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워했던 감정과 화해하기
기억도 나지 않는 어린 날부터, 나는 늘 어떤 감정과 함께 살아왔다.
스스로 나를 지키고 보듬는 법을 알지 못한 채, ‘그 감정’을 곁에 두고 자라났다. 울타리 없이 자란 시간 속에서 그 감정은 내게 경계이자 방어였고, 때로는 나를 지탱하는 마지막 감각이기도 했다.
몸이 크고, 사고가 확장되는 만큼 그 감정 역시 자라났다. 이제는 일시적인 파동이 아니라 존재의 조건처럼, 나의 일부가 되어 있었다.
처음엔 그것이 무엇인지 몰랐다.
투명한 물방울 같았고, 불현듯 찾아오는 소음처럼 내면을 간지럽혔다. 하지만 시간이 흐르면서 그 감정은 점점 짙어졌고, 내면 깊은 곳을 차지하는 심연이 되었다. 때로는 거세게 요동치며 나보다 더 큰 존재감을 뽐내기도 했다.
나는 그 감정 앞에서 자주 나 자신을 잃었다.
감정의 주체로 존재하기보다, 그 무게에 눌려버린 객체가 되는 날이 많았다.
그러던 어느 날, 그 어둠의 가장자리에서 한 존재가 조용히 시야에 들어왔다.
고요했고, 무표정했지만
그 눈빛은 선명히 살아 있었다.
내 안쪽 깊숙이 숨겨져 있던, 가장 '진실한 나'였다.
그 존재는 조심스럽게 속삭였다.
"나, 더 넓은 세상으로 가보고 싶어.”
그 말 앞에서 그 감정은 처음으로, 고요 속에 균열을 허락했다. 오랫동안 자신만이 지배해 온 그 컴컴한 공간, 멈춰 있던 심연 깊은 곳에서 무언가 뜨겁게 끓어오르는 걸 느꼈기 때문이다.
처음으로, 마음에 방향이 생기는 순간이었다.
감정은 저항하지 않았다. 그저 더 넓은 세상으로 나아가고자 하는 마음 앞에 조용히 길을 내어주었다.
내가 안전히 나올 수 있도록 흔들리던 물결을 잠재우고, 딛고 설 수 있는 지면이 되어주었다.
그 순간, 나는 알게 되었다. 오래전부터 함께해 온 그 감정은 나를 해치기 위해 존재한 것이 아니었다.
온통 컴컴하고 깊어서 한 번 빠지면 헤어 나오지 못할 것만 같던 그 감정은, 사실 무서운 존재가 아니었다. 밀어내려 할수록 그 까만 심해는 더 거세게 요동쳤지만, 마침내 마주했을 때 그 깊고 흔들리던 심연은 그저 조용히 나를 붙드는 지면이 되어주었다.
그 이후로도, 그 감정은 내 곁을 떠나지 않았다. 때로는 나보다 더 커져 다시 나를 웅크리게 만들기도 했지만
이제는 안다. 그 감정은 나를 해치기 위한 것이 아니었다. 언제나, 나의 성장을 예비하던 조용한 진동이었다는 것을.
끝내 외면하고 싶었던 그 이름을, 이제는 조용히 내 입으로 부른다. 가장 멀리하고 싶었던 감정이 사실은, 가장 오래 나를 곁에서 지켜보고 있었다.
"불안을 설렘으로 재해석하는 것만으로도, 실제 수행 능력이 향상될 수 있다”
ㅡ심리학자 Alison Wood Brooks
불안은 때때로 설렘의 또 다른 얼굴이다. 우리가 그것을 어떻게 해석하느냐에 따라, 같은 감정이 우리를 위축시키거나 앞으로 나아가게 만든다.
오늘, 불안을 밀어내고 싶었던 그 순간, 나는 불안을 다시 껴안는 법을 배우고 있다.
그래서 나는 오늘, 오랫동안 미워했던 그 감정에게 다시, 처음처럼 인사를 건넨다.
안녕, 불안아. 이제는 너와 함께 천천히, 그러나 분명하게 걸어가보려 해. 너는 나를 가두는 감옥이 아니라, 내가 세상을 향해 나아가기 위해 반드시 지나야 했던, 내 안의 오래된 친구였으니까.
설렘으로 바뀌어가는 모든 순간들마다, 부디 곁에 있어줘. 나는 너와 함께 앞으로도 계속 걸어갈 거야.
너가 깊이 자라나게 된 그 순간도 이제는 조금만 미워할게. 나에게 와줘서 고마워. 네가 내 안에 오래 머물러준 덕분에 나는 지금 이만큼 자라날 수 있었어.
불안해하는 사람을 보면 조금은 먼저 알아차릴 수 있게 되었고, 가끔은, 그 마음에 설렘을 건넬 수 있는 사람이 되었다고 생각해.
그래서, 다시 너에게 말해.
안녕, 불안아.
언제든 네가 오면, 이번엔 내가 먼저 반갑게 맞이할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