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을여행으로 3년째 화담숲을 다녀왔다. 가깝지도 멀지도 않은 거리인지라 예매창고가 열리자마자총알같이 예매를 하고 몇 날 며칠을 손꼽아 기다려왔다. 새벽같이 일어나 김밥 두 줄을 싸고 간식과 커피, 따뜻한 보리차도 준비했다. 당일치기 그것도 한나절에 불과한 여행이지만 설레는 것은 늘 매한가지다. 식음료는 반입불가인 것이 안타깝지만 초입에 있는 햇살 창연한 야외벤치에서 펼쳐놓고 먹는 김밥은 더할 나위 없이 맛나다.아침부터 쏟아져 내리는 가을햇살에 벌써 이번가을을 다 만나본 것처럼 여한이 없다. 그럼에도 고운 단풍들이 그득한 숲으로 들어가니 또 다른 풍경들이 가을을 노래하고 삼삼오오 몰려드는 가을손님들이 물드는 잎사이로 활짝 활짝 웃는다.
대부분 가족단위이지만 연인인지 친구인지 모를 다정한 손길들이 가을빛을 닮아 알록달록해져 가며 웃음소리가 끊이질 않는다. 단풍잎 아래서 찰칵, 노란 국화 앞에서 찰칵, 내 마음에도 온갖 풍경들이 스며들어 찰칵 소리에 숨어들었다. 핑크뮬리숲에 가려지고, 노란 넓은잎뒤에 숨고, 활짝 핀 들국화 꽃잎뒤에 숨어도 용케도 찾아내어 술래가 되고 만다. 사진 찍는 것을 좋아한다. 술래가 되어주는 사람은 단 한 사람. 40여 년을 한결같이 찍어대면서도 지치지도 않는 것이 신기하다. 물론 가끔은 그런다. 그때는 어떻게 찍어도 통통하니 예뻤는데....
해외여행을 가면 더욱 빛을 발한다. 이때다 싶어 홍보에 나선다. 여기 사진 맛집 있어요. 한 번 찍어보시라니까요. 반신반의 갸웃하던 일행들이 다음날부터는 서로 찍어달라며 줄을 선다. 밤새 이 집 정말 사진맛집이잖아, 금세 잘도 알아차렸다. 그제야 난 전용모델에서 벗어나 자유인이 된다. 줄지어선 모델들을 찍어 주 든 말든 혼자가 되어 외국의 거리를 탐색하고, 길거리 음식을 사 먹고, 빈둥거리며 내 맘대로의 시간을 만끽한다. 이제 찍을 만큼 찍었으니 전용모델이 나설 시간이다.
아무렇게나 한 장 찍고 말았으면 좋겠는데 이래라저래라 귀찮을 때도 많다. 그래도 시키는 대로 다 한다. 언제까지 찍어줄지 몰라서. 가끔은 내가정말 예쁜 줄로 착각하기도 한다. 사람들은 모른다. 모두 허상이고 사진발인 것을. 오래도록 숨겨야지. 사진발로라도 지켜내고 싶은 것이 내 모습이란 것이 슬퍼질 때도 있지만 그러면 어떠랴. 어차피 다 나인 것을. 세월이 아무리 흐른대도 난 그대로 있을 것이고, 가을도 제 할 일을 하며 그대로 일진대. 주름진다고 내가 아닐 수 없고 낙엽지기에가을인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