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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힐링가객 Nov 07. 2023

마음에도 여백이 필요하다 -메리골드티

 프롤로그

 살다보면 그런 시간이 찾아온다


 예정됐던 바쁜 일들이 하나씩 지나갔다. 계획대로 잘 진행된 일들은 상쾌한 기분을 남기고 빠르게 무의식의 저장고로 들어간다. 결과까지 좋다면 뿌듯한 성취감을 덤으로 얻는다. 새로운 일을 시작할 힘이 되고 예기치 않은 부담스러운 상황에도 부딪힐만한 자아 효능감을 공급해 주는 것이다.


 만사가 뜻대로 되지는 않는다. 해서 준비한 만큼 결과를 얻지 못할 때도 있다. 한편으론 준비 과정의 미흡함을 자책하게 된다. 아무도 알지 못하겠지만 스스로는 속일 수 없다. 결과를 보며 더 잘할 수 있었다는 아쉬움과 더 이상 어쩔 수 없었다는 핑계에 더하여 상황은 또 반복될 거라는 지리멸렬함까지, 마음이 분출하는 감정도 복잡하다. 마음 챙김 레시피가 필요한 시간이다. 살다 보면 그런 시간이 찾아온다.


 부담이 큰 프로젝트를 끝냈을 때나 여행을 마치고 돌아왔거나 명절을 지났거나 복잡한 행사를 치르느라 바쁘게 협업한 날이면 어김없이 몰려오는 피로감. 누군가는 낮잠을 자거나 사우나에 가고, 누군가는 등산을 가고, 친구를 만나 수다를 떤다. 그러나 진정한 평안을 얻기는 쉽지 않다. 글을 쓴다는 것은 마음의 거울을 들여다보는 것과 같다. 마음이 명경이면 글도 명징하다.


 철학자 장 폴 사르트르는 그의 희곡 [닫힌 방, 악마와 선한 신]에서 '타인은 지옥'이라고 말했다. 이 말에 대한 내 공감의 정도를 수치로 나타낸다면 백퍼센트라고 말하고 싶다. 관계의 피로감을 이렇게 명쾌하게 표현한 사르트르에게 경외감을 느낀다. 나는 그저 나인데, 관계 속에서의 나는 상호관계 속에서 본연의 나일 수만은 없다. 나는 내 욕구나 목적을 밀어놓고 내 상황과 감정도 접어놓고 내 의무에 집중하게 되고 내가 만들어내는 결과에 대한 전방위적 평가와 그 평가로 인해 타인에게 기억될 나의 이미지까지 신경 쓰게 된다는 점에서 피로감을 느낀다. 사회적 존재로 살아가는 한 누구도 피할 수 없는 바로 그런 상황들의 연속이 인생인 것이다.  


 문제는 피로의 원인을 밝혀내도 딱히 해결방법은 없다는 것이다. 그래서 현대인은 너나없이 피로를 해소할 방법을 찾아 그렇게 헤매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주말이면 어김없이 고속도로가 막히고 맛집에 가면 줄을 서야 하며 볼만한 공연표는 매진인 이유다. 어쩌다 행운처럼 계획한 것을 이루는 날도 있다. 막히는 길을 뚫고 꾸역꾸역 바다를 보고 주일 자정이 되어 돌아온다. 월요일 아침이 지옥이다. 그래서 랜선 여행으로 마음을 달래는 이들이 늘어가는 것이다.


 무료할만하면 깜짝 이벤트를 기획하는 남편 덕분에 모처럼 맞이한 쉼을 공연 관람으로 채우기도 한다. 연극이나 뮤지컬 오페라 등 문학과 음악과 역동적인 배우들의 연기가 예술적 무대 위에서 공연되는 걸 볼 때면 과몰입 상태에 빠지기도 한다. 문학작품이 현장에서 종합 예술로 펼쳐지는 것에 흥미를 느낀다. 남들이 지루하다고 혹평을 하는 무대도 나는 혼자 몰입하는 편이다. 그래서 최악이라고 하는 공연에서도 큰 감명을 받곤 한다. 길거리 버스킹을 볼 때도 즐겁게 본다. 무언가 부족해 보이면 안타깝다. 그래서 중얼거리기도 한다.


 좋은 보컬이 필요하군! 타악기가 있으면 좋을 텐데!


 하지만 아마추어 뮤지션들은 보다 좋은 공연을 보여주기 위해 도전하면서 완성해 가는 과정이기에 그 모습 그대로 좋다. 무대예술을 감상하고 나면 잠 안 오는 밤에 그 다층적 감흥을 야금야금 음미한다. 단 한 번만 볼 수 있다는 점에서 공연무대는 아쉬움을 남긴다.


 지방의 소도시에 사는 내가 관람하기엔 공연장까지 다녀오는 시간이 피곤을 누적시킨다. 이건 어쩔 수 없다. 마땅히 치러야 하는 값이라고 해석할 수밖에. 상대적으로 접근성이 좋은 건 영화다. 하지만 내 경우는 빠르게 폭력적으로 전개되는 영화를 소화하는 것이 쉽지 않다. 잔상이 폭군처럼 표층적 의식부터 깊은 무의식까지 점령해 버리기 때문이다. 그래서 글을 쓸 때, 특히 소설을 쓰고 있는 동안에는 영화 관람의 기준이 까다롭다. 글을 쓰고 있지 않을 때, 책을 읽고 구상하고 여행을 다닐 때라면 무관하게 기회가 잡히는 대로 본다.


 시간을 보내는 방법은 많다. 문제는 만족감의 정도와 후유증의 유무이다. 빼곡한 일상 속에서, 제목도 없이 삭제되는 날들이 허무하고 불안하다. 그렇다고 무언가를 하자니 더 번거롭고, 무리해서 진행하면 어렵게 세운 경제계획과 절약 습관을 깨뜨리고 후회하게 된다.



 비우는 시간이 필요하다


 무언가를 채우기에 바빴던 시간들은 과부하가 일어나게 마련이다. 그럴 때 나는 채우는 것이 아닌 비우는 것에 관심을 갖게 된다. 어떻게 하면 관계를 비우고 마음을 비우고 스트레스와 불안과 억압을 비워버릴 수 있을까. 노트북의 바탕화면을 정리하고 버려진 데이터가 담긴 휴지통을 비우는 것처럼, 몸도 가벼워지고 마음도 편안해지고 관계도 가지런히 정리할 방법을 찾게 되는 것이다.


 인간은 누구나 자신을 위해 더 재미있고 좋은 것들을 선택하려는 욕구가 있다. 그러한 이유로 경제성의 원칙으로는 설명할 수 없는 것들이 생성되고 소비된다. 덕분에 인간세상은 더 다채롭고 풍요롭게 변화해 왔다. 나 또한 내게 맞는 마음 챙김 레시피들을 찾고 더 좋은 방법들로 발전시키고 있다.


 가끔은 거슬리지 않는 음량으로 백색소음의 역할을 해줄 클레식 연주곡을 켜놓고 서재에 틀어박혀 나다운 시간을 보낸다. 손때를 묻히며 읽고 싶어 주문한 책을 잡은 날에는 흡족한 글을 쓴 날처럼 충만한 기쁨을 느낀다. 어떤 천재적인 작가들의 글을 읽을 때면 사정없이 기가 죽어 굳이 나까지 글을 쓸 필요가 있을까? 하는 자조적 의문에 휩싸이기도 하지만, 그 순간이 지나면 내게 성장통을 준 작가의 글들을 찾아서 추가로 주문하고 더 왕성한 호기심과 창작욕을 수혈받기도 한다.


 날씨가 좋은 날엔 적어도 코스가 두어 시간 소요되는 한가한 길을 걷는다. 방해받지 않고, 햇살을 받으며 걸을 수 있다면 최고의 힐링타임이다. 그 시간에 눈에 보이는 것들을 계산 없이 바라보고 생각하고 관찰하고 지나쳐 걷다 보면 어느 순간 분리되었던 몸과 마음과 감각이 자연스럽게 같은 것을 보고 생각하고 느끼게 된다. 지금 여기에 나의 전존재가 오롯이 생동하는 순간을 있는 그대로의 내 시선으로 독대하게 되는 것이다. 그건 어쩌면 명상과도 같다. 가만히 앉아 들숨과 날숨에 집중하며 시끄러운 생각들을 정리하는 것처럼, 집을 나설 때 붙잡았던 너저분한 생각들은 삭제되고 내가 중점적으로 생각하던 주제는 심화되는 경험을 하는 것이다.


 나를 옴짝달싹 할 수 없게 옭아매고 있었던 정체된 인식과 해석의 오류들은 사실은 허상이다. 형체를 알아볼 수 없게 덮여있던 마음의 군더더기들도 해석 하나 바꾸면 순식간에 녹아 없어지는 걸 보면. 마음이 하는 일이 무시할 수 없는 차원이라는 것을 살아갈수록 인정하게 된다. 마음이 정리를 못하면 계속 끌려가고, 마음이 명징하게 길을 정하면 집중해서 나아가게 되니 말이다.


 무거운 겨울 옷을 벗어던지듯 마음이 가벼워지는 것도 인식의 전환으로 가능하다. 그때에 비로소 하늘과 주변의 풍경들이 씻은 듯  맑게 보이며 새 바람과 새 향기들이 마음에 들어와 묵은 것 상한 것들을 밀어낸다. 어떻게 이런 일이 가능할까 싶은 순간을 맞이하게 되는 것이다.


 마음에도 여백이 필요하다


 어수선한 마음으로 나온 산책길에서 하늘을 올려다본다. 맞닥뜨린 단풍나무 끝잎의 붉은 무늬사이에 걸려 불을 붙이는 가을 햇살에게 시선을 빼앗기고 마음을 빼앗기는 사이에 한아름 안고 나온 근심보따리들을 어디에 두었는지 깜박 잊었다. 그 보따리에 들었던 내용도 생각나지 않는다. 푸른 여백의 가을 하늘을 올려다보았을 뿐인데! 그렇게 애를 써도 성가시게 달려들던 생각들이 저 하늘의 여백 속에 빠져버렸나? 도종환 시인의 시 한 편이 떠오른다.




   여백            



언덕 위에 줄지어 선 나무들이 아름다운 건

나무 뒤에서 말없이

나무들을 받아 안고 있는 여백 때문이다

나뭇가지들이 살아온 길과 세세한 잔가지

하나하나의 흔들림까지 다 보여주는

넉넉한 허공 때문이다

빽빽한 숲에서는 보이지 않는

나뭇가지들끼리의 균형

가장 자연스럽게 뻗어있는 생명의 손가락을

일일이 쓰다듬어주고 있는 빈 하늘 때문이다

여백이 없는 풍경은 아름답지 않다

비어있는 곳이 없는 사람은 아름답지 않다

여백을 가장 든든한 배경으로 삼을 줄 모르는 사람은


 -도종환, 시집『흔들리지 않고 피는 꽃이 어디 있으랴』 -




 바로 그거다. 마음에도 여백이 필요했던 거다. 문득 맑고 강한 향기가 코끝을 간질인다. 오솔길 담장 아래 메리골드 꽃이 노랗다. 인적이 드문 이곳에 꽃을 가꾼 이의 고운 마음이 읽힌다. 꽃말이 '반드시 오고야 말 행복'이라고 했던가. 그 분에게도 행복이 임하시길 빌었다.



오솔길 담장 아래서 만난 메리골드꽃




 집에 돌아가 메리골드티를 마셔야겠다. 마침 지난 주일에 교우님의 자매 가정에서 직접 키워서 만들었다는 메리골드티를 한아름 가져와 나눠주셨다. 개성이 넘치는 세 자매의 근황이 늘 궁금할 만큼 우애가 좋은 가정이라 소식만 들어도 즐겁다. 자매 중 둘째의 시어머님이 옥상 화분에 기르셨단다. 햇살과 비와 바람 이슬을 맞으며 사랑을 받았을 메리골드티는 빛깔이 놀랄만큼 고왔다. 그 날도 오후 모임에서 부서진 꽃잎들을 다시백에 넣어 우려서 꽃차 맛을 함께 음미했다. 꽃차를 만들어 나누는 이의 마음에도 '반드시 오고야 말 행복'이 임했으리라. 벌써 머리가 시원해지고 입안이 향기로워진다.


 루테인과 지아잔틴 함량이 풍부한 메리골드는 눈에 좋은 차로 알려져있다. 점막을 보호하는 영양소의 함유로 안구건조증상을 개선하기 때문에다. 그런데 효능은 거기서 끝나지 않는다. 몸 안의 불필요한 성분들은 비우고 필요한 영양분은 채워주는 건강차이기 때문이다. 메리골드티는 부종을 예방하고 발한작용이 있어 수족 냉증과 생리불순을 개선하는 효능이 있다. 해독, 수렴, 이뇨 작용으로 피부를 보호하므로 마시고 남은 꽃을 지퍼백에 넣어 동실에 모았다가 입욕제로 써도 좋다.



오랜 차벗 교우님이 나눠준 메리골드티


 그러나 메리골드는 자궁을 수축할 수 있다고 알려져 있으므로 임산부는 섭취하지 않는 것이 좋다. 드물게 국화류 꽃차에 알러지 증상이 있는 분도 있어 그런 분들에겐 주의를 요한다. 꽃 한 송이로 2~3인이 나눠마셔도 좋을만큼 밀도가 높기 때문에 과하게 섭취하지 않도록 하며, 차를 마신 후에는 생수를 마시는 것이 좋다.


 메리골드티를 마시는 방법은 꽃 한 송이를 90℃ 온수에 우려 10초간 흔들어 침출하여 마신다.

 메리골드티의 효능을 얻기 위해서는  장복해야 하는데 차를 질리지 않고 오래 즐길 수 있는 팁은 적절한 온도와 침출시간을 지켜 은은하게 마시는 것이다. 온수로 우려 놓았다가 시원하게 마셔도 좋다. 냉차로 마시면 입안이 화해서 기분을 전환하는 효과를 얻을 수 있다. 과하게 침출되었다면 희석해서 마시길 권한다.

 혼자 마실 때는 다관채로 지퍼백에 밀폐하여 시원한 곳에 보관하면 2~3일간 1~2회씩 우려먹을 수 있다.


 

꽃 한송이를  90℃ 온수에 10초간 우려 따스하게 마신다. 말을 잊게 만드는 향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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