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괜찮지 않아도 괜찮다”
“우리는 때로 사랑이 아니라,
두려움 때문에 참고 견딘다.”
— 에리히 프롬, 『사랑의 기술』
“사랑이 많다.”
“정이 깊다.”
“무슨 일이 있어도, 그 사람의 좋은 면을 보려 한다.”
사람들은 종종 그렇게 말하며 나를 설명했다. 그 말이 칭찬이라는 걸 알면서도, 나는 이상하게 불편했다. 그 안에는 내가 참아온 시간들이 고요하게, 그러나 분명히 눌려 있었기 때문이다. 나는 끊어내야 할 줄 알면서도 끝내 끊지 못한 관계 속에서 살아왔다. 그리고 그 끈질긴 감정을 ‘사랑’이라는 이름으로 부르고 있었다.
끊지 못한 관계는, 결국 나를 갉아먹는다. 외할머니는 바람을 피우던 외할아버지를 끊어내야 한다는 걸 알면서도, 남은 생을 묵묵히 함께 살아냈다. 엄마는 외할머니의 심성을 고스란히 닮았고 나는, 그런엄마를 또 그대로 닮았다. 끊어내야 할 줄 알면서도 끊어내면 안 될 것 같은 마음. 애증도 아니고, 설명할 수 없는 감정의 언저리를 품고사는 사람. 그게 외할머니였고, 엄마였고, 그리고… 나였다.
엄마 곁에는 두고두고 미워하면서도 끝내 품고 살아가야만 했던 사람들이 많았다. 평생 정을 나눌 수 없던 남편, 20년 넘게 가슴을 할퀴며 이를 갈았던 시누이, 다른 여자를 만나기 위해 수없이 집을 나간 아버지, 그리고 시집 온 순간부터 괴롭힌 시어머니와 시숙모까지. 그 이름들을 떠올릴 때마다, 엄마가 품어야 했던 세계의 무게가 서서히 내 가슴에도얹히기 시작했다.
"용서하지 못하면서도 떠나지 못하는 관계는,
자기파괴적인 사랑의 또 다른 이름이다.”
— 에스더 페렐
문득 생각했다. 만약 외할머니가 그 젊은 시절, 외할아버지를 단호히 끊어냈더라면—
엄마는, 그리고 나는 지금과는 조금 달라졌을까?
어느날은 그 생각이 이상하리만큼 슬펐다. 내 삶 어딘가에 매여 있는 내 모습을 바라볼 때마다, 그들의 그림자가 겹쳐 보이는 순간이 자꾸 찾아왔기 때문이다.
“괜찮아질 거야.”
“조금만 더 버텨보자.”
변화되지 않는 현실 앞에서 나는 늘 그렇게 스스로를 달랬다. 끊어내지 못한 마음은 삶 전체를 무겁게 만들었고, 발목을 붙잡아 앞으로 나아가지 못하게 했다. 나는 익숙한 아픔에 안주하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그리고 그 익숙함이, 조금씩 나를 고장 내고 있다는 것도 모른 채.
어쩌면 그래서일까. 나는 때때로 극단적이다. 끈질기게관계를 지키는 모습을 보이다가도, 관계 앞에서 너무 빠르게 선을 긋는다. 잘라내야만 살아남을 수 있을 것처럼 느껴졌기 때문이다. 그게 사랑이 아니란 걸 알면서도, 나를 지키는 방법을 아직 배우지 못한 나는 그렇게라도 스스로를 보호해야만 했다.
끈질기게 관계를 지키는 모습에 주변에선 말한다.
“넌 사랑이 많아서 그래.”
하지만 그들은 모른다. 내가 끝까지 붙잡으려 애썼던 그 사랑은, 사랑이라는 이름으로 칠갑한 ‘두려움’이었다는 것을.
나는 오래도록 그 감정을 ‘사랑’이라 불러왔다. 그 이름을 붙이면 덜 아플 줄 알았다. 덜 외로울 줄 알았다. 하지만 언젠가, 그 이름조차 물거품처럼 흩어졌다. 그리고 나는, 또 무너졌다. 알면서도. 그래서 또다시 언젠가 무너질 ‘모래성‘을 쌓았다.
“조금만 더, 하루만 더.” 나를 다독이며 또 한 번 쌓았다
그런데 이제는, 조금씩 이해하게 된다. 할머니와 엄마가 끝내 품고 살아낸 관계들. 그것 역시, 그들만의 방식으로 자신을 지키려 했던 사랑의 형태가 아니었을까. 버텨야 했고, 지켜야 했고. 그러기 위해 어떤 마음은 참고, 어떤 관계는 끊지 못했을 것이다.
그리고 나 또한, 그들과 닮은 마음을 품고 살아왔지만이제는 조금 다른 방식으로 나를 지키고, 사랑하기로 결심했다. 그 사랑을 이제는 남보다 나에게 더 먼저 쏟아붓기로. 내 내면에 귀 기울이고, 내가 원하는 것을 해주며, 내가 내 곁에 있어주기로 했다. 그렇게 하루하루, 세상에서 나를 가장 깊이 이해하려는 노력을 하며 나를믿는 힘이 자라기 시작했다.
울고 나서야 비로소 알게 되는 감정이 있다. 그 감정에 이름을 붙일 수 있을 때, 우리는 비로소 그것을 떠나보낼 준비가 되어 있는 것이다. 나는 이제, “괜찮아질 거야”라는 말로 누군가를 붙잡고 버티고 싶지 않다. 누군가를 지키는 일보다 나를 지우는 일이 더 많았다는 걸, 이제는 안다. 그래서 바란다. 더 이상 나보다 더 지켜야할 것이 내 안을 가득 채우지 않기를. 그리고, 언제나 마지막에는 내가 나를 가장 먼저 품을 수 있기를.
나를 소중히 여기는 사소한 일들이 차곡차곡 쌓일수록 단단해진다. 언젠가 무너질 모래성이 아니라 거센 폭풍우에도 쉽게 무너지지 않는 단단하고 조용한 성 하나가내 앞에 세워진다.
이제는, 나에게 “괜찮아질 거야”라고 속이지 않는다.
그 대신, “괜찮지 않아도 괜찮다”는 말을 한다.
그리고 안다. 이 말 한 마디가 무너짐 속에서도 다시 삶을 이어가게 해줄 수 있다는 것을.
누군가를 사랑하기 위해 너무 자주 스스로를 밀어낸 당신에게. 참고, 버티고, 다시 무너진 삶을 조용히 쌓아올려온 당신에게.
이제는 “괜찮지 않아도 괜찮다”는 말이 당신의 하루에 조용한 숨 한 줄기처럼 닿기를 바랍니다.
우리 모두, 오늘도 괜찮지 않아도 괜찮은 하루가 되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