 생각했다.짧은 다리로 성실히 발장구 쳤던 어릴 적 내가 잠시 떠올랐다고.
내가 만약 일흔 하나 할머니가 되어서도 수영을 한다면 마흔한 살 오늘의 첫 강습을어떻게 기억할까. 오징어 같던 오늘도 제일로 젊고 예쁜 날이었겠지. 두근거리며 킥판 잡고 출발하던 설렘을 떠올리겠지. 열한 살 나를 잠시 만나고 온 것처럼 반갑게 추억하고 싶다고 생각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