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실 안은 이상할 만큼 조용했다.
칠판 앞에서 담임 선생님의 목소리가 날카롭게 튀어나왔고, 그 한 문장이 공기를 갈라놓았다.
“이 문제, 몇 번을 풀었니? 대체 집중은 어디에 두고 있는 거야!”
앞자리에 앉은 한 친구가 의자 끝에 매달리듯 앉아 있었다. 대답하지도, 항변하지도 않았다. 얼굴에는 아무런 표정도 없었다.
눈썹도 움직이지 않았고, 입술도 굳어 있었다. 마치 자신이 지금 혼나고 있다는 사실조차 외면하려는 듯, 바위처럼 굳어 있었다.
그런데 이천재의 시선은 다른 데에 머물렀다.
그 무표정한 얼굴이 아니라, 책상 밑에 드러난 손끝.
손끝이 작게, 그러나 분명하게 떨리고 있었다. 규칙적이지 않은 리듬. 억지로 참는 듯한 긴장.
“그는 지금 감정을 느끼고 있다.” 이천재는 속으로 중얼거렸다.
“그런데 왜 표현하지 않지? 왜 무표정이라는 가면을 쓰고 있지?”
논리 적으로라면, 감정은 반응으로 드러나야 했다.
고통은 눈살을 찌푸리고, 두려움은 얼굴 근육을 수축시키며, 억울함은 말로 표출되어야 한다.
그런데 친구의 얼굴에는 아무 흔적도 없었다. 오직 손끝만이 그의 내면을 대신 증언하고 있었다.
주변 친구들은 다들 고개를 숙이고 있었다.
아무도 시선을 주지 않았고, 누구도 반응하지 않았다.
오히려 이런 정적이 “이럴 땐 아무 말도 하지 않는 게 정답”이라는 암묵적인 규칙처럼 굳어져 있었다.
이천재는 알 수 없는 낯섦을 느꼈다.
“감정을 숨길 수 있다? 감정을 숨긴다는 건… 무슨 의미지?”
그 순간, 그는 깨달았다.
지금 보고 있는 건 단순한 ‘무표정’이 아니었다.
감정이 없는 얼굴이 아니라, 감정을 철저히 감추는 얼굴이었다.
쉬는 시간이 되자, 교실은 금세 떠들썩해졌다.
방금 전까지 숨이 막히도록 얼어붙어 있던 공기는 사라지고, 아이들은 삼삼오오 모여 수다와 장난을 주고받았다.
누군가는 과자를 꺼내 나눠주었고, 누군가는 휴대폰을 몰래 들여다보며 깔깔댔다. 겉보기엔 평온하고, 일상적인 소란이었다.
하지만 이천재의 눈에는 다른 것이 보였다.
한 무리의 아이들 사이에서 억지로 입꼬리를 올리고 있는 한 친구.
웃고는 있었지만, 웃음의 각도와 눈빛이 어딘가 따로 놀고 있었다. 입술은 벌어졌지만, 눈동자는 피로하게 흔들렸고, 웃음 뒤에는 어쩐지 공허한 그늘이 드리워져 있었다.
“그는 기쁘지 않다. 그런데 왜 웃고 있지?”
천재는 노트에 짧게 적었다.
관찰: 웃음 = 기쁨의 신호?
예외: 웃음 = 감정 은폐, 위장
바로 옆에서 민석이 큰 소리로 농담을 하자, 그 아이는 더 크게 웃는 척을 했다.
하지만 고개를 돌리는 순간, 표정이 순식간에 무너졌다.
이천재는 그 찰나의 틈을 놓치지 않았다.
“감정은 왜 자주 반대로 표현되는가? 기쁘지 않은데 웃고, 무섭지만 아닌 척하고, 아픈데 괜찮다고 말한다.”
천재의 눈은 창문 밖으로 잠시 향했다. 아이들의 웃음소리가 풍경처럼 흘러나왔지만, 그 안에 실려 있는 감정은 모두 같지 않았다.
그는 속으로 중얼거렸다.
“웃는 얼굴이 곧 기쁨이 아니다. 웃음은 감정의 결과가 아니라, 감정을 숨기기 위한 가면일 수 있다.”
교실의 소란이 잦아들 무렵, 이천재는 자기 자리로 돌아와 조용히 펜을 들었다. 방금 전 웃음을 흉내 내던 친구의 얼굴이 자꾸 떠올랐다. 그리고 이상하게, 그 장면은 거울처럼 자신을 비추고 있었다.
“나는… 다르지 않았다.”
그는 과거의 순간들을 떠올렸다. 초등학교 시절, 시험에서 실수해 답을 놓쳤을 때도, 화가 났지만 얼굴에는 아무 감정도 내비치지 않았다. 친구들이 놀려도 표정 하나 변하지 않았다. 오히려 “괜찮다”라고 말하며 더 단단하게 굳은 얼굴을 하고 있었다.
사실은 괜찮지 않았다. 속은 들끓고 있었지만, 밖으로는 차갑고 무심한 아이처럼 보였다.
“나는 감정을 느껴도 표현하지 않았다. 그것이 정상이라고 믿었다. 나의 기준은 ‘감정을 드러내는 건 비효율적이다’였다.”
그는 무심히 자신의 손등을 내려다보았다. 감정을 느낄 때마다 힘이 들어가던 손, 말없이 떨리던 순간들. “사람들은 나를 차갑다고 했다. 하지만 나는 차가운 게 아니라, 감정을 드러내지 않았을 뿐이었다.”
책상 위에 노트가 덩그러니 놓여 있었다.
그는 거기에 적었다.
기록: 감정을 숨긴다는 것 = 감정이 없다는 뜻이 아니다.
나는 감정을 가졌지만, 세상에 보이지 않게 덮어두었다.
그러자 문득 생각이 이어졌다.
“그렇다면, 웃고 있던 그 아이도… 사실은 나와 같은 방식으로 살아가는 건 아닐까? 웃음은 기쁨이 아니라, 감춘 고통의 다른 얼굴일 수도 있다.”
천재는 자신도 모르게 숨을 내쉬었다. 감정을 숨기는 건 타인만의 이야기가 아니라, 바로 자신의 삶의 방식이었다는 깨달음이 낯설게 다가왔다.
그날 오후, 상담 시간이 되었다. 교실이 조용해지고 아이들이 하나둘씩 담임에게 불려 나가 개인 상담을 받는 시간. 이천재 차례가 되자, 그는 무심히 걸어 들어갔다. 선생님은 창가에 앉아 커피잔을 비우고 있었고, 창밖으로 떨어지는 빛이 교무실을 은은하게 밝히고 있었다.
“오늘 수업 시간에 네가 좀 심각하게 보는 눈빛이 있더라.”
담임은 천재를 향해 고개를 돌리며 말했다. “뭘 본 거지?”
이천재는 잠시 망설이다가 입을 열었다.
“친구가 혼날 때… 표정은 무표정이었는데, 손끝이 떨리고 있었습니다. 감정을 숨기고 있던 겁니다. 왜 그랬을까요?”
선생님은 잠시 웃음을 지었다. “넌 정말 그런 걸 다 보나 보구나. 좋은 관찰력이야.”
그리고는 커피잔을 내려놓고 천천히 말을 이었다.
“사람이 감정을 다 드러내며 살 수는 없어. 어떤 때는 드러내지 않는 게 배려일 수도 있거든.”
“배려… 요?” 천재가 눈을 가늘게 떴다.
“그래. 네가 화난 얼굴을 그대로 선생님에게 보여주면, 선생님도 더 화가 날 수 있겠지. 그런데 그걸 꾹 참고 웃는 척하는 건, 네가 약한 게 아니라 상황을 감당하려는 거야. 어른들은 책임을 져야 할 때가 많아. 그때 감정을 다 드러내면 주변이 무너질 수도 있지. 그래서 숨기는 거야.”
천재는 말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 감정을 숨긴다는 건… 거짓이 아니라 책임의 한 방식입니까?”
“맞아.” 선생님의 목소리가 부드럽게 흘렀다. “네가 감정을 숨기는 순간은 네가 약한 게 아니라, 누군가를 지켜야 하는 순간일지도 모른다.”
그 말은 천재의 가슴 어딘가 깊숙이 파문을 남겼다. 지금껏 그는 감정을 숨기는 걸 무능이라 생각했지만, 그것이 ‘강함’이 될 수 있다는 발상은 처음이었다.
교무실에서 나온 뒤, 천재는 복도를 천천히 걸었다. 창문 사이로 들어오는 햇살이 바닥에 길게 드리워지고, 멀리서 들려오는 아이들의 웃음소리가 유난히 멀게만 느껴졌다.
그는 발걸음을 멈추고, 방금 선생님이 했던 말을 곱씹었다.
“감정을 숨기는 건 약한 게 아니다… 책임이다.”
머릿속이 어수선했다. 지금까지 그는 감정을 숨기는 사람들을 ‘정직하지 않은 사람’으로 분류했었다. 하지만 손끝이 떨리던 친구, 억지로 웃던 아이, 그리고 지금까지의 자기 자신까지… 그들은 단지 감정을 없앤 것이 아니라, 어쩌면 감당하기 위해, 혹은 지켜내기 위해 감정을 숨긴 것이었다.
“숨긴다는 건… 있다는 증거다.”
그는 무심코 입술로 중얼거렸다.
아무 감정도 없다면, 숨길 이유도 없다. 아무런 떨림이 없다면, 억지웃음도 필요 없을 것이다. 오히려 감정을 숨긴다는 건 그 감정이 강하게 존재하고 있다는 방증이었다.
천재는 문득 자기 자신을 떠올렸다.
“나는 감정을 몰랐던 게 아니라, 그냥 숨기고만 있었던 건가?”
사람들은 그를 차갑다고 불렀다. 무표정, 딱딱한 말투, 논리만 가득한 언어. 그러나 그 속에서 그는 늘 ‘다른 사람들과 같지 않은 것 같다’는 불안, 관계가 단절될지도 모른다는 두려움을 느껴왔다. 그 감정들을 표현하지 못했을 뿐, 사라진 적은 없었다.
그는 벽에 등을 기대고 눈을 감았다.
가슴 한구석에서 묘한 울림이 퍼졌다.
숨긴다는 것은, 결국 감정을 다루기 시작한 사람의 방식이라는 깨달음.
감정 관찰 보고서 19호
오늘 나는 감정을 숨기는 얼굴들을 보았다.
처음엔 그들이 무표정하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자세히 보면 손끝은 떨리고 있었고, 웃음은 억지로 걸려 있었다.
나는 그것을 ‘감정 없음’으로 오해해 왔다.
그러나 이제 알겠다. 감정을 숨긴다는 건, 감정이 강하게 존재한다는 증거다.
사라진 게 아니라, 감당하기 위해 잠시 덮어둔 것이다.
감정을 드러내지 않는 사람은 무능한 게 아니다.
오히려 그들은 감정을 다루고 있었다. 관계를 유지하기 위해, 더 크게 다치지 않기 위해, 혹은 누군가를 지키기 위해.
나는 나 자신을 돌아본다.
사람들은 나를 차갑다고 했다.
하지만 사실 나는 늘 감정을 안고 있었다.
단지 표현하지 않았을 뿐이다.
오늘의 기록을 이렇게 남긴다.
감정을 숨기는 것은 거짓이 아니라 생존의 기술일 수 있다.
숨긴다는 건 이미 그 감정이 존재한다는 증거다.
감정을 감춘다는 건, 감정을 다루기 시작한 사람의 방식이다.
마지막 문장:
“감정을 숨긴다는 건, 감정을 부정하는 게 아니라… 감정을 버티는 또 다른 방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