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 신선도(神仙圖)에 나타나는 거북(3)
먼저, 17세기 조선시대
인조(仁祖, 1595-1649)의
작품이라고 전해지는
삼성미술관 리움 소장의
<열선경술도>에 대해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열선경술도>에 등장하는 ‘거북’은
신선을 태우고 있는 그림으로는
가장 빠른 예이다.
여기서 보이는 거북은
앞만 똑바로 쳐다보면서,
곤륜산을 향해, 열심히 물을 헤치면서
나아가고 있는 모습으로
그려지고 있는데,
거북은 ‘오방색’의 채색으로 ‘화려’하고
‘세련’된 느낌이 든다.
전체적으로 짙은 청색으로 칠해졌고,
거북의 가장자리를 황색으로 처리했다.
콧등과 눈, 다리 앞면 부의 화염문이
적색으로 선명하게 채색되어 있고,
눈 주위는 흰색으로 채색되어 있다.
적색의 화염문 앞에는 흰색으로
선처럼 칠해져 있으며,
등에는 연속된 뚜렷한
육각형의 귀갑문이 나타나 있다.
<열선경술도>의 제발(題跋)에
17세기 인물인 심익현(1641-1683)과
왕족인 이우(1637-1693)의 ‘찬문(讚文)’을
새긴 대형 주문방인(朱文方印)이 있어
작품의 시기를 17세기로 잡는 듯하다.
그러나 ‘거북’ 도상만 놓고 본다면
인조의 작품이라는 것과
제작 시기에 대한 의문이 든다.
※ 정병모도 같은 의문을 제기한다.
그는 <사수도> 중 청룡을 예시로 들며,
청룡의 입과 턱 주위에 날카롭게 뻗친
수염은 1720년 『숙종명릉산릉도감』에서
볼 수 있는 것으로, 18세기 전반에
제작되었을 가능성이 높은 것이라고
하였다.
정병모(2013). 신비에 싸인 서왕모 잔치:개인소장 <요지연도>. 吉祥, 232-241.
인조 사후 만들어진
『인조장릉산릉도감의궤』(1649년)에서의
거북은 콧등과 눈의 색이 붉지 않으며,
다리의 화염문도 보이지 않는다.
거북은 전체적으로 청색으로 채색되었고,
등 가장자리가 황색으로 바림되어 있다.
또한 목 앞부분과 배, 다리 뒷면부는
황색으로 채색되어 있다.
등에는 연속된 육각형의 귀갑문이 있고,
그 육각형의 귀갑문 안에
4개의 작은 육각형이 그려져 있는데,
먹으로 문양을 그렸다.
이 작품의 작가로 알려진
인조 사후 편찬된
『인조장릉산릉도감의궤』(1649년)의 전후
『의궤』인
『인목왕후목릉산릉도감의궤』(1632)와
1659년 제작된
『효종영릉산릉도감의궤』와도
비교해 보자.
이 두 『의궤』에는
<열선경술도>에 나타나는 거북 도상과
비슷한 도상이 보이지 않는다.
『인목왕후목릉산릉도감의궤』(1632)에서
보이는 현무 도상은
콧등만 붉은빛을 띠었을 뿐,
전체적으로 황색으로 채색되었고,
먹으로 바림되어 있다.
1659년 『효종영릉산릉도감의궤』의
현무의 채색은 전체적으로는
『인목왕후목릉산릉도감의궤』와
비슷하다.
거북 등에 육각형의 귀갑문이 있으며,
이 육각형의 선은 연결되어 있지 않고,
한 선씩 끊어지며 육각형을 이루고 있다.
그러나 『인목왕후목릉산릉도감의궤』의
거북 문양의 가장 바깥쪽 테두리는
연속된 선이며,
큰 육각형 안의 작은 육각형의 선이
끊어지며 육각형을 이룬다.
『인목왕후목릉산릉도감의궤』(1632)와
『인조장릉산릉도감의궤』(1649년)의
거북 도상의 공통점은
콧등만 붉은빛으로 채색되었을 뿐,
진행 방향, 거북의 문양 모두 다르다.
『인조장릉산릉도감의궤』(1649년)와
『효종영릉산릉도감의궤』(1659년) 속의
거북은 거북의 진행 방향과
복갑과 연갑판의 문양만 같을 뿐
채색, 문양, 고개를 돌리는 방향도 다르다.
『인목왕후목릉산릉도감의궤』(1632)와
『인조장릉산릉도감의궤』(1649년)에서
공통점인 콧등의 붉은빛은
『효종영릉산릉도감의궤』(1659년)에서는
변화가 온다.
콧등과 입이 적색으로 채색되었으며,
처음으로 다리 앞면 부에
적색의 화염문 형식이 나타났다.
<열선경술도>에 나타나는 거북 도상과
근접하게 보이는 거북 도상은
『숙종명릉산릉도감의궤』(1721)으로
적색의 화염문이
온전한 모습을 갖추었으며,
연갑판에 보이는 얼룩 문양도
이때 처음으로 나타난다.
<열선경술도>의 찬문을 빼고
거북 도상만으로 본다면,
화염문의 형태, 연갑판의 문양 등으로
보았을 때,
이 작품은
18세기 초반의 작품으로 추측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