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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희야 Mar 30. 2024

어른 반찬 3종세트

음식은 사랑입니다(진미채, 파래무침, 꽈리고추멸치볶음)

15년 전의 일이었을 거예요. 봉사단체에 소속되어 활동을 하던 때였는데 그중에 나이가 지긋하신 한 여성분이 미혼으로 봉사하며 멋지게 사시는 분이 계셨습니다. 일도 꼼꼼하게 잘하시고 열심이셨는데 어디가 안 좋으셨는지 많이 아프시다는 것을 알게 되었어요. 그 시절에는 친목도모 겸 날 좋은 계절이 되면 오가 먹을 음식을 준비하여 단체로 야유회를 가곤 했었는데 한 번은 시어머니께 배운 개운한 나박김치를 해가지고 간 적이 있습니다. 모두들 맛있다며 어찌나 잘 드시던지요. 그 후로 얼마가 지났을까요. 그분께서 연락이 왔습니다. 미안하지만 그 나박김치가 먹고 싶다며 부탁해도 되겠느냐고 어렵게 말씀을 꺼내셨습니다.


그것이 뭐 그리 어려운 일이라고 한 통 뚝딱 해서 먹기 좋게 맛이 들은 나박김치를 가져다 드렸지요. 얼마 후 너무 맛있게 잘 먹었다며 고맙다는 말씀을 여러 번이나 하시더군요. 그 나박김치 덕분에 입맛이 돌아 좀 더 먹고 수 있었다고요. 그때는 이미 병색이 완연하여 거동이 쉽지 않았으니 더 해드릴 수도 없는 상황에 너무 마음이 아팠던 기억이 납니다. 누군가는 나의 손맛으로 다만 며칠이라도 더 살 수 있었다니 그때 그 일이 아직까지도 잊히지 않습니다. 하물며 사랑하는 내 가족, 나를 아는 고마운 이들을 위해 밥을 짓고 음식을 만드는 일들은 더없이 소중하고 아름다운 일이겠지요.




나를 뺀 가족들이 모두 좋아합니다. 왜 그 반찬을 좋아하는지는 저도 잘 모르겠지만 좋아하지도 않으면서 가족을 위해 한다는 것 또한 사랑이겠지요(자화자찬 중ㅎ). 누군가 내가 만들어준 음식을 먹고 입맛을 되찾고, 기력을 회복하고 맛있게 먹어준다면 그보다 더 기쁜 일이 어디 있을까요. 마침 아들이 발령받아 떠난 지 한참만에 천사와 함께 온다 해서 싸서도 보낼 겸 냉동실에 사서 보관했던 뽀얀 진미채를 꺼냈습니다. 실온에서 판매하는 진미채들은 좀 단단하지만 냉동되어 배송이 오는 진미채는 엄청 부드러우니 그에 맞게 조리를 해야겠지요. 진미채를 먹기 좋은 크기로 잘라주고 양념장을 만듭니다. 고추장을 한 스푼 듬뿍 넣고 식용유, 쌀올리고당, 맛술, 물도  스푼 정도 넣어 끓여주었어요. 진미채는 구매할 때마다 단단하기도 다르지만 염도와 당도가 달라 먼저 진미채를 한가닥 드셔보신 후에 간을 하면 좋겠지요.


약한 불에서 보글보글 한소끔 끓인 양념에 진미채를 넣고 고추장양념이 튀지 않도록 살살 골고루 뒤집어주며 간이 충분히 배고 타지 않도록 살짝 볶아줍니다. 전체적으로 색이 입혀졌다 싶으면 참기름 한수저와 후추, 고소한 참깨 솔솔 뿌려 마무리해 줍니다. 간이 어느 정도 되어 있고 고추장을 듬뿍 넣은지라 간장을 넣지 않았어도 간이 적당하니 맛있습니다. 워낙 부드러웠던지라 올리고당을 미리 넣었어도 그리 딱딱하지 않고 매콤 달콤 짭짤 씹히는 식감이 적당합니다. 원물의 상태를 보고 그에 따라 조리를 하는 센스 여러 번 하다 보면 저절로 생긴답니다. 빠알가니 맛있어 보이시나요. 며느리도 좋아하니 또 잘 먹겠지요. 지난번에 해서 보낸 무생채와 마늘종도 입 짧은 며느리가 몇 날며칠을  맛있게 먹었다는 소리를 들으니 어찌나 흐뭇하던지요. 사랑하는 나에 가족들이 잘 먹었다는 소리를 들으면 아무리 힘들어도 자꾸만 더 해주고 싶은 것이 어미의 마음인가 봅니다.




두 번째로는 새콤달콤한 파래무침 들어가 볼게요. 엄청 간단해요. 우선 무와 당근을 곱게 채 썰어 설탕에 절여둡니다. 오늘은 좀 굵게 썰어졌어요. 마음이 조금 바빠서인지 칼질도 잘 안 되는 그런 날이네요. 다음으로 주재료인 파래 두 뭉치를 깨끗이 씻어야 합니다. 겉으로는 깨끗해 보여도 씻다 보면 작은 조개껍질이 나오거나 나뭇가지 같은 해초가 나오기도 하니 살랑살랑 흔들어서 서너 번 이상 씻어주면 좋습니다. 양념은 간단해요. 식초, 설탕, 소금, 통깨를 넣어 무치는데 2배 식초 2스푼. 설탕 2스푼, 소금반스푼 통깨를 넣었어요. 무와 당근은 헹구지 말고 꼭 짜고, 파래도 물기를 짜내고는 열십자로 잘라주었어요. 파래무침은 가격도 저렴하고 새콤한 맛 때문에 기름진 음식을 먹을 때 차려내면 엄청 인기가 좋았답니다. 날이 더워지면 생파래가 안 나오기에 그전에 드시면 좋겠지요.




마지막 반찬은 초록초록 싱싱한 꽈리고추가격도 안정이 되고 적당히 맵지 않은 때라서 선택했어요. 맵찔이거든요. 꽈리고추 한 봉지를 꼭지를 따고 반을 갈라 씻어서 채반에 건져두고, 중멸치 50g을 마른 팬에 살짝 볶다가 기름을 두르고 맛술 1과 고추장 1, 올리고당 1, 후추를 넣어 볶아서 접시에 덜어둡니다. 다시 기름을 두르고 채 썬 양파와 마늘을 볶다가 꽈리고추를 넣고 볶아줍니다. 이때 적당히 볶아져 꽈리고추가 숨이 죽었다 싶으면  양조간장 2, 올리고당 1을 조금 넣고 볶다가 맛이 들면 당근과 고춧가루 1을 넣어 색을 입히고 덜어 둔 멸치를 투하하여 같이 볶아주면 적당히 달콤 짭조름하니 맛이 있습니다. 마지막으로 들기름 휘리릭 두르고 통깨를 넣으면 완성!

이 반찬 역시 평소에 입맛 없을 때 해 먹어도 좋지만 명절 때마다 기름진 전이나 고기 등으로 느끼하다 싶을 때 집어 먹으면 딱 좋은 반찬입니다. 더구나 동서들이 매콤 짭짤하다며 좋아하기에 매번 빠지지 않고 하는 최고의 밥반찬입니다.




이렇게 어른들이 좋아할 만한 반찬 세 가지를 해보았는데요. 매 끼니 반찬을 만든다는 것이 몇십 년을 했어도 매번 즐거울 수만은 없습니다. 다 같이  먹고살아야 하고 어차피 해야 한다면 기분 좋게 정성껏 하려고 합니다. 우리 식구 중 누가 좋아할 것이고, 누가 먹고 싶다 했었지, 이렇게 하면 잘 먹겠지, 그런 생각들을 하면 반찬 하는 동안 나름 기분도 좋아집니다. 그것이 결국 수고스러운 나를 사랑하고 가족을 사랑하고 나누어 줄 때는 이웃을 사랑하는 마음이 되겠지요. 반찬도 맛있게 해서 드시고 따스한 사랑 나누는 행복 가득한 한 주 되셨으면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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