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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희야 Sep 28. 2024

시어머니의 97세 생신을 맞으며

근심을 더하다(24. 1.20)

한 해의 끝자락 7남매 중 4형제의 가족들이 모였다. 이미 한 달 전에 인터넷으로 식당을 예약하고, 그래도 못 미더워 며칠 전에 현장을 방문하여 예약을 확인했다. 연말이라 어디나 만석이고 시끌벅적 문전성시를 이룬다. 어머니의 아들들 4형제의 분신에 분신들까지 모두 23명이 되었다. 그중 군복무 중인 조카를 제외하고 22명이 모였다. 4형제 부부는 지금도 일 년에 몇 번씩 모여 담소를 나누곤 하지만, 코로나19전에는 이맘때면 요양원에 계시는 어머니를 모시고 나와 오늘처럼 온 식구가 모여 생신잔치를 해드리곤 했다.


바로 며칠전이 어머니 97세 생신(음력 23년 11월)이었다. 격월로 가다 보니 이번에는 시누이과 셋째 시동생이 요양원 면회를 다녀왔다. 몇 번의 통화로 전해 듣고는 있었지만 여전히 건강도 유지하시고 식사도 잘하신다는 소식을 주셨다. 작은 케이크에 고깔모자까지 쓰시고 활짝 웃으시는 모습이 세상걱정 없는 어린아이 같으시다. 미역국에 가져간 간식까지 싹싹 비우셨다며 흡족한 마음으로 소식을 전해주시니 그저 감사하다.


예전 같았으면 요란스럽게 7남매 가족 모두가 모여서 축하를 드렸을 텐데 그도 이제 어려운 일이 되어버렸다. 그전에는 조금이라도 거동을 하셨지만 이제 와상환자로 누워서  대소변을 해결하고 계시기에 잠시의 면회 말고는 외출은 엄두를 내지 못한다. 그래도 가족들이 갈 때마다 활짝 웃으시며 반겨주시고, 이렇게 올라오는 사진들을 볼 때마다 감사하다. 그렇다고 조마조마하는 그 마음까지 모두 사라질리야 없겠지만 다음 달 면회 가는 날까지 그대로이시기를 기원하곤 한다.




한 달이 지나고 면회를 온 지금 여전히 밝으신 모습으로 맞아주셨다. 하지만 흐르는 세월은 어쩔 수 없는 것인지 많이 마르시고 눈썹 위가 꽤 크게 볼록 튀어나온 것이 보였다. 그 연유를 알 길이 없지만 찾아보니 딱딱하면 골종이고, 부드러우면 지방종이거나 피지낭종이란다. 요양원 관계자분께 물어보니 나이가 드신 분들 중에 그러신 분이 꽤 있다 하며 사진을 찍어다 보여주었다. 요양원에는 이미 백세가 넘으신 분들이 많으시다. 결론은 그런 것이 생길 수도 있으니 요양원에서 어떤 사고에 의한 것은 아니라는 변명일터이다.


결혼하고 얼마 지나지 않은 때였다. 어머니 네 번째 손가락의 안쪽에 혹이 커다랗게 나있어 반지를 끼지 못하셨다. 자식이 일곱이라도 각자 살아내기 바쁘다 보니 신경 쓸 겨를이 없었나 보다. 어쩔 수 없이 혼자서 어머니를 모시고 외과가 있는 병원을 찾아갔다. 간단한 시술이겠지 싶었는데 수술동의서에 사인을 하라는데 손이 덜덜 떨렸다. 크게 아픈 적이 없어 원에 가본 적도 없었다. 그런 내가 갑자기 마취를 시키고 혹 제거를 위해 절개하는 수술을 할 것인데 어떤 사고가 발생하여도 책임지지 않겠다 뭐 그런 내용에 사인을 하라는데 겁이 덜컥 났다. 당신 배 아파 낳은 자식도 아니고 이제 겨우 갓 시집온 새댁인 데다 아직도 낯설기만 한 시어머니를 병원에 모시고 온 것도 그런데 책임지라니. 내가 왜 이 짓을 하고 있는지 두렵기만 했다. 다행히 그 혹은 비지밥 같은 거라 하였고 무사히 수술을 끝내고 하루를 입원하셨다가 퇴원했던 기억이 떠오른다.


저 혹도 그와 같은 종류였으면 좋겠다. 오늘도 총명하시고 가져간 별다방에서 산 촉촉한 카스텔라와 달달한 커피를 어찌나 맛있게 잘 드시는지. 다음에도 꼭 사다 드린다 했더니 너희들도 먹으라며 자꾸 밀어주신다. 23년도 지나고 백수가 가까워진다. 고작 할 수 있는 것이라곤 사시는 날까지 정해진 규칙에 따라 한 달에 한 번이라도 찾아뵙고 좋아하시는 간식들을 먹여드리고 돌아오는 것이 전부이기에 늘 헛헛하기만 하다. 이번에는 또 하나의 근심까지 안고 돌아왔다. 그 혹이 아프거나 하면 어쩌지 수술이라도 해야 한다면 어쩌지. 일어나지도 않은 일을 미리 걱정하고 있다. 언제까지 계셔도 살뜰히 보살펴드릴 것이니 부디 가시는 날까지 지금 대로 셨으면 좋겠다.


2024년 1월 20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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