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희야 Jun 29. 2024

먹을 수 있다는 것에 대한 예찬

열무김치, 수제비, 닭볶음탕

요즘 시골밭에 가면 어디를 둘러봐도 먹을 것들로 득합니다. 어느 야채든 음식이든 마음 놓고 실컷 먹을 수 있다는 것이 얼마나 행복한 것인지 아파본 사람은 알 거예요. 병명은 소화장애 or 만성위염, 신경성 위장장애. 몇 년째 달고 살지만 여전히 꿈꿉니다. 라면 한 봉지 끓여 계란 풀고 대파도 송송, 쑥갓도 한 줌 올려서 먹으면 얼마나 맛있을까. 그 국물에 밥도 몇 수저 말아서 먹으면... 아는 맛이라서 더 간절할 때도 있지요. 글쎄요. 라면 먹어본지가 언제일까요. 거기에 또 작은 소망 한 가지가 더 있다면 천 번의 키스보다 사랑스럽다고 예찬하는 커피, 아메리카노까지는 바라지도 않아요. 영혼까지 데워줄 것 같은 달달한 캐러멜마키아토 한 잔 할 수 있다면 얼마나 행복할까요.


다행스럽게도 한방치료를 하면서 좋아진 건지 마음을 달리해서인지 잘 모르겠지만 조금씩 매운 음식들도 먹고 나아지고 있는 것 같기도 합니다. 이러다가도 어느 순간 어떤 음식이 명치끝에 딱 걸리는 때가 있기에 늘 조심스럽긴 하지만 조금씩 양을 늘리며 몇 달을 좋고 안 좋고를 반복하다 요즘 기분 탓인지 바람 탓인지 몇 킬로가 늘었습니다. 그런데 내과의 양약들을 먹지 않고도 부황과 침치료를 하고 한약을 먹으며 이렇게 해도 괜찮은 것인지 자꾸만 의문이 드는 거예요.


반 의사가 된 양 내손으로 명치아래를 꾹꾹 눌러보면 딱딱하거나 심지어 어떤 때는 이상한 소리까지 났었는데 이제는 말랑하니 풀어져 가는 것 같기도 합니다. 참 신기해요. 어떻게 그 가느다란 침으로 전기자극을 주어 풀어주고, 약재(풀과 나무)를 끓인 물을 먹고 나아질 수가 있는지요. 위도 그렇지만 맥도 너무 약하다며 지어주신 한약을 먹은 지도 서너 달. 다행히 한약도 실비가 적용되고, 건보 지원도 되었기에 그런 혜택도 받아보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무언가를 마음 놓고 먹을 수 있다는 것이 얼마나 대단한 축복인지요. 요즘 그런 행복들을 조금씩 찾아가고 있는 중이랍니다.




산행 전에 배도 채울 겸 오랜만에 산아래에 있는 보리밥집에 들렀어요. 잔치국수와 보리밥, 숯불바비큐를 시켰는데 거무죽죽하고 시어 빠진 열무김치를 맛있다며 계속 집어먹는 거예요. 매운걸 못 먹는 나 때문에 저러나 싶어 어찌나 미안하고 마음에 걸리던지요. 요즘 위도 많이 좋아지기도 해서 장마 전에 열무김치를 담그기로 했습니다. 작지 않은 열무 2단과 미나리, 쪽파, 양파 2개. 마늘, 생강, 채 썬 당근, 새우젓, 밀가루풀 한 컵을 준비했습니다.


열무는 7~8cm 길이로 잘라 씻어서 천일염 1컵을 열무 사이사이 뿌려주며 1시간 동안 절여줍니다. 중간에 한번 뒤집어주면서 점심을 먹고 났더니 딱 알맞게 절여졌어요. 김치하고 나 힘들 거라며 나 몰래 본인이 더 좋아하는 초밥세트를 주문했네요. 얼른 맛있게 먹고는 절여진 열무를 씻어서 밭쳐두고 양념을 했습니다. 우선 깍둑썬 양파와 생강, 마늘, 새우젓 2스푼, 멸치액젓 4스푼, 배즙 1 봉지, 매실진액 2스푼을 넣어 믹서기에 갈아서 양푼에 부어줍니다.

 

여기에 맵지 않은 고춧가루 1컵을 넣고 준비해 놓은 쪽파와 당근, 미나리, 양파, 밀가루 풀도 넣고 버무리며 뻑뻑하다 싶어 국에 넣으려고 끓여놓았던 육수(생수무방)를 한 컵 넣고 감미료도 조금 넣어 단맛을 맞춰줍니다. 이때 열무양에 따라 간이 달라질 수 있으므로 소금으로 간을 조절하시고 씻어놓은 열무와 모두 골고루 버무려 줍니다. 간이 딱 맞고 성공입니다. 얼른 맛있게 익어서 그동안 미안했던 마음도 지우고 싶네요. 시뻘건 홍고추도 넣고 더 매콤하게 못해주는 것이 아쉽긴 하지만 요만큼만 하기도 얼마나 다행스러운지요. 얼른 맛있게 익은 열무김치에 싹싹 비벼먹고 싶어 집니다.




오늘은 비도 오고 칼제비가 먹고 싶은데 좋아하는 칼국수집도 쉬는 날이라 간단하게 수제비(2인분)를 해서 먹기로 했어요. 밀가루 250g에 계란 한 개와 소금 한 꼬집, 식용유 조금만 넣어 저어준 후 물(150ml)을 조금씩 넣어가며 반죽을 해줍니다. 한참을 주무르다 약간 뻑뻑하다 싶어 손을 생수에 살짝 묻혀 다시 반죽해 주니 보들보들 딱 원하는 반죽상태가 되었어요. 비닐에 싸서 냉장고에 넣어두고 육수를 준비했습니다. 멸치 한 줌과 황태 몇 조각, 마른 새우 조금, 다시마 한 조각, 양파 반 개, 대파를 넣어 푹 끓여줍니다(육수팩 ok). 육수에 들어갈 야채로는 반달모양으로 썬 애호박과 채 썬 당근, 편으로 썬 마늘, 어슷 썬 대파를 준비했습니다. 끓는 육수에서 다시마는 먼저 건져내고 잘 우러난 육수 8컵정도에 꽃소금 반스푼, 멸치액젓 반스푼을 넣어 간을 맞춘 후 대파만 남기고 모두 육수에 넣어줍니다.


이제 반죽을 떼어서 넣어줄 건데요. 냉장고에서 반죽을 꺼내어 다시 보들보들 해질 때까지 충분히 주물러줘야 합니다. 양이 적어서 미리 야채들을 넣어줬는데요. 양이 많을 경우 반죽을 다 떼어서 넣은 후에 야채를 넣고 끓여주면 더 좋겠지요. 최대한 반죽을 쭉쭉 늘려가며 얇게 떼어서 넣어주고 끓어오르면 파와 풀어놓은 계란을 부어주고 또 한소끔 끓여준 후에 간을 보면서 후추로 마무리해 주세요. 커다란 냉면기에 수제비를 떠서 담은 후에 김가루와 깨소금을 올려주면 구수한 핸드메이드 수제비 완성입니다. 오랜만에 먹어서인지, 집에서 해 먹어서인지 이상하게도 밀 것임에도 속도 편하고 맛있게 잘 먹었어요. 요즘 햇감자가 나와서 구수하니 맛있는데 깜박했어요. 꼭 한두 개 채 썰어서 넣어주시면 훨씬 맛있답니다. 장마도 오고 꿀꿀한 날 만들어서 드셔보면 어떨까요.




이제 호기롭게 매콤한 닭볶음탕까지 도전해 보겠노라고 닭고기 800g 1팩을 사 왔습니다. 우선 토 막진 닭의 껍질을 벗겨내고 양념이 잘 배도록 칼집도 넣어주고 꼼꼼히 손질하여 깨끗하게  씻어주었어요. 냄비에 담아 자작하게 물을 채우고 통후추를 득득 갈아 넣은 후 한소끔 끓여서 물을 버린 다음 양념재료를 준비합니다. 양파 1개, 감자 4개(닭볶음탕에 들어간 감자를 좋아해서 많이 넣는 편입니다), 당근 반 개를 취향대로 썰어주시고, 대파 1대는 어슷썰기 해주세요. 양념은 양조간장 4스푼 반, 설탕 1스푼, 고춧가루 2스푼, 생강가루 한 꼬집, 들기름 반스푼, 맛술 1스푼, 마늘 2스푼과 물 2컵(400ml)을 섞어 냄비에 붓고 대파를 뺀 재료들도 모두 넣어 끓여줍니다.


강불로 끓여주다 중불에서 수미감자가 거의 바스러기 직전까지 푹 끓여주었어요. 감자와 양파가 어우러져 국물이 담백하고 약간은 걸쭉할 정도로 졸여 밥에 올려 비벼먹기에 닭껍질도 제거하고 한 번 끓여서 버린 후 요리를 합니다. 혹시 닭고기의 깊은 맛을 원하신다면 껍질이 있는 상태로 깨끗이 씻어 바로 양념하여 끓여주시면 됩니다. 마지막으로 간을 보며 올리고당 1스푼과 대파와 후추를 넣으면 완성입니다. 역시 고춧가루 2스푼은 무리였어요. 사진에 다 담기지 못해서 그렇지 어찌나 시뻘겋고 매콤한지 닭고기살과 감자만 건져서 먹어 좀 아쉬웠어요. 그래도 옆에서 맛있게 먹어주니 오늘의 닭볶음탕은 완전 성공입니다.




집을 나서면 몇 걸음 안에 커피숍이 있어요. 또 몇 블록 지나면 젊은이들의 카페성지 알록달록한 마카롱과 화려한 디저트들이 가득한 키페들이 즐비합니다. 아무리 그 앞을 모른 척 지나치려 해도 황홀한 그 커피 향으로 금세 부러워지고 맙니다. 나도 저렇게 창가에 앉아 수국이 활짝 피어있는 공원을 바라보며 커피를 마시고 싶은데, 그런데 다른 차는 왠지 어울리지가 않을 것 같아서 그만 들어가기가 싫어집니다. 이 작은 것에도 마음이 서러워지는데 맛있는 음식을 마음대로 못 먹을 때의 그 심정이 어떠할까요. 물론 모두 본인의 탓이겠지만 그것이 마음대로 안될 때도 있다는 것이 문제지요.


왜 음식 만들다 커피타령이냐고요. 간단해요. 마시고 싶어서지요. 매콤하고 쌉쌀하고 뭐든지 가리지 않고 먹을 수 있다는 것이 얼마나 행복한 것인지 일깨워 드리고 싶기도 하고요. 오늘은 일찍 빵을 사러 갔어요. 꽤 유명베이커리인데 매일 아침, 전날빵을 반가격으로 팔아요. 오픈런을 하기 위해 서두른 탓에 맨 먼저 들어가 좋아하는 호두식빵과 우유식빵등을 집어 들었습니다. 이제 한편에 있는 쌀식빵은 제쳐두고 좋아하는 빵들을 살 수 있어 기분이 좋습니다. 굳이 아침마다 순두부를 먹지 않아도 되고, 지겨워지는 쌀카스텔라를 먹지 않아도 된다고 생각하니 왜 이리 실실 웃음이 삐져나오는지요. 아직 얼큰 칼칼한 음식들은 조심해야겠지만 하나씩 먹을 수 있는 것들이 늘어간다는 것에 감사를 드리고 싶습니다. 오늘만큼은  세상 모든 먹거리들에게 무한한 사랑과 먹을 수 있다는 것에 대한 예찬을 마음껏 늘어놓 싶은 날입니다. 맛있는 하루 보내세요.

이전 22화 언니의 정성과 사랑이 반찬이 되다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