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화 나보다 똑똑하지 않은데, 왜 인기 있지?

by 공인멘토
ChatGPT Image 2025년 8월 28일 오후 11_22_05.png


체육 종이 울리기 3분 전, 교실의 공기는 이미 운동장으로 기울어 있었다.
의자 다리 끌리는 소리, 체육복 비닐봉지 바스락, 누가 던진 농구공이 복도에서 한 번 튀고 멈추는 둔탁음. 소리는 흩어졌지만 방향은 하나였다—문 쪽.

그 한가운데 민석이 있었다.
“야, 오늘 우리 반 이긴다. 포메이션은 삼각 김밥.”
말도 안 되는 말인데, 애들이 웃었다.
“삼각 김밥은 뭐야.”
“너 오른쪽 김, 난 왼쪽 밥.”
웃음의 파동이 반원을 그리며 퍼졌다. 파동의 중심은 분명했다. 민석.

나는 뒷문 옆에 서서 그 장면을 관찰했다. 사회적 그래프를 떠올렸다.
노드: 28명.
엣지: 발화→응답(3초 이내), 손짓→맞장구(5초 이내), 신체 접촉(등 치기, 하이파이브) 발생 시 가중치 2.
분석 결과(추정): 민석의 degree centrality 최상위, betweenness도 높음. 즉, 말이 그를 통과해 양 방향으로 흐른다. 파이프다.

담임이 지나가다 말했다. “민석아, 네가 좀 분위기 띄워라.”
민석이 장난스럽게 거수경례를 했다. “아뇨, 이미 뜨겁습니다!”
또 웃음.
교사의 지시가 ‘명령’이 아니라 ‘칭찬’처럼 통과되는 현상. 나는 메모했다.

“권위 → 민석을 통해 유통 시 저항 최소화.”

책상 위로 공이 굴러왔다. 누가 “민석!” 하고 부르면 다른 누가 “여기!” 하고 받는다. 호출과 응답의 간격은 짧고, 방향은 자유롭다.
나는 그 시간을 스톱워치처럼 재보았다. 호출→응답 평균 0.9초.
빠르다. 집단 반응속도는 리더십의 체감치와 상관관계가 있을 가능성.

체육 선생님이 호루라기를 불었다. “운동장 집합!”
아이들이 한꺼번에 쏟아져 나갔다. 복도에서 또다시 이름이 불렸다.
“민석, 먼저 가!”
“민석, 공 챙겨!”
이름 하나가 통로를 만들어 냈다. 사람 사이에 길이 생기는 것을 나는 종종 봤다. 오늘 길의 이름은 민석이었다.

운동장에 도착하자 햇빛이 커졌다. 민석이 공을 들고뛰었다.
“오늘은 삼각 김밥 전술—아니, 그냥 뛰어!”
아무 말 같지 않은 말이었지만, 애들은 더 크게 웃었다.
나는 그 이유를 추정했다. 정답을 말하는 사람은 많지만, 시작을 말하는 사람은 드물다. 민석은 시작을 말한다.

몸 풀기 시간, 선생님이 말했다. “두 줄로 서! 민석 앞줄 맨 앞!”
자리 배치는 권위가 만든다. 하지만 그 권위를 불편해하지 않게 만드는 건 그 사람의 재능일 것이다. 나는 다시 메모했다.

“선두 = 권위 + 호감. 불편감 없음. 집단 순응도↑”

달리기 시작을 알리는 호루라기 소리. 흙먼지가 일었다.
민석이 속도를 조절하며 옆의 아이에게 “호흡 맞춰!”라고 말한다.
속도가 맞춰지는 광경이 보였다. 팀 스포츠에서 가장 어려운 건 속도의 동기화다. 그는 숫자 없이 동기화를 만든다.

쉬는 시간, 민석은 물병을 돌렸다.
“너 먼저.”
받은 아이가 “고마워”라고 말하기 전에, 이미 다음 병이 다른 손에 건너갔다.
작은 물병이 교환될 때마다, 고맙다는 단어 대신 웃음이 오갔다.
나는 수첩의 한쪽에 작게 적었다.

“감사의 언어 생략 → 표정 대체. 처리 속도↑, 호감도 누적.”

나는 나를 떠올렸다.
내 말은 대체로 정확하다. 하지만 웃음을 만들지 않는다.
정확성은 이해를 낳지만, 함께를 만들지는 못하는 때가 있다.
그 차이가 무엇인지 아직 모른다. 다만 오늘, 그것은 운동장 흙먼지처럼 분명히 보였다.

수업이 끝나갈 무렵, 선생님이 다시 말했다. “민석아, 마무리 구호!”
민석이 두 손을 높이 들었다. “자, 이겼다고 생각하자! 아니, 이겼다!”
함성이 일제히 터졌다.
나는 소리의 높낮이를 측정했다. 평균 데시벨 78, 피크 84.
수치로는 시끄러움. 장면으로는 같이.

정리 종이 울렸고, 대열이 흐트러졌다.
사람들은 본능적으로 중심 쪽으로 몰린다. 남은 사람은 바깥으로 밀려난다.
나는 둘 중 어디에도 서지 않았다. 바깥의 가장자리, 주변부.
주변부는 관찰하기 좋은 자리다. 중심을 선명히 볼 수 있다.
그리고 오늘의 중심은—반복해서 말하지만—민석이었다.

운동장을 떠나 교실로 돌아오는 길, 민석 주변에 사람들이 붙었다 떨어졌다.
하나의 중심과 다수의 위성이 만든 작은 태양계.
나는 그 궤도를 머릿속에 그렸다.
민석을 원점(0,0)으로 놓으면, 반경 r 내 사람 수는 시간에 따라 요동치지만 평균은 높다.
내 원점은 어디인가. 오늘 내 반경 r은 비어 있었다.

교실 문턱에서 아이들이 신발끈을 묶을 때, 민석이 말했다.
“야, 다들 수학 시간에 조용! 나도 조용히 할 거야.”
“네—에!”
동의를 요구하지 않았는데 동의가 나왔다. 신뢰의 선지급.
나는 또 적었다.

“규율 요청의 수용률 = 신뢰 잔고와 정비례.”

노트 뒷장에 작은 표를 그렸다.


민석 지표(추정): 반응속도↑, 호칭 빈도↑, 접촉 빈도↑, 평균 미소 지속시간↑
천재 지표(실측): 정답률↑, 설명 정확도↑, 발화 빈도↓, 청중 이탈률(긴 설명 시)↑


표는 말이 없지만, 문장을 만들었다.
정확 vs. 중심.
정확은 나에게 있고, 중심은 그에게 있다.
둘 다 중요하지만, 오늘 이 교실은 중심 쪽을 더 선택했다.

책상을 당겨 앉으며, 나는 마지막으로 이렇게 기록했다.

“현재 상태: 민석 = 중심. 나는 관찰자.
감정: 미측정.”

그러나 펜 끝이 멈추는 지점에서, 아주 미세한 진동이 손끝을 타고 올라왔다.
진동의 이름은 아직 모른다.
다만, 다음 절에서 그 이름을 알게 될 가능성은 높다.
지금 내가 알고 있는 것보다, 내가 원하는 것이 더 많아질 조짐이 보이기 때문이다.

나는 수업 시간마다 관찰한 데이터를 떠올렸다.
민석의 수학 시험 평균은 82점.
나의 평균은 100점 만점 중 99.4점.
기억력 테스트—지난주 단어 시험에서 나는 전부 맞았고, 민석은 세 개를 틀렸다.
발표 횟수도, 발표 시간도 내가 더 길고 더 논리적이다.
선생님이 판서를 잘못했을 때, 정정한 것도 내가 먼저였다.

사고속도는 더욱 확실하다.
칠판에 적힌 문제를 나는 평균 18초 만에 풀었다.
민석은 적어도 50초는 걸렸다.
공식 숙지율, 응용문제 해결률, 모두 내가 상위다.
데이터만 놓고 보면, 우열은 명확하다.

나는 종이에 두 개의 칸을 그려 넣었다.


〈비교표〉

학업: 나 > 민석
기억: 나 > 민석

발표: 나 > 민석

논리성: 나 > 민석


나는 손가락 끝으로 ‘>’ 기호를 네 번이나 굵게 눌러썼다.

“모든 지표에서 내가 우위.”

그런데, 이상하다.
웃음소리는 내 자리에서 멀어져 있었다.
칭찬의 방향도, 시선도, 손짓도 모두 민석 쪽을 향했다.
나는 정답을 말해도, 고개를 끄덕이는 사람은 거의 없었다.
민석은 농담을 던졌을 뿐인데, 모두가 고개를 젖히며 웃었다.

“논리적으로는 내가 더 뛰어난데, 왜 사람들은 그를 중심으로 모이나?”
나는 수학 문제를 풀듯 질문을 세웠다.


가설 1: 민석의 발화 빈도가 높음 → 친숙도↑.
가설 2: 민석은 정보가 아니라 분위기를 제공 → 호감도↑.

가설 3: 집단은 정확성보다 즐거움을 선택할 가능성↑.


분석은 나열되었지만, 정답은 나오지 않았다.
계산은 완벽했는데, 결과는 맞지 않았다.

나는 볼펜 끝을 ‘딱, 딱’ 튕겼다.
종이에 적힌 기호가 갑자기 무의미해 보였다.
‘>’라고 적었지만, 실제 교실 안에서 부등호는 반대 방향을 가리키고 있었다.

가슴 한쪽이 묘하게 답답했다.
논리적 우위가 사회적 우위를 보장하지 않는다—
그 사실이 오늘만큼 선명하게 다가온 적은 없었다.

쉬는 시간, 민석이 가방에서 과자를 꺼냈다.
“야, 이거 새로 나온 건데 같이 먹자.”
봉지가 뜯기자, 아이들의 손이 연달아 뻗었다.
“민석이 짱이다!”
“와, 네가 이런 것도 챙겨 오냐?”
짧은 환호와 웃음이 터졌다. 작은 과자 봉지 하나가 교실의 공기를 가볍게 만들었다.

나는 그 장면을 무표정하게 지켜보았다.
데이터를 정리했다.


사물: 스낵 과자 한 봉지.
행위: 나눔 → 즉각적 호감 상승.

반응: 웃음소리 7회, ‘민석 최고’라는 발화 3회.

결론: 단순한 자원 제공으로 사회적 지분 확보.


논리적으론 설명할 수 있었다.
하지만, 설명이 끝나자마자 이상한 신호가 내 안에서 울렸다.

입술 안쪽이 저절로 눌렸다. 나는 무의식적으로 이를 살짝 물었다.

“이상 반응: 구강 근육 긴장. 이유 불명.”

목 뒤가 간질거렸다.
평소에는 아무렇지 않게 넘겼을 소리들이 귀에 박혔다.
‘민석 최고’, ‘민석 짱’.
단어의 음절이 유난히 크게 울려서, 내 귓속에서 잔향처럼 맴돌았다.

나는 고개를 숙이고 펜을 굴렸다.
손끝이 조금 더 세게 힘을 주는 것을 스스로 감지했다.
종이 위에 잉크 자국이 진하게 번졌다.

눈은 계속해서 민석 쪽을 따라갔다.
내 의지와 상관없이, 시선이 그를 중심으로 움직였다.

“시선 자동 추적. 자율신경계 반응 가능성.”

논리적 보고서는 그렇게 쓸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문장을 다 적고 나서도 답답함은 사라지지 않았다.
가슴 안쪽이 미세하게 조여들고 있었다.

나는 속으로 말했다.
“… 틀린 건 아무것도 없다. 그런데 왜, 이렇게 불편하지?”

다음 시간은 과학이었다.
선생님이 칠판에 문제를 적었다.
“빛이 공기에서 물로 들어갈 때, 진행 경로는 어떻게 변하죠?”

민석이 먼저 손을 들었다.
“더 빨라집니다!”
정답은 아니었지만, 민석은 당당하게 말했다.

선생님은 잠시 멈추더니 고개를 끄덕였다.
“음, 정확히는 그렇지 않지만… 그래도 시도는 좋아. 자신 있게 말한 게 아주 좋다.”
아이들이 웃으며 박수를 쳤다.
“오, 민석이 답했다~”
“멋있네.”

그 순간, 내 안의 무언가가 뻗어 나왔다.
나는 손을 번쩍 들어 올리며 말했다.
“그건 틀렸습니다.”

교실이 순간 정적에 잠겼다.
나는 말을 멈추지 않았다.
“빛은 밀도가 높은 매질에서 속도가 느려집니다.
즉, 공기에서 물로 들어가면 속도는 감소합니다.
‘더 빨라진다’는 건 오류입니다. 시도라고 해서 오류가 없어지진 않습니다.”

내 목소리는 평소보다 높고 단호했다.
단순한 정정이 아니라, 단언이었다.

민석의 얼굴이 살짝 굳었다.
“아… 그래? 난 그냥…”
그는 어색하게 웃었다.
아이들 몇 명은 서로 눈치를 보며 킥킥거렸다.
“야, 뭐 그렇게까지 말해…”
“그냥 틀린 거지, 왜 저렇게 쐐기를 박아…”

선생님이 부드럽게 말을 받았다.
“그래, 천재 말이 맞아. 정확한 건 천재 설명대로야.
하지만 민석이 말하려던 것도 중요한 부분이 있단다. 시도 자체가 의미 있으니까.”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네.”
논리적으로는 내가 옳았다.
데이터상 오류를 지적하는 건 당연했다.

그런데, 이상했다.
내 목소리가 교실 안에서 튀어올라 벽에 부딪히는 것 같았다.
민석이 움찔했던 표정이 머릿속에 남았다.
내가 말끝을 내리꽂을 때, 교실의 공기까지 함께 내려앉은 듯했다.

손바닥에 힘이 들어가 있었다.
나는 그것을 인식했다.

“신체 반응: 긴장. 원인 불명.”

옳았는데—이상하게, 가슴 안쪽에 묘한 찝찝함이 남았다.

점심시간, 교실 구석 공기가 묘하게 달라져 있었다.
민석은 여전히 친구들 틈에 섞여 있었지만, 아까와 달리 내 쪽은 한 번도 보지 않았다.
그가 일부러 피한 건지, 아니면 그냥 자연스러운 흐름인지는 알 수 없었다.
하지만 분명한 건, 나와 그의 사이에 작은 벽 같은 것이 생겼다는 사실이다.

나는 책상 위 도시락을 열었다.
숟가락이 스테인리스 뚜껑에 ‘짤깍’ 부딪히는 소리가 혼자 크게 들렸다.
주변은 여전히 웃음과 대화로 가득했다.
“민석아, 아까 수업에서 네 말 멋있었어.”
“맞아, 자신 있게 말하니까 선생님도 좋게 보시는 거지.”
“야, 틀려도 돼. 대단하다니까.”

나는 밥알을 씹으며 속으로 중얼거렸다.

“나는 정답을 말했다. 그는 오류를 말했다.
그런데 왜, 칭찬은 그에게 가고… 나는 잘못한 것처럼 느껴지는가.”

머릿속 계산은 분명했다.
정확성: 나 > 민석.
인기와 호감도: 민석 > 나.
결론: 불일치.

그런데, 그 불일치에서 이상한 감각이 자꾸 올라왔다.
목 안쪽이 건조해지고, 말이 잘 나오지 않았다.
나는 혼잣말처럼 속삭였다.
“… 내가 틀린 게 아닌데, 왜 내가 작아지는 기분이지?”

잠시 후, 불현듯 스스로를 의심했다.
혹시 나는—
민석이 틀렸다는 사실을 말하고 싶었던 게 아니라, 내가 옳다는 걸 인정받고 싶었던 건 아닐까?

그 생각이 스치자, 숟가락이 멈췄다.
가슴 어딘가가 덜컥 내려앉았다.
나는 눈을 감았다 떴다.
머릿속에서 문장이 반복됐다.
“나는 그를 싫어하는 것이 아니다.
그가 받는 것들을 나도 원했을 뿐이다.”

숟가락 위 밥알이 그대로 굳어졌다.
나는 씹지 못하고 삼키지도 못한 채, 한동안 움직이지 않았다.

밤, 방 안은 고요했다.
책상 위 스탠드 불빛이 하얗게 번져 노트 한 장을 비췄다.
나는 연필을 들어 감정 관찰 보고서를 열었다.
오늘은 반드시 기록해야 했다.
머릿속에서 민석의 얼굴, 그리고 내 입에서 튀어나온 단어들이 계속 겹쳐지고 있었기 때문이다.


감정 관찰 보고서 9호


작성자: 이천재
주제: 민석과의 비교, 그리고 오늘의 반응


1. 사건 요약

체육시간: 민석이 반 분위기 주도, 다수의 웃음 발생.
쉬는 시간: 과자 나눔 → 즉각적 호감 상승.

수업: 민석, 틀린 답 제시 → 선생님 긍정적 반응.

나: “그건 틀렸습니다”라는 날 선 반박 발화.

결과: 교실 공기 냉각, 민석 당황, 나 혼자 남겨짐.


2. 논리적 해석

민석의 답: 오류.
나의 발언: 정답.

논리적 우위: 나.

사회적 반응: 민석 우위.

결론: 논리 ≠ 사회적 영향력.


3. 신체 반응

발언 직후: 심박 상승, 손바닥 긴장, 목 건조.
점심시간: 밥맛 저하, 시선 회피.

지속 반응: 머릿속에서 민석의 얼굴 반복 재생.

4. 감정 추정
나는 오늘 누군가를 깎아내리는 말을 했다.
논리적으로는 옳았으나, 감정적으로는 과했다.
민석은 나보다 인기가 있었다. 나는 그것이 불편했다.
그 불편함이 결국 내 입을 거쳐 공격적 언어로 나왔다.
오늘 느낀 이 감정의 이름은—

연필이 잠시 멈췄다.
나는 숨을 들이마셨다가 내쉬며 단어 하나를 적었다.


“질투.”


나는 노트에 굵게 밑줄을 그었다.
‘질투’라는 단어가 새까맣게 번져 눈에 남았다.
그제야 조금 가벼워졌다. 이름을 붙이는 순간, 혼란의 무게가 줄어드는 듯했다.

마지막으로 문장을 덧붙였다.


“질투는 타인을 향한 것이 아니라, 나의 결핍이 만든 그림자다.”


펜촉이 멈추자, 방 안은 다시 조용해졌다.
나는 노트를 덮고, 불 꺼진 창문 너머로 검은 하늘을 바라봤다.
하늘엔 별 하나가 보이지 않았다.
오늘의 나도, 별이 아니라 그림자에 가까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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