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필 비가 내리는 날이었다. 번개를 따라 내려치는 천둥은 하늘이라도 무너뜨릴 태세였다. 중학교 신입생이었던 나는 학교 안에 떠도는 괴괴한 소문 때문에 화장실도 혼자 못 갈만큼 움츠러들었다. 점심시간엔 함께 도시락을 먹은 친구들과 삼삼오오 모여 수다를 떨었다. 5교시가 미술시간이라 그 날은 여유가 있었다. 화제는 실체가 없는 '카더라'류의 괴담이었다.친구들과 함께 할 때는 재미있지만 돌아서면 혼자 있기가 무서운 괴담 시리즈가 날마다 새로운 버전으로 업그레이드 되어 학생들 사이로 퍼져나갔다.
미술 선생님은 성격이 활달하고 유연해서 인기가 좋았다. 웃을 때마다 순식간에 눈이 지워지고 반달눈썹만 보이는 익살스런 웃음이 선생님의 트레이드 마크였다. 만만하고 편안한 과목인데다 활동에 자유를 주는 시간이라 미술적 표현에 서툰 나도 좋아하는 시간이었다. 준비물을 가져오지 못하는 학생에게도 모욕감을 주지 않았고, 대신 할 수 있는 활동을 주거나 준비된 친구들과 조별 활동으로 엮어 간접경험이라도 할 수 있게 해주었다.
당시 영어 선생님은 매일 시험을 보았고, 틀린 개수만큼 손등을 박달나무로 때렸다. 다음 시험엔 더 많이 틀린 부분을 배수로 때렸기 때문에 영어 선생님은 악녀라는 별명을 얻었다. 영어 시간이 지나가면 친구들은 시퍼런 멍이 든 손등을 마사지하면서 폭력으로 공부를 강요하는 영어선생에게 온갖 저주를 퍼부었다. 채벌하는 선생님의 과목은 다른 과목 시간에 과제를 할 만큼 위력이 컸기에 아이들은 미술시간을 대충 그런 시간으로 활용했다.
그 때는 무자비한 폭력 속에서도 부당함을 주장하거나 반항하는 학생이 없었다. 누군가 물건을 잃어버리거나 친구들과 싸우면 아무 연관도 없는 반학생 전부를 책상위에 무릎꿇려놓고 허벅지를 때리기도 했다. 학교에서 그런 폭력이 일어나도 부모를 비롯해 누구도 우리의 탄원을 들어주지 않았다. 알리면 오히려 야단을 맞았기 때문에 폭력을 호소할 곳조차 없었다. 우리가 배운 것은 뼛속에 새겨질 만큼 일관성 있는 일방적 예법이었다. 선생님이란 자고로 완벽한 현인이므로 무조건 믿고 따르면서 귀한 가르침을 받아야 한다는. 학생의 인권을 보호하느라 교사의 인권이 실종되어 버린 지금의 기준에서 보면 이상한 시절이었다.
선생님 말씀 잘 들어라. 선생님의 훈육은 귀한 것이니 감사하게 받아라. 입에 쓴 약이 몸에 좋은 거란다. 모난 돌이 정을 맞는 법이니 미련하게 살지 말고 칭찬보다 꾸중을 새겨들어라. 선생님을 존경하고 선생님의 그림자도 밟지 마라.
비가 와서 창문을 열지 못해 교실은 찜통이었다. 선풍기도 없고 전등도 없는 교실이었으니 컴컴하기도 했다. 미술선생님이 들어와서 인사를 마치자마자 아이들이 졸랐다.
“무서운 얘기 해주세요.”
“너희들 공부하기 싫구나. 그런 날도 있지. 수업하고 끝나기 10분 전에 재밌고 무서운 이야기 해줄게. 너희들이 집중하면 말이지.”
아이들은 실망했지만 따를 수밖에 없었다. 기말고사 대비 미술교과서 이론수업을 진행했다. 이야기를 들으려고 제법 집중했다. 그러는 사이에도 번개가 섬광을 번쩍이고 우르릉 쾅쾅 천둥이 울부짖었다. 끝나기 10분 전, 드디어 납량특집 시간이라며 선생님이 이야기를 시작했다.
“너희들 소문 들었지? 학교는 원래 공동묘지 자리에 세워지는 거. 여긴 어떤지 모르겠는데, 내가 다닌 학교는 그랬거든.”
선생님이 이야기를 시작하자마자 쥐죽은 듯 조용해졌다. 그 즈음 학교 안에 떠돌던 괴괴한 소문을 딱 집어서 말씀하신 것이 우연이 아닌 것 같았다. 금방 울음이라도 터질 것처럼 오그라든 표정으로 옆줄에 앉은 친구가 손을 들었다.
“오줌 쌀 것 같아요.”
“그래? 그럼 다녀와야지. 싸면 안 되잖아?”
아이들이 와하하 웃었다. 그런데 그 친구가 또 손을 들었다.
“혼자는 못 가겠어요. 무서워요.”
“그래? 그 조 친구들 다 같이 갔다 와.”
친구들은 못마땅한 얼굴로 일어났다. 미적거리는 친구도 있었다.
“기다렸다 이야기할 거니까 걱정 말고 다녀 와.”
그랬더니 같은 조 친구들이 일어나 중얼거리면서 화장실로 갔다.
아이들이 나가자마자 선생님이 말씀하셨다.
“쟤네들 선견지명이 있네. 이야기 듣고 나면 화장실 못 갈 텐데, 그런 줄 아는 모양이야.”
그러자 몇 몇 아이들이 또 일어나서 화장실을 갔다. 눈총을 맞으면서 나가는 아이들을 보면서 선생님이 말씀하셨다.
“이제라도 가는 것이 현명하지. 가고 싶은 사람들 다 다녀와도 돼.”
남아있던 친구들도 우르르 일어나서 화장실로 갔다. 아이들이 돌아와 자리에 앉자 선생님이 고개를 앞으로 빼고는 강렬한 눈빛으로 교실 안을 훑어보셨다. 그리곤 긴장감 있는 낮은 목소리로 이야기를 시작하셨다.
딱, 이런 날이었어. 방학이었는데 선생님은 매일 학교에 갔거든. 친구들 몇 명이 도시락 싸가지고 학교에서 만나서 같이 밥도 먹고 빈 교실에서 공부도 했어. 그 날은 비가 많이 와서 그런지 나랑 친한 친구 한 명만 학교에 간 거야. 교실에 우리 둘만 있었어. 다른 날처럼 떠들지도 않고 공부가 잘 되는 거야. 한참 공부를 하고 있는데 복도에서 발소리가 들리더니 누군가 문을 쾅쾅 두드리는 거야. 엄청 크게.
친구랑 나는 너무 놀라서 눈을 마주치고 가만히 일어나 문으로 갔어. 내가 문을 열려고 하는데 친구가 문 앞에 있는 걸상으로 올라가면서 창문으로 복도를 보는데, 밖에서도 누군가 까치발을 뜨고 창문을 보고 있어서 눈이 딱 마주친 거야. 친구가 깜짝 놀라 손을 허우적거리면서 내려오더니 문을 열라고 하더라고. 내가 문을 여니까 후배가 확 뛰어 들어왔어. 우리는 뭔 일이냐고 물어봤어. 그랬더니 후배가 빨리 문을 닫으래. 그래서 일단 교실 문을 닫고 후배를 진정시켰지. 그 후배도 항상 학교에 공부하러 왔기 때문에 얼굴은 알고 지냈거든. 별로 친하진 않았고.
“제가 화장실 가려고 복도에 나갔는데요, 원래 교실마다 몇 명씩 공부하잖아요. 그런데 너무 조용한 거예요. 아침에 얘기소리 들었고, 점심시간에도 복도에 발소리 들렸거든요. 그래서 오늘은 일찍 가야겠다고 생각했어요. 그런데 여자 화장실에 갔더니 바닥에 피가 뚝뚝 떨어져 있는 거예요. 이게 뭐지 싶어서 무섭기 했는데, 꾹 참고 누구 있어요? 하고 물었는데, 화장실에서 이상한 소리가 나는 거에요. 그대로 뛰어 나와서 여기로 왔어요. 선배님네 교실엔 누군가 있을 거 같아서요. 저희 반엔 오늘 저 혼자거든요. 그 피 뭘까요? 저 화장실 가야 하는데, 혼자서는 못 갈 것 같아요. 저 혼자선 교실에도 못가겠어요.”
우린 바짝 졸았어. 피라니! 경찰서로 가야하는 거 아닌가? 학교 밖으로 나가면 경찰서가 있었어. 그런데 뭔 일인지는 알아야 신고를 하지, 그냥 이상하다고 신고부터 할 수는 없는 일이잖아? 우리는 심각하게 고민하고 말도 안 되는 추리를 하다가 한 번 더 용기를 내서 가보기로 했어. 그런데 우리들끼리 가는 것보다 누군가 있으면 같이 가자고 한 거지. 절대로 앞으로 나서지 않으려는 후배를 데리고 교실을 하나씩 노크했어. 그런데 교실들마다 텅 비어있는 거야. 빗발은 더 굵어지고 천둥 번개도 쳤어. 점점 더 캄캄해져서 복도 끝이 희미했어.
우리는 빨리 집으로 가는 것이 낫다고 계획을 수정했어. 후배 교실로 가방을 가지러 갔는데, 교실 문이 안 열리는 거야. 우린 너무 놀라서 후배를 봤어. 그런데 순간 후배가 묘한 웃음을 짓는 거야. 히쭉 웃는데 정말 소름이 끼쳤어. 후배가 말했어. 잠겨서 허스키한 목소리로.
“놀라게 해서 죄송해요. 깜박했는데 제가 앞문을 잠갔어요.”
“야, 말을 했어야지. 그럼 빨리 뒷문 열어봐.”
놀란 친구가 화를 냈어. 후배가 뒷문을 열고 들어가더니 가방을 챙겨서 나왔어. 우린 함께 교실로 돌아와서 우리 가방을 챙겨가지고 나왔어. 문제는 우리 교실은 3층 중간에 있었고, 교실마다 비어 있어서 컴컴한 복도를 지나 1층 현관까지 내려와야 했다는 거야. 그래서 우린 셋이 손을 잡고 나란히 내려왔어. 최대한 발소리를 내지 않고 내려갔어.
뒤에서 누가 목덜미를 확 잡아챌 것 같아서 머리카락이 주뼛주뼛 섰어. 현관 밖을 살펴보다가 밖으로 나오자마자 달려서 무서운 학교를 빠져나갔어. 그리곤 각자 헤어져 버스를 타고 돌아갔어.
여기까지 이야기한 선생님은 다시 한 번 우리를 둘러봤다. 긴장한 채 선생님을 보고 있는데 마침 종이 울렸다. 그랬더니 선생님이 반달눈을 만들고 웃으면서 말씀하셨다.
오늘은 여기까지. 다음 편은 다음에 번개 치는 날 들려줄게.
우리는 모두 김이 샜다. 미술 선생님과 친분이 있었던 나와 몇몇 친구들은 선생님을 따라다니면서 물었다. 그 피는 어떻게 됐냐고.
비밀이야, 너네만 알면 재미없잖아.
번개 치는 날은 오지 않았다. 그러다 선생님이 전근을 가신다는 소문이 들렸다. 때는 겨울방학을 코앞에 두고 있었다. 선생님께 물어보았다.
나중에 원망할까봐 알려줄게. 그 때 화장실에 떨어져 있었던 피는 여주라는 열매의 씨앗이었어.
여주라는 열매의 씨앗을 본 적이 없었다. 괴이하고 싱거운 이야기로 인해 처음 들은 그 열매가 몹시 궁금했다. 어떻게 생겼기에 그런 오해를 할 수가 있을까.
사랑이 식었나 의심스러웠다
내가 처음 그 열매를 봤을 때의 충격이 어땠는지 짐작할 수도 없을 것이다. 살아가는 동안 놀랄 일이 많았지만 어떤 열매를 보면서 그렇게 놀라는 체험은 드물다. 어린 시절 울타리엔 특이한 식물이 많았다. 우리 집은 남한 강 지류에 자리 잡고 있어서 강과 산이 지척이었다. 자두나무 감나무 대추나무 사이를 보리수나무와 싸리나무가 채우고 있었다.
울안을 화초로 가득 채우던 엄마는 어디서 신기한 씨앗을 얻었다며 쌈지에 싸가지고 오셨다. 한약재로도 쓴다는 씨앗은 누군가 장식품으로 쓰려고 정교한 모양으로 깎아놓은 것 같았다. 엄마는 그 씨앗을 한지에 소중히 싸서 벽장에 넣어두었다.
뭐든 가지런히 정리해야 직성이 풀리는 아버지는 싸리나무 울타리가 곁가지를 내면 가지런히 하늘로 정리해서 새끼줄로 넌출넌출 엮어 정리하셨다. 그러면 울안이 한결 넓어지고 울타리는 울타리 역할을 제대로 하게 되었다. 울타리 사이로 족제비와 뱀이 드나드는 일이 많았고 아무리 단속을 해도 부엌엔 도둑고양이가 드나들었다. 엄마는 정말이지 도둑고양이를 싫어하셨다. 아버지 말로는 그래야 나무가 곧게 자란다고 했다.
엄마가 씨앗을 언제 심었는지는 기억나지 않는데 여린 싹이 올라오자 ‘유주’라고 가르쳐주셨다. 싹이 자라는가 싶더니 어느새 덤불손이 울타리를 타고 여러 갈래로 올라갔다. 덩굴식물은 아주 이상한 열매를 맺었다. 열매 모양은 길쭉한 오이를 닮았으나 온 몸에 가시가 돋을 것처럼 볼록볼록 튀어나온 모양이 흉했다. 오소소 소름이 돋은 것 같기도 한 초록 열매는 노랗게 익어가면서 세 갈래로 벌어졌다.
날벌레가 날아드는 들큼한 향기를 풍기는 열매 속에는 붉은 과육이 몽글몽글 들어있었다. 붉은 알갱이 중 몇 개는 아래로 쏟아지고 나머지는 껍질에 붙어 비득비득 말라서 떨어졌다. 붉은 과육 안에 칼로 깎아서 무늬를 새겨 넣은 것처럼 오묘하게 생긴 씨앗이 들어 있었다. 씨앗이 감싼 과육은 핏방울처럼 붉고 말캉했지만 씨앗은 제법 굵었다. 유주의 다른 이름이 여주라는 것을 그렇게 알게 되었다.
우린 그 열매를 빨아먹고 씨를 뱉어서 말렸다. 인스턴트식품이 흔치 않았던 그 시절엔 단 것을 먹을 기회가 매우 드물었다. 가장 당도가 높은 것은 감과 고구마 정도였다. 유주열매는 단맛이었다. 잘 익어 벌어진 노란 유주 안에 탐스럽게 들어앉은 새빨간 열매는 과육은 적었지만 매력이 있어서 남아나지 않았다. 유주라는 열매의 한살이를 그렇게 목격했다.
엄마는 그 열매가 약용식물이라고 했는데, 익지 않은 열매를 썰어서 설탕을 넣고 담갔다. 유주에서 수분이 빠져나와 설탕과 어우러진 청이 되면 베보자기에 걸러서 병에 보관하셨다. 찬물에 희석한 유주 청을 맛보라며 건강음료라고 하셨다. 첫맛은 달고 뒷맛은 몹시 썼다.
“원래 보약은 입에 쓴 거야.”
맛 없는 걸 먹일 때마다 곁들이는 엄마의 명언이 어김없이 따라왔다. 그걸 음료수라고 만들어주시는 엄마가 이상했다. 엄마가 우리에게 왜 그러시는지, 사랑이 식어버렸나 의심스러웠다. 하지만 그 기억도 얼마 안가서 잊어버렸다. 내가 고향을 떠나왔기 때문이었다.
여주를 다시 만난 것은 짝꿍의 당뇨 때문이었다. 짝꿍이 여주 차를 복용하기 시작한지 20년이 넘었다. 초반에는 여주가 좋다고 해서 여행을 하다가 여주가루를 보고 구입했다. 여주가 사실은 내가 알고 있던 유주라는 것을 사진 덕분에 알았다. 처음엔 여주분말을 물에 타서 먹었다. 그러다 건 여주를 구매해서 먹었다. 지금은 내가 사는 지역의 농협과 로컬푸드마켓에서 건여주를 판매하기때문에구하기 쉽다. 제철에는 생여주도 구할 수 있다.
여주 차에 함유된 케르세틴은 혈관 내벽을 강화시키고 혈관을 확장시켜 혈압을 낮추고 동맥 경화를 예방한다. 체내 콜레스테롤 수치를 낮춰주어 고혈압 예방과 관리에도 효과적이며 혈액 순환을 원활하게 하여 심장 건강을 증진시키는 데에 도움을 준다.
여주 차는 식물성 인슐린이라고 불린다. 혈당 조절 효과가 돼지감자나 우엉보다 훨씬 뛰어나며 소화효소인 인슐린을 분비하는 췌장의 베타세포 손상을 억제하여 인슐린 분비를 촉진한다. 우리 몸은 음식을 섭취할 때마다 분비되는 천연 효소가 있어서 소화 및 체내 흡수가 되면서 건강을 유지한다.
다양한 항산화물질 함유 비타민 C와 카로티노이드 등 필수 비타민과 루테인, 케르세틴, 콜레인 등 우리 몸에서 발생하여 노화를 가속화시키는 자유 라디컬을 제거하여 세포 손상을 예방하고 면역 체계를 강화시켜 주는데 효과적이다. 강력한 항산화성분인 카란틴은 암세포의 성장을 억제한다.
여주 차는 간 기능 개선에 매우 효과적이다. 여주 차에는 간의 독소를 제거하고 함유된 카란틴이 간세포의 재생을 촉진한다. 뿐만 아니라 간에 축적되는 지방을 분해하여 배출하도록 돕는다.
그 외에도 식이섬유가 풍부하고 수분 함량도 높아서 장운동을 활발하게 만들어주고 변비를 개선시키는데도 효과적이다. 또 식물성 에스트로겐 성분이 풍부해서 갱년기 증상 완화에도 도움을 준다.
필수 아미노산 중 하나인 트립토판이 함유되어 있어 세로토닌 생성을 도와 우울증 치료제로 쓰이며 두피의 열을 내려주고 머리카락이 빠지는 것을 줄여주어 탈모 예방에도 좋다고 한다.
여주 차의 부작용
여주에는 칼륨이 다량 함유되어 있어 신장질환을 가진 분들은 주의해야 한다. 일반적으로 여주차를 다량 섭취할 경우 소화 장애, 복통, 설사 등의 증상이 나타날 수 있다. 이러한 증상이 발생할 경우, 섭취를 중지하고, 증상이 지속되면 의사와 상담해야 한다.
여주의 씨앗은 생으로 먹을 경우 구토나 설사, 복통 등 위장장애가 나타날 수 있어서 주의를 요한다. 가열하거나 볶아서 사용하는 것이 안전하다.
어떤 좋은 식품이라고 해도 약용으로 섭취할 때는 주의가 필요하다. 장기간 지속적으로 섭취하는 것보다 3~4개월 섭취한 후에는 3~4개월 쉬었다가 다시 섭취하는 것이 무리가 없다.
여주 차는 첫맛은 쓰고 후미가 매우 깔끔하다. 당뇨질환을 가진 분들이 도움을 받을 수 있는 좋은 식품이 가까이 있어서 참 감사하다. 이렇게 착한 비용으로 간과 혈관의 질환을 예방하고 노화도 늦출 수 있다니 이보다 좋을 순 없는 식품인 것이다.
짝꿍에게도 감사하다. 함께 성장하자는 약속을 참 열심히도 지켜왔다. 이른 나이에 당뇨질환을 진단받았지만 부지런히 운동하며 식습관을 조절해 건강 관리를 잘 해오고 있다. 무엇보다 나에겐 없는 실행력과 유연성으로 끊임없이 자신과 주변을 확장시켜온 짝꿍 덕분에 나 또한 도전하고 성취하며 살아왔다. 서로에게 든든한 반려자가 된다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다. 나의 부족함을 생각하면 갑절로 감사하게 된다.
언제 무엇을 하던 내가 하는 일에 격려와 지지를 보태주는 짝꿍을 위해 오늘도 여주 차를 끓인다. 오랫동안 짝꿍만 복용하던 여주차를 최근 몇 년 간 나도 한 잔씩 복용하고 있다. 마실수록 매력이 느껴지는 차다. 나는 입이 텁텁할 때 마신다. 이 글을 읽으시는 분들도 여주차로 젊어지고 건강해지시길 기원한다.
여주 차 우리는 방법
나는 하이브리드 전기레인지를 사용하고 있다. 주전자에 1.5L의 생수를 넣고 물이 끓어나면 깨끗이 씻은 건 여주를 밥그릇으로 한 공기(두 손에 쏙 들어오게 한 줌) 분량 넣는다. 중불로 30분간 우린 후 불을 끈 채 불판 위에 두고 식을 때까지 우린다. 완전히 식으면 열매를 건져내고 물병에 보관한다. 겨울철엔 상온에, 봄가을엔 시원한 곳에, 여름엔 냉장고에 보관한다. 하루 1~2회 200ml 컵으로 한 잔씩 복용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