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숙의 근원은 미운 너였다 24화

그날의 상처는 이제 나의 지혜가 되었다

by 공인멘토
ChatGPT Image 2025년 12월 19일 오전 06_49_11.png


1절 누군가의 눈물이 내 마음을 건드린 날


누군가가 내 앞에서 울었다.
말없이, 소리 없이.
그저 고개를 숙인 채로 눈물이 떨어졌고,
그 장면을 보는 순간 이상하게도 가슴이 먹먹해졌다.


예전 같았으면 나는 어쩔 줄 몰라했을 것이다.
괜히 분위기를 바꾸려 했거나,
“괜찮아질 거야” 같은 말로 서둘러 그 시간을 지나가려 했을지도 모른다.


그런데 그날은 달랐다.
아무 말도 나오지 않았고,
굳이 무언가를 해줘야겠다는 생각도 들지 않았다.
그저 그 사람이 흘리는 눈물을
있는 그대로 바라보고 있었다.


그때 문득 이런 생각이 스쳤다.
‘아, 나도 저렇게 울던 날들이 있었지.’


이상하게도 그 기억이 나를 무너뜨리지는 않았다.
오히려 조용히, 아주 조용히 나를 열어주었다.
마치 오래된 상처를 누군가가 건드렸는데
아프기보다는 따뜻해진 느낌에 가까웠다.


예전의 나는
누군가의 고통을 보면 두려웠다.
그 고통이 다시 나를 데려갈까 봐,
잊었다고 믿었던 기억들을 끌어올릴까 봐.


하지만 그날은 달랐다.
그 사람의 눈물이
내 과거의 상처를 흔들긴 했지만,
이상하게도 나는 무너지지 않았다.


오히려 알 수 있었다.
나는 이미 그 시간을 지나왔다는 것,
그리고 그 상처가 더 이상 나를 찌르지 않는다는 것.


그저 조용히 곁에 앉아 있었을 뿐인데,
내 마음 어딘가에서
오래된 통증이 다른 얼굴로 바뀌고 있었다.


아픔이 연민이 되고,
기억이 이해가 되고,
상처가 다정함으로 변하는 순간.


아마도 그날이었을 것이다.
그날의 상처가
이제는 나의 지혜가 되어가고 있다는 걸
처음으로 느낀 날은.



2절 예전의 나는, 감정 하나에 세상이 무너지던 사람이었다


예전의 나는 참 자주 무너졌다.
누군가의 말 한마디에 하루가 통째로 흔들렸고,
표정 하나에 마음의 균형이 무너졌다.


그땐 그게 유난이라고 생각하지 않았다.
그저 내가 약해서 그렇다고,
세상이 너무 냉정해서 그렇다고 여겼다.


어느 날은 아주 사소한 말 때문이었다.
상대는 아무 뜻 없이 던졌을지 모를 한마디였는데,
그 말이 머릿속에서 계속 맴돌았다.
잠들기 전까지, 아니 잠에서 깬 뒤에도.


“왜 그런 말을 했을까?”
“내가 그렇게 잘못했나?”
“나만 너무 예민한 건 아닐까?”


질문은 꼬리를 물었고,
답은 나오지 않았다.
그렇게 나는 혼자서 감정의 소용돌이를 만들고,
그 안에서 스스로를 몰아붙였다.


어느 날은 감정 하나 때문에
정말로 세상이 무너진 것처럼 느껴졌다.
아침에 일어나기조차 버거웠고,
아무것도 하고 싶지 않았다.


그때의 나는 몰랐다.
내가 겪고 있는 게 ‘유난’도, ‘과민’도 아니라는 걸.
그건 아직 감정을 다루는 법을 배우지 못한 상태였다는 걸.


상처는 있었지만,
그걸 어디에 놓아야 할지 몰랐고,
어떻게 바라봐야 하는지도 몰랐다.


그래서 나는 감정을 그대로 끌어안고
그 무게에 짓눌렸다.
감정과 나 사이에 거리가 없었고,
모든 아픔이 곧 나 자신이 되어버렸다.


지금 돌아보면,
그 시절의 나는 약했던 게 아니라
아직 경험이 부족했을 뿐이었다.


아픔을 겪지 않은 사람이 아니라,
아픔을 어떻게 다뤄야 하는지
아직 배우지 못한 사람이었다.


그래서 그렇게 아팠고,
그래서 그렇게 무너졌고,
그래서 그렇게 간절했다.


그 시절의 나를 떠올리면
이제는 부끄럽지도, 창피하지도 않다.
오히려 조용히 마음이 간다.


그때의 내가 있었기에
지금의 내가
누군가의 눈물을 앞에 두고도
도망치지 않을 수 있게 되었으니까.



3절 그땐 상처였지만, 지금은 다리가 되었다


그때의 나는 몰랐다.
그 아픔이 언젠가 다른 사람에게 닿는 길이 될 거라는 걸.
그저 견디기 버거운 기억이었고,
다시는 떠올리고 싶지 않은 시간이었다.


상처는 늘 그렇게 찾아온다.
아무 예고도 없이,
아무 준비도 시키지 않은 채.
그래서 우리는 그 기억을 서둘러 덮고,
지우고, 잊으려 애쓴다.


나 역시 그랬다.
“다 지나간 일이야.”
“생각해 봤자 소용없어.”
그렇게 말하며 스스로를 다독였지만,
사실은 제대로 바라볼 용기가 없었던 거다.


그런데 시간이 흐르고,
사람을 더 만나고,
삶을 조금 더 겪고 나서야 알게 되었다.


그때의 상처가
지금의 나에게 어떤 힘이 되었는지를.


누군가가 흔들리는 이야기를 할 때,
나는 더 이상 급하게 답을 찾지 않는다.
괜히 조언하려 들지도 않는다.
그저 고개를 끄덕이며
“그럴 수 있겠다”는 마음이 먼저 든다.


그건 타고난 성격이 아니었다.
책으로 배운 공감도 아니었다.
내가 한때, 똑같이 무너져본 사람이었기 때문이다.


아픔을 모르는 사람은
위로를 서두르고,
아픔을 지나온 사람은
곁에 머문다.


지금의 나는
누군가의 고통을
해결해야 할 문제로 보지 않는다.
그저 함께 건너야 할 시간으로 본다.


그때의 상처가
나를 약하게 만들었다고 생각했지만,
사실은 나에게
사람의 마음을 건너는 법을 가르쳐주었다.


그래서 이제는 안다.
그날의 고통은
헛된 시간이 아니었다는 것을.


그 상처는 지금의 나에게
누군가의 아픔으로 다가갈 수 있는
다리가 되어주고 있었다.



4절 상처를 숨기면 흉터가 되고, 꺼내면 다정함이 된다


한동안 나는 상처를 숨기는 데 익숙했다.
아무렇지 않은 얼굴을 하고,
이미 지나간 일인 것처럼 말하며,
그 기억을 꺼내지 않으려 애썼다.


상처를 드러내면 약해 보일 것 같았고,
괜히 분위기를 무겁게 만들 것 같았다.
무엇보다, 다시 아파질까 봐 두려웠다.


그래서 상처는 내 안에서 말없이 굳어갔다.
겉으로는 아무 일도 없는 것처럼 살았지만,
마음속 어딘가에는 늘 딱딱한 응어리가 남아 있었다.
그게 바로, 감추어진 상처가 남긴 흉터였다.


그러다 어느 날,
아주 조심스럽게 그 이야기를 꺼내게 되었다.
누군가의 질문도 아니었고,
설명해야 할 의무도 없었다.
그저, 내 마음이 그 이야기를
밖으로 내보낼 준비가 된 순간이었다.


말로 꺼내는 동안,
기억이 다시 아프게 찌르지는 않았다.
대신 이상하게도
그 시간은 조금 따뜻했다.


상처를 이야기한다는 건
그날의 나를 다시 비난하는 일이 아니었다.
“왜 그렇게 버텼을까”가 아니라
“그래도 그만큼 애썼구나” 하고
스스로를 바라보는 일이었다.


그때 깨달았다.
상처는 감추면 나를 굳게 만들지만,
꺼내 놓으면 누군가에게 닿을 수 있다는 걸.


내 이야기를 들은 누군가는
아무 말 없이 고개를 끄덕였고,
또 다른 누군가는
“나도 비슷한 적이 있었어”라며
조용히 자신의 이야기를 꺼냈다.


그 순간,
내 고통은 더 이상 나만의 것이 아니었다.
누군가의 마음을 여는 열쇠가 되었고,
서로를 조금 더 부드럽게 만드는 온기가 되었다.


이제는 안다.
상처를 꺼낸다는 건
다시 아파지는 일이 아니라,
다정해질 수 있는 자리를 만드는 일이라는 것을.


그날의 아픔은 여전히 존재하지만,
이제는 누군가를 찌르는 가시가 아니라
조심스럽게 건네는 손길이 되었다.



5절 그날의 상처는 이제, 나의 지혜가 되었다


이제는 분명히 말할 수 있다.
그날의 상처는 사라진 게 아니다.
잊힌 것도, 지워진 것도 아니다.


다만 자리를 바꿨을 뿐이다.


한때는 나를 넘어뜨리던 기억이었고,
숨 쉬는 것조차 버겁게 만들던 감정이었지만,
지금은 누군가를 이해할 수 있게 해주는
조용한 기준점이 되어 있다.


예전의 나는
상처를 없애야 앞으로 갈 수 있다고 믿었다.
아프지 않아야 강해지는 줄 알았고,
흔들리지 않아야 어른이 되는 줄 알았다.


하지만 살아보니 알겠다.
강해진다는 건
아프지 않게 되는 게 아니라,
아픔을 안고도 누군가를 밀어내지 않게 되는 일이었다.


이제 나는 누군가의 말에
예전처럼 즉각적으로 무너지지 않는다.
그 말이 어디서 나왔는지,
어떤 마음에서 비롯되었는지를
한 박자 늦춰서 바라볼 수 있다.


그 여유는
타고난 성격도,
후천적인 기술도 아니다.
그날의 상처가 남기고 간 선물이다.


고통은 언제나 대가를 남긴다.
그 대가가 흉터가 될지,
지혜가 될지는
시간이 아니라 내가 그 상처를 대하는 방식이 결정한다.


나는 더 이상
과거의 아픔을 부정하지 않는다.
그날의 나를 부끄러워하지도 않는다.
오히려 마음속으로 이렇게 말해준다.


“그때 정말 많이 힘들었지.
그래도 그 시간을 지나 여기까지 왔구나.”


그래서 지금의 나는
누군가를 감싸줄 수 있는 사람이 되었다.
완벽해서가 아니라,
아파본 사람이라서.


그날의 상처는
나를 무너뜨린 사건이 아니라,
나를 깊게 만든 시간이었고,


이제는 분명히 말할 수 있다.


“그날의 상처는
이제 나의 지혜가 되었다.”






이전 23화성숙의 근원은 미운 너였다 23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