낭독도 처음이에요
소파에 앉은 채로 잠이 들었나 보다. 오른쪽 허리가 아파왔다.
눈을 가늘게 뜨고 휴대폰 시계를 봤다. 오후 6시 57분.
다시 자세를 고쳐 잡고 작은 직사각형의 쿠션을 베개 삼아 소파에 누웠다. 허리가 펴지면서 척추뼈 하나하나가 자리 잡는 듯 바닥에 닿으니 엷은 숨소리가 입 밖으로 나왔다. 전등불빛에 눈이 부셨다. 안경을 벗고 왼팔을 얼굴에 올려 빛을 차단했다.
잠든 지도 몰랐는데 어느새 귀에 꽂은 이어폰에서 일정이 있다는 소리가 들렸다. 오후 7시 20분.
몸을 일으킬 만큼 정신이 들지 않았지만 휴대폰을 들어 특강을 안내하는 링크에 접속했다.
지난번에 집안일을 하느라 알람도 못 듣고 프레젠테이션 발표 특강을 놓친 게 못내 아쉬워 일부러 소파에 앉아서 시간을 보내고 있었던 것이다.
신청해 놓은 것은 줌으로 하는 낭독특강이다. 얼마 전 들어간 커뮤니티 소속인 분이 강의하신다.
몸이 아직 무거워 비디오와 오디오가 켜지지 않았는지 확인하고 누워서 편하게 들을 요량이었다.
소개를 들으니 낭독을 취미로 시작해서 낭독지도자격증까지 따셨고 가르쳐 주신 성우분도 함께한다고 했다.
1부는 강의, 2부는 신청한 소수에게 낭독코칭을 해준다고 안내한다. 참여하려면 비디오와 오디오를 켜야 한다고 했다. 굳이 코칭까지.
그러다 번뜩 지난번 발표 특강 전 과제를 제출해 놓고 피드백받은 것이 꽤나 도움이 되었던 기억에 두 다리를 올렸다가 반동을 일으켜 자리에 잠시 앉아 신청한다고 채팅창에 올렸다. 다섯 번째 순서였다. 일곱 명의 이름이 올라가자 그만 신청을 받겠다고 했다. 뭐라도 된냥 기분이 좋았다.
앞으로 두 시간은 줌수업을 들어야 하는데 딱 저녁시간에 걸린다. 1부 강의를 들으며 부지런히 밥을 안쳤다. 두부조림을 하려고 두부를 썰어 쟁반 위에 키친타월을 깔고 두부를 옮겨 담고 다시 키친타월을 덮어두었다.
양파와 당근을 채 썰려다 맨 얼굴, 대충 말아 올려 닭 볏처럼 뻗친 머리, 잠옷 차림의 나의 모습을 알아차렸다.
이럴 때가 아니다. 후다닥 3층에 올라 화장실로 향했다. 머리에 물을 묻혀 메기수염처럼 뻗친 옆머리를 꾹 누르고 화장대에 앉아 쿠션으로 얼굴을 팍팍 눌러댔다. 대충 하고 비디오 설정 보정을 최대치로 하면 된다.
옷도 화면에 보이는 위에만 입으면 된다. 아무 거나 잡히는 대로 입었다.
다시 내려와 음식을 마저 하려고 했는데 코칭받는 사람들은 읽을 자료를 먼저 다운로드해 놓으라고 했다. 휴대폰으로 받아 파일을 여니 이마가 찡그려지며 글이 읽힌다. 글자가 너무 작아 보였다. 부랴부랴 노트북을 켰다.
줌에 접속해서 채팅창을 열어 파일을 다운로드하였다.
젖은 키친타월을 덮고 있는 두부와 도마 위에 놓인 당근과 양파가 보였지만 어쩔 수 없이 모른 척했다.
성우님의 2부 코칭이 시작되었다. 자세와 마음가짐의 중요성에 대해 말씀하셨다. 등받이에서 떨어져 앉아 두 다리를 바르게 한 후 허리를 꼿꼿하게 펴고 차분한 상태로 만들었다.
<그레구아르와 책방 할아버지>라는 마르고 로제의 장편 소설이다.
첫 번째 분이 표지를 읽는 것으로 시작했다. 그레구아르와 책방 할아버지는 다른 인물이므로 다른 톤으로 읽어야 한다고 했다. 글을 읽을 때 표정도 중요한데 미소 한 스푼을 더해 읽으라고 했다. 실제로는 한 분만 읽었지만 음소거를 한 많은 사람들 입이 뻐끔뻐끔 거린다. 나도 계속 따라 말했다.
두 번째 분이 첫 장을 시작했다. 모두가 말하는 직업을 가지고 있었으므로 목소리도 좋았고 틀리게 읽지도 않았고 띄어 읽기도 잘했다.
읽지 말라고 하셨다. 무슨 소리인가. 낭독이라 하면 소리 내어 읽는 걸 말하는데 읽지 말라니.
화자가 계단을 오르면 우리 앞에 그 계단이 나타나야 한다고 했다. 약병에 쓰인 글자를 설명하면 그 약병이 내 눈앞에 있고 약병에 쓰인 글자를 읽어야 한다고 했다. 삽화가 없는 책을 읽으며 나는 계단을 상상하고 약병을 그리고 음식이 놓인 쟁반을 만들어냈다.
세 번째 분 순서가 되었다. 낭독을 좋아해 강의를 하시는 성우분의 낭독회도 다녀오셨다고 한다. 역시 달랐다. 새로 배우는 사람에게 좀 더 기회를 주시려는지 짧게 하고 넘어갔다.
네 번째 분이 읽을 곳에 대화체가 나오기 시작했다. 내 순서가 아닌 게 다행이었다. 다른 사람 앞에서 실감 나게 읽는 건 무척이나 간지럽고 어색하기 때문이다.
말하는 사람을 생각하면서 낭독하면 되는 줄 알았다. 그 사람의 성격이 어떤지 상상하라는 말은 나오지도 않았다. 내용 상 한 명은 방에 있고 다른 한 명은 문밖에서 말하는 것이었는데 그 공간감이 느껴져야 한다고 했다. 그런 후에야 말하는 사람의 상황에 맞게 소리 크기를 조절하고 빠르기를 조절한다.
내 순서가 다가왔다. 다른 분 하실 때 계속 따라 연습했으니 제대로 하고 싶었다.
강사님이 시간 상 낭독코치는 여기까지만 한다고 하셨다. 아직 끝나기 30분 전인데, 신청은 일곱 명 받았는데 왜? 줌 화면에 보이는 나는 웃고 있었다. 아쉬움과 의문 가득한 눈빛은 나에게만 보이는 것이겠지.
낭독 코치 대신 오늘 수업에 대한 감상을 나누었다. 적극적으로 잘 따라한 분들의 이야기를 듣겠다고 했는데 나도 호명되었다. 무얼 새롭게 배웠는지 어떻게 적용해 보고 싶은지 이 기회가 얼마나 감사한지 이야기했다. 나처럼 신청은 했으나 코치받지 못한 사람들 모두에게 말할 기회가 주어졌다. 그렇게 인사를 나누고 사진을 찍으니 약속된 나머지 30분이 다 지나갔다. 다음에도 특강이 있을 거라고 못한 사람들 그때 오면 꼭 시켜주겠노라고 오픈 채팅방 주소를 알려주셨다. 다음을 기약하며 오픈 채팅방에 들어갔다. 일곱 번째 오픈 채팅방이다.
주방에서 계속 내 목소리가 나서인지 아무도 주방에 오지 않았다.
이제 요리를 할까 했더니 아들이 배가 고프지 않다고 했다. 대신 새벽에 축구를 보며 만두를 먹을 거라고 했다. 두부, 당근, 양파는 다시 냉장고로 들어갔다.
낭독특강을 들으며 계속 말을 했더니 목이 말라 페퍼민트차를 두 잔 마셨다. 나도 배고프지 않았다.
10시가 넘어갈 때쯤 테이블에 있는 <희랍어 시간>이 보였다. 어제보다는 일찍 읽을 수 있게 되었다.
32쪽을 펼쳤다. 5의 소제목이 '목소리'다.
자기 목소리를 녹음해서 들어보는 것이 좋다던 강사님의 말씀이 떠올랐다.
휴대폰을 켜고 녹음앱을 준비했다.
오늘 배운 대로 글을 읽었다. 아니 낭독했다. 41쪽에서 멈췄다. 녹음하려고 읽으니 배에 더 힘이 들어갔고 속도는 느렸기에 시간도 한참 흘렀다. 낭독은 보통 일이 아니었다.
녹음된 내 목소리를 들었다. 말하면서 듣는 자기 목소리는 내 몸을 통해 들리는 안의 소리와 입으로 나와 귀로 들리는 밖의 소리가 합쳐진 소리이기에 더 따뜻하고 풍성하게 들린다고 했다. 녹음을 해서 들으면 다른 사람이 듣는 것과 같은 소리인데 안의 소리가 빠진 소리이기에 조금은 가볍고 마른 소리가 난다고 했다. 무슨 말씀인지 바로 알 수 있었다.
녹음앱을 끄고 나머지 부분도 소리 내어 읽었다. 소리 크기를 줄이고 녹음하지 않아 편하게 읽으니 힘은 덜 들었지만 아까만큼 생생하게 와닿지 않았다.
섬세한 표현의 극치를 달리는 한강 작가의 글은 낭독하기에 더없이 좋았다.
자칫 집중하지 못하고 눈으로만 글을 지나갔다가는 영락없이 되돌아가야 했기 때문이다.
낭독하며 읽으니 가본 적 없는 독일의 한 병원 중정에 서기도 하고 벵골인의 모습을 모르는 상태에서 벵골인과 독일인 사이에서 태어난 사랑스러운 한 여인을 그려보기도 한다.
그 여인에 대한 사무치는 그리움을 지닌 채 자신의 어리석음에 한탄하는 한 남자의 처절한 고백을 내 입으로 뱉어내자니 누구라도 떠올려야만 할 거 같았다.
49쪽까지 읽는 사이 단상을 적을 곳 하나와 밑줄 그을 곳 둘, 그렇게 세 부분이 내게 남았다.
어제와 같이 <희랍어 시간>을 같이 읽는 사람들이 모인 카톡방에서 퇴고하지 않기 위해 따로 써놓았다.
나를 멈추게 했던 글은 다른 사람 누구도 고르지 않은 부분이었다.
자기 계발서와 같이 중심내용이 드러나는 글이 아니라서 저마다 다른 부분을 골라 글을 쓰기에 다른 사람들의 글을 읽는 것만으로도 즐거움이 있다.
단상이라 하지만 오늘도 글이 길었다.
2024년 2월 19일 오후 11:30
<희랍어 시간>, 한강, 문학동네, p.39
잘 보이지 않으면 가장 먼저 소리가 잘 들릴 거라고 사람들은 생각하지만, 그건 사실이 아닙니다. 가장 먼저 감각되는 것은 시간입니다. 거대한 물질의 느리고 가혹한 흐름 같은 시간이 시시각각 내 몸을 통과하는 감각에 나는 서서히 압도됩니다.
잘 보이지 않으면 가장 먼저 소리가 잘 들릴 거라고 나도 그렇게 생각했다.
가장 먼저 감각되는 것이 시간이라는 문장을 읽고 두 눈을 감았다. 물건에서 반사된 빛의 잔상이 눈꺼풀 안에 여전히 남아 있다. 암흑이 아니었다.
눈앞에 손을 모아 덧대었다. 두 손의 따듯한 기운이 얼굴 피부에 와닿는다. 그제야 어둠이 내렸다. 무슨 일일까, 순간적으로 정적이 일었다. 귀는 열려 있었으니 소리가 안 들릴 리가 없다. 아주 짧은 순간이었지만 나도 모르게 숨을 잠시 멈춘 것이다.
소리에 집중해 보았다. 그대로 손을 내린 동시에 눈을 뜨고, 잘 보이지 않는 시간에 들었던 소리와 비교해 보았다. 한 번으로는 차이를 느낄 수 없어 두세 번 해보았다. 똑같다. 더 잘 들리지 않았다.
대신 아주 저음의 내 몸속 소리가 들리기 시작했다. 정확하게 ‘들린 것’은 아니다. 커다란 흑등고래가 유영하듯 내 배가 움직이고, 느리게 들여 마셔지는 숨과 조용히 내쉬어지는 숨이 느껴진다.
평온하다 싶을 때 그 ‘시간’의 흐름을 알아챈다. 솔직히 시간이 흐르는지는 모르겠다. 그냥 내가 살아있음을 알아차릴 뿐이다.
안전한 공간에 혼자 있었기에 가능했던 감각일까. 사람들이 많은 시끄럽고 낯선 공간에서도 그러할까?
글을 올리고 노트북을 정리하려는 찰나에 댓글이 달렸다.
한 번도 상상해보지 못한 칭찬을 받았다. 댓글을 써주신 분이 천사임이 분명하다.
정신을 차리고 내 글을 다시 읽었다. 그리고 감사의 인사와 함께 답장을 했다.
생각지도 못한 과찬에 행복한 밤입니다.
오늘 제가 책을 달리 읽은 게 혹시 이유가 되지 않았을까 합니다.
낭독 특강 후에 배운 대로 소리 내어 읽었거든요.
저도 모르게 그 운율에 젖어들어 글을 쓴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잠깐 들었어요.
이 놀라운 경험을 나누고 싶어 상당히 부끄러운 댓글을 박제하고, 하루가 넘어가는 늦은 시간에 글을 써야만 했다.
필사만 가능하다고 여겼던 문체 닮아가기.
낭독도 가능하다.
필사처럼 더디고 꽤 힘이 든다.
직접 해보면 알게 된다.
글이 달리 읽히고 글이 다르게 써질 수도 있다는 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