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화 “괜찮아”라는 말은 왜 안 괜찮을 때 쓰나요?

by 공인멘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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체육 시간, 운동장은 아이들의 웃음소리와 발자국 소리로 가득 차 있었다. 줄넘기 줄이 공기를 가르며 ‘탁, 탁, 탁’ 하는 일정한 박자를 내고 있었다. 이천재는 그 리듬이 교실의 시계 초침처럼 일정하다고 생각하며, 눈으로 줄의 회전수를 세고 있었다. 그런데 그 순간, 날카로운 소리와 함께 균열이 일었다.

“악!”
짧고 얇은 신음과 동시에, 정윤아가 줄에 발이 걸려 그대로 앞으로 고꾸라졌다. 운동장이 순간 정적에 휩싸였다. 곧장 친구들이 몰려들었고, 누군가는 “야, 괜찮아?” 하고 외쳤다.

윤아의 무릎은 바닥에 부딪히며 까졌고, 피가 송골송골 맺히기 시작했다. 그녀의 눈에는 이미 눈물이 차오르고 있었다. 그런데 그 입술에서 나온 말은 의외였다.

“응, 괜찮아…”

목소리는 떨렸고, 표정은 분명 고통스러웠다. 눈물은 멈추지 않고 흘렀지만, 단어는 정반대의 의미를 담고 있었다.

이천재는 고개를 갸웃했다.
“눈물은 통증의 자동 반응입니다. 그런데 왜 그 반응과 상반되는 언어를 선택했습니까?”

그의 말은 작게 흘러나온 독백이었지만, 자신에게는 분명한 의문이었다. 논리적으로 모순이었다. 통증이라는 사실이 눈앞에 증거로 존재하는데, 왜 그녀는 ‘괜찮다’고 말하는가?

주변 아이들은 윤아의 어깨를 토닥이며 “진짜 괜찮아?”라고 다시 물었고, 윤아는 같은 대답을 반복했다.
“괜찮아.”

그 순간 이천재의 눈에는, ‘괜찮아’라는 단어가 고통의 사실을 지우는 지우개처럼 사용되고 있는 것처럼 보였다. 그는 그 장면이 납득되지 않았다.

“통증과 언어가 불일치한다. 왜 인간은 이런 방식으로 말하는가?”

이천재는 운동장의 소란스러운 분위기 속에서 홀로 멈춰 서 있었다. 친구들의 위로 속에 반복되는 그 짧은 단어 — ‘괜찮아’ — 가, 머릿속에 파문처럼 남아 맴돌기 시작했다.

줄넘기 사고 이후에도 수업은 이어졌다. 그러나 이천재의 귀에는 선생님의 목소리보다 윤아가 흘린 말 한마디가 더 크게 남아 있었다. “괜찮아.”

그 단어가 머릿속에 들러붙은 듯 떠나지 않았다. 그는 눈으로는 교사의 설명을 쫓고 있었지만, 마음속은 계속 그 말의 모순을 해부하려 했다.

쉬는 시간이 되자, 또다시 그 단어가 들려왔다. 친구 한 명이 부주의하게 분필을 떨어뜨리자 다른 아이가 웃으며 말했다.
“야, 괜찮아.”

점심시간에는 한 친구가 급식 트레이를 엎질렀다. 국물이 바닥에 쏟아졌고, 아이는 얼굴이 빨개졌다. 그때 주변에서 동시에 터져 나온 말이 있었다.
“괜찮아, 괜찮아. 원래 이런 일 자주 있어.”

그러나 이천재는 분명히 보았다. 말은 괜찮다고 하지만, 얼굴은 그렇지 않다는 것.
트레이를 엎은 아이의 표정은 굳어 있었고, 웃으며 말한 친구의 눈빛에도 어색한 기색이 스쳤다.

이천재는 속으로 중얼거렸다.
“실수는 실수다. 불편함은 존재한다. 그런데 왜 모두 같은 단어를 반복하는가? ‘괜찮아’라는 말은 사실의 진술이 아니라, 일종의 합의처럼 사용되고 있다.”

그는 노트에 빠르게 적어 넣었다.


상황: 부상, 실수, 불편 → 실제 상태 = 문제 있음
언어 표현: “괜찮아” → 의미 = 문제없음

불일치 발생

그리고 마지막에 이렇게 썼다.
“왜 사람들은 사실과 다른 언어를 사용하면서도, 서로 고개를 끄덕이는가?”

이천재의 눈에는 교실 풍경이 다르게 보이기 시작했다. 누군가가 의자를 세게 끌어 소리가 나자, 곁의 친구가 ‘괜찮아’ 하고 웃으며 넘겼다. 작은 사고나 실수, 불편한 상황이 생길 때마다, 아이들은 마치 약속된 암호처럼 그 말을 꺼냈다.

“괜찮아, 괜찮아.”

그 말은 단순한 단어가 아니라, 공기를 덮는 커버처럼 작동하고 있었다.
하지만 천재의 눈에는 그 커버 아래에 고스란히 남아 있는 감정의 흔적이 보였다.

교실 한쪽에 앉아 있던 이천재는 공책을 펼쳤다. 오늘 하루 동안만 세 번 이상 들은 단어, **“괜찮아”**를 제목처럼 맨 위에 적어놓았다. 그리고 자신이 관찰한 장면들을 하나하나 항목으로 정리했다.


윤아 – 무릎이 까졌음. 눈물 맺힘. → “괜찮아”라고 발언.
급식실 아이 – 실수로 국물 엎음. 얼굴 붉음. → 주변 친구들이 “괜찮아” 반복.

교실 – 시끄러운 의자 소리. 곁의 친구가 불편. → “괜찮아”라고 말하고 웃음.

이천재는 펜을 굴리며 중얼거렸다.
“공통점: 실제 상태와 말의 불일치. 목적은 무엇인가?”

그는 논리적 구조를 만들기 시작했다.


실제 상태: 통증, 불편, 실수 → 객관적으로는 문제가 존재.
언어 표현: “괜찮아” → 문제없음으로 선언.


기능 추정:
① 자기 위장 – ‘나는 약하지 않다’라고 보이려는 것?
② 타인 배려 – ‘너는 책임을 지지 않아도 된다’라는 암시?
③ 사회적 회피 – 불편한 공기를 빨리 정리하려는 합의?

그는 적어둔 글자를 뚫어져라 바라보다가 한숨처럼 속삭였다.
“그렇다면 ‘괜찮아’는 사실을 가리는 언어다. 그러나 동시에 관계를 위한 언어일 수도 있다.”

자신의 정의는 늘 **‘정확함 = 진실’**이었다. 하지만 방금의 결론은 그 틀을 벗어났다.
‘정확하지 않아도, 관계를 위해 쓰인다.’

책상 위에서 손가락을 툭툭 두드리던 그는 고개를 젓는다.
“이건 논리적 언어가 아니다. 감정적 언어다.”

그러나 바로 그 점이 더 이해되지 않았다. 왜 감정을 숨기면서도, 또다시 감정을 전하는 말을 쓰는 것일까?

칠판에 적힌 수학 문제를 보면서도, 이천재의 머릿속에는 숫자가 아니라 하나의 단어가 떠올랐다. “괜찮아.”
윤아가 무릎을 부여잡고 울먹이면서도 입술을 꾹 눌러 짜낸 그 말.
그 장면이 계속 머릿속을 점유했다.

‘만약 그녀가 솔직하게 “아프다”라고 말했다면, 친구들은 어떻게 반응했을까? 의무적으로 보건실에 데려갔을까? 더 호들갑을 떨었을까? 아니면… 그녀가 약한 사람처럼 보였을까?’

그는 스스로에게 질문을 던졌다.
“정확한 감정을 말하는 것이 진실이라면, 왜 사람들은 더 자주 거짓을 선택하는가?”

점심시간, 또다시 친구들 사이에서 그 말은 반복되었다.
한 아이가 실수로 도시락을 흘렸을 때, 피해를 본 아이가 잠시 얼굴을 굳히더니 똑같이 말했다.
“괜찮아.”
하지만 눈빛은 굳어 있었고, 표정은 억지웃음에 가까웠다.

이천재는 무의식적으로 그 장면에 끌렸다.
“괜찮지 않은데, 왜 괜찮다고 말하지? 진실을 감추는 것이 왜 더 안전한 선택이 되는가?”

그는 노트 한 귀퉁이에 조용히 써 내려갔다.


진실한 표현 = 약점 노출 → 위험?
‘괜찮아’ 표현 = 갈등 차단, 공기 정리 → 안전?


“정직이 곧 옳음이라면, 왜 그들은 정직을 피하는가.”
그의 시선은 허공을 향했지만, 질문은 끝없이 내부로 침잠했다.

집으로 돌아가는 길, 이천재는 교복 가방을 앞으로 옮겨 메고 조용히 걸었다.
운동장과 복도를 떠올리면 떠올릴수록, 머릿속에 맴도는 건 단 하나였다. “괜찮아.”

그 말은 너무 흔했다.
체육 시간의 윤아, 점심시간의 도시락 사건, 심지어 교실 뒤편에서 지우개를 잃어버린 친구에게도 똑같이 흘러나왔다.
“괜찮아.”
그런데 그 말속에는 언제나 괜찮지 않은 기색이 섞여 있었다.

천재는 발걸음을 멈추고 생각했다.
‘감정은 왜 진실과 함께 나오지 않는가? 왜 굳이 다른 껍질을 입히는가?’

그는 스스로에게 실험적인 질문을 던졌다.
“만약 윤아가 ‘아프다’라고 했더라면, 나는 그 순간 뭐라고 대답했을까? 위로할 수 있었을까? 아니면 더 당황했을까?”

대답은 쉽지 않았다. 오히려 ‘괜찮아’라는 말이 듣는 이들을 안심시킨다는 사실이 불현듯 떠올랐다.
“그녀가 괜찮지 않다고 말했으면, 모두가 불편해졌을 것이다. 하지만 ‘괜찮아’라고 말했을 때, 상황은 빠르게 정리되었다. 마치 포장지처럼, 보기 싫은 것을 감추고 동시에 마음을 다독인 것처럼.”

천재는 가방 속 공책을 꺼내 짧게 기록했다.


감정의 포장 = 괜찮아
실제 상태: 고통

언어 상태: 무사
효과: 타인의 불안 진정


발걸음을 다시 옮기면서 그는 중얼거렸다.
“감정은 포장을 벗겨야만 드러나는 것이 아니다. 때로는 포장된 그대로도 전달된다. 괜찮지 않다는 사실이, ‘괜찮아’ 속에 스며 있었다.”

그의 눈빛은 어쩐지 평소보다 조금 무거워졌다.
말은 사실을 숨겼지만, 그 숨김조차 감정으로 전해진다는 모순을 처음으로 받아들이고 있었기 때문이다.

책상 위에 가방을 내려놓자마자, 이천재는 공책을 펼쳤다.
하루 동안 머릿속을 떠나지 않았던 한 단어가, 페이지의 첫 줄에 선명히 적혔다.

감정 관찰 보고서 18호

“오늘 나는 ‘괜찮아’라는 말을 반복해서 들었다.
그 말은 언제나 괜찮지 않은 순간에 등장했다.”

연필 끝이 빠르게 움직였다.


윤아는 무릎을 다치고도 괜찮다고 했다.
도시락을 쏟은 아이도 괜찮다고 했다.

심지어 눈물이 맺혀 있어도, 모두 괜찮다고 했다.

“그 말은 감정을 숨기려는 동시에, 감정을 전달하는 이상한 언어였다.
말은 부정했지만, 눈물과 표정이 이미 증거였다.
‘괜찮아’란 말은 사실을 가리지 못한다. 하지만, 모두가 그 말에 안도했다.”

천재는 잠시 멈추고 고개를 갸웃했다.
“왜 안도하지? 다들 사실이 아님을 알 텐데. 그런데도 안심했다.”

다시 연필이 움직였다.

“괜찮아란 말은 진심이 아닐 수 있다. 그러나 그 말은 진심을 대신할 수 있다.
정확히 맞는 말이 아니어도, 듣는 이들에게 필요한 온도를 전달하기 때문이다.
감정은 사실을 가리는 포장지가 아니라, 오히려 사실을 견딜 수 있게 하는 포장지일지도 모른다.”

마지막 문장을 쓰며, 이천재는 조금 길게 숨을 내쉬었다.

“나는 오늘 알았다. 감정은 언제나 진실을 드러내려 하지 않는다.
때로는 숨김 속에서, 더 확실히 전해진다.”

그 문장을 쓰고 나서야, 그는 자신도 모르게 눈꺼풀이 무겁게 내려앉는 걸 느꼈다.
오늘 하루 동안의 ‘괜찮아’가 아직도 귀 안에 메아리처럼 울리고 있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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