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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힐링가객 Mar 28. 2024

'그분'의 잔소리쏭

2. K오지라퍼 K할머니


       

 지난 명절에 시어머님을 모시고 왔을 때였다. 현재 슬하에 2남을 두신 어머님은 딸을 키워본적 없어서 딸 있는 친구분들을 늘 부러워하신다. 정서적으로 이야기를 나눌 대상이 없어서 그런지 말씀은 별로 없으신 편이다. 그래도 어릴 때부터 크리스천으로 살아오면서 교회 공동체에 속하여 또래 어르신들과 신앙생활을 하면서 늘 기도하고 봉사에도 참여하신다. 


  가까이 사는 딸이 손자 Y를 데리고 할머니를 뵈러 왔다. Y는 처음 만난 집안 어른이라도 낯을 가리지 않고 금방 사귀는데, 그 날은 컨디션이 좋지 않았다. 속이 편치 않은 듯 칭얼대며 서성이던 Y가 대변을 보았다.  

    

 속이 불편해서 그랬나봐요!     


 딸이 이야기하고 Y를 화장실로 데려갔다. 따스한 물을 받아서 Y를 목욕시킨 후였다. 조용하시던 어머님이 딸을 쫓아가서 큰 소리로 말씀하셨다.      


“아이고 이 춘디 목욕을 시켰다니? 얼른 입혀라 얼른 옷 입혀. 머리부터 말려줘야 감기 안걸리지, 머리 젖으면 고냥이처럼 감기 걸린다. 어여 빨리 뜨뜻한 바람으로 말려줘라. 아이고 춰서 워쩌. 이걸 워쩌. 허긴 옛날 집은 더 췄지. 목욕만 시키면 와들와들 떨었단다. 느이 아버지도. 그랬단다. 얼른 입혀라 얼른. 감기 걸릴라, 얼른 입혀줘. 얼른 ….”     


“할머니, 쉿! 지금 하고 있잖아요! 열심히 입히고 있는데 어떻게 더 빨리 입혀요.”     


 어머님과 딸의 반응이 너무 익숙해서 웃음이 나왔다. 리드미컬한 랩 버전의 잔소리쏭. 내가 딸을 키울 때 늘 듣던 말씀이었다. 기분 상하거나 이상하다고 생각한 적 없었는데, 딸의 반응은 또 딸 다웠다. 하지만, 어머님은 멈추지 않으셨다.     


 “아이구 느이 엄마 성깔은 아직도 칼칼허구나. 춘디 워쩌겄냐. 빨리 옷입혀 주라는게 뭐 잘못됐냐? 얼렁 입혀라. 허허 빨리 입혀줘. 허허.”     


 결국 딸도 깔깔 웃고 어머님도 껄껄 웃었다. 웃음을 참느라 호흡곤란을 겪던 나도 결국 터지고 말았다. 그런 나를 보고 어머님은 더 숨이 넘어가게 웃으셨다. 끄윽끄윽 웃느라 얼굴까지 빨개지셨다. 우리가 다 같이 웃자 영문 모르고 손자도 따라 웃었다.    

  

 매생이 굴국을 끓여서 어머님과 손자까지 따스한 저녁을 먹었다. 딸은 아쉬워하며 할머니를 꼭 껴안고 작별인사를 했다. 아기의 재롱을 오래 보고 싶으셨던 어머님은 잠투정하는 증손자를 보내곤 아쉬워하셨다.      

 





 충청남도 홍성에서 태어나 서산군 해미에서 결혼생활을 하셨던 어머님은 무르익은 충청도 방언을 구사하신다. 서울 영등포에서 태어나 여주에서 성장기를 보내고 서울과 경기권에서 장년기를 보낸 나는 충청도 방언이 아직도 낯설다.      


 “느이 니열 모리 워딜 간다고 혔어?”     


 어머님의 질문에 대답대신 앞으로 푹 고꾸라져 웃은 적도 있다. 표현이 너무 재밌어서 남모르게 웃느라 돌아서기도 했다. 유머스럽고 의뭉스러운 충청도 말의 묘미는 단박하고 깔끔한 충청도 음식과 절묘하게 조화를 이룬다.


 고백하자면 나는 어머님의 극성팬이다. 종손인 어머님은 나의 원조 스승님이다. 살림도 사랑도 신앙생활도 어머님이 가장 진실된 모델이 되어 주셨기 때문이다. 어머님을 댁으로 모셔다 드리고 돌아온 뒤에 딸이 말했다.    

  

“우리 할머니가 K할머니인줄 몰랐어요."


그 날의 분위기가 생각나서 웃음이 나왔다. 딸은 웃을 기분이 아닌 모양이었다. 오히려 꽤나 진지했다.  


 "순간 이 분이 우리 할머니가 맞나 싶었잖아요. 진짜 그날은 너무하셨어요. 다 준비해 놓고 씻겼는데, 애기 옷 다 입힐 때까지 쉬지 않고 똑 같은 말씀 계속 하셨잖아요. 순간 나도 모르게 한마디 했는데, 지금도 이해가 안가요. 정말 할머니 왜 그러시는 거에요? 그렇게 채근당한 건 처음이었어. 폭풍 잔소리가 그런 건 줄 처음 알았잖아요.”      

 

 딸이 모노드라마 찍는 줄 알았다. 평소 발화법이 명쾌한 편이라, 그렇게 길게 넋두리 하는 걸 처음 봤다. 나와 시선이 마주치자 딸이 머리를 저으면서 한탄했다.      


“아놔, 참았어야 했는데, 할머니 상처 받으셨을까 봐 계속 신경 쓰여요.”     


 사실 딸과 어머님은 명콤비였다. 나를 사이에 두고 걸핏하면 아삼육이 되어 편을 먹었다. 내가 철저히 금지하는 불량식품을 손녀가 원할 때마다 기꺼이 허락해주시는 할머니였다. 딸을 길러보지 않아서 손녀의 애교작전에 속수무책이었다.     

 

 혓바닥을 파랗게 혹은 빨갛게 물들이는 새콤달콤한 맛의 사탕이나 젤리 아이스크림을 먹고 싶을 때마다 손녀는 할머니에게 애교폭탄을 날렸다. 그럴 때마다 어머님은 핑계를 대시면서 즐겁게 끌려 나가셨다. 재롱도 진화되어 기어이 손을 잡고 나서게 만드는 손녀의 재롱 덕분에 어머니의 웃음주름은 쾌활한 곡선으로 확정되었다.      


 “손녀딸 애교를 워찌 이겨 먹겄냐, 어여 가자 가.”     


 “느이 엄마한테 할머니 혼나. 난 책임 안진다.”     


 돌아오실 때는 그런 말로 연막을 쳤지만, 누가 뭐래도 언제나 손녀의 편이 되어 주셨다.      


 집에 돌아온 딸에게서 달큰한 인공향이 났기 때문에 즉시 알아차렸지만, 입술을 깨물고 참았다. 엄마의 영역이 있는 것처럼 할머니의 영역도 있는 거니까. 너무 잦으면 한 번씩 손녀에게만 주의를 주었다. 하지만 손녀와 할머니의 결속은 단단해서 둘의 모의는 꽤 오래 지속되었다. 딸이 제법 컸을 때 할머니한테 약속했다.     


 “할머니 할머니, 제가 크면 할머니한테 빨간 구두랑 빨간 빽 사드리께요!”      


 딸이 그런 말을 할 때마다 세상을 다 얻은 듯 흐믓하게 웃으셨는데, 세월이 참 빠르다. 새해를 맞이할 때마다 세배 드리면서 어머님과 그 시절 이야기를 나눈다.     


 “어머님 손녀한테 빨간 구두랑 빨간 빽 받으셔야죠. 제가 증인이잖아요. 꼭 받으세요.”     


 그럴 때마다 하하 웃으며 손사래를 치지만, 지금도 어머님을 여전히 웃게 만드는 따스한 기억임에는 틀림없다. 그렇게 쌓아올린 둘 사이를 가장 자세히 목격한 나는 불현듯 중차대한 역할을 인식했다.     


“딸라미 그거 알아? 덕분에 너도 몇 겹으로 살뜰한 보살핌을 받았다는 거. 할머니의 애정 표현 안 바뀌셨더라. 옛날 모습 그대로야. 옆에서 보고 웃음 폭발했잖아.”


“헐, 크크! 그럼, 엄마도 당한 거네요? 엄만 싫지 않았어요? 할머니 왜 저러시나 싶어서 나는 순간 당황했잖아요. 애정표현인 걸 모르는 건 아니지만 적응은 안돼요.”     


“할머니도 이해하셨을 걸. 그러니까 웃으셨던 거지. 웃고 끝나서 다행이야. 세대차이는 어쩔 수 없지 뭐.”  

   

 딸과 이야기하면서 기분이 묘해졌다. 다시 생각해보면 어머님은 원조 K할머니였다. 한 번도 생각해보지 못한 어머님의 표현방법이 요즘 유행하는 용어로 간단하게 정리가 되었다. 일단 명명이 되고 나면 변명의 여지가 없어진다는 점을 생각하면 적용하기가 껄끄럽고 죄송스럽지만.         


 어머님과 딸 사이가 어색해지면 어쩌나 걱정했지만 잠시 뿐이었다. 어머님은 손녀의 카카오톡 프로필사진과 가족 밴드에서 증손자 Y를 제일 열심히 찾아보시고 소식을 물으셨다. 당신도 모르는 사이에 'K할머니'라는 별명을 얻은 줄은 꿈에도 모르시고 증손자 소식을 묻고, 종종 손녀딸에게 전화해서 안부도 확인하신다. 어머님과 매주 한 번 서로 기도할 내용들을 나눌 때 여쭤보았다. 다행히 어머님도 그 상황을 섭섭해하지 않고 넘기셨다. 






3부에서 계속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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