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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희야 Sep 24. 2024

또다시 시어머니와의 겨울을 준비하며

가을 탓인가 봅니다(23년 겨울 초입)

어느덧 가을도 깊어져만 다. 한낮의 따사로운 햇살에도 불구하고 비어 가는 벌판처럼 조석의 찬기운이 뼛속을 시리게 한다. 환절기의 정점에서 아슬아슬하게 줄타기를 할지언정 부디 건재하시기를 기도하며 옷장에 넣어든 옷박스를 풀었다. 얼마를 견디기 어려우실 거라던 모두의 예상과 달리 어머님의 강인함으로 다시 한번 무사히 고비를 넘기실 수 있었다. 하여 매몰차게 테이핑 된 옷박스를 풀지도 않은 채 옷장 속에 넣어버린 죄스러움만이 시리게 남았다.


역시나 요양원에서 가져온 두꺼운 겨울옷들은 제대로 세탁도 되어 있지 않았고, 주머니마다 어머니께서 꼬깃꼬깃 넣어둔 휴지들로 득하다. 어머니께서는 휴지만 보면 조각조각 잘라 주머니에 넣어 두셨다가 코를 닦으신다. 그뿐인가 요양원에서 사용하는 핸드타월만 봐도 용케 보호사님들 눈을 피해 챙기셨다가 면회를 가면 슬그머니 내게 주시곤 다. 하나하나 확인하며 뺀다고 빼서 세탁을 했건만 조끼주머니에서 또 한 움큼의 휴지조각들이 세탁된 채 쏟아졌다. 저장강박이라 할 수 있겠지만 움직임도 자유롭지 못하고 위험한 것은 아니기에 그저 작은 증상 중의 하나라 여기갈 때마다 개인 휴지를 오히려 드리고 다. 휴지 한 장 더 챙기려 얼마나 눈치를 보실까 싶어 마음껏 만지며 잠시라도 흡족한 마음이 드셨으면 해서다.


몇 년째 새로 산 옷보다는 입던 옷들이 대부분이지만 거의 누워만 계셔서 깨끗이 세탁해 놓으니 몇 해는 더 입으셔도 충분할 것 같다. 아직도 세탁 후의 잔향이 남아있는 옷들을 차곡차곡 다시 새로운 쇼핑백에 담았다. 그래도 아쉬워 포근포근한 양말을 좋아하시기에 화사한 분홍빛 수면양말과 보습력이 좋은 바디크림도 사서 넣었다. 이번달에는 이미 시누이들이 면회를 다녀오셨기에 얼굴도 못 뵙고 옷만 전해드리고 와야 한다. 옷틈에 플레인요구르트라도 몇 개 챙겨드리고 싶어 준비했지만 유통기한 때문에 더 많이 드릴 수가 없어 아쉽기만 하다.




밤새 속이 안 좋아 뒤척이다 내과를 다녀와서는 챙겨놓은 옷가방을 차에 싣한적한 도로를 지나 요양원을 향해 달렸다. 요양원 앞 정원에도 어김없이 가을이 내려앉았다. 곱게 핀 꽃들이 정원을 가득 메우가을빛을 닮아가는 나무는 고운 단풍이 들어 가을의 정취를 물씬 풍기고 있다. 오늘따라 아름다워야 할 그 풍경들이 쓸쓸하게만 느껴진다. 이미 입구에는 직원이 기다리고 있어 옷가방을 건네며 다시 어머니 안부를 확인했다. 잘 드시고, 심지어 자꾸 일어나시 해서 진정시키곤 한다며 혼자온 나를 안심시키려 애를 다. 이제 기력이 없어 와상환자가 되어버렸지만 습관 탓인지 자주 일어나시고 싶은 그 심정을 어찌 헤아릴 수 있을까.


요양원 문 앞까지 가서도 규칙 때문에 얼굴도 못 뵙고 돌아서자니 그리 허전할 수가 없다. 그래도 어머니 우리 여기서 더 이상 아프지 말고 힘내서 잘 살아보자며 속엣말을 건네고는 쓸쓸한 마음만 안고 집으로 돌아왔다. 이제 올해도 얼마 남지 않았다. 98세가 되시고 요양원 생활도 7년 차가 되신다. 옷가방을 챙기며 또 한 번 물건들을 정리했다. 살아서 입던 옷들은 남도 주고 가져가기도 하지만 죽어서는 꺼려질 수 있다는 말씀들이 생각나 이제 너무 야위어져 커서 못 입게 된 옷들은 미련 없이 정리를 했다. 그렇게 주인 없는 방의 흔적들마저 하나하나 지워나가는 내가 더없이 안쓰러워진다.


언제까지 이런 일들을 마주하며 마음 아파하고 슬퍼해야 할까. 정작 떠나시고 나면 그 감당을 어찌하려고 이러나 싶어 가슴이 먹먹해지곤 한다. 요양원에 가신지도 벌써 몇 해의 세월이 흘렀니 무뎌질 만도 하건만 오히려 하루하루 더 애잔함과 쓸쓸함만이 몰려드니 아마도 가을 탓인가 보다.


23년 겨울 초입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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