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녁, 부엌 식탁 위에는 학교에서 받아온 가정통신문이 놓여 있었다.
**〈학부모 상담 주간 안내〉**라는 굵은 제목이 맨 위에 적혀 있었다.
엄마는 장바구니를 부엌 구석에 내려두고, 손을 씻은 뒤 조용히 자리에 앉았다.
종이를 펼쳐 읽기 시작하는 엄마의 눈동자가 차분히 움직였다.
나는 맞은편에서 그 모습을 관찰했다.
엄마의 시선이 줄글을 따라 흐르는 동안, 나는 시선 이동 속도를 계산하고 있었다.
“초당 4회. 정상 범위.”
겉보기엔 평범한 안내문이었다. 상담 일정과 시간, 신청 방법.
그러나 엄마의 눈길이 마지막 칸에서 멈췄다.
하단 모서리에 교사의 펜글씨로 짧은 메모가 적혀 있었다.
“천재가 친구들과 잘 어울리지 못하는 모습이 종종 보입니다.
상담 때 함께 논의하면 좋겠습니다.”
엄마는 그 문장을 한참 동안 바라보다가, 손가락 끝으로 종이를 천천히 접었다.
목소리를 낮게 흘렸다.
“… 그렇구나. 선생님이랑 상담을 하자고 했구나.”
그 말은 담담했지만, 끝부분이 약간 떨렸다.
나는 그 순간, 엄마의 눈가에 맺힌 미세한 반짝임을 포착했다.
속눈썹 끝이 젖어 있었다.
즉시 기록했다.
“눈 주변 수분 증가. 습도 상승. 원인 불명.”
엄마는 이내 자리를 털고 일어나 식탁을 정리했다.
빈 밥그릇을 싱크대에 옮기며 등을 돌렸다.
그 어깨가 작게 오르내렸다.
나는 아무 말도 하지 못한 채, 그 뒷모습을 바라보기만 했다.
엄마는 종이를 반듯하게 접어 식탁 옆에 내려놓았다.
짧은 한숨 같은 숨소리가 새어 나왔다.
나는 그 순간을 포착했다.
“호흡 길이 평균보다 1.3초 길어짐. 목소리 미세 진동.”
하지만 그 원인을 알 수는 없었다.
상담 안내문은 단순한 절차적 문서일 뿐이라고 알고 있었다.
나는 종이 자체를 보지 않았으니, 그 안의 어떤 내용이 엄마를 멈추게 했는지는 알 수 없었다.
그럼에도 눈앞의 사실은 명확했다.
엄마의 속눈썹 끝에 맺힌 수분, 말끝의 떨림, 잠깐의 침묵.
그 모든 것이 ‘감정 반응’이라는 것을 보여주고 있었다.
“논리적 이유 없음. 그러나 눈물 발생.”
나는 그렇게 머릿속에 적었다.
엄마는 싱크대로 향했다.
그릇을 옮기며 수돗물을 틀자, 부엌에 물소리가 가득 퍼졌다.
나는 식탁에 그대로 앉아 있었다.
숟가락을 들고 있었지만, 밥은 이미 다 식어 있었다.
입술이 움직이려 했지만, 끝내 열리지 않았다.
“왜 울지요?”라는 질문이 목 끝에서 걸려 나가지 않았다.
내 안에서는 수십 개의 후보 문장이 생성되었다.
“무슨 일 있으세요?”
“제가 잘못한 건가요?”
“괜찮아요?”
그러나 모든 문장은 목구멍에서 증발했다.
혀는 굳어 있었고, 소리는 만들어지지 않았다.
나는 엄마의 뒷모습을 관찰했다.
그 작은 어깨가 설거지 동작에 따라 오르락내리락했다.
평소와 같은 일상이지만, 그 안에는 설명되지 않는 공기가 있었다.
나는 그 공기를 숫자로 환산할 수 없었다.
“눈물 = 습도 상승. 원인 불명.
행동: 질문 시도 → 실패.
결과: 침묵.”
기록은 그렇게 끝났다.
그리고 남은 건, 말하지 못한 답답함뿐이었다.
분석조차 중단된 내 안의 공백.
나는 그것이야말로 감정이라는 이름을 가져야 할 무언가일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엄마의 어깨가 물소리와 함께 오르내리는 걸 바라보는 순간,
불현듯 오래된 장면이 떠올랐다.
내 나이 여섯 살 무렵.
새벽에 눈이 떠졌을 때, 방 안은 고요했고 공기는 차가웠다.
나는 조심스레 방문을 열었다.
거실은 불이 꺼져 있었다.
그런데 어둠 속에서 작은 소리가 들려왔다.
‘훌쩍.’
숨을 죽인 듯 끊어지는 소리였다.
식탁에 엄마가 앉아 있었다.
머리카락이 어깨를 덮은 채, 고개를 숙이고 있었다.
탁자 위에는 먹다 남은 밥그릇이 놓여 있었는데, 밥은 이미 굳어 있었다.
엄마의 손은 무릎 위에 얹혀 있었고, 어깨가 규칙적으로 떨렸다.
눈물이 뺨을 따라 흘러내려 식탁 위에 떨어졌다.
‘톡.’
나는 그 소리를 분명히 들었다.
그때의 나는 아무런 계산을 할 수 없었다.
울음은 질병의 징후인가, 아니면 단순한 수분 배출인가.
의문은 떠올랐지만, 답은 나오지 않았다.
그리고 나는 선택했다.
아무것도 하지 않는 것.
작은 발걸음을 멈추고, 다시 방문을 닫아버렸다.
침대 속으로 들어가 이불을 덮었다.
그게 전부였다.
그날 이후 무슨 일이 있었는지는 기억나지 않는다.
하지만 그 장면만은 사진처럼 선명하다.
고개 숙인 엄마, 어둠 속의 식탁, 눈물이 떨어지는 소리.
나는 그때도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지금도, 똑같이.
부엌의 물소리와 함께 현재의 엄마가 보였다.
하지만 내 눈앞에는 동시에 두 개의 장면이 겹쳐 있었다.
하나는 여섯 살 무렵, 거실에서 조용히 울던 엄마.
다른 하나는 지금, 싱크대 앞에서 등을 보이는 엄마.
시간은 다르지만, 어깨는 똑같이 작아 보였다.
나는 두 번 모두 같은 위치에 서 있었다.
문 앞에서, 식탁 앞에서, 그저 바라보는 자리에.
그때도 나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지금도, 똑같았다.
‘그때 나는 무엇을 했어야 했을까?’
질문이 머릿속에 맴돌았다.
나는 공식처럼 정리해보려 했다.
사건: 엄마의 눈물 발생.
조건: 나, 감정을 모름.
결과: 행동 없음.
결론: 책임 없음.
계산은 그렇게 나왔다.
하지만 결론은 스스로도 받아들일 수 없었다.
책임이 없다고 말하는 순간, 오히려 더 무겁게 가슴에 남았다.
내 손가락이 식탁 위에서 파르르 떨렸다.
숟가락을 내려놓는 소리가 불필요하게 크게 들렸다.
엄마는 돌아보지 않았다.
그 뒷모습은 묵묵히 설거지를 이어갔다.
나는 속으로 중얼거렸다.
“… 나는 왜, 두 번이나 같은 선택을 했을까.
아무것도 하지 않는 선택.”
감정을 몰랐다는 것이, 정말로 나를 면죄해 줄 수 있을까?
그렇다면 왜 지금 이 순간, 내 안이 이렇게 무겁게 쪼여오는 걸까?
대답은 나오지 않았다.
남은 건 질문뿐이었다.
그리고 그 질문이, 내 안에서 천천히 죄책감으로 바뀌고 있었다.
저녁 식사가 거의 끝나갈 무렵, 나는 숟가락을 내려놓았다.
엄마는 빈 그릇을 차곡차곡 싱크대에 옮기며 여전히 등을 보이고 있었다.
물소리와 그릇 부딪히는 소리가 부엌을 가득 메웠다.
나는 다시 머릿속에 수많은 문장을 떠올렸다.
“왜 울었어요?”
“괜찮아요?”
“제가 뭘 도와드릴까요?”
하지만 그 문장들은 목구멍까지 차올랐다가 사라졌다.
소리가 되지 못한 채 흩어졌다.
말을 하려는 순간, 심장이 조금 빨리 뛰는 걸 스스로 감지했다.
“심박수 상승. 이유 불명.”
결국 나는 아주 단순한 문장을 선택했다.
“… 상담은 제가 참여해도 괜찮습니다.”
목소리는 낮고, 어색했다.
내 귀에도 부자연스럽게 들렸다.
그저 ‘정보를 제공하는 문장’처럼 느껴졌다.
엄마가 고개를 돌렸다.
잠시 나를 바라보다가, 천천히 웃었다.
짧고 작은 미소였지만, 분명히 미소였다.
나는 순간 멈췄다.
왜 웃는 거지? 내 문장은 위로가 아니었는데.
내 계산에는 없던 반응이었다.
분석하려는 손이 수첩을 향했지만, 펜은 움직이지 않았다.
대신 내 안에서 어떤 감각이 먼저 찾아왔다.
묘한 가벼움.
어깨에 걸려 있던 무언가가 조금은 풀리는 듯한 느낌.
“정확한 위로는 아니었지만… 전해졌다.”
나는 그렇게 생각했다.
감정을 담은 말은 아니었지만, 그 말은 엄마의 표정을 바꿨다.
그리고 그 표정은 내 안의 공기를 바꿨다.
밤, 방 안은 고요했다.
책상 위 스탠드 불빛만이 작은 원을 만들고 있었다.
나는 연필을 꺼내 수첩을 펼쳤다.
오늘은 반드시 기록해야 했다.
머릿속에서 엄마의 눈빛과 오래된 장면이 동시에 떠올라 사라지지 않았기 때문이다.
작성자: 이천재
주제: 엄마의 눈물
1. 사건 기록(현재)
저녁 식탁: 엄마, 가정통신문 확인 후 눈가 젖음.
반응: 질문 시도 실패 → 침묵.
발화: “상담은 제가 참여해도 괜찮습니다.”
결과: 엄마, 미소.
2. 회상(과거)
여섯 살 무렵: 새벽에 거실에서 엄마가 울고 있었음.
나는 아무 행동도 하지 않고 방으로 돌아감.
그 장면은 여전히 선명히 기억됨.
3. 분석
당시 나는 감정을 몰랐다. 그러나 기억은 남아 있다.
감정이 없었다면 왜 장면이 삭제되지 않았는가?
가설: ‘기억은 감정을 저장하는 그릇일 수 있다.’
4. 신체 반응(오늘)
엄마를 바라보는 동안: 목이 막힘, 손끝 떨림.
발화 후: 긴장 완화, 어깨 가벼워짐.
결론: 감정은 언어보다 먼저, 몸으로 남는다.
나는 펜을 잠시 멈췄다.
그리고 마지막 문장을 천천히 적었다.
“나는 감정을 몰랐지만, 그 장면을 잊지 않았다.
감정은 기억되지 않아도, 기억은 감정을 담을 수 있다.
그날 나는 아무것도 하지 않았다.
그리고… 아직도 그 장면이 떠오른다.
나는 지금도, 그날의 나에게 ‘미안하다’고 말하고 싶다.”
펜촉이 멈추는 순간, 방 안은 다시 조용해졌다.
나는 수첩을 덮고 불 꺼진 천장을 바라보았다.
눈꺼풀을 감으니, 또다시 그 장면이 떠올랐다.
새벽 거실, 식탁 앞 엄마, 조용히 떨어지던 눈물.
아무것도 하지 못했던 여섯 살의 나.
나는 작게 속삭였다.
“… 미안해.”
그 말은 엄마가 아닌, 과거의 나를 향한 것이었다.
그러나 오늘은 처음으로 그 말을 입 밖에 낼 수 있었다.
그 작은 소리가 내 안의 어둠 속에서 오래 울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