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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희야 Sep 26. 2024

요양원에 계신 시어머니께 객이 되어버린 자식들

그 누구의 탓도 아니다(23년 11월 하순)

오늘은 지난번에 가져다 드린 분홍빛 티를 입으시고, 좋아하시는 보라색 모자와 스카프로 한껏 멋을 부리신 모습으로 우리를 맞아주셨다. 어머니께서는 목걸이, 팔찌, 반지등 화려한 세서리를 참 좋아하신다. 그러기에 여행을 가서도 알록달록한 팔찌, 목걸이 등을 꼭 사다 드리곤 했다. 하지만 분실에 우려도 있고 헐거워져 버린 반지는 더 이상 낄 수가 없어 되돌려 주셨기에 집에 쌓여 있는 모자와 스카프 등을 색색별로 가져다 드렸었다


오늘도 여전히 해맑으시고, 유난히 총기도 좋으신 날인지 우리 아들딸까지 찾으셨다. 잠시의 동영상 통화에 눈시울을 적시며 연신 전화기에 대고 뽀뽀를 해대시는 에 마음이 아려온다. 면회가 한 달에 한번 4인으로 제한적이다 보니 손자손녀까지 면회기회가 오기란 쉽지 않으니 본 지도 꽤 오래전이다. 이제 완전히 건강을 회복하시어 식사도 잘하시고, 몸무게도 어느 정도 유지하시며 비록 와상환자 일지라도 크게 불편하시지 않은 범위 안에서 케어를 받으해피하게 생활하고 계시다.


다행히 착한 치매 인지라 심하게 아프지 않은 이상 늘 반가워하시고 찾아와 주어 고맙다 하신다. 그러실 때마다 죄스러운 마음과 감사한 마음이 공존하며 울음을 삼키게 한다. 속마음은 얼마나 집에 가고 싶으실까. 아무리 여기가 내가 사는 곳이라 여기실지언정 자식을 가까이서 언제든 보고 싶은 부모마음은 모두가 같을 터인데 손을 꼭 잡고 비비시며 어쩔 줄 몰라하실 때마다 안쓰러움이 가시질 않는다. 미리 사다가 그늘에 두었더니 고운 빛깔로 달달해진 홍시를 어찌나 맛있게 드시던지 한수저씩 입에 넣어드릴 때마다 주름진 얼굴이 홍시처럼 발개지신다.


부드러운 카스텔라 한 조각에 연신 맛있다 하시며, 달달한 믹스커피 한잔에 저리도 행복해하실까. 누구에겐 가는 그저 어디서든 아무 때나 먹을 수 있는 것들이 이곳에 오래 계신 당신에게는 달마다 찾아오는 행사처럼 특식이 되어줄 뿐이니 불효로 새겨지는 날들이 늘어갈 뿐이다. 커피는 드리지 말라 하지만 저리도 좋아하시는 걸 어찌 모른 척할 수 있단 말인가. 가져간 음식들을 싹싹 비우시고는 이제 다 먹었으니 어여 돌아가라 신다. 어느 결에 객이 되어 버린 자식들은 그런 모습에 무색해하며 휴일임에도 면회를 허락해 주신 분들께 감사의 마음을 양손 무겁게 전달해 드리곤 발길을 돌렸다.




겨울이 찾아들고 이불 밖은 시리기만 하다. 운동이랄 것도 없는 아침산책마저도 뜸해진 지 오래다. 반복되는 소화장애와 장염, 이대로 두었다가는 부실해진 내 몸이 이 겨울을 견뎌내지 못할 것 같아 헬스장을 찾았다. 밖으로 나갈 것도 없이 지하주차장으로 내려가 몇 발작 걸으면 바로 아파트 내 헬스장인데 이 핑계 저 핑계 대며 미루었다. 따뜻한 집에서 몸풀기 운동을 대충 하고 내려가 바로 러닝머신에서 20분 이상을 걷다가 달리다 걷기를 반복한다.


대충 기구도 몇 개 만지고 마지막 정리운동을 해 운동화를 벗고 헬스장 한쪽에 있는 매트 위에 앉아 요가동작을 해본다. 이미 굳어져버려 될 리가 없다. 어머니께서 요양원에 가시기 전 아파트 내에서 2년 정도 요가를 했었다. 절대로 되지 않을 것 같았던 동작들이지만 반복의 힘은 놀라웠다. 다리가 일자로 벌어지고 앞으로 구부리면 가슴과 바닥이 일체가 되었다. 신기한 경험에 재미가 들려 저녁마다 요가매트를 들고 다목적실에 가곤 했는데 어머님의 건강에 적신호가 켜지며 접어야 했다.


거동이 불편했던 어머니께서 미끄러져 넘어지시는 바람에 허리가 부러지셨다. 그러니 한동안 그 시중을 들어야 기에 요가를 갈 수가 없는 상황이 되었다. 3개월 단위로 결재를 하는데 겨우 한 달 만에 시어머니께서 편찮으셔서 쉬어야 할 것 같다 하니 등본과 병원진단서를 가져오란다. 가져갈 수 없었다. 그냥 2개월분을 날렸다. 호적에 없는 등본에 동거인으로 되어 있는 시어머니를 그들에게 구차스럽게 설명하고 싶지도 않았고, 굳이 우리 집 사정을 말하기 싫어서였다.


지금이라면 당당하게 여차여차해서 그렇다 하고 말할 수 있었을 텐데 그때는 그러지 못했다. 더구나 한 아파트에서 잘 알지도 못하는 사람들 입에 오르내리는 것이 싫었다. 옆에서 쭉쭉 뻗으며 요가동작을 하는 처자들을 보며 하릴없는 아쉬움이 밀려왔다. 죄지은 것도 아닌데 좀 더 일찍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고 인정하고 그저 덮어두려고만 하지 말 것을. 괜한 상념에 빠져 운동을 하는 건지, 생각만 하고 앉아 있는 건지, 그렇게 되지도 않는 동작만 반복하다 돌아왔다. 그 어떤 것도 어머니 탓이 아니며 그 누구의 탓도 아니다.  모든 것들은 나의 선택이 결정이었다.


23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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