면회를 다녀온 지 오래지 않아 설명절 특별면회가 실시된다는 문자가 왔다. 요양원에는 100여 명이 계시는데 명절연휴는 고작 며칠이니 이럴 때는 순발력이 최우선이다. 문자를 받자마자 누구와 의논할 겨를도 없이 바로 설명절 다음날로 면회예약을 했다. 몇 날 며칠을 음식을 준비하고 대가족이 모여 차례를 지내고 하루종일 치우느라 여전히 피곤했다. 그래도 기다리실지도 모르는데 가야 한다. 무거운 몸으로 다시 어머니께 가져다 드릴 간식과 물품들을 준비했다. 갈 때마다 비슷한 목록들이지만 행여 한 가지라도 빠트릴세라 확인하고 또 확인한다.
명색이 명절이니만큼이번에는 어머니께서 좋아하는 잡채와 직접 쑤어서 만든 도토리묵을 따끈하게 데워 통에 담았다. 식혜도 한통 채우고 요구르트와 두고 드실 요플레 등등 휴일에도 수고하시는 직원분들께 드릴 피로회복제도 함께 준비했다. 날이 갈수록 세월의 덮개처럼 온 얼굴은 검버섯으로 뒤덮여 가지만 '보고 싶었다'는 그 한마디에 마음 한구석이 한없이 구겨져 버렸다. 피곤함에도 기어이 나가 사들고 온 별다방 생크림카스텔라를 오늘도 달고 맛있다며 잘 드셨다. 목에 걸릴세라 곱게 썰어간 황도와 부드러운 도토리묵이 맛있다며 '고맙다'를 연신 하신다.
지난번에는 미처 챙기지 못했던 티슈를 한 아름 안겨드렸더니 그 어느 것보다도 좋아라 하신다. 잘 드시던 연양갱도 몇 개 슬그머니 품 안에 넣어드리니 몇 번이고 열어보시며 어찌나 흡족한 표정을 지으시는지 그 모습이 어린아이 같아 우리 모두 웃어야 했다. 언제나 정해진 시간 30분은 왜 그리도 쉬이 가버리는지 한수저라도 더 드리려 욱여넣다시피 먹여드리고 돌아오는 길은 늘 아쉬움만이 가득하다. 귀가 또 말썽이다. 간지럽고 아프시다는데 휴지로 닦아보니 심상치가 않다. 몇 개월 전에도 그 문제로 병원을 몇 번이나 갔었지만 뾰족한 방법이 없다며 약처방만 해주셨다. 친정어머니도귀 때문에 고생을 많이 하셨는데 잘 나아지지도 않고 계속 반복된다는 것이 걱정을 놓지 못하게 한다.명절준비하고 그 후까지 무리한 탓인지 기력이 달린 나머지 많이 아팠다.고단했던 설명절은 그렇게 지나갔다.
주말이 지나고 간호팀장님과 어머니 귀상태에 대해 통화를 하며 이번에도 별다른 방법 없이 한 달에 두 번씩 오시는 촉탁의(한 달에 두 번씩 요양원을 방문하여 환자상태를 확인하고 필요한 약을 처방해 주시는 의사 선생님)께부탁드려서약처방을 받기로 했다. 아마도 가족들이 면회를 온다 하니 급하게 목욕을 시켜드렸고, 그 과정에서 물이 들어가면서 또 불편을 겪게 되신 것 같다. 좀 더 신경을 쓰겠다는 그 말에 온 마음을 기울일 뿐이다. 아무리 작은 상처라도 거슬리고, 불편하고 괴로울 텐데 그 정도라면 또 한동안 걱정의 마음을 담고 지내야 할 것 같다.쓰다 보니 걱정! 걱정! 이 많은데 아무래도 걱정인형이라도 사야 할까 보다. 이제 힘들어도 마음이 편해져 가니 그런 걱정들에도 조금은 무뎌져 가고 잘 지나갈 것이라는 희망을 담으며 너무 조급해하지 않기로 다짐해 본다.
시간은 잘도 간다. 금세 한 달이 지나고 이번달에는 둘째 시누님이 다른 형제들과 면회를 가셨다. 정해진 면회가 고작 한 달에 한 번이라지만 매번 갈 때마다 소소하게라도 준비하고 그 기간이 7년으로 이어지다 보니 번거롭지 않다고 하면 솔직하지 못한 것이다. 물론 어머니 상태가 염려되고 걱정이 되는 것은 별개의 문제이다. 어차피 염려되는 마음은 이 세상에 살아계시는 한 나의 뇌리에서 분리될 수 없는 업보 같은 것이다. 무슨 일이라도일어나면 가장 먼저 달려가야 하고 내손길이 가야 해결될 수 있기 때문이다. 다른 형제들이야 뒤늦게 어머니의 응급처치가 진행되는 과정을 전해 듣고서야 오지만 맨 먼저 달려가 내 눈으로 상태를 확인하고 재빨리 응급처치를 위해 병원으로 이송하고서야 연락을 한다.
환하게 웃고 계시는 어머니의 사진들이 줄줄이 올라온다. 아프신 곳은 하나도 없다 하신다며 안 봐도 정성껏 준비해 가셨을 음식들이 펼쳐져 있다. 오늘도 맛있게 잘 드셨다며 흡족한 마음으로 전화를 주셨다. 물론 형님도 딸이지만 그리 교대로 안 해주시면 그뿐이다. 그것은 또 오로지 내 몫이 될 터인데 혼자 애쓴다며 어렵게 시간 내주시고 챙겨주심에 늘 감사하다.며느리가 넷이지만 각자의 자리에서 이유가 있기도 하고, 무엇보다도 어머니일 만큼은 그 누구에게도 의지하고 싶지 않다. 나 스스로 가시는 날까지 책임지겠다 했으니 그 약속만큼은 꼭 지켜내고 싶다.
환절기가 될 때마다 가슴을 졸이는데 올봄도 잘 지나기기를 기도해 본다.더 나아질 수 없다면 지금이대로 이시기를.
2024.3.14.
그간 많은 분들께서 저의 글을 읽어주시고 관심을 가져주셔서 감사했습니다. 오늘을 기점으로 댓글창도 활짝 열고 마음 가볍게 못다 한 기가 막힌(?) 이야기들을 이어가도록 하겠습니다. 그 누구의 인생길도 어떻게 흘러갈지 아무도 모르는 것처럼 저 또한 예상치 못했던 일들이 술술 풀리며 나름 해피엔딩의 결말을 보여드릴 수 있어 행복한 시간이었습니다. 아무리 요양원에 계시는 시어머니와 함께 가는 며느리이지만 또 다른 면에서 그래도 괜찮을 수 있다는 것을 글로나마 보여드릴 수 있어 제겐 커다란 행운의 순간들이었습니다. 너무 미리 스포 했나요. 24.10.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