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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희야 Apr 29. 2023

공순이의 작은 꿈

취업에 실패했다.

여느 날처럼 교복을 입은 채 친구들과 수다를 떨며 기숙사로 돌아오는데, 뒤에서 인근학교 남학생들이 수군대는 소리를 듣고 말았다.


공순이다! 공순이다!


나는 충격적이었다.

교복을 입었지만 학생이 아니라 공순이구나. 단지 학교 갈 돈이 없어서 어쩔 수 없이 공장에 다니며 학교에 다니는 것뿐인데.

나는 공순이였구나!

버젓이 교복을 입고 있음에도 작업복을 입은 공순이라니 너무 속상하고 자존심이 상했다. 그래 어떻게든 졸업을 하고 보란 듯이, 공순이가 아닌 다른 사람이 되어야겠다는 막연한 생각을 그날로부터 품기 시작했다.




그러던 어느 날 급여문제로 사무실에 갔었다. 작업복이 아닌 예쁜 유니폼을 입고 단정하게 앉아 업무를 처리하고 있는 직원들이 너무 부러웠다. "그래 나도 저런 사무실 여직원이 될 거야". 드디어 그곳에서 나의 작은 꿈을 찾았고, 그 꿈을 이루기 위해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오직 공부밖에 없다는 것을 깨닫게 되다.


시험기간이 되면 교장선생님 말씀을 어기고 며칠을  2~3시간만 자고 일어나 그날 시험 볼 과목을 이해를  하면 통째로 달달 외워서라도 갔다. 물론 타이밍(잠억제제) 힘을 빌려서다. 그리고 시험이 끝남과 동시에 엎어져 잤다.




그렇다고 평소에 공부를 하기도 어려웠다. 수시로 잔업을 해야 했고, 동생들과 살게 되면서는 네 명의 빨래에 살림까지 해야 했기 때문이다. 거기에 남동생 도시락까지 싸주며 학비까지 책임져야 했기에 늘 고단하기만 했다. 한 살 아래인 사촌여동생은 나보다 덩치가 훨씬 컸지만, 도대체가 속옷 한 장 빨지 않고 내어 놓기만 해서 나를 더 힘들게 했다.


겨우 하루에 4교시 수업뿐으로 선택의 여지없이 우린 모두 상과였고, 너무 오래되어 희미해져 가지내게는 상과 공부가 참 어려웠었다. 늘 졸리고 피곤한데 쉬운 과목이 있을 리 없겠지만,  난 그래도 학교가 참 좋았다. 학생이라는 것이 너무 좋았다.


3교대 근무로 주마다 돌아가다 보면 아침에 여유 있게 학교에 갈 수 있는 날이 있었다. 그런 날이 되면 아침 일찍 일어나 시내버스를 타고 아무도 없는 교정에 맨 먼저 발자국을 남기는 그 순간을 즐겼다. 커다란 운동장과 텅 빈 교정이 나를 안아주며 나를 숨 쉬게 하는 것 같았다. 비어 있는 교실문을 열면 눅진한 그 냄새가 내 손길만을 기다리고 있었기에 가슴이 벅찼다. 창문이란 창문은 몽땅 열어놓고, 옥상에 올라 넓기만 한 빈 교정을 바라보며 온전히 나만의 학교라는 것이 참 행복했다.




나에게는 학교에 아빠가 있었다. 나이 지긋하신 문서사무선생님. 어쩌다 지나가시거나, 수업에 들어오시면  "희야 아빠 오셨다." 하며 친구들이 놀려대곤 했다. 어쩌다 그리 되었는지 모르겠지만 인자하신 선생님의 총애(관심정도)를 받는 것이 나쁘지 않았다. 그래서 그 선생님 과목만큼은 항상 백점으로 보답했다.


그런데 어느 날 지나가는 말씀처럼 지인 아들이 미국으로 유학을 가는데 함께 갈 친구를 찾는다는 것이다. 나는 그 말이 무슨 뜻인지 몰라서 아무 대답도 하지 못했다. 가난한 집 딸아이가 일면식도 없는 부잣집 아들을 따라 유학을 간다. 이건 무엇을 의미하는 것일까? 몰라서 대답 못한 내가 참 다행스럽다. 그렇다고 그 선생님께서 나쁜 뜻으로 그런 말씀을 하셨다고는 생각하않는다.




그렇게 3년을 다니고 졸업이 다가오자 담임선생님께서 부르셨다. 이번 졸업생 중에서 맨 먼저 나에게 선택권이 주어졌다는 것이다. 서울본사에는 한 명만이 갈 수 있고, 지방에 있는 사무실을 가든 그것은 나의 선택이라고 하셨다. 담임선생님께서는 서울을 추천하셨고 나도 그렇게 하기로 했다. 하지만  선택이 내 인생을 송두리째 흔들어 놓을 줄은 그때는 미처 몰랐다.


졸업식이 끝나고 선택의 여지없이 지방으로 발령을 받은 친구들은 모두 떠났는데, 나는 여전히 공장에 남아 솜먼지를 뒤집어쓰며 마냥 발령을 기다리고 있었지만 소식이 없었다. 아무런 힘이 없었던 나는 사무실에 있던 선배의 도움으로 상무님을 만났지만 별다른 대답을 듣지 못하고 돌아왔다.

희망이 보이지 않았다.




난감해진 담임선생님은 마침 회사에서 대학교를 설립한다 , 그곳에서 공부를 하고 돌아와 교사를 하면 어떻겠느냐고 제안을 하셨다. 하지만 학비를 어떻게 감당할 것이며, 너무 어렸던 나는 어느 누구와도 의논도 못한 채 홀로 쓸쓸히 사표를 냈다.


이미 서울사무실로 가게 되었다는 소문이 공장에 파다했기에 더 이상 다니는 것도 창피하고, 그곳을 무작정 떠나고 싶었다. 그리고 얼마 후 사무실로 퇴직금을 받으러 갔을 때, 건넨 여직원의 말이 나를 더 슬프게 했다. 대전사무실로 발령이 났는데 이미 시표를 내서 아쉽게 되었다고...


어떤 경로로 알게 된 것인지는 기억나지 않만 그때 회사 회장이자 이사장이 선거출마했었다는 것이다. 청탁이 난무했던 그 시절 내가 가야 할 자리에 수많은 청탁자들이 몰려들었고, 운 나쁘게도 난 그 사람 속에 뒤섞여 선택받지 못한 한 사람일 뿐이었다.



커버사진

친구들아, 너희들과의 사진을 허락도 구하지 않고 사용해서 미안. 하지만 세월도 흐르고 변해버린 내 모습을 보며 너희들도 나처럼 그렇게 살아가고 있겠지 싶어 내 맘대로 .

이해해 줄 거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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