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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강철구 May 24. 2023

DAY18. 니스에서의 일요일

일요일이다. 해변을 산책하고 시장을 둘러보고 미사도 드릴 겸 집을 나섰다.


조깅하는 사람이 많다. 무리를 지어 달리는 조깅 동호회도 있다. 첫 직장에서 마라톤동호회에서 매주 일요일 여의도에서 모여 한강변을 10킬로씩 달렸다. 나의 꼬임에 처음 나와 숨을 헐떡이며 뛰던 그 친구 얼굴과 술이 덜 깨서 양말을 안 신은지도 모르고 달려서 발가락이 까져 따끔거리는 걸 참고 달렸던 그날 아침까지 마치 어제처럼 생생하다.


항구 쪽에 무슨 행사를 하는지 빈티지 한 벤츠와 포르셰 등 오픈카들이 전시되어 있다. 항구와 해변이 이어지는 지점에 포토 존으로 유명한 ‘#I Love NICE’의 큰 입간판에 서면 니스해변 전체가 한 앵글에 들어온다. 해안의 곡선은 마치 처음부터 그렇게 설계한 것처럼 선이 유려하여 ‘천사의 해변’이라는 이름이 어울린다. 부제 ‘초승달 해변’은 어떨까? 어제 모나코로 들어가는 지하터널의 곡선도 니스 해안선을 닮았던 것 같다.


아침 바다는 아직 찰 것 같은데 수영하는 사람도 있고, 해안선을 따라 유유히 카약을 노 저어 가는 사람, 얼마를 걸어가니 낚시하는 사람도 있다. 수영하고, 뒹굴고-젊은 연인이 아침부터-, 멍 때리고, 낚시하고, 노 젓는 등의 자유로움이 해수욕이라는 이름으로 규정되지 않아 좋아 보였다. 자갈밭 해변과 그와 나란히 있는 ‘영국인 산책로’를 번갈아 걸었다. 엄마와 두 딸이 큰 봉지와 집게를 들고 해변의 휴지를 줍고 있다.


해변 근처의 ‘살레야 시장’ 쪽으로 갔다. 그저께 지나왔지만 비누도 살 겸 한 번 더 찾았다. 꽃시장이라고 하지만 다양한 식료품과 기념품이 아기자기하게 있는 벼룩시장 같은 곳이다.


코트다쥐르에서 생산되는 신선한 꽃들이 매일 모인다는 꽃 시장은 형형색색 다양한 종류의 꽃과 화분으로 가득했다. 한쪽에는 미적 감각을 맘껏 뽐낸 아름답고 풍성하게 꾸민 꽃다발이 진열대를 가득 채우고 있다. 한 다발 사고 싶은데 줄 사람이 없구나.


벼룩시장으로 이어지니 말린 과일, 비누와 올리브오일, 화려한 무늬의 머그컵과 쟁반들 파는 상점을 줄이어 있고 이어 농산물을 파는 상점이 있다. 마늘 시금치 파 호박 완두콩 감자 양파 보랏빛 도는 총각무 등 종류도 다양한다. 피망은 엄청 크고 당근은 길고 가늘다. 호박꽃이 가지런히 진열되어 있어 먹는 거냐고 물으니 그렇단다. 비누 하나와 5유로를 주고 셀러리와 당근과 오렌지를 즉석에서 간 주스를 사서 시장에서 나왔다.


‘마세나 광장’을 지나 니스의 중심을 관통하는 곧고 넓은 쇼핑거리를 따라 한참을 걸어 니스의 노트르담 성당에 도착했다. 미사 시작시간이 조금 지났다. 신부님의 강론 시간인 것 같다. 뒤쪽에 앉아 기도를 드리고 성체도 모셨다. 여행 가서도 미사에 참여하라고 한 아내의 권유를 이행한 것 같아 뿌듯하다.


아침 겸 점심으로 성당 근처의 베트남 식당에서 쌀국수 한 그릇을 했다. 잘게 썬 베트남 고추를 듬뿍 넣어 먹었더니 속이 화끈거린다. 식당에서 나와 구글맵을 보며 샤갈 박물관으로 갔다. 부자 동네인 듯한 곳에 샤갈 박물관이 있는데 관람시간이 2시부터라는데 3시부터 니스 해안을 한 바퀴 도는 크루즈를 예약해 둬서 시간이 맞지 않아 박물관 정원을 잠깐 구경하고 바로 나왔다.


천천히 걸어 다시 니스 항구로 왔는데 박물관 관람을 안 했더니 생각보다 일찍 도착했다. 항구가 보이는 카페테라스에서 맥주 한 잔을 하고도 시간이 남아 미리 줄을 섰다. 덕분에 크루즈의 2층 뱃머리 쪽에 자리를 잡았다. 코발트 빛깔의 바다와 지중해의 바람을 흠뻑 맞고 숙소로 돌아왔다.


숙소로 돌아와 세탁기를 돌리고 저녁을 준비한다.

아시아 식당에서 산 7.5유로짜리 소고기 볶음과 숙소에 전자레인지가 없어 그냥 뒀던 햇반으로 소고기 볶음밥을 만들었다. 먼저 햇반을 프라이팬에 기름을 두르고 살짝 볶다가 사 온 소고기 볶음과 국물을 조금 부어 조리듯이 볶아 마지막에 후추를 뿌려 접시에 옮겨 닮고 계란 프라이를 그 위에 얹고 루꼴라를 한쪽에 올려놓으니 모양이 그럴싸하다. 풍성하게 생겨 사긴 했지만 어떻게 먹을지 몰라 냉장고에 둔 유럽상추를 후다닥 씻었다. 유럽상추를 펴고 소고기를 골라 그 위에 올리고 얼핏 보면 쑥갓이랑 비슷한 루꼴라를 얹어 고추장과 함께 싸 먹었다. 이 음식과는 조금 어색한 조합이지만 와인과 곁들이니 니스 버전의 ‘나는 자연인’이 따로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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