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볼수록 귀엽 게!

by 지혜안 Oct 28. 20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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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박박박박

모두가 깊이 잠든 밤, 거실 불이 꺼지면 그가 나와 소리 낸다. 박박박박. 늦게까지 잠들지 않은 날, 어김없는 박박 소리에 하던 걸 잠시 멈추고 사육장 앞에 가서 나지막이 부른다.


"쁘게 나왔어?"



방과 후 과학 실험 강사님께 '게 분양'을 희망하냐는 문자를 받았을 때 잠시 망설였다. 문화센터에서 받은 개구리가 되기 직전까지 키운 올챙이도, 수컷을 받아 암컷을 사서 넣어준 장수풍뎅이를 키웠을 때도 느꼈던 비슷한 감정이었다. 반려동물을 키우는 의미있는 일이지만 생명을 책임지는 일은 언제나 부담이니까. 



플라스틱 용기에 블랙아이크랩을  받아 나오는 열매의 얼굴이 그렇게 설렐 수가 없다. 몇 해전 키우던 장수풍뎅이 부부 장돌이, 장순이가 떠나고 오랜만에 들어온 새 식구 이름을 짓는 작명 토론이 한참 이어졌다.


 내가 매일 기쁘 '게'

게식이, 게철방울, 어떻게, 예쁘게, 이러게, 저러게 온갖 게는 다 갖다 붙이며 진지했다 장난스럽다를 반복하다 이건 어때? 하면서 던진 '내가 매일 기쁘게'.  즐겨 부르는 찬송가 앞소절을 부르며 붙여진 이름은 일명 '기쁘게'이다. 열매는 우리 집 성을 따  김쁘게라 짧고 예쁘게 이름 붙였고 가족들은 오가며 쁘게에게 안부를 묻는다.





쁘게가 온 첫날, 사육장 긁는 요란한 소리에 오소소 소름이 돋았었다. 게발이 와작와작 옆으로 움직이는 모습은 흡사 타란튤라 거미다리랑 비슷해 무섭기도 했다. 이 엉뚱한 야행성 생물이랑 정서적 유대가 생기긴 어려울 거 같았다. 반들반들한 보랏빛 자태를 뽐내며 거칠게 느껴지던 갑각류, '까만 눈을 가진 게' 그 자체였을 뿐이다.



무서운 게 시절ㅎㅎ무서운 게 시절ㅎㅎ



생명유지를 위해 의무감으로 시작한 관심은 일상이 되었고 이름을 붙여 부르다 보니 더 궁금해지기 마련이었다. 밥은 먹었는지, 깔아준 코코칩은 습도가 적당한지, 은신처가 좁지는 않은지.


밤에만 활동하느라 모습을 잘 안 보여주는 쁘게가 모처럼 낮에 나와 있으면 반가워 사진도 찍는다. 사육장 긁는 소리에 나왔나 보다 싶어 놓칠세라 얼른 쫓아가 작은 쁘게의 움직임에 반응하고 아이들과 동선을 공유한다.


은신처에 쏙 들어간 쁘게은신처에 쏙 들어간 쁘게




 집게발로 얼굴을 받치고 있는 모습이 새색시 같기도 하고, 꽃받침 같기도 하다. 블랙아이크랩답게 까맣고 땡그란 눈으로 꽃받침 하고  쳐다보는 모습에 자꾸 눈맞춤하고 싶은 귀여운 녀석이다. 내가 이럴 줄 몰랐는데 이렇게 게며들어가는건가





"엄마 일루 와 봐~

쁘게 등에 스마일이 있어!


- "진짜네? 스마일에 집게발이 하트 한 팔 같네ㅋㅋ"


스마일로 화답해 주는 볼수록 귀엽 '게'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주었을 때
그는 나에게로 와서
꽃이 되었다.

<꽃, 김춘수>의 일부.


이름을 불러주었을 때 비로소 꽃이 된 것 같은 느낌일까. 그렇게 쁘게는 우리 가족에게 '의미'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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