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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희야 Aug 17. 2024

에필로고

도전의 끝에서 받은 선물

몇 해를 거르더니 어느 날 갑자기 선물처럼 꽃을 피웠어요. 2주에 한 번 그것도 늘 시간에 쫓기며 물 몇 모금씩 채워주었을 뿐인데, 이렇게 단아한 꽃으로 내게 와 주다니 그동안 글을 올릴 때마다 응원해 주신 독자님들처럼 그렇게 고맙고 반가울 수가 없습니다. 눈 내리는 겨울방학에 시작하여 무더움이 절정을 이루는 이 한 여름에 연재를 마치게 되었어요. 돌아보면 아무리 생각해도 무모한 도전이었습니다.


좋아하고, 생각나고, 그리워지고, 때로는 아픔으로 기억되기도 하는 반찬들을 올리며 소곤소곤 밥 익는 냄새처럼 설레는 그 마음들을 나누고 싶었는데 잘 해온 걸까요. 돌아보면 40여 년 주부경력이라는 그거 하나 믿고 시작했는데 어쩌다 보니 한 두 가지도 아니고 세 가지씩 만들다 보니 시간은 모자라고 가짓수는 채워야 하고 난국이 따로 없었어요. 제대로 된 계획을 촘촘히 세우지 못하고 무턱대고 도전해 버린 것이 문제였지요.


이번 연재를 하며 많은 것들을 깨달았어요. 장기간의 레이스인 만큼 무모한 도전보다는 구체적인 계획이 필요하다는 것을요. 하다 보면 해내겠지 하고 안일하게 제 자신만 믿고 시작했지만 몇 번이나 현타가 와서 그만 도중에 마무리할까 싶기도 했었거든요. 다행히 그럴 때마다 응원해 주시는 작가님들 덕분에 30화까지 무사히 완주하게 되었습니다. 찐으로 정말 정말 정말 감사드려요. 혼자 이 길을 왔더라면 어림도 없었을 거예요.




지금까지 해온 가짓수들을 헤아려 보니 모두 81가지나 됩니다. 모두는 아니지만 대부분 계절에 따라 나오는 재료들을 활용하여 만들다 보니 특별하진 않았지만 일반적으로 누구나 해 먹을 수 있는 반찬들을 만들어 보곤 했어요. 그 반찬들을 빌미로 또는 그 반대로 이야기들을 풀어내며 때로는 버겁기도 했지만 색다른 경험이었어요. 도전했기에 얻을 수 있는 것들이 더 많았습니다. 초반에는 올릴 때마다 메인에도 많이 오르고 조회수도 급등하고 저의 소중한 독자수도 증가하는 행복한 시간도 있었습니다.


조회수나 독자수에 연연하지 않는다 해도 증가되는 비례수만큼 책임감도 더 느끼게 되었던 것 같아요. 어떤 글로 다가가야 할지 그에 어울리는 반찬은 무엇으로 할 것인지 고민하는 시간들이 늘어만 갔거든요. 어찌어찌 마지막화를 쓰며 마음이 홀가분하면서도 벌써 허전해 오려는 이 기분은 또 무엇일까요. 이 연재만 끝나면 날아갈 것만 같을 줄 알았는데 그런 것도 아닌가 봅니다. 아마도 돌아오는 토요일이 되어서야 무엇을 해야 할지 몰라 허우적 댈지도요.


그냥 가기에는 못다 한 한 가지가 있어 자축 겸 송별의 의미로 감자떡을 했어요. 이 세상에는 없는 친정엄마표 감자떡인데요. 진작부터 해 먹어야지 하면서도 마지막에 하려고 그랬는지 지금까지 미루다 오늘에서야 만들게 되었어요. 강원도 감자떡과는 전혀 다르지만 그 어려웠던 시절 그래도 유일하게 한 여름이 생일인 작은딸을 위해 해주신 추억의 음식입니다. 어려서 단 한 번도 생일날에 미역국을 먹어본 적은 없지만 가끔 해주셨던 그 감자떡은 어머니의 가난한 사랑이었음을 세월이 흐른 다음에야 알게 되었습니다.


간단하게 몇 개만 만들어 볼 거라서 씻은 쌀 위에 감자 3개를 껍질을 벗겨 올려서 밥 하면서 같이 쪄주었습니다. 포실포실하게 익은 수미감자를 양푼담아 소금과 설탕을 넣은 뒤 인절미처럼 찐덕해 지도록 찧어서 모양을 만들어 주었어요. 다음에는 오래전부터 냉동실에 구해 두었던 볶은 콩가루를 꺼내어 쟁반에 펼쳐 고 묻혀서 먹으면 그 맛이 어떨까요. 그 더운 여름날에 돌절구에 한가득 찧어서 해주셨던 그 감자떡은 그 어느 것과도 비교할 수 없는 특별한 생일선물이었습니다. 이번 생일에는 병원투어를 하느라 정신없었으니 오늘에서야 이렇게 자축해 보렵니다. 희야 생일 축하해! 어머니, 이 더운 날 절 낳아 오늘을 살아가도록 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어느 누구의 도움도 없이 지금까지 정짓간을 지키며 살아오진 못했을 거예요. 친정어머니께, 시어머니께 배우고 주위의 많은 분들께 배우면서 손맛도 늘어갔을 테니까요. 요즘이야 검색만 하면 무엇이든 만들어낼 수 있는 세상이 되었지만 어깨너머로 배운 그 손맛은 쉽지 않겠지요. 나의 뿌리가 되어준 분들이 계셨기에 오늘 이 글을 쓸 수 있었습니다. 물론 저의 글이 올라갈 때마다 라이킷 해주시고 소중한 댓글로 응원해 주신 작가님들, 조용히 읽어주신 독자님들 덕분이기도 하고요.


앞으로 또 어떤 도전들이 말을 걸어올진 몰라도 어떤 일이든 또 하게 될 거예요. 다만 무모하지 않게 심사숙고해서 해보려고 합니다. 그렇다고 언제나 다 잘 되는 것은 아니란 것도 아는 나이가 되었으니 크게 실망하지도 않을 것이고요. 어느 날 정성스럽게 써서 보낸 원고가 채택, 미채택이라는 글자에도 이제 흔들리지 않으니까요. 그러니 언제 어디서나 저의 도전은 계속될 겁니다. 갑자기 선물처럼 피어난 보춘화(춘란)처럼 기다림의 시간이 필요하다는 것도 알았으니까요. 그동안 감사했습니다. 새로운 글로 또 만나 뵐게요.



# 에필로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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