흰색 발자국

내 마음에 너희를 던지며

by 김떱

맑아진 공기만큼이나 추웠던 어제의 날씨였다.

옷솜을 뚫고 오는 추위 때문인지, 아니면 고작 연말정산 자료를 내러 2시간을 갔다와야 해서 인지, 겨울방학 속 학교를 향한 내 발걸음은 그렇게 뾰루퉁하게 시작되었다.


아침에는 눈발도 꽤나 거셌다.

하지만 도심 속 눈들은 누울 자리를 영 못 잡는다. 송풍기에 날리고, 빗자루에 쓸리며 사람들에 밟힌다. 바닥에서 이리저리 떠돌아다니는 눈은 나를 보는 듯 슬프다.

뚜벅뚜벅 눈길을 조심히 뚫어가는 출퇴근길. 지하철을 한참 타고 내리니 그새 눈발이 조금 그쳤다. 근무하는 학교는 아파트 단지 한가운데에 있기에 항상 한 아파트단지를 관통하며 걸어간다. 길이 미끄러움에 아래를 바라보며 조심히 걸어갔다. 흥미로운 풍경이 눈앞에 보였다.


누군가가 정성껏 눈을 쓸어내린 아파트 도보 위, 다른 누군가가 반대로 흰색 발자국을 잔뜩 묻혀놓은 게 아닌가. 분명 굳이 눈이 안 치워진 쪽을 괜히 밟고 놀다가 이 길로 지나온 것일 거라.

회색 경계석 도화지, 초록색 도보 도화지, 아스팔트 도화지 가릴 거 없이 하얗게 묻혀놓은 귀여운 발자국들은 내 발을 갖다 대보니 크기가 보통 작았다. 방학에 신난 아이들이 추운 겨울날 부지런하게도 집을 나와 밟아댔나 보다.

군대에서 제설작업을 하며 나를 제일 힘들게 한 것은 끝없는 빗자루질도 아니고 추위도 아니었다. 눈을 치워놓은 곳들이 고작 몇 분 뒤 다시 하얗게 눈으로 덮이는 것이었다. 오늘도 이 아파트에서 열심히 제설을 했던 분들은, 꾹꾹 눌러 담은 이 순수한 흰 발자국을, 물론 의도치 않게 만들어 낸 눈자욱들을 봤다면 분명 한숨을 푹푹 내쉬었을 것이다.



이러한 발자국은 사람들 사이에서도 많이 남기기 마련이다. 나 역시 항상 조심하려 노력하지만 가벼운 말과 행동으로 다른 이에게 상처를 주기도 하고, 반대로 다른 사람들에게 받기도 한다. 아파트 한 구석에 남겨진 흰색 발자국들은 날씨가 따뜻해지며 자연스레 녹아 없어지겠지만, 마음의 발자국은 기분이 나아져도 쉬이 사라지지 않는다.

학교에서 아이들은 교사의 마음속에 수많은 발자국을 당당하게도(?) 남겨댄다. 중간중간 검은 발자국들도 있지만, 순수한 흰 발자국들이 많기에 오늘도 조용히 흔적을 지워내며 내면의 평안을 찾으려 노력한다. 그렇게 아이들과 부대끼며 지내다 보니 1년이 참 금방인 듯하다.


어릴 때 딱 이맘때쯤 설특선영화로 자주 봤었던 '달마야 놀자'라는 영화가 있다. 극 중 주지스님이 했던 대사로

"나도 밑 빠진 너희를 그냥 내 마음에 던진 것뿐이다."

가 기억에 남는데, 내 마음에 남겨진 아이들의 흰색 발자국들을 볼 때마다 참 공감되는 말이 아닐 수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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