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쌤'마이웨이

by 김떱

올해 내가 맡게 된 28색 파레트. 고작 10살의 물감들.

오늘은 그 물감 중 한 색에 대한 이야기를 해보려 한다.


"선생님 안녕히 계세요."

"네~ 나갈 때 뒷문 좀 닫아주세요."

"... "


오늘 소개할 아이와의 일화는 보통 이런 식이다.

무슨 연유에서인지는 모르겠지만, 아이의 이름을 부르며 바로 앞에서 얘기하는 것이 아니면 내 말에 반응하지 않고 지나치기 일쑤다. 길동아, 길동아. ...길동아? 적어도 두 번, 세 번은 불러줘야 대답이 나오는 이 아이의 이목을 끌기 위해선 담임으로서 꽤나 많은 노력이 필요하다.



이 남자아이는 서두르는 법도 없다. 알림장 검사를 할 때면 매번 마지막에, 그것도 아주 느린 걸음으로 내게 온다. 청소시간에는 홀로 유유자적. 빗자루의 끝을 천천히 튕겨내며 자신의 자리를 구석구석 훑어낸다. 빗질의 느린 움직임이 멀리서도 생생히 보일 정도로. 때로는 수학 숙제를 하고 집에 가야 한다며 하교 시간 이후 교실에 남아 문제를 풀고 가기도 한다.

' 너는 참 마이웨이구나. '

다른 친구가 뭐라 하든 자신이 할 일을 묵묵히 하는 이 아이를 볼 때면 이런 생각을 하고는 했다.



화면 캡처 2023-04-17 151028.jpg 선물이라며 건네준 종이 미니카

" 선생님, 이거 드릴게요 가지세요. "


오늘 쉬는 시간 다짜고짜 내게 꺼내어 든 것은 웬 종이 미니카 하나.

나는 손을 내밀며 그래요 고마워요.라는 말을 꺼내려하였다. 그러나 이 아이는 내 손바닥에 대뜸 미니카를 올려놓더니 어느새 뒤돌아버리는 게 아닌가. 참으로 일관성 있는 마이웨이의 소유자다운 선물 증정식이었다.

만으로 아홉 수인 올해는 유독 힘들게 느껴진다. 글을 몇 자 적어낼 여유도 없이 인생에서 큰 고민을 연속해서 마주하게 되었다. 어른이라면 으레 해야 할 결정들을 피하고 또 피해오다가 올해 몰아서 하는 느낌이다. 한 발 한 발 내딛기도 힘든, 그런 시간의 연속이다.

2023년 4월 17일 월요일. 오늘도 청소를 가장 늦게 마쳤으며, 교실을 가장 마지막으로 나선(뒷문도 당연히 열어두고) 이 아이가 걸어가는 길은 거북이의 짙은 초록색일까 나무늘보의 갈색일까. 너의 느리지만 곧게 뻗어있는 너만의 길처럼 쌤도 선생님만의 '쌤'마이웨이를 걸어가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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