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담배 대신 나를 물다.

무너짐의 기술

by 송이

나는 무너질 때마다 담배를 피웠다.

그리고 지금, 나는 담배와 이별했다.


더 이상 무너지지 않아서가 아니다. 그저, 다른 방식으로 무너지는 법을 알게 되었을 뿐이다.


약 14년동안 나는 담배와 함께했다. 14년 동안 담배는 내게 너무 익숙했다. 식사 후, 일 끝난 저녁, 심심한 오후. 늘 입에 물려 있던 그것은 어쩌면 ‘나’를 설명하는 또 하나의 표식 같았다.


그런데, 지금은 아니다. 금연 1년 차. 가끔은 나 스스로도 헷갈린다. 내가 정말 담배를 피우던 사람이었나? 그토록 당연하던 것들이 언제부터인가 조용히 내 삶에서 사라졌다. 습관이란 게 그렇다. 아무렇지 않게 붙어 있다가 어느 순간 더는 내 것이 아니다.


사실 담배를 끊는다는 건 내 평생 하지 못할 일이라고 믿었다. 한 번도 진지하게 상상해본 적 없었다. 그런데 어느날,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다. '이제는 끊어야겠다.' 별다른 각오도 없었다. 거창한 목표도, 다짐도, 맹세도 없이. 그렇게 나는 담배와 이별했다.



처음 일주일은 버거웠다. 도파민에 절여진 뇌가 몸부림을 쳤다. 병원에서 받은 금연보조제에 의지하며 하루하루를 견뎠다. 담배를 내려놓으니 손끝이 허전했고, 입술이 허전했고, 머릿속마저 허전했다. 그 자리가 텅 비었다.


그 일주일 동안 나는 비로소 깨달았다. 담배는 이유가 아니었다. 그저 습관이었다. 피워야 할 이유도 없었고, 계속 필 이유도 없었다. 나는 그저 오랜 시간, 아무 생각 없이 담배를 물고 있었던 것뿐이었다. 그렇다면, 그 ‘습관’을 바꾸는 수밖에 없었다.


매일 담배를 피우던 골목을 나는 그냥 지나쳤다. 그리고 조금 더 멀리 걸었다. 식후 한 대 대신, 공원을 돌며 음악을 들었다. 그게 생각보다 괜찮았다. 퇴근 후, 손에 익숙했던 담배의 감촉은 애플펜슬로 바뀌었다. 테블릿에 한 글자씩 눌러 쓰며 내 안의 무언가를 눌러 적었다.


물론 한 번의 결심으로 모든 게 바뀌지는 않았다. 일주일, 이주일, 한 달. 세 달, 여섯 달. 익숙했던 것들을조금씩 다른 것으로 덮어가며 나는 아주 천천히 바뀌었다. 담배를 찾던 자리에 다른 것들이 쌓여갔고, 어느 순간,새로운 나를 조용히 마주하게 되었다.



불안할 때마다 입에 담배를 물었다. 울고 싶을 때는 담배 연기 속에서 울었다. 어느정도의 눈물이 지금의 나를 가리는지 채 알지 못하고, 그저 그 속에 숨어 울었다.

하지만 지금 나는 그 대신, ‘숨’을 쉰다. 천천히 들이마시고, 길게 내쉰다. 그 단순한 호흡이 흩어지려는 나를 다시 붙잡아 준다.


사람들과 있다가도 슬쩍 자리를 비우던 나는 이제는 그 자리를 지킨다. 담배 필 곳을 찾느라 먼저 시선을 돌리던 나는 그 공간 자체를 있는 그대로 누릴 수 있는 사람이 되었다. 결국, 나는 담배를 끊은 것이 아니었다. 불안을 다루는 법을 다시 배우고 있었다.


담배를 끊고서야 알았다. 내가 정말 의존했던 건 담배가 아니었다는 것을. 불안, 두려움. 그 감정들이 오랜 습관처럼 내 곁에 붙어 있었다는 것을. 나는 담배에 중독된 게 아니었다. 불안을 다루지 못하는 나 자신에게 중독되어 있었던 것이다.


이제는 무너질 때 담배를 찾지 않는다. 그 대신 내 안에 머문다. 엎어져서 울기도 하고, 정리되지않는 그 상태로 글을 쓰다 잔인한 깨달음에 무너지기도 한다. 또 어느때엔 매트 위에 올라 무표정으로 뭉친 어깨를 천천히 풀어낸다. 괄사로 림프를 밀어내며 막혔던 감정을 흘려보낸다.


담배를 끊으며 나는 하나를 배웠다.

‘건강하게 무너지는 법.’


언제든 무너져도 괜찮다. 중요한 건, 다시 일어설 수 있도록 무너지는 법을 배우는 것. 이제 나는 연기 속에 숨지 않는다. 그 자리에서 있는 그대로의 나를 마주한다.


누구나 무너진다. 그건 어쩔 수 없다. 하지만, 무너져도 괜찮게 무너지는 법은 배울 수 있다. 나에게 그 시작은 담배와의 이별이었다. 익숙함과 이별해야 비로소 새로움을 맞이할 수 있다.




당신에게는 어떤 ‘익숙함’이 그 자리를 지키고 있나요?

지금, 그 익숙함을 내려놓고 나를 위한 작은 변화를 시작해볼 수 있을까요?


아주 사소한 것부터. 천천히, 가볍게. 그런 작은 변화들이 언젠가 지금의 당신을 지켜주는 단단한 힘이 될지도모릅니다.


조금 서툴러도 괜찮습니다. 조금 느려도 괜찮습니다. 나를 지키는 법은 조용히, 천천히 배워가는 것이니까요. 그리고, 그것이야말로 무너져도 괜찮은 나를 만드는 첫 번째 연습일지도 모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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