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계절 따스한 나라 태국에서 유학을 시작한 S는 군 입대를 위해 2년간 귀국한 적이 있었다. 대학 졸업 후 태국에서 취업했지만 1년 후 코로나 팬데믹 선포로 관광업종인 회사가 폐업위기에 처해 퇴직해야만 했다. 잠시 귀국한 S는 대학원에 지원해 태국으로 돌아갔고, 태국에 진출한 한국기업에 취업해서 학업과 직장생활을 병행하고 있었다.
태국에서 12년을 보낸 S는 겨울옷이 거의 없었다. 군 입대 전에는 고등학교 시절에 입던 옷들을 입었고, 전역 후에는 사이즈가 늘어 한국에 올 때마다 부친의 옷을 입었다. 간혹 선물 받은 간절기 옷들을 겹쳐 입었고, 한 겨울에도 외투만 있으면 티나 팬츠는 쿨한 소재로 입어도 추운 줄 몰랐다. 그런데 코로나 예방접종을 받은 뒤로 급격히 달라졌다. 너무 추워서 운신을 못할 지경이라 부친의 권유를 받아들여 구스 롱 패딩 점퍼를 구입해 입었다. 곧바로 출국해서 패딩 점퍼를 다시 입을 기회는 없었지만, 그 해 겨울의 추위는 그만큼 굉장했다. 내 아들의 이야기다.
S가 가족 채팅 방에 연차를 쓰게 되어 귀국한다고 날짜를 올렸다.
“크리스마스 연휴를 끼고 온다고?”
“그게 가능해?”
“운 좋네?”
가족 구성원이 돌아가며 한마디씩 했다. 가족이 다 함께 모이는 일은 매우 드문 일이었다. 오랜만에 함께 보낼 수 있다니 기쁜 일이었다.
S가 말했다.
“알아서 갈게요. 공항까지 안 나오셔도 돼요.”
‘이 엄동설한에 여름옷 입고 버스타고 온다고? 태국에 적응하더니 고국의 겨울을 잊었군!’
나는 속으로 웃었다. 인천국제공항에서 집까지 오려면 적어도 두 시간 이상 걸릴 거였다. S가 잊은 건 계절 감각뿐이 아니었다. 처음 몇 년 간은 집에 오기 전부터 김치찌개 타령을 하더니 이젠 김치 생각이 나지 않는다고 했다. 안타까움과 안도감이 동시에 느껴졌다. 하지만 집에 오면 다르겠지. 라고 생각할 뿐이었다.
S가 오기로 한 주간에는 영상의 기온이 지속되고 우기처럼 비가 내렸다. 하지만 S가 도착하던 날, 기다렸다는 듯 강추위가 몰아닥쳤다. 구스 롱 패딩 점퍼를 가지고 짝꿍과 인천국제공항으로 마중을 나갔다.
공항에 우리가 먼저 도착했는데, 교통경찰이 정차 금지구역이라 차를 빼라고 했다. 운전석에 앉은 짝꿍이 한 바퀴 돌아서 오기로 하고 내가 외투를 가지고 내렸다. 5번 게이트 건너편에 S가 나타났다. 여름 옷에 에어컨 방어용 긴팔티를 입고 있었다. 보행신호를 기다리는 동안이 길게 느껴졌다. 영하 10도 였지만, 바람이 불어 체감온도는 더 낮았다. 건너오는 S에게 외투를 내밀고 짐을 받았다.
짝꿍은 공항 내 차로가 복잡해 단기 주차장으로 들어갔다고 했다. S는 한여름 통풍이 잘 되는 기능성 팬츠를 입고 있었다. 춥겠다고 걱정했더니 외투를 입어서 괜찮다고 했다. 짐을 들고 주차장까지 걸어가는데 칼바람이 불었다. 순식간에 S의 얼굴이 새빨개졌다.
입맛도 유전 - 해산물 찬가
밤에 출발해서 아침에 도착하는 일정이라 아침 겸 점심을 먹기로 했다. 뭐가 제일 먹고 싶은지 물었다.
“해산물이요. 태국에선 먹을 기회가 없고, 있어도 맛이 달라요.”
인천대교를 건너 송도에 들러 꽃게탕을 먹었다. 감탄을 하면서 맛있게 먹는걸 보며 꽃게탕은 나도 맛있게 만들 수 있는데, 사 먹이는 것이 마음에 걸렸다. S는 굴요리가 먹고 싶다고 했다. 특히 생굴회와 굴짬뽕이 생각난다고.
평촌 수산시장에 들러 방어회를 뜨고 삼치, 곰치, 굴을 사왔다. 가까이 살고 있는 딸 가족과 함께 해산물 파티를 했다. 두 돌이 막 지난 손자가 오랜만에 만난 삼촌을 보고 어떤 반응을 보일지 궁금했다.
"삼촌이다 삼촌" 하며 안기는 걸 보고 놀랐다. 낯을 가리지 않는 것이 신기했다. 갓 태어났을 때 한달동안 육아에 동참했던 삼촌을 기억하는것 같았다.
소금물에 굴을 씻고 레몬 즙을 뿌려 살균해서 초장을 곁들였다. 포기김치를 곁들여 먹는 방어회는 찰지고 고소했다. S는 1차 방어전이라며 싱거운 농담을 했다. 한국에 왔으니 3차 방어전까지 치렀으면 좋겠다며.
연신 해물찬가를 부르는 S. 해산물을 좋아하는 가족의 전통은 변수 없이 유지되고 있다. 서해안에서도 바다가 아름다운 해미에서 자란 남편의 입맛을 아이들이 빼닮았다. 덕분에 가족을 위한 식사 준비는 해산물이 기본이었다.
그 날 인기가 좋았던 것은 굴 짬뽕이었다. 올리브유에 마늘과 파를 충분히 볶아서 만든 파 기름에 고춧가루를 넣어 고추기름을 만든다. 썰어놓은 무와 배춧잎 당근과 버섯을 넣고 볶다가 생수를 넣고 끓어나면 썰어놓은 청양고추와 파, 손질한 굴을 넣어 마무리한다. 오징어 바지락 홍합 등이 있다면 함께 넣어도 좋다. 나는 제주도에서 조카가 낚시로 잡아 보내준 오징어를 추가했다. 달큰하고 시원한 굴 짬뽕이 되었다. 생각했던 그 맛이라며 흡입하는 S! 딸 부부도 맛있다고했다. 해산물 요리는 솜씨도 손맛도 다 필요없다. 신선한 재료가 맛을 낸다. 그래서 좋다!
급조된 추위 도피여행
"으, 추워! 으어으~~~~~춰! 한국 왜 이렇게 추워요?"
어깨를 움츠리고 부르르 떨면서 S가 춥다고 노래를 불렀다. 평소 실내예약으로 절전하던 보일러를 온돌로 돌렸다. 저녁에 둘러 앉아 차를 마시면서 남편이 물었다.
“태국사람 다 됐구나. 따스한 곳에 가서 며칠 쉴래? 제주도 갈까?”
“겨울 제주도는 아직 못 봤죠. 거긴 따듯해요?”
S가 관심을 보였다. 짝꿍이 휴대폰을 꺼내 검색하더니 항공표도 있고 숙소도 잡을 수 있다고 했다. S는 이틀 동안 친구들을 만나고 계획한 일들을 처리했다. 자영업을 하는 짝꿍도 일정을 조절했다. 딸 가족이 함께할 수 없어 너무 아쉬웠다.
다음날 아침 겨울 음식 중 짝꿍이 가장 좋아하는 곰치 탕을 끓였다. 배추김치와 무 양파와 대파를 듬뿍 넣고 끓여낸 곰치탕은 비린내 없는 시원한 매운탕이었다. 딸도 좋아하는 음식이라 덜어놓은 걸 가져가라고 말해두었다. 아침을 든든히 먹고 청주공항으로 출발했다.
도착예정시간은 여유가 있었지만 길이 밀리면서 예정 시간이 늘어났다. 짝꿍이 전방에서 사고가 난 것 같다면서 항공시간에 맞출 수 없다고 했다. 바로 항공 표를 캔슬하고 다음 항공권을 예매했다. 막히는 길을 40분정도 빠져나가니 연쇄추돌사고에 휘말린 차량들이 갓길에 서있었다. 차들이 많이 상하지는 않아서 사람이 다칠 정도는 아닌 것 같았다. 청주 공항에 도착해 취소한 항공료를 환불받았다. 위약금이 20% 나왔다. 바꾼 항공권으로 무사히 제주도에 도착했다.
<차만> 차관의 문향배 체험
제주도 화북에 여동생이 살고 있다. 연락을 받고 부동산중개업을 하는 동생이 마중을 나왔다. 야간 근무를 하고 퇴근한 큰조카도 만났다. 오랜만에 봐도 반가운 모양이었다. 공항에서 멀지 않은 단골집 <어부의 밥상>에서 쥐치(객주리)조림을 먹었다. 졸깃하고 단맛이 나는 생선이었다.
짝꿍이 <차만>이라는 찻집을 예약해 두었다며 우리를 이끌었다. 여동생은 한라산 상고대가 볼만하다며 권했다. 제주도민이 권하는 상고대도 궁금했지만 다음날로 미뤘다. 동생이 상고대는 운이 좋아야 본다며 하루하루 달라질 거라고 안타까워했다. 잠깐 갈등했지만 차만으로 의견이 기울었다. 중국차 전문점이 궁금했다. 저녁에 제부와 만나기로 했기 때문에 차를 마시면서 위를 편안하게 하고 싶었다.
연북로 산허리에 있는 찻집으로 갔다. 중국의 차를 시연하는 곳이었다. 위치가 높아서 바다가 멀리 보였고 바로 뒤쪽은 쭉쭉 뻗어 올라간 소나무 숲이 있어서 전망이 아름다운 곳이었다. 자연 풍광을 감상하며 차를 음미할 수 있는 분위기였다. 차만의 주인은 청년으로 보이는 젊은 남성이었는데, 청소년기에 중국에 살면서 관련 공부를 하고 귀국한 차 전문가라고 했다. 그의 부모님이 중국에서 차를 생산하여 공급하고 있어 품질 좋은 차들을 보유하고 있었다.
팀별로 일정시간동안 사용할 수 있도록 예약한 차관은 인사동의 찻집과는 사뭇 다른 분위기였다. 백차와 보이차 생차를 주문했다. 공도배와 문향배를 합쳐놓은 것 같은 독특한 다구를 사용해 우린 차를 옮겨놓고 유리 공도배에 배어있는 향기를 음미할 수 있도록 제공해주었는데, 그 향기가 참 오묘했다. 신선한 꽃 향이 어우러진 양질의 백차는 감미가 좋았다.
나와 짝꿍과 아들은 모두 차를 즐기는데, 여동생과 큰조카도 차를 좋아했다. 특히 큰 조카가 차향을 음미하고 차 맛에 감탄하는 걸 보니 대견했다. 잠시 후에 막내 조카도 달려와 합류했다. 여동생네 남매를 다 만나긴 오랜만이었다. 아이들이 어릴 땐 방학을 하면 제주도에서 2주일 육지에서 2주일 함께 보내곤 했다. 보호자 없는 어린이 승객 제도를 이용했는데, 아이들만 비행기에 태워 보내면 담당 승무원이 마중나온 보호자에게서 약속된 암호를 받고 아이들을 인계해주었다. 지나고 보면 모든 것은 추억이 된다. 그랬던 꼬맹이들이 자라 성인이 된 것이 기특할 뿐이었다.
보이생차는 백차보다 더 맛이 좋고 차 맛도 깊었다. 남편과 나는 생차에 매료되었다. 팽주님에게 <茶慢> 찻집의 내력을 듣고 생산하고 있는 차들을 구경하고 메모했다. 다음에 다시 들러 골고루 차 맛을 보기로 하고 다구를 한 세트 샀다.
<차만> 차관의 메뉴와 전경과 충국 운남 차밭에서 직접 생산하여 출품한 보이차 상품들.
낚시한 무늬오징어 회맛
동생이 거주하는 화북으로 가서 오랜 단골집 ‘해찬식당’에서 제부를 만났다. 짝꿍과 제부는 형제보다 더 우애가 깊어서 만나면 껴안고 떨어질 줄을 모른다. 누가 보면 게이 커플인줄 알 정도다. 동생네 가족과 광어회와 매운탕 메로 구이를 먹었다. 나는 해찬식당에서 내주는 부침개를 좋아한다. 부추를 갈아 넣어 매생이 부침개 빛깔이 나게 부친 것인데, 갈 때마다 달큰하게 익은 부추 향기에 한 소당 더 청하게 된다. 회도 좋지만, 지리로 끓여낸 매운탕은 국물까지 한 숟갈도 남길 수 없게 만든다. 메로 구이는 왜 또 그렇게 고소한지.
모이면 술부터 찾을 것 같은 청년들이지만, S와 조카들 중 아무도 술을 마시지 않는다. 그래서 식사 자리는 깔끔하게 끝났다. 우리는 함덕 바닷가에 있는 소노벨 숙소로 가고, 동생 가족은 집에 들렀다가 합류하기로 했다. 짐을 풀고 조경을 감상하며 쉬고 있는데 제부와 큰조카가 왔다. 낚시가 취미인 큰 조카가 무늬오징어를 잡았다며 대접한다고 가져온 거였다.
도마와 사시미 칼까지 챙겨온 걸 보고 빵터졌다. 그런데 회를 다루는 모습이 장난이 아니었다. 무늬 오징어는 부위마다 맛이 다르다며 커다란 접시에 가지런히 회를 떠서 올려주며 맛을 보라고 했다. 고급 일식집 닷지에 앉은 기분이었다. 외모가 아이돌 같은 갓 전역한 조카가 떠주는 회 맛이 일품이었다. 오돌오돌하고, 달큰한 맛이 생선회와는 또 다른 매력이 있었다.
섬돌이 조카가 낚은 무늬 오징어
지난 가을에도 회를 대접받았는데, 어쩌다 한 번 잡힌 거겠지 했었다. 이제는 취미를 넘어 특기가 된 것 같아 신기했다. 조카의 낚시를 힘껏 응원하면서 섬돌이 조카에게 여러 가지 제의를 했다. 낚시 유투버, 제주오름깨기 안내책자 제작 등등. 어릴 땐 곤충 덕후였던 조카였는데, 대학생이 되고 군대를 다녀와 이젠 사회인이 된 것도 기특했다. 그런데 조카의 진짜 특기는 따로 있었다. 바로 노래였다. 더 원의 ‘사랑아’를 특히 잘 불렀다. 노래를 좋아해서 성악 레슨을 받은 남편이 제부와 의기투합해서 조카들과 노래방에 갔다. 나는 남아서 자리를 정리하고 짐 속에 챙겨간 페퍼민트 차를 우려 마셨다.
한라산 1100고지 상고대
다음 날 아침에 동생이 권한 한라산 상고대를 보러 갔다. 1100고지 자연휴양림 산책이 목표였다. 멀리서 보니 상고대는 어제와 다르지 않아 보였다. 차를 달려 중산간으로 들어서자 더 이상 한라산이 보이지 않았다. 눈이 길 옆으로 어마어마하게 쌓여있었다. 고사리와 조릿대 군락지를 새하얗게 덮고 있었다. 올라갈수록 장관이 펼쳐졌다. 잠시도 눈을 못 떼고 동영상도 찍었는데 자연휴양림 근처는 복잡했다. 차도 많고 사람도 많고, 갓길에 주차한 차들이 줄지어 있었다. 휴게소에 도착하니 상황이 이해가 되었다. 제주도 사람들이 다 모인 것 같았다.
한라산 1100고지 자연휴양림 휴게소 근처의 상고대
화장실을 이용하기 위해 잠시 주차할 곳을 살폈으나 틈이 없었다. 안내하는 교통경찰이 매우 강력하게 차량의 흐름을 유도하고 있었다. 주차장 입구가 열려 있어서 들어갔으나 자리가 없었다. 겨우 갓길에 세웠던 차가 빠지는 걸 보고 세워놓고 화장실을 이용했다. 눈앞에 상고대의 고혹적인 풍광이 펼쳐졌다. 하지만 교통이 차에 와서 기다리면서 당장 빼라고 했다. 일단 한 번 빼고나자 자리가 없었다. 한참 지나쳐서 내려가다가 빈 자리를 발견하고 사진을 찍었다. 눈에 발이 푹푹 빠지고, 한라산의 어마무시한 바람을 흡입하자 얼음조각이 될 것처럼 추웠다. 뭍에서 맛본 영하 15도는 비교할 바도 아니었다. 체감온도가 영하 40도는 될 것 같았다.
추위를 피해 남쪽으로 넘어오자 햇살이 비쳤다. 풍경과 분위기가 극명한 차이를 보였다.
위미리 동백군락지를 돌아보면서 겨울 꽃들이 하늘을 덮고 땅도 덮고 있는 장관을 감상했다. 언제든 실망시키지 않는 세화2리 해녀의집에서 갈치조림을 먹었다. S의 2차 방어전 타령에 회 한 접시를 시켰더니 정말 졸깃하고 고소한 방어 한 접시가 나왔다. 서귀포 대명 소노캄에 방을 잡고 올레길을 걸었다. 바다를 조망하며 걷는 제주 올레길 4코스에는 나무들 사이에 하트 포토 존과 대한민국 지도 포토존이 유명하다. 우리는 천백고지의 추위를 잊고 올레길 4코스를 산책했다.
서귀포 위미리 동백군락지. 다양한 교배종 동백꽃. 거대한 나무를 뒤덮은 꽃잎에 감탄하다 문득 나무 밑둥과 길을 덮고 있는 낙화에 울컥 눈물이 났다. 가장 아름다울 때 산화하는 꽃!
바다조망, 수망다원 녹차밭
“바다가 보이는 차밭 다원에서 말차 한잔 어때?”
“좋죠. 오설록은 언제 봐도 좋아요.”
“오설록 말고, 서귀포에도 볼 곳이 많으니까, 가보면 알게 될 거야.”
다원 이야기를 하면서 동시에 몇 군데가 떠올랐다. 도순다원, 서귀 다원, 녹차미로공원, 오늘은 녹차 한잔 등등. 하지만 지난 가을에 잠깐 방문했던 수망다원으로 내비게이션을 설정했다.
언덕길을 타고 중산간으로 올라가는 길은 귤빛이 많았다. 농원 사잇길은 좁고 간혹 방치된 맹지도 있고 헌집도 있어서 길을 잘못 든 것이 아닐까 생각될 정도였다. 하지만 한 번 방문을 해봐서 헷갈리지 않고 찾아갔다. 느닷없이 나타난 수망다원은 여전히 시원하고 아름다웠다. 눈발이 날리고, 바람이 몹시 불었다. 그래도 차밭 너머로 바다와 하늘이 맞닿는 풍경을 보여주려고 전망대에 올라갔다. 언제 봐도 후회 없는 절경이었다. 하지만 거스를 수 없는 해풍에 따귀를 맞고 눈물을 흘리며 내려왔다. 귀가 얼얼했다. 정말 바닷가와 중산간은 온도차가 컸다.
우리는 각각 다른 차를 주문해서 스콘을 곁들여서 먹었다. 나는 맑은 녹차를 남편은 홍차를 주문했다. S는 말차를 좋아해서 다원에 가면 꼭 말차를 마신다. 양이 충분하고 분 잔을 주어서 세 가지 차를 서로 나누어 마셨다.
S의 말차를 맛보았다. 신선하고 진한 녹향이 혀를 감싸는 맛. 예전에 몇 년간 일본 말차를 구해서 마셨는데, 마이크로 미세분말의 섬세한 맛에 매료되었기 때문이었다. 그 때부터 S는 말차를 좋아했다.
그러나 원전사고 이후 일본 말차를 구입하지 않았다. 국산 말차를 구해서 마시고 있었다. 국산 말차가 일본 말차와 다른 점은 차광재배와 분말의 미세도 차이일 텐데, 맛이란 기준을 어디에 두느냐에 따라 품평의 결과가 달라진다. 주관적이고 모호하다. 나는 지금은 국산 말차로 충분히 즐길 수 있다. 특히나 녹차 라떼는 국산차로 만들었을 때 정말 고급스럽고 신선하며 녹차 본연의 맛과 향을 풍성하게 음미할 수 있다.
수망다원을 둘러보았다. 바람을 맞으면서. 눈 속에서 무수히 많은 녹차 꽃을 피우고 있었다. 꽃을 볼 수 있어서 묵은 열매를 볼 수 있어서 다원 산책은 재미있다. 시들지 않고 얼지 않고 윤기가 반짝이는 녹색의 찻잎들이 정말 강해보였다.
서귀포 남원읍의 수망다원, 한 겨울의 녹차꽃이 고랑 안에 그득하다. 유리문 너머 차밭 뒤로 수평선이 보인다.
2박 3일 일정의 마지막 밤이었다. 새벽에 안전문자가 계속 울렸다. 폭설을 예고하는 문자였다. 눈이야 한라산에 만년설처럼 쌓이는 것이고, 산악지대도 아니니 걱정 없었다. 별수럽게 생각하지 않고 나는 매너모드로 설정해놓고 잠들었다.
아침에 짝꿍이 사우나를 하러 간 뒤에 커튼을 열어본 나는 감탄했다, 동백꽃위에 소복하게 앉은 눈과 야자나무에 앉은 눈이 낯설었다. 이상한 조합이었다. 빨강열매가 예쁜 먼 나무도 눈을 뒤집어쓰고 있었다. 눈발은 위협스러울 정도로 굵어졌고 하늘은 어두웠다. 풍경만 보고 감탄할 때가 아니었다. 산악지대가 아니라 제주 전 지역에 폭설경보가 내려진 거였다. 우리는 남쪽에 있는데, 폭설이 내리는 중이었고, 공항은 북쪽이니 동쪽으로 돌던지 서쪽으로 돌아야했다.
뒤늦게 일어난 S도 야자나무에 쌓인 눈을 보면서 비현실적이라고 했다. 그리곤 사진을 찍어 태국의 지인들에게 공유했다.
숙소 창 밖으로 야자수와 동백꽃 위에 쌓인 눈을 발견했다. 해가 잠깐 비치다 캄캄해지더니 폭설이 내려 탈출했다.
제주국제공항에서 겪은 일
햇살이 환해져서 눈이 녹을 것도 같았다. 하지만 십분도 채 지나지 않아 해가 숨고 구름이 짙어지더니 어두운 하늘이 되어 눈이 내렸다. 변화무쌍한 날씨였다. 길 체크를 하면서 실시간 업데이트되는 뉴스와 날씨를 체크했다. 항공운행 상황도 체크했다. 아직은 운행하고 있었다. 계속 눈이 온다면 어떤 변수가 생길지 알 수 없었다.
서귀포 소노캄 주차장에 눈이 쌓여있는 풍경
짝꿍이 뉴스를 보곤 돌아와서 서둘러 숙소에서 출발했다. 폭설 경보지역에서 탈출하는 것이 우선이었다.
성판악, 1100도로, 516도로 등 높은 도로들은 폐쇄되었다. 동쪽 성산 방향으로 돌아가기로 했다.
한참 달려 성산이 보이는 곳까지 갔을 때였다. S가 말했다.
“저 유명한 성산 일출봉을 이렇게 지나가네.”
"보고 갈까? 한 삼십분이면 보지 않겠어?"
운전대를 잡은 짝꿍은 벌써 성산으로 방향을 틀었다. 사실 지체할 시간은 없었다. 게다가 눈길 산행은 두 배 이상 시간이 걸린다. 위험도 감수해야 했다. 내 말을 듣고 S가 포기했다. 아쉽지만 다음을 기약하고 차를 돌렸다.
산악길이 폐쇄되어 좋았던 건 남쪽부터 동쪽해안 바다를 거쳐 북쪽 바다까지 볼 수 있다는 거였다. 눈 앞에 펼쳐지는 풍경이 다채롭고 아름다운데, 멈춰서 사진을 찍을 여유는 없었다. 어쩐지 이 여행이 인생을 함축한 것 같다는 생각을 잠깐 했다. 공항 근처에서 비행 시간이 지연되었다는 메시지를 받았다. 단골집 엉덩물 식당에서 여동생과 큰조카를 만났다. 야근을 하고 피곤할텐데, S와 작별하려고 공항근처에서 기다려준 큰조카가 고마웠다. 옥돔물회와 성게국을 먹고 육친과 찐 포옹을 하고 헤어졌다. 그 때까지도 우리에게 무슨 일이 일어날지 알지 못했다.
비행기 수속을 밟고 들어가서 두 번째 지연소식을 접했다. 눈은 점점 더 많이 내렸다. 지연 메시지를 한 번 더 받고 변경된 게이트를 찾아가서 기다리다 드디어 탑승을 했다. 그러나 대기 상태로 비행기는 움직이지 않았다. 30분에 한 번씩 안내가 나왔다. 활주로와 비행기 제설작업 때문이라고 했다. 세 시간이 넘어서야 비행기 제설작업 순서라 이동한다는 안내를 들었다. 최소 한시간은 걸린다는 거였다.
활주로에서 대기하는 시간동안 좁은 비행기 안에서 꼭꼭 붙어서 앉아있는 것이 여간 힘든 일이 아니었다. 성게미역국을 먹은 나는 울렁거리고 산소가 부족한 느낌이 들었다. 화장실에 다녀와도 증상은 가라앉지 않았다. 스트레칭을 하고 눈을 감아도 점점 더 가슴이 조여 오는 답답함에 숨쉬기가 힘들었다. 폐쇄공포증인가 싶었다. 울렁증과 편두통이 일었다. 답답함을 이겨내려고 복식호흡을 했다. 이러다 공황발작을 일으키는 건 아닐까 불안이 몰려왔다.
그러는 중에도 동생에게서 계속 메시지가 들어왔다. 걱정이 되어 상황을 체크하고 있다고. 나는 혼미한 정신을 집중해서 답장을 보냈다.
“탑승 4시간째 활주로 대기 중”
휴대폰 액정을 들여다보니 토할 것 같았다. 마침 생수와 컵을 들고 승무원이 다가오는 것이 보였다. 나를 구원할 천사로 보였다. 손을 들고 생수를 받았다. 생수를 마시니 즉시 살 것 같았다. 이후 한 시간 동안 두 번 더 생수를 청해서 마셨다. 덕분에 증상은 빠르게 호전되었다. 나는 생수의 위력에 다시 한 번 놀랐다. 필수불가결한 생수의 성분과 효능을 모르지 않았지만, 목마름은 물론이고 답답함과 불안까지 해소가 된다니! 울렁거리던 속도 가라앉는 것이 느껴졌다.
제설을 마치고 곧 이륙한다는 기장의 안내가 있은 후 비행기가 활주로를 향해 이동하더니 곧바로 이륙했다. 대낮에 들어간 비행기가 상공 위로 올라가 구름 위의 노을을 바라보며 날고 있었다. 안도의 한숨이 나왔다. 이륙할 때의 진동과는 비교도 안 되는 조용한 랜딩으로 비행을 마쳤다. 무사히. 청주공항엔 연착된 비행기를 기다리는 사람들이 많았다.
다음날 뉴스에서 우리 뒤 순서부터는 운항을 취소하고 승객들이 공항에서 밤을 보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오랜만에 고국을 찾은 S의 휴가는 추위와 폭설로 인해 드라마틱한 추억을 얻었다. 매일 설경 속에서 일정을 시작하는 행운을 누렸고, 오는 날부터 가는 날까지 추위와 눈이 따라다녔다. 뉴스에서 올해가 8년 만에 맞이한 화이트 크리스마스라고 했다.
어제 S가 출국했다. 원하던 고국의 계절 해산물로 충전하고 떠나보낼 수 있어서 다행이었다. 해산물 요리와 함께 고향을 추억 할 S가 건강하길, 남은 논문 학기도 잘 마치길 기도했다. 딸도 오늘 가족 여행을 갔다. 이 연말에 가족이 함께 모여 따스한 시간을 보낼 수 있어 그 어느 때보다 감사했다.
힐링을 위해 떠난 이번 여행에서 깨달았다. 일상이 가장 좋은 힐링이라는 걸. 그리고 다시 한 번 확인했다. 가장 좋은 것, 우리 몸이 원하는 치유의 원천은 생수라는 걸. 이번 여행에서 <차만> 중국 차관도 경험하고, 수망다원에 가서 차밭을 산책하며 맑은 녹차도 마셨지만 말이다.
2시, 대낮에 탑승했는데 이륙한 비행기가 구름층을 뜷고 올라가자 이런 비현실적인 풍경이 쳘쳐져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