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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부고기사’를 작성하며

잘 죽는 법을 배우며, 잘 살아내는 연습을 한다.

by 송이

“내 부고 기사를 직접 써봤어요.”


함께 일하는 강사님이 던진 말이었다. 호기심에 귀를 기울였다. 살아 있는 동안 자기 삶의 끝을 미리 써본다는 건 어떤 감정일까. 그녀의 말속에는 한 사람의 삶이 온전히 건강하게 완성된 느낌이 담겨 있었다. 마지막을 아름답게 준비한 사람에게서만 느낄 수 있는 향기가 피어났다. 그래서 그날 밤, 나도 조용히 내 부고 기사를 써보기로 했다.


부고 기사를 쓰기로 한 첫날, 이유 모를 눈물이 쏟아졌다. 마음 깊은 곳에서 무언가 무너져 내리는 듯했다. 이튿날, 조금 덤덤한 시선으로 다시 앉았다. 제삼자의 눈으로, 한 사람의 삶을 가만히 들여다보듯이.


‘몇 살’에 세상을 떠났다고 쓰고 싶지 않았다. 그 시점만은 누구도 예측하거나 단정 지을 수 없으니까. 그 문장을 지우자, 뜻밖의 안도감이 밀려왔다. 언제든 조용히 이 삶에서 퇴장할 수도 있다는 생각에, 이상하리만큼 편안해졌다. 그 순간부터 ‘언제’가 아닌 ‘어떤 모습으로’ 떠나고 싶은지를 떠올리게 되었고, 결국 내가 남기고 싶은 장면과 마주하게 되었다.


얼마 전 한 수강생이 했던 말이 떠올랐다.

’ 말을 잘하는 법보다 진심을 전하는 법을 선생님께 배운 것 같아요. 따뜻한 말이 필요한 사람들에게 오래도록 힘이 되어주세요.‘


그리고 내가 가장 사랑하는 친구. 가끔은 나보다 나를 더 잘 아는, 삶의 긴 시간을 함께 버텨온 그 친구의 말이 떠올랐다.

“언니는 나무 진액 같아. 끈적끈적하게 사람을 흡수해. 사랑이 많고, 기억력은 어찌나 좋은지..”


삶의 끝자락을 조심스레 써 내려가다 보니, 자연스레 떠오른 것이 있다. 내가 그토록 내 삶에서 지우고 싶어 했던 세 가지.

상처, 실패, 그리고 외로움.

그 흔적들을 지우고 싶어서, 나는 오늘도 조금씩 달라지려 애쓰고 있다는 사실도 함께 떠올랐다. 그리고 마음속으로 조용히 바라게 되었다. 언젠가 나를 기억하는 누군가가 이렇게 말해주길.

‘그녀는 상처가 많았기에 더 따뜻했고, 실패가 많았기에 더 겸손했으며, 외로움을 알기에 더 깊은 연결을 소중히 여겼던 사람이다.’


여기까지 쓰고 나니 ‘유언장’을 쓰고 싶어졌다. 그리고 나의 장례식을 상상했다. 슬프기만 한 자리가 아니었으면 했다. 나를 아는 사람들이 모여, 내가 남긴 웃긴 이야기들을 꺼내놓고 함께 웃을 수 있기를 바랐다. 내가 늘 그러했듯, 따뜻하고도 진득한 사람으로 기억되기를. 그러다 결론에 도달했다. 내 꿈은 잘 사는 것이 아니라, 잘 죽는 것이라고.


나는 매일, 오늘 하루를 있는 힘껏 살아낸다. 내가 맺은 모든 관계 속에서, 머무는 모든 공간 안에서 단 한 방울도 아끼지 않고 나를 쏟아낸다. 해야 할 말도, 하지 말아야 할 말도 그 순간의 나로서, 최선을 다해 선택한다. 옳고 그름은 중요하지 않다. 그저 그날의 내가 내린 선택이었기에, 시간이 흘러 그것이 아니었음을 알게 되더라도 그 또한 그날을 살아낸 내 몫이었음을 안다. 그렇게 오늘의 삶을 지켜낸다는 것. 어쩌면, 그것이 잘 죽는 법에 조금씩 가까워지는 가장 조용하고 확실한 연습일지도 모른다.


삶이 무의미해 보일 때, 나는 이 부고 기사를 다시 읽을 것이다. 놀랍게도 이 부고기사를 쓰고 나니, 어떻게 살아가야 할지가 더 분명해졌기 때문이다. 내게 주어진 삶의 형식과 역할이 무엇인지도 어렴풋이 보이기 시작했다. 내가 도망치고 싶었던 사람들, 말들, 상처들. 그 무게는 결국 누군가에게 건네야 할 말의 매개체였는지도 모른다.


어떤 날은 삶이 너무 덧없게 느껴진다. 내가 지우고 싶은 세 가지의 그림자가 밀려와 끝을 덮어버릴 것 같은 순간. 그런 날이면 몸을 일으키기도 어렵다. 작년부터 그런 날들이 유난히 자주 찾아왔다. 무력감의 얼굴을 한 덧없음. 그 무력 속에서, 나는 나의 ‘부고기사’를 썼다. 그랬더니 지나온 삶과 앞으로의 날들이 조금 정리되기 시작했다. 묘하게도 확신이 생겼다. 이렇게 살다, 이렇게 마무리하고 싶다는 확신.


그래서, 당신에게도 권하고 싶다. 당신만의 ‘부고 기사’를 써보는 것. 지금까지 걸어온 길과, 앞으로 걷고 싶은 길을 천천히 비춰보는 일. 삶의 무게를 한 번 끌어안고, 인간으로서 한없이 작아지는 순간에도 결국 살아내고 있는 나를 마주하는 것. 그건 어쩌면 죽음을 상상해 보는 가장 아름다운 연습일지도 모른다. 그리고 ‘지금 당신의 삶’을 더욱 사랑하게 되는 아주 조용한 방법일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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