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머니께서는작년과는 전혀 다른 모습으로 추석을 맞이하였다.지난해 이맘때는 갑작스레 혈압이 떨어지고 패혈증으로 응급실에 실려가 생사를 넘나들다 중환자실에서 추석을 보내셔야 했다. 그때도 다행스럽게 무사히 고비를 넘기시고 퇴원하셨다. 사람의 운명은 아무도 모른다는 것이 실감이 났다. 꺼질 듯하면서도 그 힘겨운 시간들을잘이겨내시고 지금의 생을 흐르듯이이어나가고 계시다. 콧줄을제거하고도 다짐식이지만 여전히 잘 드시면서 얼굴엔 웃음 가득인 채 찾아온 자식들에게 연신고맙다 하시는 모습을 보며한 시름을 덜게 되었다.
추석연휴면회로 4형제가 요양원에 면회를 가기로 했다. 갈 때마다 늘 고민되는 것이 무얼 가져다 드리면 맛있게 드실까 그것이 내게는 커다란 숙제다. 전에는 이것저것 드실만한 간식들을 박스 가득채워갔지만 이제 아주 부드럽게 넘길 수 있는 것 말고는 드릴 수가 없다. 지나온 날들이 쌓여갈수록 해드릴 수 있는 것들은 줄어만 간다. 추석이니 무엇인가 색다르게 해서 드리고 싶지만,또 물렁한 망고와 키위, 그리고 아기에게 주듯이 귤을 속껍질까지 까서 담았다. 이가 없으신 데다 갈수록 씹으시는 일을 어려워하시니 달콤한 호박죽과 말랑한콩설기까지따끈하게 쪄서 보냈다.
잠시 후 단톡방으로 여전히 건재하신 어머니와 4형제가 함께 찍은 사진들이 올라왔다. 보내드린 호박죽도 다 드시고 식혜와 달달한 커피. 부드러운 마카롱과 과일까지 다 드셨단다. 세월 앞에서 조금은 더 야위어지셨지만 곡기가 이어지는 한 생명을 유지할 수 있기에 그 한 가지에 안도하며 9월의 끝자락도 함께 할 수 있어 감사드린다. 이제 날은 추워지고 환절기가 되면 또 잘 이겨내실 수 있으려나 늘 가슴에 돌덩이를 하나 얹은 것처럼 무겁기만 하다. 달이 가고 해가 바뀌어도 당신과의긴인연 앞에서 서서히 지쳐가는 나 자신을 보곤 한다.그럴 때마다 갑자기 떠나버리실까 두려워전전긍긍하며 울며불며 잡을 때는 언제고 이러고 있는 내가 참 싫다.
도대체 내 진심은 무엇일까.그렇다고 미워하지도 싫어하지도 않는다. 그저 바라볼 때마다 애처롭고 안쓰러움의 연민이랄까 차마 손을 놓을 수가 없다. 그럼에도 되돌아서면 힘겨워하는 내가 거기 서 있다. 뭘 어쩌자는 건지 그 이중성이 나를 괴롭힌다. 현실을 받아들여야 한다. 뿌리친다고 될 일도 아니다.결코 변할 수 없는 현실 앞에서 "짧은 힘듦 끝에 긴 행복이 있다"는 법륜 스님의 말씀을 다시금새기며어떻게든 살아내려 안간힘을 써본다.
9월이 가고 10월이 되었다. 이미 치매에 섬망증세가 있는 것은 되돌릴 수 없지만, 가을 우둠지에 위태롭게 매달린 마른 낙엽처럼 자식들 얼굴만큼은 기억하려 애쓰시고 있다. 차츰 안색도 좋아지시고 가끔 식사를 달가워하지 않으실 때에는 식욕촉진제를 드시며 힘겹게 생을 이어나가고 계시다. 이것이 옳고 그름을 떠나 이 모든 것은 오직 하늘의 뜻이기에 그저 묵묵히 당신 사시는 날까지 지켜드리며결코 지쳐서도 아파서도안된다. 오직 건강해서 어머니를 지켜야 할 의무만이 내게 있을 뿐이다.
그러면서도 막상 '긴병에 효자 없다.', '그만하면 장수하신 거야.'라는 말이라도 들을라치면 걱정해 주는 마음으로해주는 말이라는 것을 알면서도 전혀 위로가 되지 않는다. 하여 어느 장례식을 가든 절대 이 말을 입 밖으로 내놓지 않는다. 단지 "많이 힘드시지요."이 한마디가 모든 상황들을 함축적으로 아우른다 생각하기에 그리 말할 뿐이다. 어머니도 마찬가지다. 요양원에 가신지 6년이라 하면 '아이고' 소리 먼저 나온다. 그 소리에는 '요양원에서 오래도 사신다'라는 뜻이 담겨 있다는 것을 모르지 않기에 이제 그리 말하지 않는다. '요양원에 가신지 좀 되었어요'로 동정의 눈길, 안쓰러움의 눈길을 면해보는 중이다.
가을 탓인지수많은 생각들이 내 영혼을 갉아먹는 날들이다. 어디를 가도 무엇을 먹어도 어느 한 곳이 불통인것처럼 생전 처음 겪어보는 두통에 시달리곤 한다. 누가 보아도장성한자식들 모두 출가시키고 세상걱정 하나 없을듯한데 나 홀로 힘겨워하고 결코 답이 없는 이 길에 우울감으로 한 올 한 올 담을 쌓아 올리고 있다. 나만의 성에 그렇게 나를 가두고 쓸쓸히스러져 가겠지. 어느 누구에게도 들키고 싶지않을그 성에서오직 최선을 다했던맏며느리로기억되려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