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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힐링가객 Dec 12. 2023

12월의 웰컴티 -죽엽차와 버터플라이 티

일상힐링 레시피

   12월의 첫눈 유감


 올 겨울 첫 눈은 공중에서 산화되었다. 두 번째 눈은 저녁 무렵 속눈썹과 얼굴에 닿아 작은 물방울이 되어 피부에 스며들었다. 눈이 땅에 닿기도 전에 사라지다니! 흰 눈을 떠올리지 않고는 상상할 수 없는 12월 중순인데, 기막히게 잘 맞는 일기 예보에 따르면 이번 주 내내 영상의 기온을 유지하면서 간간히 비가 내린다고 한다. 비가 내린다고?!      


 추위가 무섭지만 그래도 겨울엔 즐거운 추억이 많다. 크리스마스트리를 만들고 성탄축하곡을 부르는 것도 큰 즐거움이다. 80년대 중후반에 학창시절을 보냈다. 그 시절엔 색지를 잘라 크리스마스카드를 만들어서 친구들과 가족 친지 선후배 지인들끼리 손 글씨로 감사와 축복을 써서 건넸다.           


그런데 나는 그림에 소질이 없어서 눈이 오는 풍경이나 트리를 그려서 카드에 오려 붙였다. 입체적으로 보이면 그림의 여백을 남겨두거나 글씨로만 채워도 나쁘지 않았으므로. 사촌언니는 그림을 기막히게 잘 그렸고, 사촌 오빠는 멋들어진 붓글씨로 장식한 카드를 만들었는데, 그런 재주가 그렇게 부러울 수가 없었다. 덕분에 일찌감치 깨달았다. 내가 미술계와 친하게 지내는 방법은 관람하는 거였다. 그래선지 지금도 그림과 미술품 감상하는 걸 좋아한다.     


 그 시절엔 거리에 나가면 크리스마스 캐럴을 들을 수 있었다. 리어카에서 카세트테이프를 구입할 수 있었고, 레코드가게에선 상가 밖으로 스피커를 설치해서 하루 종일 캐럴을 틀었다. 덕분에 알 수 없는 설렘과 기대로 행복하게 서성이며 크리스마스 분위기를 누렸다. 친구들과 또래들끼리 통하는 은어로 소통하며 웃던 순간이 반짝이는 카드처럼 남아있다.      


 미혼시절 나는 전설 속으로 사라진 종로서적에 근무했다. 6층 건물을 층마다 분야별 책들을 전시해 판매하던 종로서적에서도 연말 한 달은 하루 종일 캐럴을 들었다. 퇴근길엔 서울 시청 근처 호텔과 백화점들이 경쟁적으로 장식한 화려한 크리스마스트리를 배경으로 데이트를 했다. 때론 종각으로, 때론 광화문으로 쏘다니며 젊은 날의 남아도는 에너지를 태웠다.       

    

 당시 데이트 코스에 빠질 수 없었던 재미 중 하나가 오백냥 하우스 거리였다. 카레 김밥 라면 떡볶이 순대 덮밥 우동 등, 수백 미터 골목에 마주한 작은 음식점들은 다양했지만 가격은 500원이었다. 내가 종로서적을 퇴사할 무렵엔 가파른 물가 상승세를 따라 천 냥 하우스로 바뀌었는데, 월급이 백프로 오른 건 아니어서, 한 번에 100% 상승이 말이 되냐고 했었다. 종로 2가의 한복집들이 모여 있는 주단 거리 뒷골목이었다. 지금 그 곳이 어떻게 바뀌었는지 궁금하다. 못갈 곳도 아닌데, 수십 년 동안 그 곳을 잊고 살았다.     

      

 돌아다니는 걸 좋아해서 함께 모험하듯 주말마다 등산을 다니며 청바지데이트를 하던 남자가 짝꿍이 되었다. 대학원에서 이상의 작품들을 연구해 소논문을 쓰고 손창섭 연구로 학위논문을 썼지만 내가 진짜 열심히 연구한 인물은 나 외에는 배우자가 아닐까 싶다. 인연이란 이토록 징한 것이다. 12월은 고맙고 그리운 이들에게 안부를 전하고 감사의 마음을 표현하며 관계를 챙기는 시기다. 가장 고마운 사람도 짝꿍이다. 부모님과 자녀와 가문을 지켜내느라, 늘 어깨가 무거울 텐데 의외의 쾌활한 에너지로 이끌어 가는 뒷모습을 보면서 혼자 울컥할 때가 많다.           


 그 외에도 고맙고 소중하고 안타까운 인연이 많다. 해가 갈수록 관계의 소중함을 느끼게 되는 것은 무슨 이유일까. 감사의 마음도 그만큼 깊어진다. 연약하고 부족한 내가 이 한해를 살아올 수 있었던 것은 헤아릴 수 없을 만큼 많은 이들에게 다 기억할 수 없을 만큼 많은 사랑을 빚진 덕분이다. 한 해를 마무리 하면서 돌아보니 타인을 향한 따스함과 무사히 온몸으로 내 생을 밀고 온 자신에게 대견함을 느낀다.       

         




 크리스마스 축하 연주회


 지난 일요일에 교회에서 크리스마스 축하 연주회를 열었다. 해마다 추수감사절에 가을 음악회를 열었는데, 올해는 크리스마스 시즌에 열게 되었다. 문화적으로 소외된 지역의 주민들과 함께하기 위해 기획된 한솔음악회는 코로나로 인해 거리두기가 선포되었던 두 해를 제외하고 8년차를 이어오고 있다.      

     

 기타리스트 김성은 연주자는 텐션이 높은 일렉기타 연주와 함께 유쾌한 재담으로 웃음을 주었다. 개인적인 취향이지만 나는 연주자가 직접 관람객과 소통하는 것을 좋아한다. 두 번째  곡 유 레이즈 미 업은 내가 좋아하는 곡이라 즐겁게 감상했다. 어쿠스틱 기타의 잔잔하게 파고드는 선율도 환상적이지만, 일렉기타는 섬세하면서도 파워풀한 음역에 포위되면 정신을 차릴 수 없을 만큼 황홀해서 현실로 돌아오기가 쉽지 않다. 첫 순서부터 이미 몰입도가 최상급으로 높아졌다.          


소프라노 손정아님은 뮤지컬 ‘오페라의 유령 중 think of me’와 디즈니애니메이션 인어공주 중 육지를 그리워하는 공주의 노래 ‘저 곳으로’를 연주했고, 그에 대한 화답으로 바리톤 강성근님은 디즈니 애니메이션 인어공주 중 공주의 아버지의 노래 ‘Under the sea’를 불렀다. 어린이들은 물론 어른 관람객들까지 홀딱 반해버렸다. 나는 바리톤 강성근님이 부른 ‘Besame  mucho' 가 좋았다. 짝꿍이 즐겨듣는 안드레아스 보첼리의 테너 버전과는 확연히 다른 또 다른 매력을 느끼며 감상했다. 바리톤 강성근님의 무대는 전에 성남 아트홀에서 보았을 때도 연기력이 좋아서 기억에 남았는데 역시나 극적인 연기로 무대를 압도했다.      


 끝나고 식사 자리에서 교우들과 소감을 나누었다. 낭랑한 테너 음성으로 종종 특송을 부르는 성가대 리더 교우님이 소프라노 손정아님의 연주에 감동했다고 고백했다. 고급스럽게 코팅된 안정감 있는 목소리를 리코딩 음반이 아닌 라이브로 듣는 건 행운이라고 했다. 그래서 한 번이라도 레슨을 받아보고 싶다는 거였다. 그 말을 듣자 곧바로 기대감이 차올랐다. 교우님도 워낙 음색이 고운 테너여서 레슨을 받으면 어떻게 달라질지 궁금했다.            


 순식간에 추억 속으로 들어가서, ‘여긴 어디, 나는 누구?’ 할 만큼 즐겁게 감상한 곡은 색소폰 연주자 정성진님의 무대였다. 케니지의 색소폰 연주 음반에서 들었던, 'Nothing`s gonna change my love for you' 이었다. 젊은 시절, 그 음반을 함께 들었던 사람과 공간, 그 시절의 여행지와 풍경들이 순식간에 펼쳐지는 경험을 했다. 그래서 음악은 힘이 세다는 말이 생겨난 모양이었다.      


 케니지의 음반은 특별한 추억들과 연결되어 있다. 내가 논술강사로 일하던 시절 몰고다니던 카니발 오디오박스에 챙겨 다니던 음반 중 하나였다. 마음에 그늘이 지거나 비가 지나갈 때마다 들었던 것이다.

 어느 해 추석이었다. 명절에 짝꿍이 해외에서 일정을 보내게 되어 나 혼자 명절 준비로 분주했다. 어머님 댁에서 2박의 일정을 보내고 집에 돌아왔다가 친정에 가는 것이 내 계획이었다. 시댁은 시흥, 우리 집은 광주, 친정은 여주였다. 물리적으론 멀지않은 거리인데다, 우리 집은 딱 중간이었다.      


 내 계획과 상관없이 청소년기의 아이들은 저마다 계획이 있었다. 한창 공부 스케줄에 쫒기다 모처럼 명절 휴가를 맞았으니 놀고도 싶었을 거였다. 이래저래 집에 와서 시간이 늘어져 아이들을 재촉해서 출발했을 때는 오후 늦은 시간이었다. 그런데 중부고속도로에서 영동고속도로로 들어가는 길이 너무 막혀서 차가 옴짝달싹 할 수 없었다. 원만하게 조율하지 못하고 다그쳐 출발했기 때문에 아이들이 내뿜는 기류가 마음을 불편하게 했다. 나는 무언가 편치 않으면 묵언하며 삭히는 편이라 차 안의 분위기는 꽉 막혀 있었다. 운전대를 잡고 있는데 피로감이 몰려와 졸리고 구역질이 났다. 순식간에 견딜 수 없는 상태가 되었다. 정체 중이지만 앞차가 움직이니 시동을 끌 수도 없고, 차를 세울 갓길도 없었다. 차문을 내렸다가 올리는 것 외엔 할 일이 없었다.           

 때마침 조수석에 앉은 아들이 오디오를 켰다. 색소폰 연주곡이 흘러나왔다. 케니지의 연주곡 going home 이었다. 두껍고 뻣뻣한 공기를 뚫고 신선한 한줄기 공기가 흘러들어온 듯 한 느낌이었다. 곡의 제목처럼 집으로 돌아가는 상상을 했다. 상행선은 원만한 속도로 가고 있었다. 역설적이었다. 집에서 출발해 꽉 막힌 도로에 갇혀서 going home을 듣고 있는 상황이 갑자기 코믹하게 느껴졌다. 어둡던 마음이 걷히고 웃음이 나왔다.      

 “얘들아 차 막혀서 힘들지? 일단 집으로 돌아가서 쉬고 외할머니 댁은 내일 갈까?”

 그러자 아들이 말했다.

 “에이 그건 아니죠, 출발했으니까 오늘 가는 게 나아요.”

 딸도 말했다.

 “동생들한테 간다고 연락했어요. 벌써 기다리고 있으니까 그냥 가요.”

 사촌 동생들 사이에서 큰 언니로 인기가 좋은 딸아이는 동생들 만날 생각에 기분이 전환되어 있었다. 아들도 툴툴대던 마음이 풀렸는지 외갓집에서 사촌들과 만날 생각에 말랑해져 있었다. 케니지의 연주곡을 들으면서 나도 피로감에서 벗어나 무사히 정체구간을 빠져나갔다. 마음에 작용하는 음악의 드라마틱한 힘을 명확하게 깨달은 날이었다. 그 때 들었던 곡을 다시 들으면서 지난 시간들에 감사했다. 이젠 모두 따스하고 그리운 추억이 되었다.     


 130여 편의 영화 OST(Original Sound Track) 제작에 참여한 백진주 바이올리니스트가 연주회의 피날레를 장식했다. 타이타닉, 해리포터, 캐리비안의 해적 등 익숙한 곡들을 영화의 장면들과 함께 즉석 연주로 감상했다. 그 멋진 연주가 그렇게 휙휙 지나가는 것이 너무 아쉬웠다.     

 

 뭐 듣고 싶어요? 앙코르를 받으면 즉석에서 연주해주기로 유명한 분이라 볼 때마다 신기했는데, 이 번에도 물으셨다. 그리곤 한국의 아름다운 가곡이 너무 많은데 잊혀 가는 것이 안타깝다고 운을 떼고는, 허림 시인의 ‘마중’을 연주했다. 모니터에 띄워주는 가사를 감상하면서 바이올린 연주를 들었다. 한국 가곡은 멜로디와 가사가 심금을 울린다. 어제 딸을 만났는데, 그 날 연주를 듣고 너무 좋아서 지금까지 녹음파일을 계속 듣고 있다고 했다.      


 백진주 바이올리니스트를 처음 만난 건 몇 년 전에 탈북인들 위로 음악회에서였다. 그 후에 개척교회 공사와 미자립교회 리모델링 후원 연주회에서 또 만났다. 맨발로 바이올린을 연주하는 카리스마에 푹 빠졌는데, 차를 너무 좋아한다고 해서 집에 초대해 차담을 나눴다. 그 때의 인연으로 제주도에서도 만나 저녁의 바닷가를 산책하며 이야기를 나눴다. 이번에 연주회에 오시면서 다즐링 프리미엄 티를 선물해 주셨다. 세상에나! 대접하고픈 분에게 오히려 선물을 받다니!     

 

 연주회의 스페셜은 크리스마스 캐럴이었다. 모든 연주자가 자신의 마지막 순서에 크리스마스캐럴을 연주했다. 관람객 전원이 목청을 높여 함께 불렀다. 색소폰 연주로 ‘여러분’을 들으며 가사와 함께 간주 타임에 모니터에 띄워준 위로의 문장들을 마음에 담았다. 정말 위로가 되고 힘이 되는 명문장들이었다.      


 이 번 연주회에서 울컥했던 순간들이 있었다. 정말 따스하고 감동스러운 음악회였다. 연주자와 관람객이 함께 소통하고 참여하는 연주회를 좋아해서 살롱연주회 소식을 접하면 기를 쓰고 달려가는데, 이번 연주회만큼 관람객과 연주자가 하나가 되어 어우러진 건 처음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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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연주회 뒷풀이는 소설가의 다실에서


연주회가 끝나고 식사 후에 ‘소설가의 다실’에 연주자들을 초대했다. 백진주 바이올리니스트는 다른 일정이 있어서 다음에 차 모임을 따로 갖기로 하고 성악가 두 분도 자녀들이 어려서 오지 못했다.기타리스트 김성은님과 색소폰 연주자 정성진님께 차를 대접하면서 연주자들의 특별한 삶과 연주회 에피소드, 연주자들만의 고초를 들었다.      


 김성은님은 보이차를 마시곤 몸이 후끈해지면서 손바닥에 땀이 난다며 여름엔 발효차 마시면 기타 연주를 못할 것 같다고 했다. 다둥이 아빠인 정성진님은 가족과 함께 다도박물관을 관람한 적이 있다고 했다. 아내와 함께 와서 체험하고 싶다고 했다. 초대했더니 초등학생 아이들이 뛰어다녀서 다도는 어려울 것 같다고 하셨다. 그래서 손자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23개월 손자의 다도


두 돌이 된 손자도 꽤 의젓하게 다도를 한다. 손자를 보면 인간의 사회문화적 수용성이 선험적이라는 걸 느낀다. 너무 조심스러워서 나중으로 미루는 것이 아니라 소꿉놀이를 하듯 다도를 하면서 인격적으로 대해주면 아이도 어른들을 모방하고 내면화 하게 되는 것이다.         



덖은 대나무 새순




 내가 준비한 웰컴티는 언제나 죽순차다. 간혹 백차로 시작할 때도 있지만 예외적인 경우다. 어린 대나무의 새싹을 덖어 침출해서 음료로 마시는 죽엽차는 독이 없고 순하며 청혈작용을 한다. 빛깔은 맑은 녹색이고 침출하면 10회 이상 같은 밀도로 우러나올 만큼 뒷심이 좋으며 맛은 달고 맑다. 신선한 건초향이 매우 친근해서 즉시 편안해지는 것도 좋은 점이다. 웰컴티로 죽엽차를 내는 이유는 차모임의 첫 자리에서 향과 맛이 섬세한 차로 입맛을 깨우기 위함이다.           



죽엽차는 끓는 물로 우린다. 10회 이상 침출해도 밀도가 유지될 만큼 뒷심이 좋다.



 웰컴티의 추억


 웰컴티 이야기를 하니까 여행지에서의 경험이 떠오른다. 기억에 남는 웰컴티는 필리핀 세부 섬에 있는 알레그레 리조트에서 마셨다. 아이들이 초등학생일 때 방학이 오면 필리핀에 가서 영어공부를 했는데, 첫 여행 때의 기억이다. 밤에 도착해서 가로등도 없는 길을 달려 임시 숙소에서 몇 시간을 보내고 다시 긴 시간을 이동해 도착한 리조트에서 향기가 기막히게 달콤한 꽃목걸이를 걸어주었다. 실에 꽃을 엮어서 길게 만든 것인데, 우리는 꽃을 걸고 꽃향기에 취한 채 내주는 레몬 홍차를 마셨다. 검붉은 홍차에 레몬수를 몇 방울 떨어뜨려 황금색으로 변하는 것을 보면서 입술을 적셨다. 홍차가 레몬을 만나면 산미로 풍미가 강해지는 걸 경험한 순간이었다.           


 나는 목걸이가 상할까봐 빼서 애지중지 들고 안내받은 숙소까지 갔다. 도착해서 보니 짝꿍의 목걸이는 꽃송이가 빠져나가 줄만 남아 있었다. 리조트에 머무는 동안 새벽에 산책을 나가면 열대의 나무들 아래 어김없이 꽃송이가 떨어져 있었는데, 목걸이를 장식한 바로 그 꽃이었다. 특이한 것은 상하지도 않은 꽃송이가 절정인 모습 그대로 송이송이 떨어져 있는 거였다. 한국의 동백꽃이 생각났다. 꽃받침까지 달고 떨어지는 동백과 달리 아이보리색의 그 꽃은 누드상태였다. 꽃송이가 도톰하고 고와서 그냥 지나쳐 가기엔 아쉬웠다. 그래서 꽃송이를 주워 숙소에 놓았다. 숙소에 들어설 때마다 그윽한 꽃향기가 우릴 맞아주었다. 저녁에는 향기가 너무 진해서 꽃들을 숙소 밖으로 내놓아야 잠들 수 있었다. 나중에 그 꽃의 이름이 일랑일랑이라는 것을 알았다.      

 태국에서 마신 웰컴티도 마술 쇼를 보는 듯 신선했던 기억이다. 호텔 로비에서 등록을 마치자 웨이터가 다가와서 차를 따라주었다. 짙은 남색의 버터플라이 꽃차에 레몬수를 넣자 순식간에 마블링이 일어나면서 맑은 보랏빛으로 바뀌는 거였다. 맛은 구수하고 새큼하다. 버터플라이피 플라워는 나비콩꽃을 말한다. 천연색소가 풍부한 꽃을 말려서 차로 우려 마신다. 침출한 블루컬러의 차는 천연 플라보노이드 성분 중 강력한 항산화 성분인 안토시아닌이 풍부하다. 항염 항산화 항노화 성분이 상처를 치유하고 주름을 개선하는 것으로 알려지면서 미용차로 애용되고 있다.        


요즘엔 나비완두콩을 한국에서 재배하여 꽃차를 만들어 판매하고 있다. 효능이 좋고 다른 차들과 무난하게 어울려서 블랜딩차로 마셔도 좋기 때문에 활용해보면 좋겠다. 나는 건생강과 블랜딩해서 마신다. 블랜딩 해놓은 버터플라리피 플라워 티에 레몬을 넣어 보았다. 역시 레몬 몇 방울이 들어가니 향기도 맛도 좋다.  (대문사진)

   


버터플라이 플라워 건조과정


12월이 되면 따스한 나라로 여행하고 싶어진다. 사실 추석에 태국에서 혼자 명절을 보내는 아들 생각이 나서 짝꿍과 이야기를 나눴다. 겨울에 추워지면 아들도 볼겸 따스한 나라를 여행하자고 계획했다. 그런데 아들이 연차를 내서 한국에 오겠다고 했다. 일정도 비슷한 시기여서 가지 않기로 했다.         

  

 태국에 사는 아들 덕분에 경험한 차들이 있다. 레드티라고 부르는 태국식 루이보스 밀크티다. 아들의 대학 졸업식에 참관하러 갔을 때 견디기 힘든 더위 덕분에 맛보았다. 점보사이즈의 아이스 잔에 주는데, 부드럽고 풍성한 루이보스 밀크티 맛을 음미하다보면 어느새 비워져 있었다. 워낙 더운 날씨라 넣어준 얼음이 빨리 녹기 때문에 큰 사이즈의 잔이 필요하다는 것을 이해했다.         

 

 어느 해인가 아들이 들어와서 웰컴음료를 만들어주었다. 패션프룻에 사이다를 붓고 얼음을 첨가했는데 정말 강렬하고 개운한 맛이었다. 후루룩 마시고 나니 싱싱하게 살아나는 기분이 느껴졌다. 패션프룻의 향기와 강한 산미가 불러있으킨 생기였다.      


 두 분의 연주자와 차를 마신 후 소감을 남겨 주셨다. 무대 생활로 항진되어 있는 교감신경을 이완시키기에 좋은 방법을 찾았다고 했다. 이제부터 차 생활을 하겠다고. 그래서 후일을 기약했다.


 여름의 웰컴티를 소개하면서 12월에 버터플라이 플라으너 티를 꺼내 손자와 마신다. 빛깔이 신기한지 고개를 흔들다가 내가 마시는 걸 보고 호로록 마신다. 레몬이 들어간 상큼한 맛이 익숙한가보다. 동치미 백김치 맛에 푹 빠진 두돌 손자랑 덕분에 즐거운 추억을 만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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