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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힐링가객 Nov 21. 2023

달멍하는 시간  - 고차수 보이차

왕실도예 초대명장 박부원 도예가와 차담을 나누다

 도자이크 공원을 산책한다             

  

 경기도 광주는 왕실도자기의 고장이다. 이 고장에서 살아가는 덕분에 거저 누리는 것이 참 많다. 우선 즐겨 산책하는 장소가 도자기 엑스포공원이다. 또 가까이 남종면 분원의 조선 백자 자료 전시관에 조선 왕실의 가마터 유적에 설립한 백자 자료관이 있다. 조선왕조에서 15세기 후반부터 사옹원의 분원을 이곳에 설치하여 우수한 도자기들을 많이 생산했기 때문에 역사적 복원과 유물을 발굴하여 설립한 것이다.      


 도자기 박물관을 향해 걸어 올라가면 상설전시장이 나온다. 쇼윈도 안에 전시되어 있는 물건들 중 얼굴을 아는 작가의 작품들을 보면 애정이 간다. 도예명장의 작품도 있어서 보고 싶을 때는 언제든 들러서 감상할 수 있다. 전시작품 중 요즘 푹 빠져 있는 달 항아리에 눈을 맞추며 걷는다. 달항아리마다 느낌도 다르고 기운도 다르다. 안은 비어있고 형태는 둥근 달항아리를 가만히 보고 있으면 이상하리만큼 마음이 편안하다. 그렇게 달항아리를 보면서 달멍 하는 시간이 좋다. 집에서도 달멍, 산책하면서도 달멍에 빠지는 이유다.     


 곤지암 도자산책로는 입구부터 볼거리가 많다. 박물관이 정면에서 보이는 박물관을 중심으로 양편에 규모가 큰 주차장이 있다. 공원의 왼편 주차장에서 보이는 놀이터로 들어가면 시선을 붙잡는 예술품들이 지천이다. 도자이크 벤치와 도자기 꽃들과 도자기 솟대를 감상하며 걸음을 옮기다보면 어마어마하게 쌓아올린 장작더미와 불가마가 나온다. 가마를 끼고 도자기 공방들이 자리한 언덕을 지나 스페인조각공원으로 올라가면서 조각품을 감상한다. 보는 이마다 걸음이 멈춰지는 작품이 다를 것이다. 나도 항상 멈춰 서서 안부를 묻는 작품들이 있다. 울창하게 뻗어 오른 나무들에게도 애칭을 붙여 인사한다.     


 조각공원 중심을 가르며 잘 조성된 골짜기를 오르는 길에 부들과 창포들도 아름답지만 계절마다 주연이 바뀌는 벚나무 느티나무 아그배 구지뽕 계수나무들도 멋들어진 수형을 뽐내며 하늘을 배경으로 가지를 뻗어내고 있다. 골짜기 정상에 오르면 양쪽으로 백자봉과 청자봉이 있다. 어느 쪽을 먼저 가든 결국 양쪽 봉우리를 다 돌아보게 된다. 스페인 작가들의 조각품들이 공원 전체에 몇 미터에 하나씩 설치되어 있는 것을 부감할 수 있는 위치여서 풍경도 특별하다.      


 청자봉과 백자봉으로 오르는 길에도 조각품들이 설치되어 있다. 도자이크 공원에는 가우디의 도자이크 벤치를 모방한 것도 있다. 스페인 바르셀로나 가우디성당으로 더 많이 알려진 사그라다 파밀리아 성당의 3대 건축가 죠셉 마리아 수비라치도 이 스페인 조각공원에 이름을 올리고 있다.      


 왕실도자기 엑스포공원에서 가장 눈에 띄는 것은 도자기 마스코트인 토야다. 토야를 볼 때마다 마음이 따스해지고 미소가 떠오른다. 토야를 만드신 지당 박부원 도예 명장을 만난 건 수년전의 일이다. 짝꿍과 함께 차도원 찻집에 갔다가 도자기 엑스포공원 곳곳에서 마주쳤던 토야를 보았을 때 반갑고 놀랐다. 차도원과 토야 마스코트가 무슨 관계일까? 토야는 왜 여기에 있는 걸까 궁금했다. 마당의 규모를 보고 예사롭지 않은 느낌을 받았다. 도원요 도자전시장과 불가마가 마당 안에 있어서 둘러보았다. 차도원에 들어가 쌍화차와 대추차를 주문하고 팽주님께 물었다. 토야의 안부를. 아버지가 토야를 제작한 도예명장 박부원 선생이라고 했다. 궁금증은 풀렸지만 팽주님이 너무 바빠서 길게 이야기를 나눌 수 없었다.           


 차를 마시던 중 박부원 선생님을 처음 뵈었다. 토야 마스코트 덕분에 왕실도예 초대명장 지당선생님과 인연이 시작되는 순간이었다. 바쁜 중에도 박물관에서 운영하는 도자문화 강좌를  수강할 만큼 도자기에 관심이 깊은 짝꿍은 여러 도예작가들과 사귐이 있었다. 짝꿍과 함께 전시관으로 안내를 받고 작품을 관람한 뒤에 지당 선생님이 우려주신 보이차를 마시며 차담을 나눴다. 덕분에 작고하신 백담요의 도예명장 이광 선생님과의 특별한 관계도 들었다.      


 그 후로도 종종 차도원에 갈 때마다 상설전시 중인 작품들을 보곤 했다. 차도원에 가는 이유 중 하나는 달항아리를 볼 수 있다는 거였다.      


 지난 5월에 도자기엑스포공원에서 열린 광주왕실도자기 축제에서도 작품전시관에서 선생님의 달항아리를 만나 반가웠는데, 최근에 차도원에 갔다가 상설 전시된 작품들이 달항아리 중심인 것을 보게 되었다. 고고미술사학을 전공한 박부원 도예가의 딸이자 도원요 큐레이터인 박소영 선생으로부터 전시회 소식을 들었다. 밀알전시관에서 12월 한 달 동안 전시회를 진행한다는 거였다. 주제는 “도자에 마음을 담다” 라고 했다. 반가운 소식이었다. 전시회 준비과정을 물어보았다. 어떤 작품이 전시되는지 묻자 전시관으로 안내해 주었다.           


왕실도예 초대명장 지당 박부원 도예가







 왕실도예 초대명장의 미학특강


 운 좋게 지당 선생님과 이야기를 나눌 기회를 얻었다. 선생님께서 전시관에 있는 작품들을 친히 설명해주셨다. 이번 전시회의 의미를 여쭤보았다. 현 시대에 온 가족이 도예의 길을 가면서 공동의 작품을 만들어간다는 것은 드물기 때문에 “도자에 마음을 담은, 가족 전시회”라고 하셨다. 가족 공동체가 절대자를 사랑하고 흠모하는 내면의 추구와 합의를 담아 여는 가족전이라 의미 있고, 장인문화가 한 가족 안에서 이루어지는 것에 특별히 감사하다는 말씀이었다. 이 지역에 살면서 여러 도예가의 쇠락을 지켜봐온 터여서 반갑고 귀하게 보이지 않을 수 없었다.           


 좋은 기회라고 생각하고 여러 질문을 드렸다. 도예명장으로부터 동서양을 아우르는 미학적 해석과 도자예술품의 역사를 들었다. 도자에 인생을 바치고 일가를 이루신 지당선생의 행적과 도원요의 역사에 관해서도 알게 되었다. 왕실도자기 초대명장 박부원선생님의 작품은 현재 영국, 미국, 러시아 등 외국의 미술박물관에 전시되어 있다. 1983년 이전까지 일본에서 전시회를 열었기에 선생의 도예품의 주 소비자가 일본인들이었다는 것과 65년 한일국교정상화 후에 일본에서 도자기 붐이 일자 수요를 감당할 수 없어서 주문자들이 제비를 뽑아서 가져가기도 했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내가 태어나기 전의 일들이라 새롭게 들렸다.      



 작가에게서 들은 작품에 관한 해석들을 다 옮길 수 없다는 것이 아쉽다. 선생님의 눈빛과 달항아리를 쓰다듬으시던 손길에서 온 생을 걸고 흙을 빚어 오신 장인의 마음을 느끼고 싶었다. 그리고 다 기억할 순 없지만 기억에 남는 말씀은 기록해놓고 싶었다.


 “도자기는 고난의 길이에요, 농부와 같지요. 일년 농사를 망치던 어떻든, 농부는 가장 좋은 씨앗을 저장했다가 소망을 가지고 농사를 지속하는 것이거든요. 도자기도 실패했다고 좌절하고 실망해도 고생을 참아내는 인내를 감수해야 좋은 작품을 만들 수 있어요. 이것을 지속하는 과정 속에서만 예술적 결실이 열리지요.”      

 가마에서 꺼낸 도자기 중 조금이라도 기준에 부합하지 않는 것을 미련없이 깨뜨리는 선생님의 영상을 본 적이 있었다. 10여년 전에 YTN에서 촬영한 거였다. 깨는 것부터 배워야 계속 나아갈 수 있다는 말씀의 의미를 다시 한 번 생각했다. 사기무덤에서 골라온 도자기를 가지고 소꿉놀이를 했다고 유년시절을 회고하던 딸 박소영 선생의 이야기도 생각났다.      


지당 선생은 도기로 예술작품을 만들었던 로뎅과 고갱의 이야기를 들려주셨다. “예술가는 자연을 통역하는 사람이다.” 라는 로뎅의 정의를 예로 들면서 “자기가 추구하는 미적 조형에 의미를 부여하는 것이 도공의 예술”이라고 강조하셨다. 역시 도기로 작품을 구현한 고갱도 ”모든 예술의 중심은 도예에 있는데, 어쩌다 변두리로 밀렸는가?“ 라며 한탄했다고 한다. 제작한 미술작품 4만점 중에서 4천점이 도기작품인 피카소가 82년도에 일본과 한국에서 도화전을 열었다는 이야기도 해주셨다. 도자예술이 현대미술에서도 중요한 지점을 차지하고 있다는 생각을 해 본적이 없었기 때문에 새롭게 인식하는 계기가 되었다.      


 “불란서 도기는 내화도가 약합니다. 우리나라도 다른 지역과 달리 백제권은 내화도가 물러요. 자연의 영향력에 따라 음식문화와 지역의 정서가 같이 발전해갑니다. 가장 오래된 최초의 예술가는 동굴화, 동양은 암각화인데, 아름다운 것은 같아요. 다만 그 민족의 자연과 전통과 사고의 결과가 예술에도 그대로 표현이 됩니다. 서양은 도전적이고, 동양은 순한 편이죠. 민족성의 발현에 따라 순수성을 간직하는 것이거든요. 그러나 현재는 도전적이고 과학적인 세계가 순한 세계 위에 군림하는 시대이지 않습니까? 인류가 가족인데, 같은 조상을 둔 종교간에 일어난 전쟁의 비극을 어떻게 설명해야 할지, 결국 강이 선으로 받아들여지는 것이, 남은 자가 역사를 서술하고 정당성을 기록하는 것이 안타깝지요. 인간의 역사가 비극적이고, 비정하기만 하다면 그런 역사에 어떤 가치를 부여할 수 있겠어요?”      


 지당 선생은 현재 벌어지고 있는 우크라이나 전쟁과 가자지구의 비극에 상심하고 계셨다. 공감했다. 나는 도예가의 예술 미학을 경청하는 동안 큰 감동을 느꼈다.      




지당 박부원 도예가의 달항아리 작품들





달멍하는 시간 - 달항아리를 해석하다


 이번 전시회의 상징적 작품인 달항아리에 대해서도 말씀해 주셨다. 선생은 70년대부터 달항아리를 만들었다. 전시관에는 유독 달항아리들이 많았는데, 하나하나 짚어주시면서 설명해주셨다.     


“달 항아리에는 서민들의 눈물이 고여 있어요. 그 시대의 가장 밑바닥 생활을 한 사람들이지만 흙으로 이런 둥근 항아리를 만들었죠. 장작 불가마에서 태어난 달항아리를 보면 같은 모양이 하나도 없는데, 그것은 자연물이 하나도 같은 것이 없는 것과 같아요. 살아있는 달항아리도 있고, 힘이 없는 달항아리도 있지요. 이야기 거리가 별로 없는 달항아리가 있는가하면 이야기 거리가 많은 달항아리도 있어요.”      


 설명을 들으며 생각했다. 문외한인 내가 봐도 달항아리의 모양과 빛깔과 크기가 참 다양했다. 그 항아리에 그런 이야기를 부여하실 줄은 몰랐다. 예상 밖의 해석을 들으니 각각의 달항아리들이 품은 기운도 느낌도 다르게 다가왔다.   

   

 선생님은 커다란 달항아리를 하나 짚으며 말씀해주셨다. “이것은 선비적 달항아리입니다. 억울한 시대를 살아갔지만, 가장 평범한 사람, 아껴주고 사랑해주는 선한 정신의 소유자, 힘이 있지만, 그 힘은 견디는 힘이고, 끌어않는 힘이거든요.”     


 위쪽부터 아래쪽까지 둥글둥글한 달항아리를 쓰다듬으며 말씀하셨다. “만삭의 생명을 품은 달항아리에요, 새로운 달항아리, 민요에서 노래한 서민들의 달항아리, 거친 세상에서 선하게 살아간, 풍상이 느껴지는 사마리아 여인 같은 달항아리입니다.”      


그 옆의 작지만 윤기가 나는 달항아리를 어루만지며 말씀을 이었다. “이것은 작지만, 힘 있고 자신만만한 달항아리입니다.”      


 귀퉁이에 자리한 잘 생긴 달 항아리를 가리키며 말씀하셨다. “이것은 불가사의 달항아리에요. 가마가 녹아내려서 항아리에 붙었는데, 그것이 떨어지지 않고 붙은 채 응고되었거든요. 세상에 하나 뿐인 달 항아리, 무게 중력을 초월한 불의 작품입니다.” 미끈하게 잘 빠진 달 항아리 한 쪽에 검은 흙덩이가 유기질화 되어 날아가는 새처럼 붙어 있었다. 어떻게 떨어지지 않고 붙은 채 응고되었을까, 신기한 모양이었다. 함께할 수 없는 이질적인 두 생물이 막다른 환경에서 공생의 길을 찾기라도 한 것일까!      


 “나는 달항아리를 오래된 현재라고 이야기합니다. 조각 예술품은 인간의 의지적 추상인데,  도예는 불이 만든 추상이에요. 대영박물관에 수십만 점의 예술작품이 있는데, 그 중에서 대표작품 20점을 분류하여 특별 계획전을 하는데 달 항아리가 그 중 하나에 들어갔어요. 외국의 미술평론가들도 어떤 공간에 달 항아리가 있으면 그 공간을 달항아리가 지배한다고 인정하거든요. 달항아리는 우리 가슴을 편안하게 안아주는 매력이 있어요.”     

 


지당 박부원 도예가의 손과 전시관



 달항아리가 한국인에게 뿐 아니라 외국인에게도 같은 느낌을 준다니 참 놀라운 일이었다. 나는 궁금했다. 무엇이 그 분을 도예가의 길로 이끌었을까? 옛일을 기억하는 도예가의 눈길이 깊었다. 1962년, 23세에 우연히 인사동 진열장에서 엎어놓은 차완의 굽을 보는 순간 강렬한 끌림으로 작가를 수소문했고, 직접 도예가를 찾아갔다가 바로 따라 나서서 도자기에 입문했다는 거였다. 그 스승님이 한국현대도자기의 아버지라 일컫는 지순탁 명장이었다. 다음은 지당선생님의 고백이다.      


 “우리 집안은 본래 도자기와 아무런 연관이 없었는데, 어쩌면 나를 토기장이로 절대자 하나님이 정하신 것 같아요. ‘너는 사기장이가 되어라’ 하고 말이지요. 흙은 우리의 먹을거리를 생산하는 모체인데, 사기장이 손에 들려서 하나의 형태로 빚어져1300도의 화도를 받고 타서 죽고 나면 영원한 생명을 얻는것이죠. 이것을 통해 정신적 건강을 얻을 수 있어요. 아들은 아버지를 닮지요? 아버지가 하는 일을 아들이 왜 못하는가? 제가 교만한 말인 것 같지만, 하나님이 좋아하시는 일은 창조에요. 아름다움을 알아야 아들이고 제자에요. 아름다움을 가르쳐야하고, 아름다움을 만들어내면 최고라고 생각합니다. 흙, 불, 나무, 물은 하나님이 주신 자연의 기본이거든요. 그것을 가지고 빚어서 가마에 넣지만, 그것을 완성하는 것은 1300도의 불이지요. 사람이 빚어서 만들지만 사람이 완성할 수 없어요. 그래서 항상 설레고 기대하게 되는 거지요.”      


 한 번도 다른 마음을 품지 않고 도예의 길만 갈 수가 있었던 이유에 대해서도 말씀해주셨다.      


 “하나의 예술품을 볼 때, 예술품은 보면 볼수록 미적 감각이 열리거든요. 도자기는 계속 반복해서 보는 대상이거든요. 그렇게 이어지는 인연인데, 그 차가움 속에 온기가 있어요. 새벽마다 일어나서 마을 강길로 산책을 가는데, 달 항아리를 안고 어루만지며 인사를 해요. 그러면 도기는 차가운데 정신적 피의 작용에 의한 따스함으로 어찌 그렇게 따숩느냐! 이야기를 나눕니다. 도자기를 얼굴에 닿도록 껴안고 인사를 나누는 새벽 첫 시간이 행복하고 뜨거운 시간이에요. 도예란 그런 것이거든요.       


 지당 선생님은 60년대 초, 국민소득이 500불도 안되는 시기에 도예가로 입문했다. 내가 아직 태어나지도 않은 때였으니 들려주시는 이야기들을 상상하기도 버거웠다. 지순탁 선생님을 따라 홍천에 머물면서 각각의 나무 재로 유약을 실험했고, 양구의 도석(고령토)으로 실험했다고 한다. 2년간 기술을 닦을 때, 화전민 사랑방에 거하면서 밤이면 옥수수 비비는 농사일을 도와주고 술과 참을 얻어먹으면서 주린 배를 달랬다고 한다.     

 

 지난 전시회 도록을 한 권 찾아다 주시면서 도자기에 재현한 암각화의 의미를 설명해주셨다. 몽골 암각화와 울주 암각화의 만남을 형상화한 작품들이 도록에 실려 있었다.      


 선생님이 애정을 가지고 설명해준 작품에도 암각화가 새겨져있었다. 고령의 적송 목피와 이끼를 형상화한 달 항아리가 이번 전시회 상징적인 작품이라고 하셨다. 황토빛 소나무 껍질에 검푸른 이끼가 덮여있는 묵은 수령의 소나무 한 토막을 잘라 속을 파낸 것처럼 목질이 느껴지는 작품이었다.        



밀알미술관 특별초대전 초대장



   

 마침 초대장에 작품이 있다. 유달리 밝은 황토빛깔인 황토암각화는 황산벌의 흙 빛깔을 재현한 것인데, 남쪽의 황토빛이 가장 밝고 부드럽기 때문이라는 거였다. 실제로 작품 안에 계백 장군의 일화가 암각이 되어 있었다. 계백 장군의 결연함을 새겨 넣으신 거라고 했다. 황산벌을 성지로 만들지 않고, 훈련소로 만들어 역사적 흔적을 영영 지워버린 것이 아쉽다고 하셨다.         

  

박부원 선생님의 호 ‘지당’은 뜻을 이루는 집이라는 의미다. ‘도원요’는 도자기 중에서 최고의 가마라는 의미다. 호와 가마의 이름이 같지 않은 이유를 묻자, 흰구두나 백구두나 그게 그거라고 하시며 웃으셨다.      




도예명장의 건강을 지켜준 고차수 보이차


 보이차를 우려주시면서 전시관 차탁에 앉아 이야기를 나눈지 두어 시간이 지나있었다. 고차수 생차 보이차는 얼마나 힘이 좋은지 열댓번을 우려도 한결같이 우러나왔다. 차는 향이 싱그럽고 몸이 따스해질 정도로 기운이 좋았다. 80년도부터 보이차를 마시기 시작해서 하루도 거르지 않고 보이차만 드신다고 했다. 한 때는 집을 잡혀서 보이차를 사기도 했다니, 선생의 차 사랑에 한 번 더 놀랐다. 건강은 어떠신지 여쭈었더니, 약이나 건강식품으로 먹는 것이 하나도 없고, 아픈 곳도 없다고 하셨다.      


 “그럼 수십년간 보이차를 매일 드시는 것이 건강관리 비법인가요?” 궁금해서 물었다.

 “그런지도 모르죠. 그럴거에요.” 선생님이 웃으며 답하셨다.     


 공장으로 향하시는 지당 선생의 손과 뒷모습을 바라보았다. 80대 도예명장의 뜨거운 예술혼에 감전된 느낌을 간직하고 싶었다.      


 전시관에 진열된 작품들을 사진에 담았다. 곧 있을 작품 전시회에 어떤 작품이 진열될지 알 수 없지만, 다시 만나면 반가울 것 같았다. 원 없이 달멍을 했지만 돌아서면 다시 생각날 거였다. 이야기에 정신이 팔려있는 사이에 팽주님이 와서 실내 온도와 전시관의 조도를 조절해 주셨는데, 다시 건너와서 시장하지 않으냐고 물으셨다. 차를 마셔서 소화가 되어버린 탓에 허기가 느껴졌다.    

       

 전시관에서 나와 차도원으로 건너갔다. 팽주님이 만든 수제 티푸드를 내주셨다. 보기에도 아까운 정과들을 순삭 해버렸다. 본래 목적했던 쌍화차도 포기할 수 없어서 청해 마시곤 전시회 준비에 관한 이야기를 들었다.           

 문학과 예술을 사랑하는 생활차인에게 이 날은 특별한 힐링의 날이었다. 평소 미학에 관심이 많았기 때문에 석사논문에서도 해방전후에 창작된 손창섭 소설에 나타난 미학적 양상을 연구했다. 도예명장의 미학 특강에서 솔직히 큰 영감을 받았다. 선생께서 들려주신 동서양의 고대와 현대를 오가는 미학적 해석을 담기엔 내 역량이 부족하다. 그것이 아쉽다. 왕실 도자기의 고장에 사는 덕분에 얻은 일상의 힐링이 더욱 감사한 이유다.    



보이차 효능과 마시는 방법          


 지당 선생님을 뵙고 온 날부터 보이차를 마시고 있다. 영하의 날씨에 마시기엔 보이차만한 것도 없다. 생차 보이차를 마시면 등줄기가 후끈하면서 온기가 도는데, 알코올보다 빠르고 급격하다. 중국 운남 지역에서 재배된 차를 가공하여 만든 보이차는 후발효차다. 중국의 황실에서 즐겨 마신 명차로 알려져 있다. 다이어트 차로 이름을 날린 보이차를 장복하면 이익 균인 갈색 균이 많아져 장내 환경이 개선된다고 한다. 또 혈관 질환을 예방하며 피부 건강의 유지와 항암에도 효과가 좋다고 알려져 있다.         

 

 보이차를 마신 후에 내 몸에서 일어나는 반응도 적어본다. 깊은 잠을 잘 수 있고, 실시간으로 부종이 제거되며 배뇨와 배변의 효과가 뛰어나다. 소화기능 촉진 뿐 아니라 생리 불순일 때도 보이차를 마시면 순환에 도움을 받았는데, 나 외에도 여러 여성들이 같은 경험을 했다고 전해주었다. 그래선지 아랫배가 따스해지고 몸이 가벼워진다. 피부의 염증이 가라앉고 보습이 되어 차를 마신 다음 날은 피부가 윤기있고 매끈해진 걸 느낀다.           

 보이차를 마시는 방법은 다른 차들과는 조금 다르다. 100도에서 끓여낸 물이 필요하기 때문에 포트는 필수다. 온도를 유지하는 것이 중요하므로 철 성분이 많은 보이차 전용 다관인 자사호가 있으면 좋다. 없다면 유리다관이나 간단한 다관을 써도 괜찮다. 다만 차를 우려 마시는 동안에도 수시로 다관에 끓는 물을 부어주면서 온도를 관리하면 좋은 맛의 차를 얻을 수 있다는 걸 기억하자.           

 먼저 찻물을 끓인다. 숙수를 다관의 안팎에 부어 예열한다. 예열된 다관에 보이차를 넣고 숙수를 붓는다. 3~5초 후에 찻물을 버려 세차를 한다. 다시 다관에 숙수를 붓고 우러난 찻물을 걸러 숙우에 옮긴다. 우러난 찻물은 최후 한방울까지 따르고 분잔 한 뒤에 따스할 때 마신다. 다시 여러 번 우려서 마시되 조금씩 우리는 시간을 늘린다.           

 생차 보이차는 15~20회를 우려 마실 수 있을 만큼 기운이 좋다. 하지만 한 번에 다 마시지 못하면 보관했다가 마실 수 있다. 보관할 때에는 다관을 밀봉해 냉장고나 차가운 곳에 두었다가 숙수로 세차하고 다시 우려서 마신다. 보이차는 둥근 떡 형태로 빚어져 발효하기 때문에 마시기 위해서는 관리가 필요하다. 차 칼로 적절한 크기로 부순 뒤에 숨 쉬는 차호나 잡냄새가 배지 않은 깨끗한 유리병에 보관하되 습이 들어가지 않도록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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