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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강철구 May 24. 2023

DAY17. 맘대로 되지 않은 하루

여행에서 배우는 것

새벽녘에 다시 잠이 들어 눈을 뜨니 10시다. 이제 늦잠이 일상이 되었다. 


출장 다녀온다는 아내의 메시지를 보고 아차 싶었지만 시계를 보니 이미 이륙시간이 지났다. 큰 아들에게 전화하니 MT로 지방이란다. 이런 독립적 집이라니! 아빠는 니스, 엄마는 샌프란시스코, 큰 아들은 MT 가고, 고3인 둘째는 서울에 혼자 있다. 둘째에게 전화하니 혼자 있어 되려 좋으니 염려 말라고 한다. 

 



미안함을 뒤로하고 니스의 동쪽으로 향했다. 절벽 위의 중세마을 <에즈 빌리지(Eze village)>에서 점심을 먹고 모나코를 거쳐 멍뚱(Menton)까지 다녀 올 생각이다.


에즈를 목적지로 하니 내비게이션이 가장 빠른 길로 안내해 근처의 해안 마을을 목적지로 하고 지중해에 접한 해안도로를 달렸다. 작은 해안 마을에 차를 세우고 찰랑거리는 지중해를 멍하니 바라보았다. 


다시 에즈로 방향을 정하니 꼬불꼬불한 언덕길을 지나 큰길로 연결되는 도로로 안내한다. 좁은 도로의 양 옆으로 작은 마을도 있고 한적한 곳에 드문드문 집들이 있다. 꽤 멋있는 저택들도 있다. 산비탈에 집을 짓고 사는 걸 보며 땅이 넓으니 그린벨트 개념이 필요 없겠구나, 대신 도심 내 재건축을 엄격히 제한하니 상황에 맞는 선택들이다 싶다. 지중해를 바라보는 작고 노란 교회와 숲으로 난 돌계단길을 한 번 가보고 싶은데 이 좁은 길에 정차를 할 수가 없다. 한참을 오르니 조금 큰 도로로 연결된다. 도로는 가파른 절벽의 중턱을 깎아 만든 길이라 아슬아슬하다. 모나코 공주가 이 도로에서 교통사고로 죽었다고 한다.


<에즈 빌리지>에 입구의 공용 주차장은 이미 만원이다. 근처의 다른 주차장을 찾아 헤매다 먼가 의도대로 안된다는 예감이 들기 시작했다. 아침을 안 먹어 배도 고팠지만 식당 앞에 주차장이나 발레 파킹 서비스 같은 서울에서 당연한 것들이 이곳에는 없다. 도로 가에 꽃들이며 테이블이며 근사하게 세팅된 식당이 있지만 내겐 그림의 떡이다.


에즈 길가의 예쁜 레스토랑, 그림의 떡


주차장 표시를 발견하고 가는데 거리가 꽤 멀다. 산 쪽 마을로 올라가는데 아마 주차를 하고 셔틀버스로 데려다주는 주차장인 것 같다. 사설 주차장이 별로 내키지 않아 주차장 반대편에 ‘parc naturel’ 팻말을 보고 산길로 들어갔다. 산속으로 난 도로는 한산하고 중간중간 공터에 차를 세워 두고 트래킹 하는 사람들이 보인다. 좀 전에 야자수를 보고 올라왔는데 바람에 찬 기운이 느껴진다. 저 멀리 하얀 설산이 보여 지도를 보니 아마 알프스 산맥의 끝자락쯤 되는 것 같다. 지중해와 알프스가 보이는 뷰 포인트라니, 햄버거가 있으면 여기서 한나절쯤 보내도 되겠다 싶다. 그나마 물 한 통 가지고 와서 다행이다.


공원 입구에 고풍스러운 호텔이 있어 들어가니 저녁식사만 가능하다고 한다. 모나코로 가보자 하고 다시 산 길을 내려와 동쪽으로 차를 몰아갔다. 얼마 지나지 않아 긴 터널을 지나 외교부 문자가 들어오는 걸 보니 모나코로 들어왔구나 싶다. 그런데 얼마 지나지 않아 핸드폰에 연결된 내비게이션이 동작을 안 한다. 휴대폰에 어떤 설정을 잘못한 건지 빠르게 생각했지만 알 수가 없다. 차를 세워 확인하고 싶은데 표지판도 낯설기만 하다. 식당이나 카페가 있으면 차를 세우고 어찌해 보겠는데 그럴 만한 곳을 찾을 수가 없었다. 몬테카를로로 오니 고급 차들이 즐비하다. 오늘은 안 되겠다. 너무 준비나 사전정보 없이 무턱대고 온 나를 자책하며 차를 돌렸다.


돌아오는 길에 에즈 근처에 봐 둔 중국 식당으로 들어가니 점심시간이 끝났다고 한다. 낭패스러운 표정을 지으니 뜨거운(hot) 소고기요리와 스프링롤은 된다고 해서 뜨거운 그것과 밥을 시켰다. 와이파이 연결을 부탁해 늦었지만 태평양 위에 있을 아내에게 인사를 했다. 좀 있으니 매운(hot) 소고기 볶음과 밥 한 그릇이 나온다. 오후 3시 반에 처음 먹는 식사다. 시장이 반찬이라더니 꿀맛이다.


식사를 하고 ‘Riserva’라고 적힌 곳에 비상등 켜고 주차를 하고 <에즈 빌리지>를 입구를 한 바퀴 돌아보고 내려왔다. 깎아지른 언덕 위에 왜 이런 마을을 만들었을까 궁금해졌다. 이곳은 공부 좀 하고 다시 와야지 생각하며 돌아왔다.


집에 돌아와 동네 한 바퀴를 돌았다. 동네는 여는 사람 사는 동네처럼 세탁소가 있고, 빵 가게가 있고, 맥주와 음식을 파는 곳, 식료품 등을 파는 마트가 있다. 까르푸에서 바게트 빵과 통후추와 버터 두 조각과 저녁에 먹을 구운 닭다리를 사서 바게트 빵은 백팩 옆에 꽂고 나왔다.


와인 한잔 하며 하루를 마감한다. 

준비 없이 출발해 계획은 뒤죽박죽이 되고 스트레스가 많은 하루였다. 예상하지 못했거나 기대했던 것과 다른 상황에서 차분함을 유지하려 에너지를 많이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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