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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립이 아니라 자립이 되기까지

외로움과 함께 서는 법

by 송이


인간은 자립을 꿈꾼다. 하지만 동시에, 의존을 갈망한다. 우리는 스스로 설 수 있어야 한다고 배우며 자란다. 누구에게도 기대지 말고, 혼자 설 줄 알아야 한다고 배운다. 그러나 살아가다 보면 누군가의 어깨가 필요하고, 누군가의 눈길을 기다리게 된다. 이 모순은 특별한 것이 아니다. 그저 인간이기 때문에 생기는 자연스러운 일이다. 자립과 의존 사이를 오가는 것ㅡ그 자체가 인간의 삶이다.



나는 가끔 지독히도 혼자이고 싶다. 어떤 관계도, 어떤 역할도 내려놓고 오직 '존재하는 나'로 머물고 싶은 순간이 있다. 이미 얽힌 관계들을 완전히 끊을 수는 없지만 가끔은 그 모든 연결이 잠시 멈춰주기를 바란다. 나는 이 바람을 ‘자발적인 고독’이라 불렀다. 스스로를 고립시키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를 회복하는 시간. 나는 나 자신을 또렷이 마주할 수 있었다.

그러나 고독을 택한 그 순간에도 나는 여전히 어딘가와 이어지고 싶었다. SNS를 열고, 누군가의 삶을 기웃거리고, 음악을 들으며 만든 이를 떠올린다. 책을 읽고, 문장 너머의 저자를 상상한다. 겉으로는 관계를 피하는 척하면서도— 사실은, 끊임없이 연결을 갈망하고 있었다. 외면하려 한 것이 아니다. 그저, 조용히 손을 뻗고 있었을 뿐이다.


무의식은 이미 알고 있었다.

'나는, 여전히 누군가와 연결되고 싶다.'



그제야 나는 ‘외로움’이라는 단어를 다시 바라보게 되었다. 외로움은 단지 누군가를 그리워하는 감정이 아니었다. 심리학자들은 말한다. 외로움은, 타인과 연결되고자 하는 인간 본능의 신호라고. 뇌과학자들은 말한다. 외로움은 뇌가 ‘신체적 통증’처럼 인식하는 실질적인 고통이라고.


결국, 외로움은 약함이 아니라 인간으로서 느낄 수밖에 없는 가장 본능적인 감정이다. 어쩌면 나는, 너무 오랫동안 고독했던 나머지 외롭다는 감각조차 잊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나는 사람에게 지쳤다고 말하면서도 끊임없이 사람을 떠올렸다. 멀어지고 싶어 하면서도 다시 다가가고, 실망하면서도 또 기대했다. 그런 모순이 반복될수록 나는 나 자신에게 질문하게 됐다. '왜 이렇게도, 사람을 떠올리는 걸까.' 그리고 서서히 깨달았다. 외로움은 약함이 아니라 연결을 원하는, 인간이라는 존재가 내는 가장 본질적인 신호라는 것을.



“사람이 싫다.” 그 말은 결국, 상처받았다는 고백이었다. 나는 그 자리를 스스로 감싸고, 누구도 들이지 않았다. 그런데 문득, 나는 알게 되었다. 그 자리는 '상처'가 아니라, '외로움'이 머물던 자리였다는 것을. 내가 그 위에 ‘상처’라는 이름을 붙이는 동안 ‘외로움’은 갈 곳을 잃은 채 조용히 방황하고 있었다.


외로움을 말하는 건, 내 안의 가장 여린 부분을 꺼내 보여주는 일 같았다. 말하고 싶었다.

“힘들다.”

“곁에 누군가 있어 줬으면 좋겠다.”

셀 수 없이 많은 순간들 속에서 그 말들이 목까지 올라왔다. 하지만 언제나, 목구멍에서 멈췄다. 입 밖으로 나오는 대신, 나는 그 감정을 꾹 눌러 삼켰다.


그러다 어느 날, 삶과 죽음 사이에서 흔들리던 밤. 나는 마침내 그 말을 꺼냈다.

"외로워"

"외로워서.. 죽을 것 같아."

그 말은 울음도, 위로도 아닌 나를 일으켜 세운 첫 문장이었다. 무뎌진 감정으로 버티던 나는 더 이상 참지 못하고 울었다. 오래도록 눌러두었던 울음이 조용히, 그러나 쏟아졌다. 그리고 그 순간 나는 알게 되었다. 그 울음은 무너짐이 아니라, 나를 다시 세우는 시작이었다.


“외롭다.” 그 고백은 무너짐의 시작이 아니었다. 그 누구에게도 기대지 않고 살아내고자 한 조용하고 단단한 선언이었다. 외로움을 인정하는 순간, 그것은 더 이상 나를 덮치지 못했다. 나는, 비로소 자립과 의존을 선택할 수 있는 사람이 되었다.


이제는, 외로움에 휩쓸리는 내가 아니라 그 감정을 안고 살아가는 내가 되고 싶다. 울지 못하던 나는 이제 울 수 있다. 참지 않고, 부끄럽지 않고, 외로움을 껴안은 채 조용히, 천천히 운다. 그리고 그 눈물은 무너짐이 아니라 다시 나로 서기 위한 단단한 용기다.


자립은 스스로의 두 발로 조용히 서는 일이고 고립은, 누구에게도 닿지 못한 채 홀로 남겨지는 상태다. 혼자인 건 같아 보여도, 그 안에 담긴 마음은 전혀 다르다. 그 밤, 나는 고립이 아니라 자립을 선택한 사람이었다.


애착 이론은 말한다. 외로움은 누군가와 연결되고 싶다는, 가장 인간적인 신호라고. 외로움은 약함이 아니라사람답게 살아 있다는 증거다. 외로움은 누군가를 찾는 신호이기도 했지만— 동시에 내 존재가, 이 세계에서 아직 사라지고 싶지 않다는 조용한 언어였는지도 모른다. 그러니까 어쩌면, 이 외로움조차도 나를 지키고 있었던 것이다.




당신의 외로움은, 지금 어디에 머물고 있나요. 그 감정은, 어떤 얼굴로 당신 곁에 앉아 있나요. 만약, 그 외로움을 조용히 말해볼 수 있다면 당신도 지금, 단단한 자립의 걸음을 내딛고 있는 중일지 모릅니다. 자립을 위해 '외로움'을 감당하고 있는 당신의 오늘을, 진심으로 환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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