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화 왜 하나님의 포장은 늘 고통일까?
“왜 하나님은 선물을 줄 때마다 그렇게도 아픈 포장지를 쓰실까.”
그 질문이 떠오른 건, 인생에서 가장 절망적이었던 어느 날이었다.
사람이 이렇게까지 무너질 수 있을까 싶은 순간, 나는 하나님께 버림받았다고 느꼈다. 기도는 허공을 맴돌았고, 눈물은 닦이지 않았다. 어쩌면 그때, 나는 나를 감싸고 있던 포장지를 찢을 힘조차 없었던 것이다.
고통이라는 이름의 포장지는 그토록 날카롭고, 뻣뻣하고, 단단했다.
나는 그것이 하나님의 ‘포장’ 일 줄은 꿈에도 몰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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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날, 장례식장에서
나는 장례식장을 떠나지 못했다.
이미 장례는 끝났고, 사람들은 다 돌아갔지만, 나는 멍하니 의자에 앉아 있었다.
눈물도 더는 나오지 않았다.
잠시 후, 낯선 할머니가 다가와 내 어깨에 손을 얹고 말했다.
“애썼어요, 이제 많이 울었으니 그만 쉬어요.”
그 말 한마디에, 나는 다시 울어버렸다.
마치 그 말이 ‘이제 포장을 찢어도 된다’는 허락처럼 들렸다.
그때 처음, 고통이라는 것이 끝나는 게 아니라 지나가는 것임을 느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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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하나님이 야속했다
그날들 속에서 나는 수없이 기도했다.
하지만 응답은 없었다.
“하나님, 왜 아무 말씀도 안 하시나요. 나 이렇게까지 무너졌는데.”
그 침묵이 더 고통스러웠다.
누군가는 ‘하나님은 네 고통을 알고 계셔’라고 위로했지만, 나는 그런 말이 싫었다.
아는 것과 느끼는 건 다르니까.
나는 하나님이 나를 사랑하지 않는다고 확신했다.
사랑한다면, 이토록 잔인하게 나를 아프게 하진 않았을 테니까.
하지만 그건 착각이었다.
하나님은 내 기도에 침묵하신 게 아니라, 포장지를 벗기고 계셨던 것이다.
그분은 내가 꼭 붙들고 있던 오만과 자기 연민을 하나씩 떼어내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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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통은 쓰레기가 아니라 정화다
시간이 흘러, 나는 그 사건을 인생의 선물처럼 말하게 되었다.
물론 그땐 몰랐다. 다만, 이제는 안다.
하나님은 나를 망치기 위해 고통을 허락하신 것이 아니었다.
나를 구해내기 위해, 고통이라는 뜨거운 불에 나를 집어넣으신 것이었다.
고통은 쓰레기가 아니다.
고통은 불순물을 태우는 정화의 도구다.
불이 없다면 우리는 계속 썩어갈 것이다.
나는 그 뜨거움 속에서 비로소 이전의 나를 놓았다.
그리고 새로운 나를 받았다.
그게 하나님의 선물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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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장을 찢을 용기
그 이후, 나는 포장지를 바라보는 시선이 달라졌다.
아픔은 더는 저주가 아니었다.
그건 ‘아직 포장을 찢지 않은 선물’이었다.
이제 나는 이렇게 기도한다.
“하나님, 이 고통을 선물로 바꿔주세요.
제가 찢을 용기를 내게 해주세요.”
고통은 그 자체로 선물이 아니다.
찢었을 때, 비로소 선물이 된다.
우리는 고통을 미워하지만, 동시에 거기에 붙잡혀 안도한다.
왜냐하면 고통은 책임지지 않아도 되는 자리에 우리를 묶어두기 때문이다.
하지만 포장을 찢는 순간, 우리는 변화해야 한다.
그래서 고통은 무섭고, 그래서 고통은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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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통이 내게 말한 것들
고통이 없었다면, 나는 지금도 내 방식대로 살고 있었을 것이다.
성공, 인정, 사람의 평가에 목매고
사랑이 아니라 조건으로 관계를 맺고
기도는 도구처럼, 믿음은 장식처럼 썼을 것이다.
그러나 고통은 그것들을 산산조각 냈다.
대신 내게 참된 무언가를 주었다.
하나님 없이는 살 수 없다는 믿음
관계는 통제가 아니라 수용이라는 진실
내 한계를 인정할 줄 아는 겸손
그리고 무엇보다,
내가 얼마나 쉽게 포장만 보고 사람을 판단했는지를 깨달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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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하나님의 속삭임
고통은 하나님의 외침이 아니다.
그분은 고통으로 말하지 않으신다.
오히려 고통은 내가 멈출 때 비로소 들을 수 있는 속삭임이다.
그분은 말없이 곁에 계셨다.
내가 울던 그날에도,
내가 절망하던 밤에도,
내가 원망하며 등을 돌리던 순간에도.
하나님은 침묵하셨지만, 결코 외면하지 않으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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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고통은 하나님의 언어다.
우리에겐 외침 같지만, 그분에겐 속삭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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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족이라는 이름 아래 감춰진 희생과 외면,
자신을 지운 채 살아온 한 여인의 고백이 찾아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