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을 고치다, 길이 되다 4화

나는 나를 속이고 있었다

by 공인멘토

나는 도를 따르는 사람이 아니라, 누군가의 칭찬을 먹고사는 허기진 사람이었다.


1절. “나는 욕심 없는 사람입니다”라는 말의 정체


“저는 욕심이 없습니다.”

한때 나는 그 말을 자주 했다.

말투는 낮고 조용했으며, 표정은 침착했고, 눈빛은 공허하지 않도록 정제되어 있었다.

나는 욕심을 초월한 사람처럼 보이고 싶었다.

실제로는 초월하지 못했으면서도.


그러나 그 말 뒤에는 늘 같은 바람이 따라붙었다.

‘저 사람, 뭔가 다르다’는 누군가의 속마음.

‘그 사람 참 수행자 같아’라는 칭찬 한마디.

나는 도를 따르는 사람이라 말하면서도, 그 도가 나를 반짝이게 해 주길 바랐다.


욕심이 없다는 말은, 아이러니하게도 가장 계산된 말이었다.

나는 욕심을 없애려 한 게 아니었다.

욕심 없는 사람처럼 보이고 싶었던 것이다.


내가 자주 입었던 옅은 색의 옷, 말할 때마다 손을 가만히 모으던 습관,

목소리를 낮추며 말끝을 흐리던 방식.

그 모든 건 ‘겸손’이 아니라 ‘연출’이었다.

나는 ‘수행자’의 이미지를 입고 살았다.

그리고 그 이미지가 누군가에게 존경으로 비치기를 바랐다.


“나는 진짜 도를 따르지 않았다.

나는 도인이란 이미지를 좇았고,

그 이미지로 인정받고 싶어 했다.”


지금 돌아보면, 내가 가장 집착했던 건

무소유도 아니고, 진리도 아니었다.

그 모든 걸 수행하고 있는 ‘나’를 바라봐주는 시선이었다.



2절. 도인의 옷을 입은 채, 세상의 박수를 기다리다


나는 늘 단정한 옷을 입었다.

색이 화려하지 않고, 무늬가 없고, 질감은 투박한.

마치 마음을 비운 사람처럼 보이고 싶었다.

그 옷을 입으면, 내 생각도 단정해지는 것 같았다.

겸손은 겉모습에서 시작된다고 믿었으니까.


말투도 바꿨다.

빠르게 말하지 않고, 상대가 끝까지 말할 때까지 기다렸다.

감정을 섞지 않으려 조심했고,

조언을 해달라는 말이 나오기도 전에

미리 정제된 말을 준비하곤 했다.


사람들은 내게 말했다.

“말씀이 깊으시네요.”

“뭔가 분위기 자체가 다르세요.”

그때마다 나는 겸손한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숙였지만,

속으로는 그 말들을 반복해서 되뇌었다.

더 오래 기억하고, 더 자주 들을 수 있도록.


‘수행 중입니다’라는 말은

어느새 나에게 명패가 되었다.

그 한마디면, 사람들은 나를 판단하지 않았고

내 부족함조차 깊은 무언가로 해석해 주었다.


“나는 빛이 되려 한 게 아니었다.

나는 누군가의 눈에 들어야 한다는 그림자가 되고 있었다.”


나는 스스로를 밝히려는 사람이 아니라,

누군가의 눈동자 안에서 반짝이려는 사람이었다.

수행과 겸손이라는 옷을 입고,

박수와 찬사를 기다리는 무대 위 배우였다.



3절. 인정받지 못한 순간의 분노


한 모임에서였다.

나는 늘 하던 대로 조용히 앉아 있었고,

말수도 줄이고, 시선을 모으고, 모든 걸 듣는 태도를 유지했다.

그런데 그날은, 누군가 다른 사람이 조명을 받았다.

나보다 수련이 짧았고, 나보다 얕은 말을 했고,

나보다 훨씬 감정적이기까지 했던 그 사람이.


그 사람이 말을 마치자 사람들이 고개를 끄덕였다.

진지한 표정으로 박수를 치는 이도 있었다.

나는 고개를 끄덕이며 웃었지만,

속에서는 울컥하는 무언가가 치밀어 올랐다.

‘그 정도 말은 나도 할 수 있었는데…’

‘내가 하면 가벼워 보이고, 저 사람이 하면 깊어 보이는 이유는 뭘까…’


나는 도를 따르는 사람처럼 보이고 싶었다.

그러면서 동시에, 도를 가장 잘 따르는 사람처럼 여겨지길 바랐다.

겸손한 척했지만, 내 안의 욕망은 언제나 순위를 계산하고 있었다.


“그 사람보다 내가 더 도를 아는데…

왜 저 사람이 더 대접받는 걸까.”


도인이 되고 싶다던 나는,

사실 무대 위 배우 같은 심정으로 서 있었다.

평정심은 연기였고, 침묵은 계산이었다.

나는 말없이 빛나는 사람이 아니라,

말없이 인정받고 싶은 사람이었다.


칭찬을 받지 못하면 서운했고,

눈에 띄지 않으면 마음이 헛헛했다.

그러면서도 그 감정을 “욕심이 아니다”라고 포장하며,

스스로에게조차 진심을 숨겼다.



4절. 나는 수행자가 아니라, 배우였다


‘수행자’라는 말이 내게는 정체성이었다.

그것은 길이 아니라 역할이었다.

나는 어느 순간부터 진심보다 태도를 먼저 연습했고,

느낌보다 표정을 먼저 조절했고,

삶보다 이미지를 먼저 관리했다.


나의 하루는 철저히 연출되어 있었다.

아침에는 명상하고, 식사 중에는 말수를 줄이고,

모임에서는 먼저 양보하고,

누군가 고민을 털어놓으면 무겁게 고개를 끄덕였다.

그 모든 행동에 ‘의도’가 깃들어 있었고,

그 의도는 항상 누군가의 인정을 향해 있었다.


가장 무서운 건—

나 스스로도 그걸 진심이라 믿고 있었다는 점이다.


나는 ‘좋은 사람처럼 보이기’에 성공하면

그게 진짜 좋은 사람이 되는 줄 알았다.

그러나 삶은 연극이 아니었다.

관객이 떠난 무대 위에 홀로 서면,

아무 말도 할 수 없는 공허한 사람만이 남았다.


“진짜 수행자는 자기를 잊는다.

나는 나를 더 크게 만들어서 잊히지 않으려 했을 뿐이다.”


나는 진리를 따르는 사람이 아니라,

진리를 말하는 사람처럼 보이려 한 사람이었다.

진심보다 외형을, 삶보다 태도를 중요하게 여긴

**‘겉만 고요한 사람’**이었다.


이제야 인정할 수 있다.

나는 수행자가 아니었다.

나는 무대에 선 배우였다.


5절. 무너지지 않고는, 절대 볼 수 없는 내 민낯


어느 날, 모든 것이 무너졌다.

사람들이 떠났다.

나를 칭찬해 주던 목소리도, 존중해 주던 시선도 사라졌다.

내가 만든 이미지의 껍질은 조용히 부서졌고,

그 안에서 드러난 건 너무도 익숙한 얼굴이었다.


겸손하지도 않았고, 평온하지도 않았으며,

오히려 외롭고 불안하고,

그 모든 연기를 멈췄을 때 텅 빈 마음을 견디지 못하는 사람.


나는 그제야 내 ‘수행’이

깨달음을 향한 여정이 아니었다는 걸 알아챘다.

그건 사람들에게 버려지지 않기 위한 몸부림이었다.

사람들이 떠나자 나는 붕괴했고,

그 붕괴 속에서 비로소 진짜 나를 보게 되었다.


“나는 수행자도, 깨달은 자도 아니었다.

그저 외로웠던 인간이었다.”


내가 말하던 도는, 사실 외로움의 반작용이었다.

속이 허전하니 도를 말했고,

불안하니 명상을 했고,

사랑받고 싶으니 겸손한 척을 했다.


진리를 좇은 게 아니라

인정받을 수 있는 언어와 행동을 흉내 냈던 것이다.


그리고 그 모든 게 무너진 뒤에야—

나는 비로소

무너질 수 있는 내가 살아 있다는 걸 느꼈다.

그 순간부터 시작이었다.

길은, 무너지지 않으면 보이지 않는다는 걸

그때 처음 알게 되었다.



6절. 이제는 연기하지 않으려 한다


이제는 도인처럼 보이고 싶지 않다.

무언가를 안다고 말하지 않아도 괜찮고,

잘 모르겠다고 말하는 게 더 정직하다고 느낀다.

실수해도 괜찮고, 흔들려도 괜찮다.

그게 사람이니까.


나는 더 이상 ‘수행자’라는 무대 위의 역할에 서고 싶지 않다.

이제는 그냥 땅 위를 걷는 한 사람으로,

실패하고 후회하면서도 계속 배우는 사람으로,

살아가고 싶다.


예전처럼 조용히 고개를 끄덕이며 누군가의 존경을 유도하지 않을 것이다.

말보다는 삶으로,

표정보다는 태도로,

어떤 메시지를 담고 싶다.


“나는 더 이상, 빛나는 말로 나를 포장하지 않는다.

그냥, 내가 말했던 대로 살아보고 싶을 뿐이다.”


겸손한 척하지 않겠다.

정말 겸손한 사람이 되기 위해,

나는 더 많이 부서지고, 더 많이 배우며,

조용히 길 위에 서 있으려 한다.


도는 말에 있지 않다.

사는 것 안에 있다.



오늘의 한 문장

“진짜 겸손은 연기가 아니다. 자기 자신을 내려놓을 용기에서 비롯된다.”


오늘의 질문

“당신이 하고 있는 그 겸손과 배려, 정말 타인을 위한 것인가요,

아니면 당신을 더 좋아 보이게 만들기 위한 전략인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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