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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희야 Nov 28. 2024

미안하다고 해주오

그때그때 풀고 가자

 

 '한마디에 천냥빛을 갚는다'는 그 말이 아니더라도 우린 잘 알고 있다. 말이 주는 그 위력을. 아무리 사소한 말이라도 해주고 안 해주고의 그 차이는 천양지차다. 그런 말, 꼭 듣고 싶을 때가 있다. 오늘이 그랬다.


 올해 처음으로 절임배추를 사서 김장을 했다. 늘 그래왔듯이 일은 왜 그리 한꺼번에 몰려드는지 정신을 차리기가 힘들었다. 좀 더 일찍 준비했더라면 렇게 헉헉거리지는 않았을 텐데, 절임배추라는 것에 너무 안일했던 탓일까. 시간이 임박해서야 마늘을 까고 김장 속재료를 사기 위해 시장조사에 나섰다. 농산물마트와 농수산물시장, 대형마트를 차례로 다녀보았다. 가격도 야채들도 다양하지만 마트에서 행사를 하고 있다는 정보를 뒤늦게 접하고는 다음날 오전에 오픈런을 하기로 했다.


 문제는 시장조사로 끝냈어야 했는데 이미 총각김치를 5단이나 담갔음에도 모양이 원하던 사이즈라며 3단을 덜커덕 사버렸다. 바로 손질해서 절이고 저녁에 버무려서 담그고 다음날 아침 오픈전인 마트 앞에 줄을 섰다. 그날따라 추위는 왜 그리 옷깃을 파고드는지 온몸을 덜덜 떨다 줄지어 선 카트부대를 따라 무를 향해 돌진했다. 무 6묶음을 사고 갓 3단에 쪽파. 미나리 등을 구매하여 승리의 여전사처럼 기세등등하여 집으로 돌아왔다.(시중의 3분의 1 가격)


 이미 절임배추는 40킬로를 주문했으니 배추 속으로 넣을 무와 함께 들어갈 야채들을 사고 행사 마지막날이라서 어쩔 수 없이 동치미재료까지 모두 온 거였다. 한꺼번에 이렇게 할 생각은 전혀 없었는데 사람 사는 일이 어찌 매번 내 생각대로 되던가. 그래도 그렇지 굳이 이 와중에 꼭 총각무 3단까지 사야 했을까. 그래도 어쩌랴 드시고 싶다는데. 이미 그때부터 이 저렴해진 체력에는 피곤이 몰려들기 시작했다.


 무 1묶음이 6개씩이면 무려 36개로 일일이 다듬어 잎은 시래기용으로 남기고 나머지는 음식물쓰레기가 아닌 생활쓰레기봉투에 담아 놓고 서둘러 무를 씻어 놓고는 고단하여 쓰러져 잠이 들었다. 다음날 부지런히 아침을 먹고  채를 썰어 양념을 만들었다. 하지만 절임배추가 오후 늦게 도착하는 바람에 어찌어찌하여 김장을 끝내고는 늦은 저녁을 먹었다. 그렇다고 그냥 먹을 수야 있나. 김장 속이 있는데 수육도 하고 고생한 딸을 위해 좋아하는 굴전도 부쳐서 저녁을 먹었다. 그제야 긴장이 풀리며  소진증후군이 발동했는지 온몸이 녹아내리며 그대로 잠들고 싶었다.



 

 정신을 가다듬으며 대충 치우고 나니 10시가 넘었는데 동치미에 넣을 쪽파가 모자라 더 사야 하는 것을 깜박했다. 동치미무를 씻어서 절여야 하고 쓰레기정리도 덜 끝났는데 마트 문 닫을 시간이 10시인지 11시인지 헷갈렸다. 요즘 부쩍 여기저기 아프다면서도 열심히 도와주느라 고생했지만 그 정도는 힘든 일이 아니기에 열혈사제 드라마에 빠져있어도 급하게 부탁을 했다. 그래도 그렇지 나는 모른다며 찾아볼 생각도 안 하고 들은 척도 안 다. 순간 몸도 힘들어 가누기 힘든데 마음마저 흔들리며 눈물이 나려 했다.


 굳이 울기까지 할 일은 아니었지만 그렇게 서운할 수가 없었다. 도와주는 본인도 힘들다며 김장을 반대하는 것은 알겠지만 깍두기며 총각김치는 그렇게 맛있게 드시면서 그거 하나 앉아서 못해준단 말인가. 다음날까지도 속이 상하고 야속한 마음이 가시질 않았다. 결국에는 다음날 아침 다시 마트에 가서 쪽파를 사다 동치미를 담그고 올해 김장을 모두 끝냈다. 그래도 분이 풀리지 않았다. 사과를 받아야만 마무리가 될 것 같았다. 점심을 먹으며 무턱대고 미안하다고 해달라며 졸랐다. "나 정말 그때 울 뻔했단 말이에요. 얼마나 힘들었는데 그거 하나 못해주고 당신이 며칠 고생한 거 그 순간 다 날아 건 거 아세요. 빨리 미안하다고 말해주세요."


 그런 나의 부탁에 어이가 없는지 웃으면서 미안했다며 손을 잡아주고서야 마음이 풀렸다. 진심이 아니어도 괜찮고 장난처럼 해주어도 기분이 좋았다. 이 말을 할까 말까 망설였지만 쌓아두며 서운해하고 미워하고 그러고 싶지 않았다. 길어지는 수명 탓에 우리는 이렇게 옥신각신하며 살아가야 할 날들이 아직도 멀었기에 그때그때 풀고 가야 한다.  그러면 서로에게 벽이 생기고 소홀해지고 마음의 거리 또한 멀어지며, 무늬만 부부로 살아갈지도 모른다. 어차피 생이 다하는 날까지 함께 살아가야 한다면 굳이 아껴둘 필요가 있을까. 유치하고 멋적스럽더라도 서운하면 서운하다고, 미안하면 미안하다고 말할 수 있어야 한다. 물론 고맙다, 멋있다. 예쁘다, 사랑한다 조금은 오글거려도 해보며 살아가는 것도 괜찮지 않을까. 모든 관계도 마찬가지겠지요.


미안하다고 말해줘서 고마워요.

꼭 듣고 싶었거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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