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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희야 Oct 28. 2024

가을농사는 망했지만

오이가 한몫했다

 추수의 계절, 굽어진 벼이삭이 가을의 소슬바람에 벌판 가득 황금빛으로 넘실거린다. 드높아만지는 가을하늘아래 하나둘 결실을 맺어가는 요즘이다. 드디어 주말에 타작을 한다는 소식이 왔다. 마음이 급해진다. 이것저것 준비할 것들이 한두 가지가 아니다. 먼저 족발을 주문하고 소주 2병을 사고, 밥 한 공기와 따끈한 육개장, 물, 음료, 과일, 컵, 수저, 젓가락. 칼, 가위, 비닐봉지, 낫, 장갑, 휴지 등등을 준비했다. 오늘따라 햇살이 어디에 숨었는지 바람만 적일 뿐 좀처럼 나올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 얼른 이슬이 말라야 콤바인이 들어갈 텐데 무늬만 농부라고 얕보는지 날씨가 따라주지를 않는다. 그래도 어쩔 수 없다. 하루의 일정이 있으니 콤바인 기사님의 뜻대로 따라야 한다. 조용했던 벌판이 콤바인의 굉음으로 가득 차고 잘려 나가는 볏짚들이 나란히 나란히 얌전하게 눕는다. 봄부터 올곧게 서 있느라 고생스러울 만도 했다. 이제 햇살에 잘 말려진 짚들은 어느 짐승의 먹이가 되어 살을 찌우게 될 것이다. 마지막까지도 모두 내어주고 가는 자연의 이치가 아름답다. 우리네 인생도 그러해야 하거늘 움켜쥐고 살고자 했던 날들이 많았음에 살며시 부끄러워지는 가을이다.


 기계로 하다 보니 논두렁 가에 있는 벼들이 미처 잘려나가지 못하고 서 있었다. 좁은 논두렁을 곡예를 하듯이 비틀거리며 서툰 낫질로 한아름 베어다 놓았다. 그냥 두려 해도 어린 시절이 생각나 그럴 수가 없다. 식구수는 많고 먹을 것이 귀했으니 가을이면 추수가 끝난 남의 논에서 이삭 줍기를 했다. 어쩌다 덜 베어지거나 떨어진 벼이삭을 줍기 위해 논바닥을 헤집고 다녔던 생각을 하면 쌀 한 톨도 소중하기만 하다. 주인이 시원치 않으니 논둑에도 잡초들이 무성하다. 온 김에 낑낑거리며 낫으로 치고 뽑아버렸다. 앗! 어디서 본듯한 식물 한 무더기가 눈에 들어왔다. 꽈리다. 어릴 적에 본 기억밖에 없는 꽈리가 렇게 반가울 수가. 그래도 너무 많다. 꽈리에게는 미안하지만 어쩌다 스쳐가는 동네분들이 볼 수 있도록 한그루만 남기고 모두 뽑아버렸다. 누군가 나처럼 반가워하실 분이 있을지도.

<땅꽈리>

 추수래야 얼마 안 되기에 1시간도 안되어 끝이 났다. 부랴부랴 가져온 음식으로 참을 차려내었다. 장소는 우리 논 맞은편에 있는 비닐하우스다. 마침 10여 년 전에 논에 대토를 하고 비닐하우스를 지어 철마다 다른 채소들을 심으시는 주인분이 계셨다. 양해를 구하고 그 앞에 주차도 하며 안면을 튼 지 몇 해가 되었기에 올해도 그 안에 상을 차렸다. 다해봐야 기사님과 4명밖에 안되기에 조촐하지만 함께 족발과 과일 등을 먹으며 살아가는 이야기들을 나누었다.


 작년에 이미 기사님의 이야기들은 충분히 들었다. 나이 60이 되어가는 사님은 농촌총각으로 시골일에 찌들어 훨씬 더 나이가 들어 보인다. 형제들이 아버지께서 돌아가시자 행여 남동생이 땅마지기를 꿀꺽할까 싶어 늙으신 어머니 앞으로 모두 돌려놓았다 한다. 그 바람에 농사혜택을 전혀 받지 못하고 있다며 술이 거나하여 울어대는 통에 남편이 그 큰 트럭을 끌고 가서 확한 벼를 수매하는 일이 벌어졌었다. 농사를 짓게 되면 농기계나 그에 소요되는 석유 등을 저렴하게 급받을 수 있는데 농사채가 본인에게 없다 보니 그런 혜택도 못 받고 평생 아버지와 농사를 지었음에도 빈손인 것이다. 미리 잇속을 차리지 못한 것은 본인잘못이지만 혼자인 것도 서러운데 그런 상황을 이해해주지 못하는 가족들이 서운한 것이다. 참 안타깝고 답답한 노롯이다.


 하우스 주인분은 허리보호대를 차고 요즘 금값인 오이를 따고 계셨다. 매끈하게 잘 자란 오이가 엄청 맛있게 보였다. 20여 년을 직장을 다니시다 회사가 통째로 멀리 옮겨가는 바람에 이 고장을 떠나기가 싫어서 그만두셨다고 한다. 아직 자식들이 자라고 있으니 뒤늦게 논을 메꿔서 하우스를 짓고 채소들을 재배하는 일을 하게 된 것이다. 농사가 얼마나 힘든 것인데 멋모르고 달려들었다가 7~8년은 한 푼도 남기지 못하고 고생만 하셨다며 힘없이 웃으셨다.


 겨우 최근 몇 년 들어서야 나아지기 시작했는데 올해는 오이값이 좋아서 많은 이익이 있겠다 싶었지만 그도 아니었다. 작년에는 양이 많아서 그나마 매출이 올랐는데 올해는 비싸도 나오는 양이 적어서 별반 차이가 없다는 것이다. 계절 채소를 키우다 보니 한겨울에는 매출이 없어 아내가 아직도 직장을 다니며 생활비를 해결하고, 5동이나 되는 오이하우스도 혼자힘으로 다 관리하고 계셨다. 오이도 오이와 박을 접붙여서 키우는 일반 오이와 달리 순수하게 오이씨만으로 손수 생발아를 시켜서 키워 맛이 다르다며 자부심이 대단하셨다. 정말 먹어보니 연하고 고소하니 맛이 다르다.


 그렇게 이야기를 나누다 보니 시간이 많이 지체되었다. 얼른 참을 먹은 상을 치우고 다시 보따리를 싸며 오이를 50개씩 재고 남은 조금은 비틀어지고 작은 오이들을 구매하겠다고 하니 극구 사양하시며 30개가 넘는 오이를 한 아름 싸주셨다. 어렵게 지은 오이농사인데 그냥 먹을 수 없다고 해도 시골인심이 그런 것이 아니라며 으름장을 놓으시는 바람에 두 분 다 어제 술이 과해 못 드신 남은 소주 2병만 드리고 왔다. 언젠가 들르게 되면 뭐라도 사다 드려야겠다. 서둘러 벼수매를 마치고 바로 출력된 용지를 받아보니 결과가 형편없다. 올해는 농사가 제대로 안되어 10% 정도 줄었다고 했지만 작년대비 15% 정도나 적게 나왔다. 비료값에 모판비, 이앙기비, 추수비, 물관리비까지 드리고 나면 남는 게 별로 없다. 올가을 농사는 완전 망했다.


 하늘의 뜻이니 약간은 씁쓸했지만 비싼 오이를 받은 것으로 로를 삼기로 했다. 많이도 주셨으니 오이소박이를 하기로 했다. 20개 정도를 깨끗이 씻어 토막을 내고 열십자로 잘라 소금에 절였다. 밀가루풀을 반공기정도 준비하고 부추를 사러 집 앞에 있는 마트에 갔다. 일요일이라 문이 닫혀있다. 사러 가려면 차를 가지고 나가야 하는데 아침부터 서둘러 다녀왔더니 피곤하고 귀차니즘. 그냥 집에 있는 쪽파 반 줌과 당근, 양파 2개, 마늘, 생강, 새우젓, 멸치액젓, 감미료, 매실액, 소금, 밀가루풀 등을 넣어 양념을 만들었다. 1시간 정도 절여진 오이를 씻어 열십자를 낸 부분에 양념을 넣어 1통을 채웠다. 맛있게 익기만 하면 된다. 봄부터 땀 흘리며 가꾸신 오이를 이렇게 먹어도 될까. 값도 비싸지만 하우스주인분의 마음이 담긴 소중한 식재료에 아껴먹으려 2개는 당장 먹을 수 있도록 오이무침을 하고 나머지는 샐러드로 먹기 위해 주방티슈로 돌돌 말아 비닐에 넣어 보관하였다.


 저마다의 사연들을 안고 농사를 짓고 자연의 섭리에 순응하며 살아가는 농부들의 면면은 고단하기 짝이 없지만 그 속에서도 내일의 희망을 꿈꾸며 살아간다. 기사님도 올 농사는 소출이 적었지만 "내년에는 나아지겠지요." 한마디로 가름하며 툴툴 털고 일어나시고, 하우스주인분도 봄이면 또 새로운 작물을 심으실 거라며 "그때는 좋아지겠지요" 하고 일어서셨다. 멀리서 보면 모두가 평화로운 듯하여도 저마다 사연 없는 집이 없고 굽이굽이 힘든 시간들을 이겨내며 살아간다. 부디 그분들에게도 나아지는 날들이, 좋은 날들이 함께 하기를 기도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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