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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힐링가객 Nov 28. 2023

K오지라퍼 영향권   - 도라지 약차


마른기침 소리를 들었다  

아침에 일어나자마자 짝꿍에게 도라지청을 권했다. 밤에 기침 소리를 들었기 때문이다. 지병을 관리하고 있는 짝꿍에겐 무언가를 먹으라고 권하는 것이 일종의 강요로 느껴질 수 있겠다 싶어서 늘 조심스럽다. 짝꿍은 도라지청에 현미식초를 넣어 마셨다. 건강 관리를 위해 당질을 섭취할 때는 식초를 챙겨 마신다.

 나도 마른기침이 떨어지지 않아 따스한 물에 도라지청을 타고 꿀을 첨가해서 마셨다. 기관지가 약한 나를 위해 월동준비라며 친구가 구해준 도라지청이다.


 오늘은 약도라지에 대추와 배를 넣고 푹 끓여서 도라지 약차를 만들어야겠다. 이번 감기는 약을 먹지 않고 이렇게 민간요법으로 증상을 다스리는 중이다. 마른기침을 방치하다 곤욕을 치른 적이 있으니 본격적으로 관리를 해야겠다. 가래나 콧물 증상은 진즉에 멈췄다. 목이 따끔거리던 증상도 며칠 동안 잠들기 전에 프로폴리스와 꿀을 먹었더니 가라앉았다. 어린이집에 다니는 두 살짜리 손자가 선물한 감기의 끝이다.




  생각해 보면 내게도 까칠한 시절이 있었다. 그때 나는 대단히 미시적인 안목에 집착했던 것 같다. 그저 무난히 하루를 보내면서 내가 마주한 임무를 완수하는 것에 집중했으니.

 꽤 계획적인 성격이었던 나는 무언가를 모색해 목표를 세운 뒤에는 곁눈질을 하지 않았다. 신경에 거슬리는 것을 보게 될까 봐 타인에게 필요이상 관심을 갖지 않았고, 나 또한 남의 눈에 띌까 봐 내 모든 불편과 고난을 외피 안에 잘 가두고 살았다.


 그 시절의 나를 기억하는 친구들은 내가 퍽 조용하고 조신한 성격이었다고 회상해서 나를 어이없게 만들었다. 그건 뭐 존재감이 없었다는 의미가 아닌가 말이다.


  얘들아, 난 까칠한 존재였다니까!


 의도하지 않아도 기억엔 얼마큼의 왜곡이 끼어들기 마련이다. 하지만, 지금은 나도 안다. 까칠함으로 포장한 소심함이 그 시절 나의 실체였다는 걸. 지금도 기억하는 몇몇 사건들이 있다. 엄마가 아파서 먼 곳의 병원에 입원했을 때, 남동생이 크게 다쳐서 수술을 받았을 때, 하필 도랑 옆에 터를 잡고 건축한 집이 수재를 당해 여름 신발이 다 떠내려갔을 때, 첫 생리가 터지던 날 등등. 어린 날의 일들이지만, 내가 당한 일들은 비밀이었다.


 실상은 침묵 속에서 열심히 타인을 관찰하되 절대로 참견하지 않으면서 눈치껏 내 포지션을 관리하려고 했던 것 같다. 남 앞에 나서거나 남 뒤에 처지지 않고, 중간 무리에 속하려고 애를 썼을 것이다.


 학창 시절이 끝나고 사회인이 된 후로도 난 어쨌든 뭔 일이 있을 때마다 누군가 알아채지 못하게 포장하곤 했다. 덕분에 타의에 의해 냉탕과 온탕을 오가는 순간에도 가장 가까운 이들조차 내 사정을 눈치채지 못했다. 결혼 후에도 크고 작은 어려움들을 만났지만 가족은 물론 이웃사촌들마저 포커페이스로 속여 넘겼다.


 나름 내겐 견고한 신념이 있었다. 내 고통을 나누는 것은 내 불행의 이자를 늘리는 일이고, 다른 사람의 마음까지 불편하게 만들 권리나 이유 따위는 누구에게도 없다는 거였다.



 결혼기념일과 재계약


 친정 부모님이 우리 부부를 천생연분 잉꼬부부라고 하실 때마다 그저 웃는다. 기실은 내 까칠함을 견뎌준 남편 덕분이다. 한편으론 분화구가 열리는 것이 두려워 미리 꿀꺽 삼켜버리고 안그런척 위장하던 내 성격 탓도 있을 것이다. 신혼 초에 함께 살았던 여동생이 우리 부부가 서로를 길들여가던 시절의 유일한 목격자다. 어쨌거나 긴 세월 서로를 길들이며 살아왔다.


 일 년에 한 번, 우리 부부만의 중요한 이벤트를 갖는 날이 있다. 결혼기념일, 우리는 그날을 '재계약일'이라고 부른다. 둘 다 독서광인 우리 부부는 연애시절 같은 책을 읽고 토론하기를 즐겼는데, 사르트르와 보봐리의 계약결혼에 대해서도 많은 이야기를 나눴다. 결혼기념일의 '재계약'은 문화와 인습이 다른 우리 현실에 맞춰 '계약결혼'을 변용한 거였다. 물론 내용과 과정은 철학자 커플과는 천양지차의 형태가 되었지만, 결혼 후 그날이 되면, 반드시 둘만의 시간을 보냈다. 추억의 데이트 장소를 가거나 시간 여유가 있을 땐 여행을 갔다. 아이들이 어릴 땐 재워놓고 저녁 시간에 소박하게 자축하며 재계약을 했다.


 그날엔 주로 결혼 생활에서 서로에게 바라는 것과 개선할 점에 대해 진지하게 이야기했다. 자녀 교육에 대해서도 계획하고 합의했고, 서로의 원가족에 대해서도 합의했다. 미안함과 고마움 서운함과 상처받은 것에 대해서도 이야기했는데, 그날의 합의와 결정이 중요했기 때문에 그날 거론한 감정적인 부분은 마침표를 찍었다. 과거의 일은 과거로 보내고, 현재의 일을 맞이하며 미래를 계획하자는 것이 화두였다. 가장 결정적인 것은 서로가 실천할 수 있다고 용인하는 선에서 한 가지 소원을 들어주기로 한 거였다. 서로를 설득하고 실천방안과 협력이 필요한 부분에서 서로의 역할을 정했다.


 세월을 건너오면서 변화해 왔지만 성격의 어떤 속성은 이어지고 있음을 느낀다. 불같은 남자과 물 같은 여자의 전쟁은 전조는 길어도 대면갈등 지속 시간이 짧다. 시작되나 싶으면 끝나는 식이다. 나도 짝꿍도 한마디 하면 서로 알아듣는다. 마흔 무렵엔 그 한마디 후에 각자의 공간으로 가서 반추하고 복기하는 시간을 가졌다면, 지금은 여전히 마주 보며 일상을 지속한다.


 불편한 대화가 불가피할 때, 갈등을 드러내기 전에 충분히 생각하고, 분노나 서운함의 감정은 미리 삭혀버린다. 상대가 민감해할 상처를 건드리지 않으면서 내 입장과 느낌을 표현하고 상대가 납득하고 실천할 수 있는 합리적인 제의를 한다. 가장 중요한 것은 서로의 의견이나 요구를 수용해 줄 거라고 믿는 신뢰다. 그렇게 살다 보니 많은 부분에서 합의를 이루었고, 파자마처럼 편안한 반려자가 되었다. 결혼기념일의 '재계약'이 긍정적인 역할을 한 것 같다.


 문학석사를 마친 후 언젠가 한 번은 공부하고 싶었던 상담심리대학원에 들어갔을 때였다. 첫 학기 과제를 하다가 난제를 만났다. 누군가에게 몇 단계의 어려운 부탁을 해보라는 거였다. 처음엔 그리 어려운 과제가 아니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막상 무언가 부탁을 하려니까 첫 단계부터 어려웠다. 가족은 물론이고 지인과 친구들에게 쉬운 부탁부터 어려운 부탁까지 세 단계를 시도해야 하는데, 그리고 그것은 실제가 아니라 과제를 위한 부탁일 뿐인데, 그 상황을 경험하기 위한 첫 단계부터 벽을 만난 거였다. 왜 부탁하는 걸 어려워하게 되었을까, 내면을 직면하면서 비로소 나는 깨달았다. 거절에 대한 면역력이 없기 때문이라는 것을.


 짝꿍에게 겨우 한 가지 부탁을 할 수 있었다. 짝꿍 외에는 누구에게도 부탁의 말을 꺼낼 수 없었다. 그 순간의 곤혹스러움과 내 부탁을 거절해야 하는 상대방의 불편감이 몇 배로 먼저 느껴져 주저하던 것을 잊을 수 없다. 그중 부탁을 거절하더라도 불편해지지 않을 것 같은 동창친구가 떠올랐다. 유난히 성격이 밝고 수용성이 높은 친구였다. 그 친구의 모습을 거울삼아 내 모습을 반추해 보았다. 나는 부탁만 못하는 것이 아니었다. 사유가 분명한 상황에서조차 타인의 부탁을 거절하지 못하는 성격이었다. 물론 소심하고 조용한 나에게 큰 부탁을 하는 사람은 없었지만, 소소한 부탁을 받을 때면 상대방을 실망시킬까 봐 전전긍긍하면서 될수록 맞춰주려고 애쓰며 살아가고 있었다.


 그 경험 덕분에 나는 살아가는 일의 자연스러움과 긍정성, 통합적 인격에 대해 생각하게 되었다. 여전히 인간관계가 조심스럽고 어렵지만, 더불어 살아가기 위한 부탁과 거절도 체험하게 되었다. 이제 나는 연약함을 숨기려고 위장하지 않는다. 여전히 드러내기를 즐기지도 않지만, 내향인이면서도 내면화된 자기애의 성향을 어느 정도 가지고 있는 나 자신의 모습을 인지하고 있으며, 있는 그대로 바라보려고 한다. 인간에겐 결코 숨길 수 없는 연약함과 추함이 있다는 것을 인정하게 된 것이다.




 중년의 또래집단 소통

 중년이 되면서 달라진 것이 있다면 보다 명확해진 입장과 그에 대한 솔직한 표현이다. 헛된 인내심을 발휘하거나 인위적인 노력을 하지 않는다. 체면을 봐주거나 어떻게 비칠지 이미지를 관리하느라 단절을 유보하면서 관계를 지속하지도 않는다. 과격한 말을 하지 않아도 나를 전달할 수 있고 상대의 입장을 읽을 수 있으며 선을 정리할 수 있다. 애매하거나 불편한 관계를 자연스러운 방법으로 정리할 수 있게 된 것이다. 비합리적인 관계를 부정하면서도 지지부진 이어가는 위선적인 관계는 그 자체로 해악이다. 누구에게나 생애에 허락된 시간은 소중하기 때문이다.


 세대 간의 미묘한 격차를 경험할 때가 많다. 생애발달주기에 따라 마주하게 되는 상황과 관심 영역이 다르기 때문이다. 그래서 또래문화에 접속하는 것이 중요하다. 크게 벗어나지 않는 비슷한 위아래를 포함해서 이해의 자장 안에서 공감을 주고받는 관계. 지금 내 상황을 다루며 깊이 있는 대화를 나눌 사람이 있다면, 내 이야기를 경청해 주고 적절한 경험을 들려주는 사람이 있다면 그것 자체로 행운이다.


 코로나가 기승을 떨치기 직전, 초등학생 시절을 함께 보낸 친구 둘과 제주도에서 만났다. 시간 맞춰 급조한 모임이라 더 많은 친구들과 함께 할 수 없어 아쉬웠지만, 사실 어린 시절을 공유한 여자친구들과 3박 4일 동안 함께 한 것도 처음이었다. 그 여행에서 또래집단의 소통이 주는 공감을 진하게 경험했다. 친구들과 어린 시절에 불렀던 동요를 부르고 그 시절의 추억을 나눴다. 지금의 취향과 지나온 삶의 질곡도 나눴다. 과거와 현재와 미래 계획과 중년에게 부여되는 생애의 과제들을 나누면서 각자 무거움을 나눠갖고 즐거움을 배가시켰다. 새벽 산책부터 시작된 여정은 이불속에 엎드려 밤이 늦도록 이야기하다가 하품을 공유하고 기절할 때까지 이어졌다.


  한국의 여성들이 정신병원이나 상담소를 찾지 않는 이유가 수다 덕분이라는 말이 있다. 실제로 경쟁이 목적이 아닌 중년의 여성들의 친목 모임에서는 어려움을 토로하면 공감과 위로가 쏟아진다. 다음엔 공동의 문제가 되어 직간접 경험들을 이야기하면서 처방이 쏟아진다. 인간이 백인백색이라고는 하지만 삶의 문제라는 것이 대동소이하기 때문이다. 그러는 사이에 너나 할 것 없이 문제를 둘러싸고 하나가 된다. 처음 논의한 문제가 더 이상 문제가 아니게 되는 순간을 맞는다. K오지라퍼들의 힘이다.



 K오지라퍼 영향권  

 가까운 지인 중에는 유독 심성이 뜨거운 분들이 있다. 이들은 남의 아픔이나 불편을 지나치지 못한다. 분명 남의 일인데, 그저 안 됐다는 공감에서 끝나지 않는다. 손발 걷어붙이고 나서서 도움을 줘야 직성이 풀린다. 때론 지나친 참견도 불사한다. 이른바 K오지라퍼다.


 수년 전에 독감에 걸렸을 때 천식 증상을 경험했다. 가슴이 답답하고 목에서 쌕쌕소리가 났다. 기도가 좁아져서 숨을 쉬고 사는 일의 고단함을 매 순간 느꼈다. 가까운 지역 병원에서 처방받은 독감 약을 복용하면서 나아지길 기다리는 동안 급성으로 악화되어 천식 발작까지 하게 되었다. 옛 말에 감기와 사랑은 속일 수 없다고 했는데, 천식 발작이야말로 스스로 다스릴 수 없는 증상이었다. 한 번 기침이 시작되면 몸의 모든 구멍으로 진이 빠져나갔다. 백병원에서 검사를 진행했다. 폐기능이 30%라고 했다. 투약과 기관지 확장제를 사용했다. 몇 달간 치료가 진행되었지만 마른기침이 떨어지지 않아서 깊은 잠을 잘 수 없었다.


 마침 코로나 판데믹 선언으로 거리 두기를 하던 때였다. 예배조차 온라인으로 진행되었기 때문에 사람들과 접촉이 없었다. 공인중개업을 하고 있는 교우님을 오랜만에 만났다. 그분은 내가 기침하는 모습을 보곤 왜 그러냐고 물었다. 나는 독감에 걸린 후 몇 달째 천식증상을 치료하고 있다고 말했다. 헤어지고 집에 왔는데 그분에게서 전화가 왔다. 기침 멎는데 좋은 약도라지 말린 것이 있어서 가져왔다는 거였다. 묵직한 봉지를 건네주면서 배와 대추를 넣고 푹 끓여서 수시로 마시라고 당부하곤 돌아갔다.


 봉지를 풀어보고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봉지 안에는 말린 약도라지가 한 보퉁이 들어있었고, 대추도 들어있었다. 전화해서 물었더니 친정에서 농사지은 거라고 했다. 콧등이 쑥 빠지도록 매워지며 목이 메었다. 남의 고통을 이토록 공감하고 비상 약을 다 내주는 마음이 너무 뜨거워서 꼭 회복하고 싶었다.


 도라지를 끓여 먹고 천식 후유증인 마른기침 증상이 사라졌다. 그 후로 코로나에 감염되었을 때도 기침 증상을 약도라지로 다스릴 수 있었다. 덕분에 어린 시절 신선한 기쁨을 주었던 엄마의 도라지밭을 기억해 냈다.


 엄마는 산도라지를 캐다가 어린 뿌리들을 텃밭에 심어두셨다. 꽃몽오리가 올라오면 흰색인지 보라색인지 맞춰보라고 하셨다. 처음 녹색이었던 몽오리는 점점 커지면서 색이 바뀌었다. 수많은 꽃을 보았지만 지금도 도라지꽃만큼 신비롭게 마음을 맑히는 꽃을 보지 못했다. 당시 두 살 많은 사촌오빠가 놀러 와서 보기에도 아까운 꽃망울을 터뜨리곤 했는데, 그 때문에 나는 오빠 마음에 악마가 들어간 거라고 생각했다. 나는 사력을 다해 악마를 쫓아내야 했다. 오빠가 집에 올 때마다 도라지 꽃밭으로 가지 못하게 하려고 애쓰던 기억이 난다.


 지난 봄에 또 감기에 걸렸다. 천식이 재발한 건 아니라고 믿었지만 숨쉬기가 불편하고 잠자리에서 기침이 나면 목에서 쌕쌕 소리가 났다. 겁이 나기도 했지만 이미 경험한 절차가 있어서 약도라지를 구입해야겠다고 생각했다. 오랜 차벗인 또 다른 교우가 기침에 좋은 약이 있다며 나눠주었다. 도라지환이었다.


 아하! 역시 도라지군.


 도라지 환을 먹고 역시 나아졌다. 신기한 노릇이었다. 아버지가 감기를 앓으신다는 말을 듣자마자 남은 도라지 환을 아버지께 가져다 드렸다. 아버지도 효과를 보셨다고 했다.


 약도라지 효능

 3년 이하의 도라지 뿌리는 연해서 식용으로 사용한다. 하지만 3년이 넘으면 육질이 질겨지고 사포닌 성분이 2배 이상 많아져 쓴맛이 강하며 각종 유익한 성분의 함량이 높아져 약도라지로 사용한다. 같은 품종의 도라지를 식용과 약용으로 구분해서 사용하는 것이다. 잘 알려진 사포닌 성분 외에도 칼슘과 철분 이눌린 단백질 섬유질을 많이 함유하고 있다. 한방에서 쓰는 약재명은 길경이며, 기관지와 호흡기질환의 치료 목적으로 쓰인다.


 도라지차를 다릴 때 첨가하면 좋은 식품도 여러 종류가 있다. 배, 대추 생강, 연근, 율무 등 청폐의 효능을 하는 식품들이다. 연근은 청소능력이 뛰어나 몸 안에 독소물질을 배출하는 기능이 있다고 한다. 약방의 감초 이상으로 동의보감의 모든 처방에 들어가는 것이 생강과 대추하고 한다. 생강은 노페물과 독성을 제거하고, 대추의 따듯한 성분은 질병에 저항력을 길러준다. 배는 기관지의 점액분비를 원할하게 돕는 기능이 있고, 율무는 면역력을 길러주고 피부를 강화시키는 식품이다.


 초여름 무렵의 일이다. 자영업을 하면서 밤에는 그림을 그리며 자신의 꿈을 실현하고 있는 지인이 보고 싶다고 연락을 해왔다. 가끔 만나서 진행하고 있는 작품들을 사진으로 보고, 자녀들의 성장에 관한 이야기도 나누는 사이였다. 대전의 산밭에서 기르는 도라지라며 타포린 백을 건네주었다. 보통 3년이 지나면 뿌리가 썪기 때문에 옮겨심어야 해서 부모님 약재로 쓰려고 애지중지 관리하는 것이라고 했다. 전에 만났을 때 기침 때문에 곤란해하던 내 생각이 났다고.


 남의 고통을 기억하고 챙겨주는 마음이란 대체 얼만큼 뜨거워야 하는 것일까. 생각할수록 너무 고마웠다. 생도라지 뿌리가 어찌나 실한지 6년근 수삼이 생각날 정도로 굵었다. 흙을 씻어내고 썰어 말려두었는데, 이제야 기억이 난 것이다. 있는 재료들을 챙겨서 끓였다. 센불로 30분 끓이고 약불로 2시간 달였더니 들큰하고 훗맛이 매운 도라지차가 되었다. 며칠 보양하면 분명 기침도 사라지고 숨쉬기도 편안해질 것이다.



대문에 있는 재료에 백강을 추가해 센불 30분, 약불 두 시간 달여서 얻은 도라지차



 계절이 바뀔 때마다 몸이 환절기에 적응하느라 몸살이다. 대수롭지 않았던 감기가 천식으로 악화되는 걸 경험하고 나서는 경각심을 갖게 되었다. 하지만 우리 곁에는 우리의 건강을 관리할 수 있는 천연 약재와 효능 좋은 식품이 많이 있다. 땅과 하늘이 생명을 불어넣고 길러낸 자연의 식물들은 우주의 기운을 품은 약이다. 약도라지를 알게 되어 얼마나 좋은지 모르겠다.


 그러나 뭐니 뭐니 해도 가장 고마운 건 K오지라퍼를 자처하는 심성이 뜨거운 이웃들이다. 까칠했던 나도 변화한다고 했지만 아직 멀었다. K오지라퍼를 만날 때마다 그걸 느낀다. K오지라퍼의 영양권 안에서 이렇게 잘 살아왔으니, 앞으론 부끄러워말고 나도 K오지라퍼가 되어야겠다. 빚진 것이 많으니 할 일도 많고 소심하니 갈 길도 멀다. 이래저래 혼자서는 못 사는 세상 아닌가. 생각나는 명시가 있다. 모르는 분이 없을 만큼 유명한 시다.





 대추 한 알   

                                       장석주


저게 저절로 붉어질 리는 없다

저 안에 태풍 몇 개

저 안에 천둥 몇 개

저 안에 벼락 몇 개

저 안에 번개 몇 개가 들어 있어서

붉게 익히는 것일 게다


저게 혼자서 둥글어질 리는 없다

저 안에 무서리 내리는 몇 밤

저 안에 땡볕 두어 달

저 안에 초승달 몇 날이 들어서

궁글게 만드는 것일 게다


대추야

너는 세상과 통하였구나




- 장석주 시집 [붉디붉은 호랑이]에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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